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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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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훈민정음에서 사용된 중국(中國)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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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23 21:45:55

프차 게시물들을 읽다보니 <훈민정음>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맞지 않아라는 구절의 <중국>이 당시의 명나라를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의견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종 재위기에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해당 구절은 우리말은 중국어와는 달라서 중국의 문자 즉 한자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한자)는 쓰기가 번거롭고 불편하다.”는 뜻이었거든요, <중국>이란 당시 중국어와 중국 문자(한자)를 사용하는 나라 곧 명나라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서를 뒤져 우리나라에서의 <중국>이라는 말의 용례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上曰: "入中朝禁私貿易, 已曾立法, 然其弊尙在, 予甚軫慮但國家須賴<中國>之物, 不得已而貿之, 其貿易之物, 付于入朝之行, 則固乖於專爲事上之義, 若專爲貿易而送, 則似有煩瀆之嫌本朝樂器書冊藥材等物, 須賴<中國>而備之, 貿易不可斷絶, 如之何而可? 卿等商議以啓"

 

임금이 말씀하기를,

"중국에 들어가서 사사로이 무역(貿易)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은 일찍이 법으로 세웠으나, 그 폐단이 아직도 있는 것을 나는 매우 근심하노라. 다만 국가가 꼭 <중국>의 물품에 의존(依存)해야 할 것은 어쩔 수 없이 이것을 사들여 오게 된다. 그 사들이는 중국 물품을 중국 조정의 사신으로 가는 편에 부탁한 것은 본래 오로지 사대하기 위하여 (사신을 보내는) 본의(本義)에 어그러짐이 있고, 만약 전적으로 무역만을 위하여 사람을 보낸다면 번거롭고 혐오감(嫌惡感)이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악기(樂器서적·약재(藥材) 등의 물품은 꼭 <중국>에 의존하여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서 무역을 아주 끊어 버릴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경 등은 자세히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이 기사는 <세종실록> 14417乙巳 첫번째 기사입니다. 1432년의 기록이죠.

여기서 세종은 명나라와의 무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명에 들어가 반드시 구매해야할 물품들이 있는데 그 물품을 사신편에 사오는 것은 사신의 본 임무가 아니므로 적절치 않고 반대로 오직 물품 구매만을 위하여 사람을 보내자니 번거롭고 혐오감이 있을 수 있어 난감하다는 고충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세종은 명나라를 가리키면서 중국(中國)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宗貞盛管下曾虜<中國>浙江 昌國衛軍徐成, 至是貞盛付藝而送

 

종정성(宗貞盛)의 관하가 일찍이 <중국> 절강(浙江) 창국위(昌國衛)의 군사 서성(徐成)을 사로잡아 갔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성이 이예(李藝)에게 부쳐 보냈다.

 

위 사료는 <세종실록> 25111壬子 두번째 기사로서, 훈민정음이 창제된 1443년의 기록입니다.

 

내용은 대마도주 종정성의 휘하에 있는 자(왜구)들이 명나라 절강성의 군인인 서성(徐成)이라는 사람을 사로잡아갔다가 조선에서 대마도로 파견된 체찰사(體察使) 이예(李藝)의 귀국편에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중국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번엔 조금 앞당겨서 고려시대를 다룬 기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王欲於耽羅及靈巖, 伐材造大船, 將通於宋, 內史門下省上言, “國家結好北朝, 邊無警急, 民樂其生, 以此保邦上策也. 昔庚戌之歲, 契丹問罪書云, ‘東結構於女眞, 西往來於宋國, 是欲何謀.’ 又尙書柳叅奉使之日, 東京留守問南朝通使之事, 似有嫌猜, 若泄此事, 必生釁隙. 且耽羅地瘠民貧, 惟以海産, 乘木道, 經紀謀生. 往年秋, 伐材過海, 新創佛寺, 勞弊已多, 今又重困, 恐生他變. 况我國文物禮樂, 興行已久, 商舶絡繹, 珍寶日至, 其於<中國>, 實無所資. 如非永絶契丹, 不宜通使宋朝.” 從之.

