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광복은 8.15보다 늦었어야 했을까요, 빨랐어야 했을까요?
흔히 그런 if 많이 얘기하잖아요.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이 9월 예정이었던 국내진공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8월 15일 일제의 항복 소식을 듣고 청천벽력같은 느낌이었다고... 장준하 선생도 OSS와의 합동작전이 성공했다면 승전국 지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개탄하셨다고 하죠. 이것 때문에 8.15보다 광복이 좀 늦어져서 한국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을 통해 우리 힘으로 광복을 했으면, 한국도 승전국 지위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하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근데 당시 한국광복군의 병력과 미-소 관계를 생각하면, 오히려 8.15보다 광복이 더 빨랐어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네요. 한국광복군 병력은 많아도 1개 대대 병력에도 채 못 미치는 숫자였고, 이조차도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 병력과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병력이 다수였죠. 그래서 실제 광복군 숫자는 350명 남짓이었을거라고 추측합니다. 김원봉 선생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와 연계하여 임정 직할병력을 더 늘리려 했지만, 김구 주석께서 사회주의 세력이 늘어날 것을 염려하여 거절했다고 하죠. 당시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은 최소 2개 사단 60만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광복군 병력으로 국내진공작전을 시행한다는 건 무리였습니다.
결정적인 건 미국, 소련 두 강대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전국으로 인정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죠. 폴란드 망명정부만 해도 2차 대전 때 무려 40만 병력의 정규군을 참전시켰지만, 소련이 폴란드 망명정부를 승전국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전후에 폴란드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폴란드도 이런 실정이었는데, 연합국들의 관심이 적었던 아시아 식민지였던 한국이 승전국 지위를 얻을리는 만무했죠. 그나마 가정해볼만한 시나리오는 한국이 승전국 지위는 못 얻더라도,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깨고 관동군을 밀어버리며 남하하기 전에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고 일찌감시 항복했다면 그래도 한반도가 두동강 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네요. 괜히 항복 안하고 뻐팅기다가 한반도 분단을 불러온 일본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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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군 병력이 2개 사단인데 60만명이면
일본군은 1개 사단이 30만명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