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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대만의 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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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3-06 16:04:04

얼마전 프차에 중국의 문혁과 홍위병에 대한 글이 올라와서 재미있게 읽은적이 있었습니다.

모택동의 지시와 사탕발림으로 여기에 눈이 뒤집힌 홍위병이란 무리들이 저질른 

현대판 분서갱유라고 할만큼 처참한 행위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드높은 나라가 되기를 소원한다]는 백범이 중국의 문혁을

경험했다면 남의 나라일이지만 매우 안타까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중국은 모택동과 홍위병들의 삽질로 인해 크게는 인류 문화유산을 작게는 중국의 문화유산을

망실시키고 훼손하고 파괴해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고대사를 연구할만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상당수가 없어져버린 셈이죠.

그나마 소수의 지식인들이 숨겨놓은거라든지 다행히 홍위병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곳의

자료들만 살아남았을 뿐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리 문혁광풍이 불었다고 중국전역의 문화유산들이 죄다 포맷되듯 사라져버리기야 하겠습니까....

 

중국이 문화적으로 가장 꽃을 피웠던 시대는 역시 송나라 시대로 봐야할테죠

송나라 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라 한다면 대부분  자기라고 말을 하는데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죠

고려 자기가 송나라 자기의 영향을 받은것도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고려 자기가 송나라 자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 자기는 송나라 자기와 다른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요. 청자의 경우 송나라 청자보다 고려청자의 유약이 더 투명하고

푸른색이 더 선명하다는건 다아는 사실이죠. 거기에 송나라에는 없는 상감기법이나 동화기법을

사용해서 더 한층 유려하고 아름다운 고려청자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송나라 자기들도 고려청자 이상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자기만 그런게 아니라 옥으로 만든 세공품도 많았고 문서도 많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봐도

부러워할만한게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깡그리 부수고 태워버립니다.

남의 나라 사정이지만 제가 생각해도 정말 아깝고 안타까운 상황인거죠.

 

중국은 전통적으로 옥을 참 좋아하는 민족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옥 세공품이 다양하고 아름다운것들이 참 많습니다.

세계3대니...세계4대니 하는 박물관에 꼭 포함되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가게되면

꼭 봐야한다는 유물이 하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옥세공품으로는 옥배추 혹은 취옥배추라고 

불리는 것과 옥병풍이라고 불리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 유물은 명 청 시대 유물입니다.

정말 아름다고 멋지구리 하죠...^^

그런데 송나라 시대에는 더 멋진것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남아있는게 별로 없다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뿐입니다.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당시 제국이던 청나라 군부세력과 싸우기 위해 

국민당과 공산당이 일단 손을 합쳐 제국주의를 몰아내자며 1924년에 연합을 하는데 

이게 제1차 국공합작 입니다. 결국 이 국공합작은 1927년에 막을 내립니다.

그러다가 1937년 7월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다시 한번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는데 

이게 제2차 국공합작이죠. 

 

청나라도 무찌르고 일본도 무찌른 중국은 본격적으로 국공내전이 발발합니다.

잘알다시피 국민당은 공산당에 계속 패배하게 되고 남으로 남으로 도망가다가 결국 배를 타고 

조그만 섬 타이페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장개석이 중국 전역의 모든 문화유산을 탈탈 털어서 가지고 가자...라고 해서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을 싣고 타이페이로 갔다고 생각하시는분들이 더러 계시는 모양이던데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입니다.

 

장개석이 우리는 중화의 혼을 잊지 않겠다 우리 문화유산은 중화의 혼이다...

우리는 지금 패해서 철수하지만 언젠가 다시 중국 본토를 수복할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문화유산을 가져가긴 합니다만 탈탈 털어서 가져간건 아니고 자금성 박물원에 있던 

명 청 시대 문화유산과, 국공합작 그리고 국공내전때 사천으로 옮겨두었던 유물들의 일부만을

가지고 왔을뿐입니다. 아울러 그밖의 유물들도 국공합작이 한창이던 1933년경부터

일부 중요유물을 타이페이로 옮겨서 보관을 시작하기도 했었습니다.

