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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광복절 즈음 국제정치 그리고 현실주의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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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00:02:58

1945년 8월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소련은 대일전쟁에 참전하여 만주를 삽시간에 정복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항복했고 한국은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방은 우리 손으로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일본은 결코 조선에게 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내내 줄곧 협상 상대는 명나라였기 때문이죠. 1945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은 그 어느 자리에서도 일본과 협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패망 직전까지 일본은 150만명이 넘는 대군을 중국과 만주 그리고 조선에 주둔시키고 있었어요. 따라서 현실적으로 만명은 커녕 수천도 안 되는 광복군이 뭘 해볼 여지는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의 역량은 거기까지였던 것이고, 이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 2020년 대한민국은 구한말이나 해방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성장하였고, 군사 측면에서나 경제 측면에서나 만만하게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 점을 잘 인식하고 활용해야 구한말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겠지요.

그런 첫번째 단계로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를 선악으로 보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정치는 이익이 경합하는 장이고, 모든 나라들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프랑스도, 독일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장입니다. 어떤 나라가 사악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사자보고 육식한다고 욕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세력균형의 관점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일본이 정말 개과천선하여 아주 전향적인 역사인식을 보이면서 중국과 접근하고 화해한다고 가정합시다(실제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추진하던 것..). 중국은 이에 호응하여 아시아연대를 구축한다고 가정해보는 거죠. 그럼 한중일의 세력균형 상 한국은 완전 쩌리가 되고 사실상 중국과 일본 간의 양두체제가 되어버립니다. 이상은 숭고할 수 있으나 사실상 권력관계를 고려하면 한국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일본이 남경대학살을 사죄하고 중국과 밀월관계를 만드는 순간이 우리 입장에서 가장 위험해지는 때입니다.

세번째로 중요한 것은 미국의 외교와 국방전략을 잘 읽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종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을 믿어 미국의 개입을 요청했는데, 이는 당시 미국의 외교전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 오해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하는 데 정신팔렸고 조선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데, 조선은 이를 몰랐습니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불변하는 게 아니고 미국의 외교전략 또는 군사전략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넷째로 중요한 건 정책의 일관성입니다. 구한말 조선은 살려고 이 나라 저 나라 안 붙어본 데가 없습니다. 다급한 처지에서 나온 전술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로부터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게 아닌, 확고한 노선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예컨대 필요 이상으로 애매한 자세를 유지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도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 입장에서 한국이 친중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자리잡으면, 한국에게 더 확고한 친중자세를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경우 확실한 마지노선을 설정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되도않는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은 분명 과거와 달리 무척 강해진 나라이지만, 상대적인 국력으로는 주변국에 비해 아직 한참 떨어지니 역시 외교적 감각이 무척 중요한 나라입니다.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주변국보다 더욱 기민하고 더욱 교활하고 더욱 지능적이며 더욱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여 진정한 강국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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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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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00:30:32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 항상 생각해오던 부분과 비슷하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부족한 부분이 전략적인 사고같네요
본인들 성향에 따라 너무 편향되는게 아쉽습니다...

2020-08-15 02:22:15

우리나라는 정치인이나 국민들이나
정치 지형도가 너무 대립적이고
외교에 대해서는 안에서는 갈등해도 대외적으로는 지향점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외교 감각은 너무나 후진적인듯요.

2020-08-15 03:32:52

잘 읽었습니다. 임란, 해방,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이 강대국에 둘러쌓인 약소국인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 명에 조아리던 사대주의자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20세기 친왜들 뿌리가 깊어 아직도 설쳐대고 있다는 것까지도 닮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접근을 자제하고 냉철한 계산을 근거로 국제관계의 줄다리기에 임해야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2020-08-15 16:29:13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 짓는 최근 동향이 염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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