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15세 이상) 피의 향연, 베어 너클은 메이저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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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어 너클의 역사에 대한 그리 길지 않은 정보가 담긴 포스팅입니다. 덧붙여 글을 올린 시점(2019년 4월)에 막 생겨났던(2018년 신설) 신생 베어 너클 단체 BKFC(Bare Knuckle Fighting Championship)를 소개하기도 했으니 참고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사실 2년 전 베어 너클의 부활 내지 제도 내 편입 포스팅을 다루면서 이 스포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답니다. ‘베어 너클은 선수들이 맨손으로 경기를 치르다보니 타격을 가한 선수의 손이 부러지고 찢어지며, 공격을 받은 상대의 피부도 쉽사리 찢어지는, 그렇게 링 위에 피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하드코어 스포츠’란 측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엔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 미래를 그려본 것이죠. 2년이 지난 현재, 제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데이비드 펠드먼 BKFC 회장은 작년 말 BKFC 14에 앞서 폴란드의 새로운 베어 너클 단체이자 디비전의 출범(KSW. 위에 삽입한 영상이 KSW의 1회 대회 경기)을 크게 반겼습니다. 19세기 후반 이후 베어 너클은 한적한 공터나 지하 주차장 등 인적 드문 곳에서 운동 좀 배우고 주먹 좀 쓰는 양아치들이 비공식 선수로서 활동하는 비공식 스포츠가 됐습니다. 베어 너클 타입의 경기는 협회를 중심으로 제도화에 성공한 복싱과 달리 푼돈이나 걸리는 쌈박질로 전락했고 말이죠. BKFC가 2018년에 시작된 이래, 스포츠화(여기에서의 스포츠화는 협회가 존재하며, 협회를 중심으로 룰이 만들어지고, 그 룰에 따라 모든 대회/경기가 관장되는 걸 말한다. 또 협회에 등록된 선수들만이 경기를 치를 수 있다)가 된 베어 너클은 미국을 넘어 영국, 러시아 그리고 폴란드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 성장세가 정말 빠르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입니다. 앞서 펠드먼 회장이 반색한 이유 말이죠.
덧붙이면 BKFC가 해당 판에서 자타공인 선구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단 사실로 인해 단체의 대표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놀라웠습니다. KSW가 자사를 홍보하며 ‘BKFC 스타일의 격투’를 키워드로 삼았더라고요. 그때 전 ‘와우, 이거 졸라 근사하잖아!’라고 생각했어요. 러시아엔 작은 규모의 베어 너클 단체들(대표 Top Dog FC. 위에 삽입한 영상이 탑독 FC의 경기)이 있습니다. 저흰 지금 러시아 현지 중계권 협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조만간 현지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에요. 12월엔 태국에서의 대회가 잡혀있답니다. 타국에 있는 여러 조직들과 함께 할 수 있단 건 스포츠의 대중화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건이기에 매우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겠죠.”
따지고 보면 BKFC의 성장은 데이비드 펠드먼이라는 한 사나이의 격투기 사업에 대한 꿈과 집념에서 시작된 결과물입니다. 복싱 트레이너인 마티 펠드먼의 아들로 태어난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부터 권투선수들과 숙식을 함께 했습니다. 12세가 됐을 때 이미 쇼핑이나 요리 따위의 것은 스스로 처리할 정도까지 대단히 독립적인 유형으로 성장한 이유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그의 동생 데이먼과 권투를 배웠는데, 동생과는 달리 복싱 선수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전적은 4승 1패.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까지 고향인 필라델피아의 외곽에서 두 개의 바를 운영하다, 2006년 격투 비즈니스 세계로 복귀합니다. 카지노와 전국의 소규모 장소에서 복싱과 종합격투기 시합을 프로모팅했습니다.
2010년 데이비드 펠드먼은 캐나다의 바비 건이란 이름의 크루저급(헤비급 바로 아래 체급) 복서를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을 통해 베어 너클 단체를 조직해야겠단 목표를 세웁니다. 바비는 자신을 셀틱 전사로 불러달라고 요구한 선수였는데, 이 선수의 아버지가 맨주먹으로 싸우는 걸 삶의 방법으로 삼은(집안 문제의 해결책으로도 종종 활용한) 아일랜드인이었습니다. 바비가 복싱 선수로 활동하면서도 언더그라운드 베어 너클 시합을 즐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아버지의 영향이었던 것. 의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온라인을 통해 포스팅 된 바비의 베어 너클 경기가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그 중 하나의 영상을 걸어놓겠습니다. 바비 건이 제이-Z의 보디가드 어네스트 잭슨을 때려눕히는 영상입니다. 보디가드의 폼과 움직임을 보자면, 잭슨 역시도 복싱 선수 출신인 듯합니다. 일반인이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도 저런 완성된 폼과 체구 대비 압도적인 스피드는 나올 수 없는 법이니까요. 데이비드는 바비와의 만남에서 “제가 베어 너클 경기를 프로모팅해볼게요. 제 생각에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거든요”라 말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바비의 표정이 ‘아서요.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관계자들이 베어 너클 경기를 허용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라 대답하는 것 같았답니다.
