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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슬픈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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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2-03 21:37:53

제가 매일 저녁 커피를 사러가는 작은 카페가 있습니다.
사장님 연배가 제 세대로 보여 친밀감이 느껴지는 가게입니다.
주요 고객층이 대학생이라 카페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고, 책장에는 소위 명작이라 할 수 있는 만화책이 그득하고, 선반에는 보드게임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그러나 저번 주부터 홀에 불을 끄고 영업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거리두기2단계로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니까요.

오늘도 여느 때처럼 그 카페에 커피를 사러갔습니다.
사장님이 카페를 향하는 저를 발견하고서는 저쪽에서 뛰어오십니다.
아마 담배 한 대 피시던 중이었겠지요.
손님도 저 말고는 한참동안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당연하죠. 카페에서 놀지 못하니 재잘거리던 대학생들이 발길을 끊었을 거니까요.

커피를 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카페에서 캐롤이 들려옵니다.
영어로 불러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수의 목소리도 선율도 참 감미롭습니다.
커피를 들고 카페 밖을 나와도 캐롤 소리는 계속 들립니다.
카페 앞 테라스에 외부스피커를 설치해서 나와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와중에도 한동안 계속 들립니다.

내부 조명이 꺼진 쓸쓸한 카페와, 힘든 시기를 의연히 버티고계신 사장님의 표정과, 여러 소상공인들에게 대목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울려나오는 캐롤...
제가 들어본 캐롤 중 가장 슬픈, 2020년의 크리스마스 캐롤이었습니다.

카페 사장님에게 힘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었는데, 그 말이 더 힘들 것 같아 차마 전하지 못 하였습니다.
DP의 사장님들도 부디 잘 버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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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12-03 23:06:41

뭔가 따뜻해야 하는 시즌..

그래서 더 서글프네요~~ㅜㅜ

WR
2020-12-03 23:11:21

네...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고, 내년에는 코로나라는 용어가 술자리 추억담 소재로만 언급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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