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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복싱을 금지하는 게 사회적으로 이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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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4-25 03:19:06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2651232&sca=&sfl=wr_name%2C1&stx=axl18&sop=and&scrap_mode=

*. 본 내용에 앞서서 링크를 건 포스팅의 댓글만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와 rockid 님 간 대화입니다.


 rockid 님의 댓글에 대댓글로 달까 하다가 포스팅으로 갈음합니다. 사실상 시한이 죽어버린 포스팅에서 개인적인 대화로 끝내기엔 꽤 흥미로운 주제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는 저나 rockid 님을 넘어, 많은 분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내볼만한 주제다 싶습니다. 전 본문 포스팅으로 제 의견을 갈음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할 얘기가 남았는가'가 하나고 '더 깊은 얘기를 하기엔 제 능력의 한계로 인해'가 둘입니다, 특별히 댓글을 달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댓글을 다는 건 생략을 하겠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아닌 관계로 꽤 빠르게 작성했기 때문에 오타 및 비문이 많습니다.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복싱의 허용 문제를 공리주의의 시선에서 보든, 자유주의의 시선에서 보든, 공통체주의에서 바라보든 또 다른 철학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든 핵심은 동일합니다. ‘개인의 선택 문제에 대해 사회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을 좀 풀어서 보자면 ‘복싱을 허용함으로써 사회에 야기할 수 있는 시그널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구속 찬반의견’도 그 형태를 달리하기 마련입니다. 

 미리 밝히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당연히 제 의견도 반박에 재반박이 가능한 불완전한 것일 뿐임을 밝힙니다.

 

 1. 복싱은 영구적인 뇌손상을 야기한다. 의학 정보 온라인 데이터 베이스 검색(Medline search)을 해보면 관련 연구 결과가 숱하게 검색된다. 흔히들 아마추어 복싱의 경우 프로 복싱과 달리 뇌손상 문제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마추어 복싱 선수들의 경우도 스파링을 즐기던 경우엔 펀치드렁크 문제 등을 겪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도 숱하게 존재(1998년 기준 27개)한다.

 

- 여러 의학 전문가들은 복싱이 장기간 누적되는 뇌손상 문제와 직결되기에 사회적으로 금지가 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복싱 선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뇌진탕 증후군,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질병 등을 겪을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단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다.

 2019년 글래스고대학 연구팀은 육체적 충돌이 복싱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축구조차 헤딩으로 인한 퇴행성 뇌손상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3.5배가량 더 높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같은 연구에서 프로 축구선수 출신들이 일반인보다 평균 3.25년을 더 살고, 암이나 심장질환 및 폐질환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더 낮단 결과도 명시됐지만, 세간에선 이 내용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편 거대한 덩어리들의 육체적 충돌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럭비 선수들이나 NFL 선수들의 뇌손상은 헤비급 복서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뇌의 내부적 충격흡수 정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참고로 NFL 선수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포지션별로 다르지만 50대 초반~50대 후반이다.

 육체적 충돌을 전제로 만들어지지 않은 스포츠는 어떨까? 사람들은 모터바이크 경주 선수들이나 승마 레이싱 선수들 그리고 프로 사이클 선수들의 뇌손상 정도나 그 위험성이 권투선수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단 사실을 듣는 순간 꽤나 놀란다.

 이제 스포츠도 아닌, 개인의 극기나 위대한 모험심과 연결이 되는 전문 산악인들의 뇌를 들여다볼 차례다. 고지대에서 뇌세포가 살살 녹아 사라진단 연구 결과는 구글에서 ‘Brain Cells into Thin Air’ ‘Mountain Climbing Kills Brain Cells’ 등의 키워드를 조합해서 그리 어렵잖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결과를 야기하는 활동으로 스카이다이빙 등도 잊지 말자.

 ‘뇌손상을 야기하기에 복싱을 금지해야 한다’란 주장이 참이 될 수 있다면, 같은 결론이 도출되는 숱한 활동도 금지가 돼야만 옳다. 이 논리는 형평성 문제 외에도 더 큰 문제를 잉태하고 있으니, 다른 영역에 적용시킬 때 나올 수 있는 금지 요구 목소리가 무궁무진하게 나올 수 있단 것이다. 예컨대 모터바이크의 위험성. 동일한 충격을 입을 시 자동차 운전자에 비해 바이크 운전자가 사망할 확률은 26배 더 높고, 부상을 입을 확률은 5배 더 높다. 고로 모터바이크는 금지돼야만 한다. 다시 이걸 자전거로 확장시킨다면? 극단적으로 대중교통 외 도로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은 없어질 것이다.

