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나에게 새 인생을 주신 그분께 감사하며..(긴글 주의)
한국은 장마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나요? 제가 있는 호주는 아직 겨울인데 오늘은 26도까지 올라갔네요. 한번쯤 여기에 글을 쓰고팟는데 귀찮음을 핑계로 세월만 보내다가 잠 안오는 밤 글을 써봅니다.
DP 을 알게된건 10년쯤 전이네요. 당시 만나던 남자분이 즐겨찾는 사이트였고 덕분에 저도 자주 들어와봤었거든요. 오늘 글은 그 남자분께 감사인사를 드리려고 쓰게 됐습니다^^
그분은 과 동아리 선배셨고 제가 그 동아리를 들어가기 전 IT 전시회 뭐 그런거에서 설명하는 걸 보고 제가 맘에 들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외모는 제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굉장히 똑똑해 보였거든요. 제가 동아리를 들어갔을때는 저도 뭐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렇게 그냥 안면있는 선후배 사이로 지냈죠. 그러다 졸업 후 서울에서 출근길에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쳤어요. 알고보니 집도 10분거리 직장도 10분거리였다죠. 당시 오래만나던 남친과 헤어지고 아저씨들만 가득한 직장생활에서 무척이나 심심했던 저는 '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죠. 우연히 마주친걸 운명으로 끼워맞추려했고 학창시절 똑똑하고 부유한 이미지가 있던 사람인지라 솔직히 결혼상대로 딱이라고 생각했었네요. 한심하지만 예전에 저는 취집이 무척이나 하고팟거든요. 게다가 그 선배가 가지고 있던 상식, 취미 이런게 제가 추구하는거랑 같아서 더 딱이라고 생각했던거 같아요. 가까이 있으니 종종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 제가 적극적으로 굴어서 사귀게 됐구요. 첫 남친처럼 불타는 건 없었지만 솔직히 더 여유롭고 제가 원하고 추구하던 데이트를 할수 있어 좋았네요. 문제는 그 선배는 호주로 IT 기술 이민을 준비중였고 결혼에 딱히 뜻이 없었어요. 그런 사람을 제가 몇년간 만나면서 맘을 돌려 같이 호주에 가는 걸로 약속을 하게되죠.
자, 이제부터 서로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둘다 성격적으로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었던거 같아요. 일방적으로 상대탓만 하지 않겠습니다. 제 성격이 강하고 말도 제멋대로 성격 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이 너무 낮았단 거예요. 도도하게 굴며 사랑엄청 받던 첫 연애실패 후 이별에 대한 휴유증이 너무 컷고 고작 20대 중후반인 나이였음에도 이번에 헤어지면 결혼하기에 너무 늦어진다, 새로운 사람 만날 길이 없다..뭐 이런 생각이 컷던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 선배가 하는 폭력적인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매달리고 있더라구요.
그 사람은 자긴 화가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물건을 던지긴 하지만 그거는 상황에 대해 화가나서 혼자 그런거지 한번도 날 때리거나 나한테 xx 년 이러면서 욕한적이 없다...라며 자기 행동을 합리화 했구요.
참 이상하죠. 학창시절 나름 인기도 좀 있고 (공대라 그런거 아니고요 ㅎ 실제로 캠퍼스 내에서 쫓아오는 사람도 여럿 있었어요) 항상 연애할땐 내가 갑이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중에 키도 제일 작고 외모도 제일 안되던 이사람 한텐 난 그냥 별볼일 없는 평범한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도 그럴게 그사람은 서른이 다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본적도 없었지만 대신 컴 바탕화면엔 맥심 모델들이 가득했으니까요. 제 주제에 맥심 모델들이랑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 ㅎㅎ
아무튼 그렇게 바보 등신짓을 몇년하다 어느날 아무것도 아닌일에도 윽박지르던 그 사람을 보며 깨달았죠. 난 지금 학대를 당하고 있구나.. 밥을 남기지 말라고 윽박지르면 그걸 다 꾸역꾸역 먹고 있는 저를 보며 이건 아니구나 뒤늦게 깨달았죠. 그때의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때 빠져나왔어야했는데.. 하긴 그랬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그날도 아무것도 아닌일로 윽박지르다 집에 가라며 절 내쫓고 헤어진다 협박하길래 조용히 알았다 했습니다. 나도 지쳤다 보내주겠다. 항상 매달리던 제가 순순히 오케이 하니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그날밤 전화가 수십통이 오고 다음날 회사로까지 전화가 오데요. 다음날 출근도 하지않고 제 회사로 찾아와 싹싹빌며 같이 결혼해서 호주가자던... 호주.. 참 호주이민이 뭐라고 그 사람은 그렇게 허세를 부렸으며 그 부모는 아들덕에 제가 호주가서 인생 편히 살꺼라며 콧대가 높았는지 모르겠네요. 같은학교 같은과에 졸업후는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단지 저희 부모님 직업이 변변치 않고 이혼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절 반대하고 무시하셨던 그분들은 저에게 호주가면 집에서 놀꺼냐며 미용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하셨다죠.
