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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Krishnamurti - The First and Last Freedom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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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1-09 02:24:34

아침에 온도가 뚝 떨어졌습니다. 앞 집 지붕에 허옇게 서리가 앉았고 물을 찾아 헤매는 수십마리의 허밍버드 떼가 이리 저리로 주유소 팔벌린 풍선인형 춤추듯 움직입니다. 장관인데 사진을 찍을 틈이 없습니다. 

 

 

 

 풀소유 혜X의 기사를 보고 위키를 찾아 읽다가 흠칫했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면 생애의 궤적을 보고 현재의 그가 어떤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위키의 한 구절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하던 중 크리슈나무르티의 책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읽고 종교와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깨달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그는 저 보다 연배가 어리지만 그가 당시 추구한 깨달음을 저는 수 십년 지난 지금 같은 책을 보면서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추구해서 깨달았는지 깨달았다가 돈의 가치도 알게 되었는지는 관심 없습니다. 

흔히 진보 측 인사의 집, 땅 소유에 대한 소음이 많죠. 

그런 보도의 행태가 기레기 소리를 들어도 마땅한 것은 다 아시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알려진 치부행위의 반칙들을 사회의 명망가도 어쩔 수 없이 해처먹는다는 양비론을 덧씌우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보도행위가 양비론 대상의 거대한 한 편은 누구나 알지만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로 그늘에 두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금전만능 사회의 책임과 그에 대한 분노까지 모두 담아 다른 한편을 향해 단지 의혹이라더라도 거진 판명된 사실처럼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양비론의 기막힌 테크닉은 세계 어느 황색언론(옐로 저널리즘)과 견줘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삼천포에서 다시 책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말이란 전하기 따라서 의도에 따라서 독이 든 화살이 되고 덕담이 되기도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나 조건에 따라 덕담도 모욕이 되기도 하고 독설이 해탈의 채찍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부쩍 포스팅이 늘고 댓글도 길게 쓰고 하다 보니 하루에 디피를 기웃거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자다가도 깨서 댓글달고 다시 자는 제가 분명 정상은 아닙니다.

 

디피로 기울어진 시간은 온전히 독서와 운동에 할당된 시간에서 빠져나갑니다. 12월 들어 3권은 더 읽어야 연간 목표량을 채우는데 짧은 책으로 바꾸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불가능해졌습니다. 부질 없습니다.

 

아침에 책을 들었다가 노트북을 열고 타자를 칩니다. 어제 읽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이 책의 한 챕터에 따르면 책을 더 읽거나 디피를 더 하는 것이 별로 차이가 없는 자아 탐구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잇힝!

 

 디피를 20년 가까이 보고 있었고 밑에 있는 서명처럼 까불고 시시덕거리러 왔었지만 요즘처럼 진지하게 오진 않았습니다. 디피가 제공하는 온갖 유흥과 가쉽이 영혼의 고즈넉함을 장려하진 않죠. 흥분하고 후회하고 싸지르고 이불킥하고 차단하고 혐오하는 사이 자판을 두드리는 손톱이 아파오게 됩니다. 1년 가까이 떠나있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오게 되면서 부터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겨서였습니다. 흔들려도 금방 차려지더군요. 인생공부의 샌드박스라고 어제 어떤 님 글에 댓글 달았었는데 진심 그렇게 느낍니다.

급기야는 와이프가 어제 그러더군요. 둘이 사귀냐? 게시판에 그러지 말고 채팅을 해. ㅎㅎ

와이프가 그럴진대 게시글에 둘만 달리는 댓글 릴레이에 다른 회원님들의 시선은 어떨까요 ㅎㅎ

(책 내용 중 isolation에 해당하지만 결론부에서 풀립니다)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의도는 무엇이며 도대체 좋다는 것인지 누구 편인지 골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상대는 피하려고 일단 익명댓글 배제를 쓰지만 닉네임 걸고 악플을 다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꼈었지만 나중에 제 탓이었음을 알고 부끄러워졌었습니다.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마치 책을 읽고 옮겨 적거나 작가를 불러 이야기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관심사를 나누고 배우고 주고 받습니다. 누가 잘나고 못나고 가방끈 길이 재고 물건이 큰지 아닌지 대보는 짓거리 없이 이렇게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누는 상대가 있으면 행복한 일입니다.

 

rockid님의 어떤 회원 댓글에 책읽기에 대한 구절을 보고 정말 기뻐했습니다. 메타데이터와 스키마 확장.

다독이라 돌아보지 않고 많이 읽어왔기에 꽉찬 문장과 빈틈없는 인용을 구사하는 분들을 보면 부러운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만, 저도 저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 점을 이야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대화를 해보니 띄엄띄엄 비약하는 제 서툰 말투를 어지간히 불평없이 받아주시는 바람에 푹 사랑에 빠졌습니다. 대화에 대한 사랑입니다. 흠흠

 

아내의 일격에 반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행복한데 뭐가 문제이겠냐만은 자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원했던 킨들을 들고 한 챕터 낭송을 했습니다. 