 

아울러 장개석이 중화의 혼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면서 문화유산을 가져가긴 했지만

타이페이로 철수를 하던 그때 미국 수송선을 빌려서 철수를 했는데 미국 수송선이긴 하지만

안심이 안되어 문화유물을 같이 가지고 갔던거죠 일종의 몸빵인질용으로 말입니다.

그래선지 어째선지 몰라도 공격을 받지 않았고 무사히 타이페이로 철수를 하게 됩니다.

 

사실 모택동이 생각하기를 어차피 조그만 섬으로 도망가봐야  한방이면 정리가 가능할텐데

귀중한 유물들을 사라지게 할 필요는 없지..라고 생각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6.25가 없었다면 실제로 공산당은 전력을 추스린뒤 타이페이를 공격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하고, UN이 참전하고  결국은 미군과 한국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오는 판에 타이페이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중국도 참전을 결정하게되고 한반도에 휴전이 결정나고 미국도 그제서야 태평양 패권을

위해서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되고 거기에 타이페이까지 

보호하기 시작합니다. 순전히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위해서였던 거죠

그리고 중국은 타이페이를 손에 넣을 기회가 사라져버린것입니다...

 

중국 전역의 문화유산을 가져온건 아니지만 명 청 시대의 대표적 유물들을 타이페이로 

거의 가지고 왔다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대만은 그 유물을 전시할 박물관을 짓고 이름을 대만 고궁박물원이라고 합니다.


 

전시품목이 모두 69만7000가지가 된다고 하죠.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은 20만점이 약간 안되는 195,000 여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몽골, 시베리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지역의 유물까지 약 38만여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대만의 고궁박물원의 수장고에는 얼마만큼의 유물이 있을건지 상상해볼수 있겠죠

지금 대만 고궁박물원의 사진을 보면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저 산의 밑이 죄다

수장고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의 대영박물관의 전시품목을 다 합쳐도 대만의 고궁박물관의 전시품목에

비할수가 없다고 하죠.

사실 프랑스의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의 경우 거의 태반이 외국에서 약탈해온 유물들인데 반해

대만의 고궁박물원은 자국 유물들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전시품목인거죠.

 

생각하면 더 열받는게 일제강점기 36년동안 일본넘들이 가져간 국보급 문화유물이 약 10만여점이

된다고 합니다. 보물급도 아니고 국보급 유물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알게모르게 가져간 유물은 과연 얼마다 된다는건지 말이죠.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약탈해갔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해줍니다

일본은 한국의 국보급 문화유물을 결코 전시를 하지 않습니다. 나쁜시키들인거죠.

 

중국은 국공내전때 대만으로 가버린 명 청 시대의 대다수 유물에 

그나마 남아있던 유물을 문혁때 부수고 태우고 없애버렸고 그때 살아남은 유물로 박물관에

전시를 해놓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도 땅이 넓고 사람도 많고 그래선지 남아있는 유물이

적지않은걸 보면 중국의 저력도 인정을 해줄건 해야될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고 보면 얼마나 많은 천문학적 유산을 없애버렸는지.... 정말이지 제가 다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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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3-06 16:03:12

공산 중국 건국일(국경절, 10월1일)도 모택동이 천안문 광장에서 열었는데, 당시 공군 전력이면 (공산 중국에서 막을 수도 없어서) 장개석이 천안문에 폭탄 투하 가능했는데, 자금성 등 문화재 때문에 장개석이 비행기 안날렸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모택동은 그걸 이용해서 천안문에서 행사 열었다고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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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3-06 16:15:38

일본 것들이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부를 만큼 수많은 도공을 잡아갔다고 합니다. 그 도공들을 예우해서 유럽으로 수출을 하게 되고 그 돈으로 나라가 더욱 부강했다죠.

지금도 도자기 기술은 일본이 최고라고 하는데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잡혀갔던 한 도공이 고향을 그리며 남긴 한글 차잔이라고 합니다.