2011년 8월, 데이비드 펠드먼은 1889년 7월 미시시피에서 열린 설리번 v 킬레인 간 경기 이래 122년 만에 대중 앞에 선보인 최초의 베어 너클 시합을 링 위에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바비 건 대 리치 스튜어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약 5,000명의 격투기 팬들이 몰렸고, 그 역사적 순간을 담은 유튜브 클립은 현재 65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BKFC의 역사가 시작될 법했지만, 공식적인 베어 너클 시합의 개시는 이후 오랜 기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한 세기 이상 미 전역에서 베어 너클 경기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데이비드는 베어 너클 시합을 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28개 주에서 허용 불가란 답변만을 듣게 됩니다.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 집행위원이자 은퇴한 MMA 선수인 앤디 포스터는 베어 너클을 두고 ‘이미 진화한 스포츠에 있어서 다시 퇴화를 하자는 격’이라 일갈했고, 데이비드를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을 정도입니다. 아틀랜틱 시티에서 UFC 대회가 열렸을 때 협회의 성장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자 데이나 화이트 대표에게 접근해봤지만, 그로부터 돌아온 건 “당신은 결코 베어 너클 대회를 열지 못할 거야. 시합 허가를 받을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란 경멸조의 답변이었다고 하죠.
시간이 흘러 2018년이 됐습니다. 와이오밍주는 베어 너클의 스포츠로서의 위험성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공개 시합 허가 사인을 보냅니다. 28개 주에서 퇴짜를 맞았던 BKFC의 개시가 29번째 주 와이오밍에서 드디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난 오늘 이 시점, 제가 기억하기로 와이오밍, 미시시피, 앨라배마주 등 총 6개 주에서 베어 너클 시합이 허용된 상태입니다.
베어 너클은 빠르게 세를 넓히고 있는 스포츠이지, 아직은 메이저가 아닌 중소규모의 마이너 스포츠입니다. 현 베어 너클 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인기가 많은 미국의 BKFC를 보겠습니다. 하나만 따지면 됩니다. 선수 1인 기준으로 경기당 받아가는 파이트머니의 평균치를 말이죠. 정답은 2,500달러입니다. 많은 분들이 ‘겨우 2,500달러?’라는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승리수당 등 부가수입을 제외하고 생각을 해보죠. 미국 1인당 평균 GDP를 대략 68,000달러로 잡을 때, BKFC에 속한 아무개 선수가 앞선 액수를 맞추기 위해선 1년에 무려 27경기 이상을 치러야만 한단 소리이니, ‘겨우’란 생각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들의 기준점은 복싱계 슈퍼스타들 간 대결이나 UFC 간판급 스타들의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천문학적 액수 아니겠어요?
경기당 평균 2,500달러는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닙니다만, 베어 너클이란 종목의 입지를 생각해볼 때 저 파이트머니에 대한 생각은 여타 중소 규모 격투기 단체에서의 같은 명목 액수와 비교를 해봐야 이치에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재미나게도 BKFC의 경우, 중소 규모 격투기 단체치고 선수들에게 수입을 꽤나 많이 배당해주는 편입니다. 데이비드 펠드먼의 말처럼 ‘비슷한 규모의 단체들에 있어서 업계 최고 수준’인지는 말의 진위를 밝히기 위한 노가다를 하기 싫어 잘 모르겠습니다만, 킥복싱계를 보자면 평균이 아닌 상위권 선수들의 경기당 수당이 대략 2,000달러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서 보자면 베어 너클 선수들의 처우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BKFC는 상위 격투기 단체의 선수를 전략적으로 우대합니다. 현명한 비즈니스 형태입니다. 메이저 격투기 단체들의 PPV 콘텐츠다 뭐다를 소비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 코어 격투기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협회나 선수들의 지명도가 너무 낮아서도 또 경기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도 안 되니 말입니다. 돈이 모이는 곳에 재능이 몰려 경쟁하는 법, 당장 돈이 모이지 않아 재능이 없다면 협회 차원에서 상위 단체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재능을 웃돈 주고 사오면 됩니다. BKFC가 한때 UFC에서 여성부 스타로 키우려고 했던 페이지 반잔트(스트로급->플라이급)를 영입하려 쓴 계약금은 대략 4억 4,600만 원(40만 달러)으로 추산(계약상 데뷔전 승리수당이 얼마나 됐는가에 대해선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됩니다. 반잔트는 BKFC와 계약을 맺으며 이와 같은 멘트를 남겼습니다. “UFC에서 6년 간 활동하는 동안, 경기당 파이트머니가 대략 4,460만 원(4만 달러), 승리수당도 대략 4,460만 원이었답니다. 이제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10배나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네요.”
