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김일성의 '유감' 표명
안녕하세요. 시간 없으신 분을 위해 10줄 요약합니다.
1. 2020년 9월 해수부 공무원 사망과 관련 김정은이 매우 미안하다 (I am sorry)라는 메시지를 보냄.
2. 몇몇 사람들은 ‘미안’이 아니라 ‘사과’(apology)를 받아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
3. 남북미가 가장 전쟁에 근접했던 상황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임.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비무장한 미군 장교 두명을 도끼로 찍어죽인 엄청난 사건이었음.
4. 포드 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라크 전쟁광인 바로 그 사람), 헨리 키신저 국무부 장관 대노함. 키신저는 “북한이 미국이 2명을 때려죽인 대가를 치러야 할 것. 빨갱이들의 피를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고 대놓고 말함.
5. 분노한 미국은 미해군 7함대 출동, 핵미사일 탑재 F-111, B-52전략폭격기 한국 배치, 주일미군 해병대 증파 등 전쟁 준비를 불사함.
6. 바짝 쫄은 김일성은 미국에 사상 최초로 “유감이다”(It is regretful)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함. 그러나 책임 여부는 인정도 안함.
7. 미국은 메시지를 받은 후 하루를 기다리다가 결국 “김일성의 메시지는 긍정적인 발전”이라며 사과를 받아들이고 병력을 철수시킴.
8. 북한은 미군 장교 2명을 때려죽이고 미국에게 박살날 상황 몰려도 ‘유감’(regret)이라는 표현밖에 못하던 나라임. 외교천재 키신저도 북한에게 사과(apology)가 아닌 유감(regret)만 받아내고 철수했음. 심지어 우리의 조선일보도 당시 "김일성의 유감 표명은 사과하고도 남는 것임"이라고 미국과 박정희를 칭찬함.
9. 1996년 북한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한국군 12명, 민간인 4명이 죽었는데 김영삼 정권은 북한의 "매우 유감"(deep regret) 메시지만 받고 그냥 넘어갔음. 물론 이때도 우리의 조선일보는 "김영삼 정부는 초강경 대응으로 북한을 몰아붙여 사과를 받았다"고 평했다는 사실을 빼놓아선 안될 것임.
10.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에게 이번에 “매우 미안하다”(I am sorry)라는 표현을 받아낸 것은 의미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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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해수부 공무원 사망과 관련해 김정은이 사과를 했더군요. 영어로는 I am deeply sorry (매우 미안하다)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영어로는 이렇게 표기를 했더군요.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I am deeply sorry that an unexpected and unfortunate thing has happened in our territorial waters that delivered a big disappointment to President Moon Jae-in and the people of the South,”
이에 대해 왜 북한에게 왜 apology(사과) 못받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서 그냥 짧게 몇마디 써봅니다.
북한이 한국, 미국과 거의 전쟁상황에 돌입했던 위기의 순간을 꼽으려면 누구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입니다.
큰 사건이지만 짧게 요약하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나무 가지치기하던 북한군이 비무장 미군 장교 두명을 도끼로 찍어죽인 엄청난 사건이었죠. 더구나 사건 발생 순간이 카메라에 모두 촬영이 되어, 사건의 책임이 북한 쪽에 있음이 150% 확실한 사건이었습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사진
당연히 미국은 엄청나게 분노합니다. 기밀해제된 미국 국무부 회의록을 보면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의 엄청난 분노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회의록을 보면 키신저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조지 HW 부시 CIA 국장이라는 후덜덜한 참석자들입니다.) 키신저가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셔도 알수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놈들(북한)이 미국인 두명을 때려죽였다는 거다. 이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The important thing is that they beat two Americans to death and must pay the price.)
“내가 맞아죽은 미국인 2명중 한명이었다면 나는 총으로 반격했을 것.” (If I had been one of those men and was being beaten to death. I would have used a firearm.)
“이 북한 놈들의 제안은 사악하고, 비도덕적이며, 위험하다.”(the North Korean proposal is evil, immoral, dangerous.”)
“공동경비구역 내에 있는 북한군 막사를 폭격해야 한다”(North Korean barracks inside of the Joint Security Area (JSA) should have been bombed)
"북한을 신속하게 폭격해야 한다. 북한 빨갱이 놈들이 피를 봐야 한다."
“a swift bombing campaign of North Korea. North Korean blood must be spilled”
“우리가 지금 아무것도 안하면, 북한은 우리를 사이공의 종이호랑이로 생각할 것.”(If we do nothing, they will think of us as the paper tigers of Saigon. 이때는 미국이 체면을 구기고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베트남이 공산통일된 직후였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피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도끼만행 사건 후 미국은 다음과 같은 병력을 동원합니다.
핵무기 장착 가능한 F-111 전폭기 대구 비행장 배치.
