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프차에 중국의 문혁과 홍위병에 대한 글이 올라와서 재미있게 읽은적이 있었습니다.
모택동의 지시와 사탕발림으로 여기에 눈이 뒤집힌 홍위병이란 무리들이 저질른
현대판 분서갱유라고 할만큼 처참한 행위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드높은 나라가 되기를 소원한다]는 백범이 중국의 문혁을
경험했다면 남의 나라일이지만 매우 안타까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중국은 모택동과 홍위병들의 삽질로 인해 크게는 인류 문화유산을 작게는 중국의 문화유산을
망실시키고 훼손하고 파괴해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고대사를 연구할만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상당수가 없어져버린 셈이죠.
그나마 소수의 지식인들이 숨겨놓은거라든지 다행히 홍위병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곳의
자료들만 살아남았을 뿐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리 문혁광풍이 불었다고 중국전역의 문화유산들이 죄다 포맷되듯 사라져버리기야 하겠습니까....
중국이 문화적으로 가장 꽃을 피웠던 시대는 역시 송나라 시대로 봐야할테죠
송나라 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라 한다면 대부분 자기라고 말을 하는데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죠
고려 자기가 송나라 자기의 영향을 받은것도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고려 자기가 송나라 자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 자기는 송나라 자기와 다른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요. 청자의 경우 송나라 청자보다 고려청자의 유약이 더 투명하고
푸른색이 더 선명하다는건 다아는 사실이죠. 거기에 송나라에는 없는 상감기법이나 동화기법을
사용해서 더 한층 유려하고 아름다운 고려청자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송나라 자기들도 고려청자 이상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자기만 그런게 아니라 옥으로 만든 세공품도 많았고 문서도 많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봐도
부러워할만한게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깡그리 부수고 태워버립니다.
남의 나라 사정이지만 제가 생각해도 정말 아깝고 안타까운 상황인거죠.
중국은 전통적으로 옥을 참 좋아하는 민족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옥 세공품이 다양하고 아름다운것들이 참 많습니다.
세계3대니...세계4대니 하는 박물관에 꼭 포함되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가게되면
꼭 봐야한다는 유물이 하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옥세공품으로는 옥배추 혹은 취옥배추라고
불리는 것과 옥병풍이라고 불리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 유물은 명 청 시대 유물입니다.
정말 아름다고 멋지구리 하죠...^^
그런데 송나라 시대에는 더 멋진것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남아있는게 별로 없다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뿐입니다.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당시 제국이던 청나라 군부세력과 싸우기 위해
국민당과 공산당이 일단 손을 합쳐 제국주의를 몰아내자며 1924년에 연합을 하는데
이게 제1차 국공합작 입니다. 결국 이 국공합작은 1927년에 막을 내립니다.
그러다가 1937년 7월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다시 한번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는데
이게 제2차 국공합작이죠.
청나라도 무찌르고 일본도 무찌른 중국은 본격적으로 국공내전이 발발합니다.
잘알다시피 국민당은 공산당에 계속 패배하게 되고 남으로 남으로 도망가다가 결국 배를 타고
조그만 섬 타이페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장개석이 중국 전역의 모든 문화유산을 탈탈 털어서 가지고 가자...라고 해서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을 싣고 타이페이로 갔다고 생각하시는분들이 더러 계시는 모양이던데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입니다.
장개석이 우리는 중화의 혼을 잊지 않겠다 우리 문화유산은 중화의 혼이다...
우리는 지금 패해서 철수하지만 언젠가 다시 중국 본토를 수복할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문화유산을 가져가긴 합니다만 탈탈 털어서 가져간건 아니고 자금성 박물원에 있던
명 청 시대 문화유산과, 국공합작 그리고 국공내전때 사천으로 옮겨두었던 유물들의 일부만을
가지고 왔을뿐입니다. 아울러 그밖의 유물들도 국공합작이 한창이던 1933년경부터
일부 중요유물을 타이페이로 옮겨서 보관을 시작하기도 했었습니다.
아울러 장개석이 중화의 혼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면서 문화유산을 가져가긴 했지만
타이페이로 철수를 하던 그때 미국 수송선을 빌려서 철수를 했는데 미국 수송선이긴 하지만
안심이 안되어 문화유물을 같이 가지고 갔던거죠 일종의 몸빵인질용으로 말입니다.
그래선지 어째선지 몰라도 공격을 받지 않았고 무사히 타이페이로 철수를 하게 됩니다.
사실 모택동이 생각하기를 어차피 조그만 섬으로 도망가봐야 한방이면 정리가 가능할텐데
귀중한 유물들을 사라지게 할 필요는 없지..라고 생각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6.25가 없었다면 실제로 공산당은 전력을 추스린뒤 타이페이를 공격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하고, UN이 참전하고 결국은 미군과 한국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오는 판에 타이페이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중국도 참전을 결정하게되고 한반도에 휴전이 결정나고 미국도 그제서야 태평양 패권을
위해서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되고 거기에 타이페이까지
보호하기 시작합니다. 순전히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위해서였던 거죠
그리고 중국은 타이페이를 손에 넣을 기회가 사라져버린것입니다...
중국 전역의 문화유산을 가져온건 아니지만 명 청 시대의 대표적 유물들을 타이페이로
거의 가지고 왔다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대만은 그 유물을 전시할 박물관을 짓고 이름을 대만 고궁박물원이라고 합니다.
전시품목이 모두 69만7000가지가 된다고 하죠.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은 20만점이 약간 안되는 195,000 여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몽골, 시베리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지역의 유물까지 약 38만여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대만의 고궁박물원의 수장고에는 얼마만큼의 유물이 있을건지 상상해볼수 있겠죠
지금 대만 고궁박물원의 사진을 보면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저 산의 밑이 죄다
수장고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의 대영박물관의 전시품목을 다 합쳐도 대만의 고궁박물관의 전시품목에
비할수가 없다고 하죠.
사실 프랑스의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의 경우 거의 태반이 외국에서 약탈해온 유물들인데 반해
대만의 고궁박물원은 자국 유물들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전시품목인거죠.
생각하면 더 열받는게 일제강점기 36년동안 일본넘들이 가져간 국보급 문화유물이 약 10만여점이
된다고 합니다. 보물급도 아니고 국보급 유물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알게모르게 가져간 유물은 과연 얼마다 된다는건지 말이죠.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약탈해갔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해줍니다
일본은 한국의 국보급 문화유물을 결코 전시를 하지 않습니다. 나쁜시키들인거죠.
중국은 국공내전때 대만으로 가버린 명 청 시대의 대다수 유물에
그나마 남아있던 유물을 문혁때 부수고 태우고 없애버렸고 그때 살아남은 유물로 박물관에
전시를 해놓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도 땅이 넓고 사람도 많고 그래선지 남아있는 유물이
적지않은걸 보면 중국의 저력도 인정을 해줄건 해야될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고 보면 얼마나 많은 천문학적 유산을 없애버렸는지.... 정말이지 제가 다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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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 중국 건국일(국경절, 10월1일)도 모택동이 천안문 광장에서 열었는데, 당시 공군 전력이면 (공산 중국에서 막을 수도 없어서) 장개석이 천안문에 폭탄 투하 가능했는데, 자금성 등 문화재 때문에 장개석이 비행기 안날렸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모택동은 그걸 이용해서 천안문에서 행사 열었다고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