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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역사] 윤치호가 바라본 직장상사로서의 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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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4 11:36:35

윤치호 일기는 말 그대로 사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주관적 감정이 참 많이 들어가 있어 꽤나 재미있습니다.

여러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있는데, 민영환에 대한 에피소드는 오늘날 직장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절단 파견 당시의 일화입니다. 
민영환이 사절단 대표, 윤치호가 통역이었는데, 윤치호가 바라본 민영환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오후 민영환이 매우 불쾌하게 행동했다. 나중에 저녁식사 하는 동안 내가 그를 가볍게 대우했다고 내게 퍼부어 댔다. 그 이유는 다음 4가지 때문이다.

1. 내가 8월(음력)이 여름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는 것. 내가 조선 국왕의 특사인 각하에게 용서 받을 수 없는 그런 실수를 했으니 유감이다. 8월(영어로 8월)은 내가 미국과 조선에서 경험한 바로는 매우 더운 달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8월이 여름에 속한다고 했었다.

2. 내가 한 때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때는 저렇게 말했다는 것. 이 문제는 이렇다. 여기 두 러시아 관리, 파스콤 장군과 플랑숑 씨가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돕도록 임명된 사람들이다. 우리 사절 중 누구도 특히 외교계에서 준수해야할 러시아의 관습이나 예절에 익숙하지 못하다. 나나 민영환이나 모든 중요한 경우에 러시아 관리들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도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수를 한다. 이를테면 일전에 그들은 우리가 명함을 돌리는 것 정도 외에는 개인적으로 다른 나라 사절들을 방문해 일을 만들지 않도록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문제에 대해 상황을 더 잘 알게 되면서 그 러시아 조력자들은 우리가 사적으로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다시 어제 파스콤 장군과 플랑숑은 터키, 페르시아 그리고 청국 사절들 또한 대관식 행사 동안 성당에서 모자를 벗을 예정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했다. 그래서 나는 민영환에게 성당 밖에 남아 있기보다는 똑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터키 대사는 자신은 모자를 벗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성당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과 페르시아와 청국 사절들이 모두 입장할 것인지는 의심스럽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이런 상황 변화에 내가 책임이 있는 것인가? 나는 단지 민영환에게 그 러시아인들이 내게 말한 것을 통역했을 뿐이다. 나는 결코 한 때는 이렇게 말하고 다음에 저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3. 내가 들은 모든 말을 민영환에게 통역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4. 내가 자주 모르는 체 한다는 것. 이 말은 오히려 내게 찬사다. 확실히 나는 신이 보낸 이처럼 유식하지도 못하고 뻔뻔하지도 못하다. 민영환이 이 네 가지 내 잘못을 꾸짖기로 하고 내 자신이 변명을 하려다가는 사태를 악화시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나는 각하에게 차후 이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에 대한 불만을 얘기해 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점은 그의 성격에서 두드러진 장점이다."

여기서 윤치호는 민영환에 대해 짜증내면서도 장점 한 가지를 언급합니다. 직장 상사인 그가 불만을 바로 얘기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색하지 않다가 뒤통수치는 상사가 더 미운 법이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흔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절단의 원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한 후 민영환이 엄청 짜증내면서 상심했었는데...윤치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민영환은 매우 낙담해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집이 떠나가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자신의 무능 때문에 실패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 좋다. 나는 진실로 의심하지만, 만일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유교적 겸양의 덕을 지니고 있다. 다만 실패의 책임을 협상의 통역자인 내게 전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결과적으로 민영환이 윤치호를 탓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본인을 탓했을 뿐입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면 너무 자주 마주치는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온갖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이 있죠. 최소 민영환은 그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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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8-14 12:00:35

재미있는 역사가십이네요. 

대관식에 참석하려고 무려 지구반바퀴를 돌아 가는 길이니 피곤하기도 하고.. ㅋㅋ  

추천드립니다.

2020-08-14 12:07:20

불만을 바로 이야기해 주고 일이 잘 안풀렸을때 부하탓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상사입니다. 

2020-08-14 16:44:53

이 글을 보니 그 썪어 문드러진 민씨 일가 중 그나마 민영환이 제정신이었고, 왜 훗날 자결했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2020-08-21 08:13:51

민씨 일가는 당시 정계진출이 많았던 권문세가 중 하나로 명성에게만 엎혀 외척질을 했던 일부 민씨들은 소수에 불과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정계에 진출한 민씨 인재들은 민비가 시해로 사망한 이후 대한제국에서도 지다수가 속적으로 중요한 개혁에 참여하는 등 역할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윤치호의 상사갑질에 대한 짜증 이면을 생각해 보면, 당시 대한제국 개혁인사들의 공식 외유는 낯선 세상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언어와 문화로 소통하면서 외자를 유치하고 국방지원을 받는 등 미약한 약소국으로 소위 수퍼파워를 상대로 중대사안을 관철시켜야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보니 자잘한 문화적인 사안들까지도 신경을 곧두세울 수 밖에 없었을 듯한 사절 대표로서 민영환의 고뇌도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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