한편 업계 관계자는 권투든 UFC든 흥행 관련해서 격투기 시장 특유의 뻥카가 있다고, 베어 너클 복싱 시장의 성장 지표와 그 주장도 가려서 들을 줄 알고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데이브 멀처는 구글 검색이 PPV 실구매자를 파악하는 일에 있어서 완벽하진 않지만 꽤 괜찮은 바로미터라고 주장합니다. ‘UFC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PPV 50만 건 검색이 이뤄지면, 실구매자는 대략 15만 명으로 나타난다. 백 만이 검색하면 30만 명의 실구매자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메이저 단체 콘텐츠에 국한된 얘기입니다. 마이너 단체 콘텐츠로 넘어가면 당연하게도 검색과 실구매의 관계가 훨씬 느슨해지기 마련. BKFC 6의 경우, 협회측은 PPV 판매량을 20만이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 스포츠 소비 방식인 ‘TV를 통한 PPV 시청 콘텐츠’의 실제 판매량은 1만 8천 수준에 그쳤죠. 20만이란 숫자는 관련 콘텐츠가 검색된 숫자였습니다. 이처럼 검색 숫자와 판매량을 슬쩍 바꿔 말하는 뻥카 방식은 복싱계든 종합격투기계든 그리 어렵잖게 목격이 되는 바, 베어 너클 시장에서도 세간의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된 거라 보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베어 너클 시장의 규모, BKFC 12를 기준으로 앞 문단에서 언급한 BKFC 6의 수치로부터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포브스誌의 말처럼, 전자화된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말이죠. BKFC는 BKFC 12에 앞서 모든 플랫폼에 베어 너클 TV앱을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3.99달러란 저렴한 시청료로 자사의 모든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끔, 그러니까 시청자들에게 상당히 저렴한 가격 대비 무척 파격적인 혜택을 선사하는 전략을 택합니다. 앱 다운로드 숫자와 구독자 숫자 모두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베어 너클 TV앱은 25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숫자를 기록, 다시 이 다운로더들 중 절반 이상이 월간 서비스에 가입하게 됩니다. 2021년, 미국 외 영국, 호주, 태국,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라이브 이벤트를 실시할 계획인데, 협회 측은 앱 접근성이 낮은 나라의 경우 강력한 콘텐츠 유통 파트너가 필요하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대표 스트리밍 서비스인 FITE와의 협력은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이외에도 BKFC는 러시아의 경우, 국제 라이선스 권한의 일부인 Match TV를 통해 경기당 평균 5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밝혔습니다. 이상 대략적으로 훑어본 정보만으로도 BKFC 6-BKFC 12 사이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알게 됐으리라 여깁니다.
각국의 베어 너클 협회는 링의 규격 및 형태 그리고 룰의 세부 내용에 있어서 차이점을 지닌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있어서 협회들의 존재 목적 하나 만큼은 동일할 텐데, 이를 바비 건의 말로 갈음합니다. “베어 너클의 대중화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것입니다. 음지에서 베어 너클 경기를 치르던 선수들이 사람 구실을 하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비공식 비공개 경기답게 팬들이 적었고, 그렇기 때문에 경기당 수당도 적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협회가 만들어지고, 그 주관 아래 치러지는 대회가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협회와 계약한 선수들이 가져갈 몫은 커지게 되겠죠. 언젠가 베어 너클 선수들은 자신들이 경기를 치르고 받게 될 돈만으로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수들의 바람이란 게 실로 소박하지 않나요? 그 소박함의 현실화조차 어려운 시대이긴 하지만 말이죠. 포스팅 첫머리에 삽입한 곡의 노랫말처럼 ‘나는 별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란 문장이 떠오르는 야심한 시각입니다. 다들 좋은 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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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경우도 나오긴 하네요.
시계를 거꿀로 돌려보면, 바로 UFC의 과거가 저랬어요.
저렇게 해서 돈을 만질 수 있었다면 UFC가 라운드와 룰을 도입하고 선수들에게 글러브를 끼우지 않았겠죠.
켄 샴락과 호이스 그레이시의 30분 동안 엎치락 뒤치락 누워서 끌어안고 끙끙대다 끝난 무승부 시합 이후로 UFC가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했죠. 규칙이 없으면 시합이 성립하지 않아요.
그리고 글러브는 맞는 사람보다 때리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건데, 시합할 때마다 주먹이 작살나는 선수들이 도대체 몇번이나 더 뛸 수 있고, 얼마나 성장해서 챔피언이 되고 스토리를 만들고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아무래도 세상이 미쳐가는 건가요... 21세기 생존의 막판에 몰리니 사람들이 원시시대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시작한 건지...도무지 제 머리론 이해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