2021-03-07 13:36:16
임란 후에 조선에서 도공들을 데려오려고 했는데 조선과 달리 일본의 예우가 너무 좋아서 그대로 일본에 남는 것을 원하는 도공들이 더 많았다죠. 당시 조선은 아마도 도공을 천민 취급했을 거고 반면에 일본은 장인 대우를 해주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조선은 상업을 천시해서 외국에 판다거나 하는 건 시도도 하지 않았지요.
정말 생각해 볼만한 역사입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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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4:05:25

식민사관 입니다.

당시 일본도 사농공상에 대한 천시가 조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초기에 끌려간 도공들은 예우를 받으며 일한게 아니라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조선인 집단 거주구역에서 살며 고국에 그리움때문에 만들어진 망향가가 수없이 많습니다

 

일본으로 갈 때 헤드헌팅되었다거나 스카웃되어서 간건 아닙니다. 끌려간겁니다. 

일제강점기 때 징용자처럼 말이죠. 가족과 생이별을 당하고 저항하면 때리고 묶어서

데려갔습니다. 혹은 가족과 지인들의 죽음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힌채 끌려갔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매맞아 가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건 강항이 쓴 [간양록]에 잘 나와있습니다 그나마 강항은 사대부 출신이라 대우가 좋았지요

꼭 간양록이 아니라 일본인이 쓴[사츠마: 조선도공촌의 400년] 책을 보면

초기에 끌려간 도공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당시 일본은 그릇들 수준이란게 질그릇 수준이라서 어디다 팔고 자시고 할게 없었습니다

태부족한 그릇에 조선도공들이 만드는 도기및 자기들은 수가 한정되어있는데

사무라이들에게 바쳐야되어서 어마무시하게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아울러 시나몬롤님의 말씀처럼 장인으로 대우를 받게된건 그후의 일입니다.

메이이지유신즈음부터 대우를 받기 시작했죠.

2021-03-07 17:26:28
제가 보기엔 반일사관이신거 같은데요.
기사에도 나오지만 이삼평을 모든 도업인의 추앙을 받는 도조(陶祖)로 신격화 되고 도산(陶山)신사에 받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노예처럼 부려먹기만 했을까요? 뭔가 모순된다고 생각되지 않으신지요?

좀 더 언급하면 조선이 임란 후에 도공 소환을 추진했었어요. 그래서 관리들이 일본도 가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공들이 거부를 했습니다. 이거는 역사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많은 도공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일본에 남은 거에요.

우리는 일본과 관련된 거는 무조건 일본을 절대악으로 묘사하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하면 식민사관이라고 해요. 1980년대까지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였던 기억과 워낙 우리가 일본에 뒤져있었으니 억지로라도 그렇게 할 의미가 없지 않았겠지만, 과연 아직도 그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태도인지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WR
2
Updated at 2021-03-07 18:30:54

제가 일본을 저주할정도로 미워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걸 만들어서

할만큼 그런 정도는 아니고요...

반일사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식민사관의 반대가 반일사관이 될순 없다고 봅니다

원래 시작부터 식민사관이 잘못된거라고 봅니다.

 

영화 명량을 보면 조선 수군에 협조를 하는 왜군 군사가 있죠  

그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서 왜군이 조선군에 많은 수가 협조를 했다고

할순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끌려간 도공중에서 일본에 협조를 했던분도 분명있었겠지요

그런 몇몇의 일을 가지고 도공들에게 예우를 해줘서 대다수가 돌아오지 안온것처럼

말씀하시면 안되는거라고 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해야 하는건 맞습니다.

일본인이 쓴 책에도 쓰여있듯이 조선 도공들은 혹은 끌려온 조선인들은

거주지역에서 한달에 한번 근처 산에 올라가 망향가를 부르며 슬퍼했다고 나옵니다

 

사실을 알리려거든 정확하게 해야죠

하지만 조선 도공중 몇몇은 일본의 예우에 일본에 귀화를 했다든지 

귀국을 거절했다 던지 그렇게  하셔야 맞는거죠.

 

난이 끝난후 조선에 돌아온 백성이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놈들이 다 귀국시켜줬을까요?

