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가) 박완서님 소설 '그 많던~'과 '그 산이~'를 맨 나중에 읽으세요.
박완서님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유시민의 알릴레오북스 때문입니다. 침묵의 봄 편을 보고 레이첼 카슨의 책을 집어들었고 한 동안 알릴레오북스를 멀리(?)했었습니다. 몇 달이 훌쩍 지나가 꽤 많은 회차가 쌓였고 뜻밖에 박완서님의 엄마의 말뚝이 리스트에 들어있었습니다.
저 방송을 보기 전에 책을 먼저 보면 감상이 한층 흥미롭겠다 싶었습니다. 얼른 가지고 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부터 시작해서 '그 산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까지 단숨에 읽어버렸고 '엄마의 말뚝'을 폈다가 '나목'을 반 쯤 읽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알릴레오북스의 엄마의 말뚝 편을 시청했습니다.
'나목'과 ' 엄마의 말뚝'은 경험과 허구를 섞은 소설입니다. '그 많던~'(말뚝 1)과 '그 산은~'(말뚝2에 해당)은 실명과 사실에 기반한 소설 형식을 차용한 회상록과 자서전의 중간 쯤인 작품입니다.
작품 연보를 보니 엄마의 말뚝 연작을 먼저 집필했고 나중에 '그 많던'과 '그 산은'이 나왔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엄마의 연대기 같은 소설을 썼고 그 소설과 공유하는 스스로의 체험담을 실명 소설로 다시 써 낸 것입니다.
위에 제가 엄마의 말뚝을 '폈다가'라고 썼습니다. 앞에 다큐 같은 작품을 먼저 읽고 엄마의 말뚝 첫 페이지를 펼치니 아는 내용에 반갑기도 하고 소설적 문체가 어색하기도 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알릴레오북스를 보려면 이 책을 읽어야하는데 하면서도 앞의 두 권을 읽고 반복의 피로감이 있다면 좀 쉬어가야겠구나 하고 '나목'으로 바꿔들었습니다.
'나목'은 박완서님의 데뷰작이면서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삼았기에 박수근 화백의 시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박완서를 보기 위해 박완서를 통해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나목은 소설 설정을 위해 주인공들의 이름을 모두 가명으로 바꾼 박완서 시점의 소설이었습니다. 그것도 익숙했던 회상체가 아니라 현재 시점의 소녀와 처녀의 중간 쯤인 화자가 박수근을 관찰하는 시점으로 나옵니다. 여전히 피로하더군요.
여기서 피로라 함은 상대적인 감정입니다. 그 만큼 '그 많던'과 ' 그 산이'의 영향이 심각한 탓입니다. 엄마의 말뚝, 나목, 알릴레오북스 1회를 통해 느낀 피로함은 '사실에 대한 의식'입니다. 박완서님이 겪은 그대로 일제와 동란을 거친 성장기를 체험한 듯하고 그 박완서가 빙의된 상태로 엄마의 말뚝과 나목은 허구로 느끼는 갈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좋은 책입니다. 다만 박완서님의 작품을 두루 읽고 싶다면 ' 그 많던'과 '그 산이'를 가장 나중에 읽으시기 바랍니다. 박완서를 읽는다면 필독입니다만 선독하신다면 같은 서사로 픽션이 논픽션을 이길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알릴레오북스를 보면서 40대에 등단한 박완서님의 필력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에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박완서님 본인이 밝히기를 많이 쓰기도 중요하지만 좋은 책을 많이 읽은 게 많이 도움됐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읽고 추정하기에는 박완서님의 소설가적 재능은 어머니에게 물려받고 어머니로 말미암아 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삯바느질 하면서 졸음을 물리치고자 어린 박완서에게 삼국지, 수호지 등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줄거리에 탐닉했다는 내용이 '그 많던'에 있었습니다. 또한 두 권의 책 전편에 걸쳐 마치 엄마와 사상 투쟁을 하듯 어린 박완서와 청소년 박완서와 처녀 박완서의 성장사 내내 어머니의 생각에 대한 짐작과 분석과 평가가 서술됩니다. 단순치 않은 어머니와 복잡한 심사의 딸이 격동기를 거치며 작가 박완서를 빚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완서님의 작품들은 사적인 체험담을 다양한 작품으로 생산해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작가의 기억에 대한 천착과 인식의 변천이 경험을 다시 반추해서 새로이 변주한 작품을 내게 하는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해방 전과 한국전 직후까지를 엄마의 말뚝을 통해 역사의 거대담론에 휘말린 소시민의 풍상을 짚어낸 알릴레오북스는 바로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를 통해 그 다음 세대 역사 이야기를 마련했더군요. 유시민님의 깨시민을 위한 역사인식근육 단련운동이 이런 방식으로 전개되는구나~~ 합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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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을 다 읽고 거의 밤을 지새며 멍하니 누워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어떤 다큐나 영상보다도 전쟁에 대한 공포감과 무력감이 생생하게 실감되더군요 그렇게까지 몰입해서 본 책은 정말 몇권 안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