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디어 <미스터 션샤인>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오글오글하는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이제는 구한말까지 들어가서 오글거림을 시전하려나 하는 생각에 이 드라마를 안 봤는데, 넷플릭스에 떠 있기에 그냥 생각없이 눌러보았습니다.
멍하니 있다보니 어느새 계속 다음편을 보고 있더군요.
생각 외로 잘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뭐 영화적 기법으로 동선의 불일치같은 것까지 따지는건 좀 뭐하죠^^)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촌스럽게 여겨오던 거대담론적인 시각을 잘 살리기도 했고, 그 거대담론에 맞춰 인물들의 형상화 역시 잘 만들어 냈네요. 나름대로 악역도 연기를 모두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특히 1907년 군대해산 때 무관학교 학도들에 대한 일본군들의 학살을 보니 왜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오버랩되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네요. 당시에 그 학살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 남기던 (물론 그런 사진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희성의 모습을 보다보면 1980년에 공수부대의 만행을 사진으로 남기던 기자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작가가 그런 의도로 이런 장면을 만들었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가장 커다란 불만은 나름대로 개혁군주로 보이는 듯한 고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고종이 그렇게 멋있는 황제였을 리가 없죠. 개찌질이 암군이 정조급 위인으로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니 자꾸만 실소가 나오더군요.
예전에 어떤 분과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분이 문화대혁명에도 장점이 있었으며, 그것은 중국 사람들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거 하나 사라지게 하려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고 쓰러진게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 나라에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가장 큰 수혜는 무엇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양반/평민/천민으로 대변되는 신분제가 타파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에 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없었어도 언젠가는 신분제는 타파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보다는 훨씬 완만하게, 어쩌면 지금의 영국같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은 있어서는 안되는 비극이었던 것입니다. 신분제 타파따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드라마를 보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비록 망해야 마땅한 나라였지만, 망하더라도 어떻게 망하느냐에 따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결정되는데 조선은 최악의 케이스로 망한 나라였다는 것이었죠. 아무리 고종을 띄운다고 해도 그 진실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망한 나라를 다시 살린 것은 양반놈들이 아니라 이름없는 의병들과 그 뒤를 이은 민중들이었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회까지 의병대 대장이 고애신을 애기씨로 부른건 좀 불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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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으로 망하고 해방도 타력으로, 정부 수립도 미국 입맛에, 군경은 일제를 상속...그 후 쿠데타 두번에...촛불이 안 탈 수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