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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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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도시들의 흑사병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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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2-28 16:38:39

중세유럽의 흑사병 대응에 대한 편견에 대해 댓글로 두어번 썼던 것 같습니다. 그냥 여기 저기서 들은 얘기로 썼었는데요. 벌거벗은 세계사 흑사병 편을 자문해주고 또 비판한 박흥식 교수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논문 한 편을 읽어봤습니다. 제목은

 

"흑사병에 대한 도시들의 대응"

 

초록창에 검색하시면 무료로 읽을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세요. 비전공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짧고, 재밌습니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흑사병 유행 당시 유럽 도시들의 대응방안, 특히 법령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참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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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시들은 흑사병이 유행하자 시 차원에서 위원회를 만들어 대책을 논의하고 법령을 발표합니다. 이 위원회나 법령이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전염병은 늘 도시의 문제였기 때문에 원래 있던 제도를 활용하고 강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탈리아 도시들의 대응은 도시 진입을 제한하고, 도시 내의 특정 구역을 봉쇄하고, 도시민의 여행을 제한하고, 들어오는 물품을 통제하고, 시체를 관에 넣어서 운반하도록 하고, 버려진 사체는 한 구덩이에 모아 재빨리 묻어버리고, 장례식을 금지하고, 장례미사에는 가족만 참석하도록 하고, 장례식 참석자는 1주 간 다른 집회 참석을 금지하고, 감염의심자는 즉시 신고하도록 하고, 육류의 도축 과정을 감독하는 등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으나 경험상 전염병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나쁜 공기, 나쁜 냄새로 인해 병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생물은 몰랐으나 그 대응 방법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들은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고 그 때마다 조금씩 규제가 완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지요?

 

또한 여러 제한들이 성직자나 높으신 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은 대놓고 높으신 분들에게 예외를 허용하지는 않지만 높으신 분들은 잘 어기고 다닌다는 보도는 있었지요. 역시나 역사는 반복되는 모양입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도시들은 1차 유행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습니다. 그 중에 돋보이는 곳이 밀라노인데 도시를 봉쇄하고 첫 발병자인 세 가족을 가두고 방치합니다. 도와주는 게 아니고 그냥 방치했습니다. 그 결과 밀라노는 1차 대유행을 빗겨가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밀라노는 그 이후의 유행을 피해가지 못하고 역시나 큰 타격을 입습니다. 당시 밀라노의 대응은 참으로 신박한데 밀라노 군주 비스콘티는 증상이 있는 사람은 모두 추방하고, 사망한 사람이나 전염병을 전파시킨 사람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였다고 합니다. 환자를 돌보기로 지정된 자 외에 환자를 돌본 사람의 재산도 몰수하고 사형..... 전염병 대책을 빙자한 삥뜯기였겠지요.

 

예전에도 댓글로 말했듯이 이탈리아 도시들은 도시로 들어오는 선박들에 대해 40일 간의 검역 기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베네토어로 40일을 의미하는 quarantena가 영어에서 검역을 의미하는 쿼런틴의 어원이라고 하지요.

 

15세기로 넘어가도 주기적으로 흑사병이 발생하자 이탈리아 도시들은 전염병 통제를 위한 상설기구를 설치하고 대책을 정교화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밀라노는 교역대상인 다른 도시에도 여러 가지 규제를 가했기에 전염병 통제 장치를 수출하는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15세기 정교화된 방역 대책 덕분에 흑사병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히 낮아졌다고 합니다.

 

물론 중세인은 충분한 과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했고, 신앙심이 두터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행렬과 같은 방역대책에 역행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피렌체 정부는 흑사병 유행지역 여행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세례요한의 축일에 성대한 행렬을 거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알프스 이북도 흑사병의 타격을 받기는 하였으나 이탈리아 도시들에 비하면 그 대응이 체계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이탈리아와 가까운 스위스 등지에서 체계적인 대응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는 당시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번성한 지역이었기에 관심이 가는데 여기도 16세기 이후에 시 차원에서 대책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시민들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도록 의무화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마 경건함을 강조하는 종교개혁의 여파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의 대책들은 이탈리아의 것과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흑사병이 발병하면 부유층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지내지만 빈민들은 오히려 도시에 몰려들어서 피해는 빈민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흑사병 대책은 빈민들을 통제하고 격리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것이 빈민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강화했고, 결과적으로 근세로 접어들면서 도시 빈민들의 삶은 더욱 위험해 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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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논문을 바탕으로 서술하였으나 제가 주관적으로 요약, 첨가하였으므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제 잘못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중세 유럽인들은 당시 한정된 지식을 가지고 나름 합리적인 대책을 강구했고 또한 일정 정도 효과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식의 부족 그리고 사회 구조의 문제 때문에 오늘 날의 눈으로 보면 한계도 있었지만 당대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딱히 떨어지는 대처 능력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장 의학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세계적 전염병이 유행하자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세요. 중세유럽보다 딱히 나은 게 있나 싶습니다.

 

또한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온다고 해서 전염병 대책에 있어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근세에 체계화된 대책들의 기원이 중세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례에서 보듯 근세의 종교개혁은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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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2-28 16:38:16

흥미롭게잘읽었습니다

2021-02-28 17:03:10 (114.*.*.89)

상세하진 않아도 이 콘텐츠도 유럽에서 역병의 영향을 아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Updated at 2021-02-28 17:04:50

요약 감사합니다

사실 치사율만 보면 흑사병보다야...

2021-02-28 17:56:34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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