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40여년 만에 들은 초등동창생 이야기
부산 영도의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전교 어린이 회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늘 저에게 이상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전교 어린이 회장을 하려면 먼저 반장이 되어야 하는데 반장 투표에서 그 친구가 2등을 했습니다.
성적이 비슷하긴 했지만 그 친구는 대단한 노력형이었고 전 늘 벼락치기 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 동무들과 늘 잘 어울렸고 그 친구는 시험기간만 되면 노는 것을 포기하고 공부만 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장선거에서 그 친구가 2등을 하자 전교회장 자리를 이미 내정받았던 담임은 아주 난감해 하다가 3반의 담임선생님과 의논을 했고 3반 담임선생님은 저희 반으로 들어와 저를 따로 불러 학교에 카메라를 사줄 수 있느냐고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 당시 카메라가 얼마하는지도 몰랐지만 그런 걸 사줄 형편이 안되는 걸 너무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자 3반 담임(남자선생님이고 나이가 조금 있었습니다.)은 투표용지가 한장 더 많다며 다시 투표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개표를 직접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그 친구가 2표 더 많이 나온 걸로 결론지었습니다.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친한 칭구였고 회장과 부회장 뭐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졸업 전 마지막 시험을 치기 전에 회장이라는 친구가 밤 늦게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기가 아는 아이의 누나가 교무실의 잔심부름을 하는데 시험문제를 등사했다고 물어보러 가자고 하더군요.
전 싫다고 했지만 니가 가야 된다며 제 손을 잡아 이끌었습니다.
그 누나는 밤 늦게 찾아온 우리를 보고 회장인 친구에게 맨날 1, 2등을 하는데 왜 시험문제를 알려고 하냐며 타박을 주더군요.
그래도 그 친구는 끈질기게 물었고 그 누나는 사람의 팔의 근육과 관련한 문제와 몇 가지 어려운 문제를 미리 알려주더군요.
솔직하게 전 그것이 죄악이라는 생각에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 친구는 열심히 받아 적더군요.
그리고 그 친구는 저에게 이 사실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자고 저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하더군요.
결국 그 친구가 마지막 시험에서 1등을 했습니다.
똑똑한 친구라 당연히 그 친구는 소위 S대 공대에 입학했고 대기업의 임원이 되었다는 소식까지 들었습니다.
서로 갈 길이 달랐기에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고 가끔 친구들을 통해 들은 소식이었습니다.
근데 얼마 전에 그 친구가 전주에 있는 동기 여학생에게 연락을 해왔다고 하더군요.
마침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왔다고 하면서 제 소식을 물어보더라고 하더군요.
해서 그 여학생이 제 소식을 전했고 마침 담임 여선생님과 함께 2년 전에 만났다고 했더니
담임선생님과 제 욕을 하더라고 하더군요.
제가 어이가 없어서 무엇 때문에 그러더냐고 했더니 이유가 가관이었습니다.
졸업식 날, 졸업하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을 하는 순서가 있는데 그걸 담임선생님께서 저에게 시켰던 것을 그렇게 화를 내더라고 하더군요.
아마 담임선생님은 제가 반장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저에게 시킨 것 같은데 자기는 그것이 당연히 자기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절대 자기는 담임선생님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하길래 그냥 웃었습니다.
45년 전의 일이고 자신의 비열함은 기억하지 않고 오로지 이기적인 것만 쫓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번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 가시더군요.
제가 사는 모습에 대해서 그 친구는 미친 놈 취급하리라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내와 함께 이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 웃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가져야 행복한지, 언제나 내가 1등이어야만 하는지 그 친구는 알까 싶더군요.
추석이 다가옵니다.
몇 가지의 선물이 택배로 왔지만 전 단 하나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원봉사를 온 학생들과 소풍의 식구들, 그리고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께 처가에서 만든 포도주 1병씩을 나누었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님을 올 추석에는 뵙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도 조카들과 조카 손자, 손녀들, 그리고 저희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추석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다들 좋은 가을, 좋은 추석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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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기가 다 가져야만 속이 시원한 사람이 있죠 때로는 꼴등이 맘편할때가 있는데 그걸 그사람들은 모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