핵무기 폭격 가능한 B-52 전략폭격기 괌에서 발진
군산 비행장 미공군 F-4, 한국군 F-4, F-5가 엄호
일본 오키나와에서 F-4 24대 발진
항모 미드웨이를 포함한 미해군 7함대 출동
미군 1만2000명 한국 증파 요청
미군 공병, 포병, 방공포병 DMZ에 전진배치
북한은 잔뜩 쫄아서 총동원령을 내려 대학생들을 군에 동원하고, 예비군들도 모조리 동원합니다 제대 장교 60세 미만도 전부 재소집하고 최전방부대 주민들도 소개시키며 미군 침공에 대비하죠.
그리고 미군과 한국군은 ‘폴번연’ 작전을 벌여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잘라버리고, 북한군 초소 몇개를 때려부숩니다. (이때 특전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출동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아실거구요.)
북한군은 미국의 강경한 반응에 잔뜩 쫄아 북한군 초소가 박살나도 나와보지도 않습니다. 처음에는 정신 못차리고 “미군이 먼저 도발했다. 사과하라”고 헛소리를 해대던 북한도 미국에 압도당하고, 세계의 여론도 북한에 불리하게 돌아가지요. 결국 북한 김일성은 사상 최초로 미국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사건은 지금 볼 때 유감이다.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It is regretful that an incident occurred in the Joint Security Area, Panmunjum, at this time. An effort must be made so that such incidents may not recur in the future .”
미군 살해 책임도 인정안하고, 누가 잘못했는지도 얼렁뚱땅하는 전형적인 4과문입니다. 포드 미국대통령은 당연히 이에 만족 못했고,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의 전면적인 공식 사과(full public apology)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백악관이 아닌 키신저의 국무부 대변인이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이것(유감 표명)이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생각한다.”(We consider this a positive step)
키신저의 국무부가 백악관을 설득해 이정도 메시지를 받아들이라고 한겁니다. 북한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최고 지도자 김일성 명의로 ‘유감’이라고 표명한 것이 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백악관은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거두지는 못하고, 한등급 낮은 국무부 대변인 메시지로 마지못해 김일성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거죠. 그리고 미군은 병력을 거둡니다. 이렇게 한반도 전쟁 위기가 일단 끝이 납니다.
북한이 사과가 아닌 “깊이 미안”이라고 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상대는 정상국가가 아닌 깡패국가 북한이고,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최고 지도자가 직접 공개적으로 자기 명의로 “유감” “미안”이라고 하는 것은 유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외교 천재 키신저가 항공모함과 핵무기를 동원했어도 북한에게 받아낸 최대한의 메시지가 김일성 명의의 “유감”이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조선일보도 1976.08.27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습니다.
또 여기서 강조해야할 점은 김일성(金日成)이「유감」이란 용어를사용했는데 남북(南北)관계에 있어 김일성(金日成)이「유감」이란 용어를 쓴것은「사과(謝過)」하고도 남는걸로 미국은 받아들인 것입니다.판문점(板門店)에서 북괴(北傀)대표는 김일성(金日成)의 메시지를 읽고원문(原文)을 갖고갔지만 미국(美國)이 이「유감」의 뜻을 전세계 매스콤에 흘린뒤에도 이를 북괴(北傀)가 부정하지 않은점을 유의해야합니다.
저도 조선일보의 평가에 100% 찬성합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병력 한명도 동원하지 않고 북한에게 김정은 명의로 “깊이 미안”이라는 입장을 받아낸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과 북한 양측이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으로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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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보니, 방금 뉴욕 타임스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기사가 나왔는데, 북한이 "깊이 미안하다"라고 한 것이 북한으로선 매우 드문 사과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1996년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 때도 "매우 유감"(deep regret)이라고 퉁쳤던 점을 지적하면서요.
https://www.nytimes.com/2020/09/25/world/asia/korea-kim-jong-un-apology-killing-defector.html
당시 북한 잠수함 침투로 한국군 12명, 민간인 4명이 사망했죠. 이에 대해 사건 발생 120일만에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보낸 메시지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외교부 대변인은 위임에 의해 96년 9월 남조선 강릉해상에서 일어난 잠수함 사건으로 막대한 인명피해가 난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이와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다짐하며, 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다."
"The spokesman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is authorized to express deep regret for the submarine incident in the coastal waters of Kangrung, South Korea, in September, 1996 that caused the tragic loss of human life. The DPRK will make efforts to insure that such an incident will not recur, and will work with others for durable peace and stability on the Korean peninsula.''
1996년 북한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김영삼 정권은 사건 발생 120일만에 북한의 "매우 유감"(deep regret) 메시지만 받고 그냥 넘어갔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아 물론 우리의 조선일보는 당시에 대해 "김영삼 정부는 초강경 대응으로 북한을 몰아붙여 사과를 받았다"고 평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되죠.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6/23/19980623704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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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엄청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문도 복사하지 않고 직접 타이핑하셨나 봅니다. 좋은 글에 오타가 하나 있네요. ^^
An effort must be made so that such incidents may not recure in the future. ->
An effort must be made so that such incidents may not recur in the f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