 

왕이 탐라(耽羅) 및 영암(靈巖)에서 재목(材木)을 베어 큰 배를 만들어 장차 송()과 통하려고 하니,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에서 아뢰기를, “국가가 거란[北朝]과 우호를 맺어 변방에 급변이 없고 백성은 삶을 즐기니, 이같이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지난 경술년에 거란(契丹)이 문죄서(問罪書)에 이르기를, ‘동으로 여진(女眞)과 결탁하고 서로는 송과 왕래하니, 이는 무엇을 도모하는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또 상서(尙書) 유참(柳參)이 사신으로 갔을 때 동경유수(東京留守)가 송[南朝]과 사신을 통한 일을 물었는데, 싫어하고 시기함이 있는 듯하니 만약 이런 일이 누설되면 반드시 틈이 생길 것입니다. 또 탐라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이 빈곤하여, 오직 해산물과 배 타는 것으로 집안을 경영하고 생계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가을에는 목재를 베어 바다 건너 사찰을 새로 창건하여 피로가 이미 쌓여 있으므로, 지금 또 이 일로 거듭 괴롭히면 다른 변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지 이미 오래며, 상선이 왕래가 끊이지 않아 진귀한 보물들이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에 대하여서는 실로 도움 받을 것이 없습니다. 만일 거란과 영원히 국교를 끊지 않으려면 송과 사신을 통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고려사> 세가 문종 1287(1058)

 

당시의 고려 임금인 문종(文宗)이 송나라와의 통교를 위해 탐라의 나무를 베어와 선박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내사문하성의 관리들이 '송나라와 통교를 하면 거란과의 관계가 경색될 수 있고 빈곤한 탐라의 백성들을 또다시 나무를 베는 일에 동원하면 변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송나라와 무역을 해봐야 국가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것도 없으니 통교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상언하여 그대로 따랐다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에서도 송나라를 중국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十九年, <中國>大亂, 漢人避亂來投者甚多. 是漢獻帝建安二年也.

 

() 19년에 <중국>에서 큰 난리가 일어나 한인(漢人)들이 난리를 피하여 투항해 오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때가 한나라 헌제(獻帝) 건안(建安) 2년이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고국천왕 19년 (197)

 

이 기사에서도 후한의 헌제 시기를 다루면서 중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이라는 용어의 사용례는 매우 오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말은 대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걸까요?

 

동이(),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겁니다.

쉽게 말해서 동쪽과 서쪽의 오랑캐, 남쪽과 북쪽의 야만인 뭐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중국(中國) 또는 중화(中華)란 사방의 오랑캐, 야만족과 대칭되는 정통의 국가 또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명과 학문이 잉태되고 그 전통이 계승되고 발전되는 그야말로 동서남북의 오랑캐들에게 교화와 가르침을 베풀어 주는 천하의 중심국가라는 얘기죠.

 

대체로 우리나라에서는 이 중국을 중원에 있는 한족(漢族) 중심의 국가에 한정해서 불렀던 것 같습니다. 여진이나 몽골 등은 중원을 장악했다 해도 정통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내심으로는 중국으로 쳐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대대로 중원에 자리잡은 정통 한족 제국이 중국이라면 한, 송, 명 등은 중국을 운영하는 왕조인 셈이죠즉, 한나라나 송나라, 명나라는 정통성을 계승한 중국의 왕조라고 봤던겁니다.

 

우리 역사서에는 흔히들 중원의 왕조를 가리켜 상국(上國), 대국(大國), 천조(天朝), 황조(皇朝)라고 부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이라는 명칭도 분명히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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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1-23 05:18:10

대명사 '서울' 같은 느낌이죠. 독립된 나라이면서도 섬겨야 할 중앙의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있는, 중화사상의 상대적 개념이면서 사대주의의 원천적 뿌리 정도로 느껴지네요.

WR
2021-01-23 08:29:31

그런 부면이 없지 않죠.

1
2021-01-23 09:07:17 (14.*.*.221)

글쎄요 고려는 송을 섬기진 않았는데요? 단 '서울'과 유사한 용례라는건 동의합니다.

1
2021-01-23 06:39:07
다 지꺼라고 떼쓰는게 누구야?
쩌~기 가운데 사는 아무개~

뭐 이런 느낌인거군요~
WR
1
2021-01-23 08:31:35

관념적, 형식적인 측면이 크지만 딴은 그렇습니다.

2021-01-23 09:31:12

동사서독 남제북개 중신통
이게 괜히 나온게 아닌... ㅋ

WR
2021-01-23 09:56:12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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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23 12:40:18

추천과 함께 좋은 사료를 일부러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은 땅 크기는 대국이요. 

언행과 생각은 좁쌀이니 중국이 참 적절합니다.

WR
2021-01-23 09:56:54

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1-23 10:13:51

또 이렇게 역사 지식을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WR
2021-01-23 10:16:43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1-23 10:26:27

저도 그 댓글 의견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WR
2021-01-23 10:28:05

저도 한참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2021-01-23 10:28:28

저도 그 글의 댓글 중 고개가 갸웃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중혼후님의 글로 의문이 풀린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021-01-23 10:29:31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1-23 11:06:24

좋은글은추천이죠

WR
2021-01-23 11:07:11

추천 감사합니다. 

2021-01-23 12:08:31

저도 조선왕조실록에서 中國 의 용례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21-01-23 15:02:54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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