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와인] 선 잠을 잤습니다.
편두통이 있는 듯했으나 무시하고 애써 잠을 청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골이 뎅뎅 울리네요. 정말 오랜만에 머리 아픈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와인 말고는 원인이라고 지목할 게 없습니다.
어제 지난 번의 키안티를 오픈했었는데 와이프가 재미 없다고 새 것 마시겠다고 해서 나파밸리산 카베르네 쇼비뇽을 또 오픈했습니다. 키안티를 막아놓고 카쇼를 마시는 데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마시려고 병을 보다가 (앞에는 '카베르네 쇼비뇽'이라 큼지막히 써있어요) 뒷면을 읽어보니 '보르도 스타일로 블렌딩한 ~'이라고 써있네요. 어이가 없어서. 풀바디가 아니고 블렌딩했으면서 앞에 큼지막하게 써놓다니 정말 이렇게 피치 못하고 당하기도 하는군요. 쌩때밀리옹 그랑크루가 그랑크루가 아닌 이후로 이런 허탈함이....
애써 무시하고 괜찮겠지 하며 저는 계속 마셨고 와이프는 배신을 때리고 막아놨던 키안티를 마시겠다고 합니다. 각기 반병씩 마시고 막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숙취가 오다니....
프렌치 좋은 와인들이야 블렌드건 풀바디이건 좋죠. 저급한 블렌드는 골 아플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제가 사온 이 와인은 비비노 점수도 높고 가격도 지난번 사슴 와인 만큼 하는 것입니다. 나파밸리 와인인 것만 밝힙니다. 저는 와인 점수에 비교적 후한 편이라 (잘 골라 먹기도 하고) 웬만하면 별점 4 또는 5개를 잘 주는데 1/3 병 남은 것 마셔보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별 1개 줄 겁니다.
저는 우리동네 특정 와인 산지(와이너리가 아니고) 전역의 와인을 아예 안 마십니다. 신흥 와이너리가 우후죽순 생기고 점수 인플레가 심해서 점수 높고 값비싼 와인이 많습니다. 그런데 옥석구분이 어려워서 통째로 '~밸리' 와인 자체를 마시지 않습니다.(윌라밋 밸리 피노노아 좋아요, 러시안 리버밸리도 좋구요) 와인 블렌딩에 장난질을 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기 때문입니다. 와인과 오크통만으로 특별한 맛을 내기는 어렵지만 특정 향을 위해 그 향을 직접 추가하긴 너무 쉽지요. 맛도 좋고 점수도 좋고 가격은 높고 ㅎㅎ. 그런데 몸에 안 좋습니다. 일단 골 아플 확률이 높습니다.
와인이라는 술 자체가 골 아프시다는 분들 많이 보는데 잘못된 일반화입니다. 몇몇 경험으로 일반적이라고 패대기 치시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골 아픈 와인 만날 확률이 높은 것은 인정합니다.
소화제부터 해서 이것 저것 좋다는 약 먹고 좀 있으니 다행히도 가시긴 했지만 오전 내내 컨디션 안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가격대라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운이 없었던 겁니다. 풀바디인지 아닌지 이제 병 앞뒤로 다 읽어봐야겠어요.- 하지만 블렌드인 것을 알았어도 아마 샀을 확률이 높을 만큼 좋은 점수입니다. 단지 풀바디를 먼저 고집하는 이유가 '안전핀'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이번엔 뒤통수를 쎄게 맞은거죠.ㅎㅎ
건강한 와인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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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14:18:08
나파 일주하면서 와인 시음으로 기분좋게 얼큰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한참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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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큐 재림인가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