서론이 길었네요 암튼 벗어날 절호의 찬스를 또 그렇게 바보같이 놓치고 전 곧바로 그사람과 결혼을 하게되고 몇개월 후 초스피드로 이혼을 하게됩니다. 뭐 혼인신고도 안했으니 이혼이랄것도 없지만요. 전 그때 제 인생이 끝났다 생각했어요. 한국사회에서 이혼녀로 어떻게 살아갈까.. 울며불며 매달리고 술먹고 뛰어내린다 난동부리고 참..삼류드라마 다 찍었네요. 그때 그 사람이 그랬어요. 난 너랑 이제 자고싶은 맘도 없고 필리핀가니까 자기 결혼했다해도 좋다던 사람들 많더라..(결혼 후 바로 필리핀으로 혼자 단기어학연수 갔었어요)
못헤어진다 난리치는 저를 두고 그 사람은 다시 필리핀으로 6개월동안 연수를 가버렸구요 혼자 남겨진 저는 다시 이직도 하고 그 사람을 기다리며 나름의 변수에 대해 준비를 하게되죠. 6개월 후 돌아온 그 사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전 드디어 놓아주게 됩니다. 그 사람한테서 벗어난 6개월동안 제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었거든요.
일단 이직한 곳이 젊은 인력이 많은 IT 회사라 그 전 직장서 아저씨들한테 치이던 것과 달리 분위기가 신선했죠 ㅎ 나름 썸이라면 썸도 있었구요(친한 직원들은 제 상황을 알았기에) 그 사람을 놔주기로 하고 이사나갈 날을 기다리던 중에는 회사동생이 클럽에 데리고 가줬는데 거기서 26살 키 180의 고려대생을 만나서 한동안 썸을 탓죠. 네.. 저는 그 사람한테만 못난이였던거죠.
그렇게 그 사람 놔주고 바로 저는 어학연수를 가버립니다. 이혼한 마당에 회사를 어찌 계속 다니겠어요. 머리도 식힐겸 영어도 공부하고 여행도 하려구요. 그렇게 캐나다, 미국을 거쳐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왔어요. 그놈의 호주.. 몇년간 여기서 살꺼라 생각했던게 억울해서 1년이라도 살아보자 뭐 이런 생각이었다죠.
참 제 운명은 결국 호주였나봐요. 1년만 있다 가려던 호주에서 결국 살게됐으니까요. 영주권은 작년에 나왔구요.. 오늘은 제 생애 첫 집으로 이사한 날이예요. 아담한 2층집을 샀거든요.
영어 못한다, 구질구질하게 아낀다며 절 무시하전 그 사람이랑 헤어진게 벌써 8년쯤 전이네요.
영어 못한다 무시당하던 저는 지금 호주에서 전혀 다른 직종인 유치원 선생하고 있구요, 구질구질하게 아낀다 구박받던 저는 현재까지 15개국을 여행했네요. 그러고도 집까지 샀으면 구질구질하게 아낀게 아니라 현명한 소비를 하며 돈관리를 잘한게 아닐까요?? 20대 중후반에 이사람과 헤어지면 내 인생 끝인줄 알았던 저는 그 사이 연애도 많이 했구요. 필리핀에서 참으로 인기가 있던 그 사람은 결국 영주권을 따서 호주에 있는지 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인생을 이렇게 바꿔준 것에 너무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밖으로공원이보이는내첫집에서
#겨울인데26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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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보고 훈훈한 글이구나 하고 들어왔는데 완전 쓰레기같은 놈 이야기였네요. 글만 읽었는데도 가스라이팅 엄청 심하게 당하신 게 느껴집니다. 욕보셨네요.. 지금은 훌훌 털어버리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