독서는 경험과 함께 할때 그 경험이 용해되어 스파이어럴(천원돌파 그렌라간!)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읽고나서 벅차는 감흥에  한글 번역을 찾아봤는데 대략은 다음 첫번째 사진에 있습니다.

 

제가 읽은 내용은 Relationship and Isolation입니다. 

두 번째 사진의 두번째 문단의 내용이 이 챕터의 결론부이고 챕터의 처음부터 읽은 후 이 결론을 읽어야 제대로 된 음미를 할 수 있습니다.(책 자체가 선물 같습니다)


 

 

 이 챕터를 순전히 제가 지금 처한 상황으로 대치해서 메타데이터를 채우고 스키마를 확장 변용 해석했더니 왜 댓글 대화가 즐거운지 며칠 미친듯이 달렸는지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Rockid님도 비슷한 생활의 희열을 느끼셨으리라 확신하기에 책 소개 핑계로 글 올립니다.(이 책 있으시다에 500원 겁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크리슈나무르티를 같이 읽는다는 건 의천도룡기의 장무기가 구양신공과 구음진경을 동시에 연마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두 사람이 만나 직접 이야기 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아~~ 오디오가 없습니다. 수양을 더 해보겠습니다.

 

와이프 눈치보이니 음 이해하시죠? ㅎㅎ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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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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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2-11 05:12:49

 5백원 주십쇼. 없습니다.ㅋㅋ 제가 가지고 있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은 청목사에서 나온 해적판 "자기로부터의 혁명"뿐입니다. 저도 인도 명상가들의 책을 조금씩 읽어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문을 자기도 모르게 닫아버린지 꽤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 주관적인 가치판단의 무게추가 엄밀성과 객관성, 소통 가능성으로 기울어진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열광하게 된것도 이러한 요구를 가장 적절하게 채워주는 사상가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제 오랜만에 어떤 분이 쪽지를 주셨습니다. 그 분 역시 비트겐슈타인관련 글로 인연을 맺은 분인데, 오랜만에 다시 비트겐슈타인을 읽으신다면서 색체문제에 대한 질문을 주셨더라고요. 색체 문제는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사상인 언어그림이론의 원자적사건과 요소명제의 대응관계가 과연 가능할까에 관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많은 고민을 하다가 언어그림이론의 한계에서 벗어나 가족유사성이나 사적언어 이론 같이, 맥락과 화용론을 중시하는 언어이론을 발전시키게 되었죠. 사건이나 언어도 그것이 독립적으로 존제할 수 없고 수많은 관계망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크리슈나무르티가 윗 글에서 지적한 고립을 통한 안전함의 보장이 왜 환상에 불과한지에 관한 문제와 묘한 커플링을 만들어냅니다. 신기하게도 그 분도 크리슈나무르티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다른 분들에게 책을 선물할 정도로요. 

 

제가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다가 결국 제 안으로만 갈무리하고 입밖으로 좀처럼 내지 않은 마지막 신비주의 사상가는 카를 융이었습니다. 인과관계 없이 연관되는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동시성 이론은 융의 사상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이며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크리슈나무르티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상가에 대해 우연히도 동시에 관심이 있으신 두 분을 우연히 이 같은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되고, 그 두분이 한 날에 제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정말 놀랍게 느껴집니다. 과학적인 입장에서 저는 이것을 '우연'으로 치부하고 냉정함을 유지해야겠죠.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이러한 경험이 제게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비논리적인 동시성의 세계에 대한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라는 메시지처럼 들립니다. 말을 걸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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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1 05:10:14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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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2-11 10:53:30

길어야 한 평생을 살 뿐인 우리 실존들에겐 우연(contingence)인 사건들이 연기(緣起)의 측면에서 보면 필연(아낭케)일 수도 있겠더라고요ㅎ 말씀하신 '메시지'가 제게는 체험(體驗)이라 들립니다. 각자(體)에게만 경험되는 것이므로 non sense하지만 거기에서 우리 삶의 의미(sense)가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 실존에서 가장 non sense한 것이 '사랑'은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가끔 그런 식으로 의미들을 발견하게 될 때,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 안심하게 됩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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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2-11 11:04:26

아 방금 쓰려던 말을 대신 써주시네요. non sense는 아직 make sense 못했다는 정도, 현재 과학의 한계, 코로나에 비칠 거리는 인류를 납득하게 합니다. 죽으면 그만인데 해탈을 왜 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윤회는 하는데 기억은 못한다는 기막힌 변명 or 장치에 막혀 알 수 없는 저편 세상 아닙니까?  

 

제 대대댓글인줄 알았습니다. 대충 다 한가지로 회귀하니 다행입니다만 ㅎㅎ

1
Updated at 2020-12-11 06:34:29

본문 글을 읽긴 다 읽은것 같은데..

