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드디어 퇴사일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11월 6일에 최종 인수인계를 마치고, 연차를 소진하던 생활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네요.
막상 내일로 퇴사일이 다가오니 이런저런 상념이 듭니다.
입사시... 직전해 그룹 전체적으로 엄청난 적자를 2년 연속 내어서, 한때 일본에서 정말 선망받던 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 채용의 설명회조차 파리를 날릴 정도로 모 그룹은 절벽에 내몰린 상황이었죠.
컨슈머 대상의 기업으로 유명했었지만, B2B로 사업 방향을 시프트해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신임 사장의 경제지 인터뷰를 감명깊게 읽었고, 그래서 그룹 안에 거의 유일한 B2B 대상의 시스템 사업을 하는 회사에 지원하였었지요. 열심히 하면, 그룹이 B2B로 시프트하는 와중에서 비록 지금은 자회사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활약할 기회, 성장할 기회는 상당히 큰 매력있는 회사가 아닐까 하는 전망을 가지고 입사를 했었습니다.
입사 후 우연찮게도, 티비에서나 볼 본사 사장의 대담회에 2번이나 참가해, 사장과 사원들의 대담을 들을 기회도 있었네요. (신입이라 발언권이 없었던 것이 아쉬웠었습니다)
부침도 있었지만, 회사는 계속해서 그룹 내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었고 (모 회사보다도!) 비록 모 회사에서 날아온 상사들이 영 미덥잖게 보이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비교적 클라이언트와 직접 상의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기에, 재량을 가지고 고객을 위해 활동할 수 있다는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노력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느냐?라는 추궁을 받을땐 정말 화가 나고 섭섭하고 하기도 했었지요.
해외와 연관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해외를 경험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미국권, 유럽권과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은 참 꿈만 같았던 일이었지요. 영어를 비지니스 차원에서 실전에서 써본 적은 없었습니다만, 경험을 쌓아가면서 미국 엔지니어와, 유럽 클라이언트와 직접 토의하고, 보고하며, 상의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작년 5월까지는 이직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지요. 큰 국제 이벤트를 성공시키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공명심으로 정말 열심히 일을 했었습니다.
일이 꼬이는건 한순간인 것 처럼 보이면서도, 서서히 옥죄여오는거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어요.
프로젝트 중간에 위화감을 느끼고, 이 부분의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우리측에게 재난이 닥칠거다란 제언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 제언은 묵살되었고, 시스템을 전혀 모르고 영어도 모르는 영업은 클라이언트 비위를 맞추느라 굽신대기 바빴지요. 결과적으로 불길한 예측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노렸다는 듯이, 그 간신배같은 영업이 전면에 나서서 프로젝트를 휘젓기 시작했지요. PM은 강등당하고, 기술 전문직이었던 저는 클라이언트와의 논의의 장에서 배제되었습니다. 통역과 꼭두각시등을 고용해 간신배들이 전권을 장악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전수용, 내부에는 정보를 통제하며 프로젝트는 암흑으로 빠져들었지요. 당연히 버그는 속출하고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는 커녕 악화일로를 걸었지요. 미국측 핵심 기술자를 존중하지 않고 학대시키자, 그가 퇴사해서 탈주하는 사태도 일어났습니다. -_-;;
그런 와중에 저는 완전히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었지요. 이런 사람들과 계속해서 일할 수 없다... 내부에서도 상담을 하고, 이직도 알아보기 시작했었지요.
과 안에서는... 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상사가 계셨지만, 윗선과 다른 실무자의 방해로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는 것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직은...
작년에 이 짤을 사용해서 이직 관련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어느정도 선까지 도달했으면서도, 결국 최종단계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주변 상황이 좋지 못한데다가, 잘 해냈다고 생각했던 인터뷰의 결과가 낙방으로 다가오니 정말 좌절감이 맨틀을 뚫고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스스로가 꽤나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평가받을 요소가 적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가치있는 자인걸까...? 하는 의문이 말이지요.
그래서 엔드게임의 토르에 그렇게 빠져들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이루지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직이었고, 또 하나는,
이직에 성공한 후, I'm still worthy!라는 이 짤을 올려서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던 계획이었죠.
실패했기 때문에 올릴래야 올릴 수가 없었지요.
정작 올해 10월 초중반에 가고 싶었던 곳에 최종 합격이 결정되었을때는, 정말 기뻤었습니다만 경황이 없어서 그때 그 꿈(?)을 실현하지는 못했었네요.
이직 성공후 제일 기뻤던 것은, 아마도 자신이 여전히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지인에게 이직처를 보고하자,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군요...라고 엄청 축하해줬을때는 정말 뿌듯했고, 내심 그 친구에게 고마웠네요...)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가치에 대한, 그 일에 있어서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흔들려왔던 믿음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막상 떠나려니,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이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그룹은 여전히 B2B에의 시프트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채, B2C사업에 기대어 과거의 영광을 업고 연명하고 있어요. 킬러가 되는 핵심 기술은 여전히 부재한 채로 말이지요.
제가 믿었던 그룹 사장은, 결국 개혁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채, 퇴임 후 회장이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뉴스가 나왔고요...
제가 소속되었던 회사는 꽤 발전을 이루긴 했지만, 여전히 모회사에 종속된 채로 자주성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일을 하면서도 모회사 출신과 자회사 출신이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에서 오는 갈등은 개선은 되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했어요. (퇴직할때 출신에 따라 시스템으로 처리가 되기도 하고, 서류를 수기해야 하기도 한다는걸 듣고는 참...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그래도... 비록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침도 많이 겪었지만, 생각해보면 여러 기회를 얻었고 많은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몇몇 간신배들에겐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감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회사 자체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퇴사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요.
최근까지 PJ안에서 친하게 지내던 베테랑 분은, 일부러 현재 작업 현장이 아닌 본사로 내일 출근해주신다는 말씀도 해주셨구요...인사하러... 고맙게스리...
뼈를 묻을 각오로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왔던 회사의 사원증, 뱃지, 기타 지급품을 반납할 준비를 마치고 나니...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이 드네요...
내일은 좀 일찍 나가 휴게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사원증 등의 기재를 반납하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한때 매일매일 출근했던 오피스를 등지려 합니다.
오늘 밤엔 어떤 꿈을 꿀지 모르겠네요.
디피 여러분 안녕히 주무세요. 좋은 밤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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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