귀하디 귀한 도공들이 귀국을 원한다고 해서 보내줬을까요?

다른 포로들은 보내줄지언정 일부러 도공들을 잡아오는게 목적이었는데

절대 보내줄리 없죠.   그게 사실아닙니까..?

 

도공들을 보내줄려고 했으나 그들이 귀국을 거부했다...라고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그렇게 하고도 남을 왜국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역사에 남겼을테죠. 뻔한 사실 아닙니까?

 

진짜로 일본에 남고싶었던 도공들도 있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도공들은 고향과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오고싶어도

못왔습니다. 

 

일본이 도공들을 귀국시켜줄려고 했다고요.....ㅎㅎ

그 일본인이 쓴 역사를 믿습니까?  

 

Updated at 2021-03-07 18:59:22
식민사관이라는게 없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일본에 조금이라도 유리해 보이는 얘기만 나오면 식민사관이라고 하면서 팩트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대다수 도공들이 고향과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오고 싶어도 못왔다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임란 후에 조선은 도공들을 귀환시키려고 관리를 파견하기도 하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도공들이 스스로 일본에 남기를 원해서 성공하지 못한거에요.

고향을 그리는 노래가 있어서 그들이 억지로 끌려간 거라고요? 현재 자의적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재외교민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고향이 그립냐고 물으면 전혀 그립지 않다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고향이 그리운 것과 커리어, 수입, 교육 등 여러가지 이유로 외국 생활을 선택한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일설에는 일본에 잡혀갔던 도공들이 일본이 더 대우가 좋아서 그랬다고 하고 일설에는 어차피 조선으로 돌아가도 원래 천민대우였는데 거기에 더해서 일본에 잡혀갔다가 돌아오면 더 푸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해서 그랬다는 설이 있는데 저는 둘다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려 시대 환향녀라고 중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고려는 따뜻하게 받아준게 아니고 더 멸시를 했어요. 끌려간 여자들이 잘못한게 하나 없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천대했지요. 과연 조선시대라고 바뀌었을까요?

혹시 환향녀 기록도 식민사관이라고 믿지 않으신다면.. 뭐 더이상 제가 할 얘기는 없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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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16:15:25

 개인적으로 지금 중국에서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들 다 독립하고

대만이 양쯔강 이남까지 진격해서 나라가 분리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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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16:52:12

관련사진 한장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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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3-06 17:14:57

DP의 모 친중 성향 유저께서 문혁에 공1 과9라고 하셨던 적이 있었죠. 문혁은 마오의 친위쿠데타이자 반달리즘일 뿐인데, 공은 무슨...

2021-03-06 19:11:51

금 덩어리를 기대했는데 옥으로된 배추와 삼겹살이 왠 말이냐? 그나마 옥병풍이 좀 인상적이었음...

Updated at 2021-03-07 00:21:51

중국이 6.25 참전을(발발을?) 후회하는 3가지가 있다고 들었는데,

1. 너무 많은 중공군이 죽었다.
2. 6.25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에치슨 라인이 그어지는 바람에 타이페이를 흡수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3. 기억이 안납니다.

2번이 아지쌍수님이 본문에서 언급하신 맥락인가 봅니다.

2021-03-07 13:28:25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관련해서 약간 선후관계를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어보이네요.

 

당시 중공은 자신들이 전혀 원하지도 않았던 한국 전쟁에서 미국이 막무가내로 참전해서 압록강까지 밀어오니 할 수 없이 방어적 차원에서 참전을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중공은 소련과 더불어서 김일성과 한국 전쟁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했고 처음에 주저했지만 결국 김일성이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허락했고 언제든지 대규모 군대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원하던 시나리오였겠지요.)

 

당시 중공이 한국전쟁을 실질적으로 일으킨 이유는 티벳을 점령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켜서 세계의 시선을 돌리고 조용히 영토를 확장시켜 나간거죠.


아무튼 한국전쟁은 처음부터 중공과 소련의 기획된 전쟁이었고 미국의 참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지는 않았겠지만 에치슨 라인 등으로 평가절하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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