비트겐슈타인 이란 이름이 최근에 여러군데에서 자주 보이네요 오래전 진석사의 책을 읽으며 발터 벤야민과 함께 자주 인용되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워낙 인알못에 뼛속부터 과학소년이라 자처하며 살아온 인생인데다 어느덧 역사에 종교쪽으로 관심이 생기니 스펀지가 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목마름이 느껴지더군요

벤야민과 브레히트의 대화를 담았다는 책도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아놓은지 몇년인데 아직 선뜻 구매를 못하고 있고 다른 책들만.. 그것두 최근에는 책을 거의 못읽고 있긴 합니다

자기로부터 혁명 도 알게된 것은 인문학에 1×10^-6 만큼의 관심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책소개를 보니 호기심이 절로 생겨나네요

제가 세번을 정독을 하더라도 알지 못했을 수 있는 핵심내용들을 미리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독서모임에 나가게 되는 계기가 저의 지금의 느낌 같은게 아닐까 싶네요

WR
2020-12-11 07:42:08

글이 뇌피셜과 비약으로 점철되어 읽는 분의 해석이 제 마음 속 내용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짧게 오해...이런 걸 어눌하다고 하죠.

Updated at 2020-12-11 08:09:37

진석사는 비트겐슈타인 등의 짤은 글귀를 가져다가 자기 생각을 써내려간 그런 책이었던지라 딱히 비트겐슈타인을 해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진석사 이 양반 필체에 날카로움이 배어나 있었는데 말이죠 그러나 그 날카로움이 남에게만 향하고 자신은 미꾸라지처럼 피해가는게 느껴지니 손절하게 되더군요

WR
2020-12-11 08:11:00

팔리는 글을 쓰는데 특화되다 흑화되지 않았을까 뇌피셜 돌려봅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써드립니다~~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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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1 06:37:30

크리슈뭐시기 책이 유행 타던 시기가 아마 80년대 중반 즈음이 아니었나 싶군요.

늘 그렇듯 작가가 유명한 문학상을 타거나 죽거나 하면 저서들이 우루루 출판되는 것이 출판계의 관례인데

혹시나 찾아보니 86년에 사망하셨군요. 

WR
2020-12-11 07:43:01

그냥 옛날 책이라 하기 아까우니 한번 읽어보세요.

2020-12-11 20:51:41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다닐 때 읽어봤죠 ㅎㅎ

이 양반이랑 라즈니쉬던가? 인디언 명상가 그맘때 인도 철학, 명상쪽 책들이 많이 번역이 되어 베스트셀러로도 오르고 했었죠.

 

당시 법정스님 무소유랑 노자 도덕경 바가바드가타 이런 종류의 책들 많이 읽었었는데 표현은 달랐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들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1
2020-12-11 06:50:07

아... 저...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제가 모르는 분야를 하나 더 발견하고 갑니다. ^^

WR
2020-12-11 07:43:48

맞아요, 책소개라면서 엉뚱하게 흘러가서 제가 다 당황, 글 하나 더 올려 헷갈림을 더했습니다.

2
2020-12-11 06:55:39

두 분, 이쁜 사랑 하세요~ ㅋ

가정을 가지고 계신 분이 이 처럼 깊은 독서의 취미를 가지고 계시다는게 놀랍고 그 지적인 취미가 심히 부럽습니다.
제목의 책은 이십대 초반에 손에 들었다가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 놓아버린 기억이 있네요.
여담이지만 저는 작가의 이름이 내내
크리슈 나무르티 인줄 알았습니다.
크리슈나 무르티 라는걸 안지가 몇 년
안되었네요.

WR
2020-12-11 07:44:51

닉과 첫글이 잘 어우러집니다~~

2020-12-11 07:28:43

허밍버드떼가 보인다면 한국이 아닌거죠?

자기로부터의 혁명. 어릴 때 집에서 굴러다니던 책이었는데 저는 관심도 없었죠.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보고 최근 여러 사연을 접하면서 중년이상의 나이에서 부부란 무엇인지 생각하고있었는데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갈등이란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의존성과 침해받거나 상처받지 않으려는 욕망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란 정의가 와닿습니다.
바른 관계를 위해서 독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하게 되네요.

WR
2020-12-11 07:47:34

미국이죠, 참세 떼와 숫자는 비슷한데 점점이 작아요, 떼로 이동하는 모습도 확연히 다릅니다. 참새는 포르르 포르르 옮겨 앉는다면 얘네는 여긴가 저긴가를 리더 새가 많이 외치는 모습입니다.

 

와 제대로 읽으셨네요. 읽는 사람의 내재적인 주제를 미리 간파해서 말씀해 놓으신 크리슈나무르티님입니다. 

2020-12-11 09:28:33

둘만 달리는 댓글 릴레이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분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WR
1
2020-12-11 09:40:29

저만 좀 창피해지면 같이 느끼며 좋아하실 분도 계실거라 짐작은 했습니다. 언급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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