 

 2. 복싱이 부를 획득할 수 있는 빠르고 쉬운 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 영역에 몸을 담게 되는 선수들 절대다수가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사실 프로 스포츠란 건 육체적 손상을 담보로 이뤄지는 활동이기에 많지도 않은 재산을 모은 상태에서 은퇴를 했다간 향후 닥쳐올 여러 만성질환에 의해 극빈층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종종 ‘아무개 챔피언이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서 개인파산을 신청했다’와 같은 뉴스가 일간지를 장식하지만, 실제 챔피언이 돼보지도 못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앞선 이유에 의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복서로서 메이웨더와 같은 거부가 되는 바람은 기실 환상에 불과하다.

 

- 메이저스포츠 선수들은 절대적으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 많다. 골프나 아이스하키처럼 장비 마련 비용 자체가 중산층 이상은 돼야 그나마 커버 가능한 경우가 아닌 이상 말이다. 축구를 예로 들자. 유럽이나 남미를 보면, 유소년 시절까진 중산층 이상 출신 아이들도 프로 선수가 되는 꿈을 많이들 키운다. 하지만 10대 초중반을 넘어선 시점부터 중산층 출신 아이들 대부분이 유소년 클럽에서 사라진다. 남는 건 대개 중하층민 이하 가계 출신 아이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산층 이상 출신의 아이들에겐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유형무형의 자산이 있다. 이 기득권을 통해 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고, 최소한 부모로부터 투자된 만큼만 공부를 해낼 수 있어도 부모들이 만들어낸 유형무형의 자산을 굉장히 높은 확률로 지켜낼 수 있다. 비록 그 자녀들이 벌어낼 연봉이 1년에 1,1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메시나 호날두에 비해 1/1,100에 불과하다고 할지언정, 1/1,100 이상이나 그 이하라고 해도, 나쁘지 않은 결과물임에 분명하다. 전 세계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축구를 해서 프로 선수가 될 확률(애당초 운동능력을 갖고 있단 소리를 듣는 아이들 간 경쟁이다)보다 일류대나 그에 준하는 대학에 입학할 확률(불특정 다수와의 경쟁률이기에)이 훨씬 높단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반대는 어떠한가. 선진국이 됐단 건, 중산층 비율이 그 사회 시스템상 극대치로 확대가 된 이후부터 사회 계층 간 이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어떻게 보면 대단히 안정적인 사회구조가 확립됐단 소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계층사회가 계급사회가 됐단 얘기다.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부를 통해 개천에서 용이 되는 꿈을 꾸는 것’도 쉬운 일도 아닌 게, 부모로부터 받을 유형무형의 자산이 없고 집안 환경부터 아이를 둘러싼 모든 주변 환경 자체가 공부하기 불리한 확률까지 높은 상황에서 사실상 ‘너의 능력만으로’ 이미 출발선이 다른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라 주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들 입장에서 차라리 육체 능력만으로 경쟁해 성공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기득권의 개입이 최소화가 되는, 그러니까 보다 정정당당한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소년 축구 클럽의 아이들이 10대 초중반을 넘어선 순간, 이 클럽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의 계층이 한 쪽으로 확 쏠리게 되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카카가 어린 시절부터 화제가 됐던 이유 중 하나는 축구의 왕국에서 희소한 중산층 이상의 집안 출신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복싱의 경우엔 메이저스포츠이지만 최고의 운동 재능을 가진 재능이 최우선적으로 찾는 스포츠가 아니게 된지 오래다. 미국을 예로 들면, 60/70년대까지만 해도 숱하게 있던 복싱 연습장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복싱 원로들이 NFL 거구들, NBA 거구들을 보며 “예전이라면 저 친구들이 복싱을 하고 있었을 거란 말이지”라고 입맛을 다시며 한탄을 하는 장면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때리고, 맞지 않아도 복싱 슈퍼스타들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단체 구기종목이 많아진 세상 아닌가. 70년대 초중반 전성기 지난 펠레가 연봉 100만 달러를 받으며 MSL에 입성했을 때, 이 100만 달러란 금액은 무하마드 알리와 같은 복싱 슈퍼스타들은 벌 수 있었지만 펠레를 제외한 전 세계에 있는 나머지 모든 단체 구기 종목 슈퍼스타들이 결코 손에 만지지 못한 금액이었다. 상전벽해한 것이다.

 물론 복싱은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선수 개인의 힘을 통해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특히나 고급 사교육, 대학 교육과 같은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어린 재능들에게 말이다. 과거 슈거 레이 레너드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복싱이 없었다면, 저를 둘러싼 나쁜 환경들로 인해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를 일입니다. 복싱은 제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줬고, 스스로를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이런 그림을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NBA 슈퍼스타 케빈 듀란트가 MVP를 수상하며 말했던 내용이다.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진 않다. “어머니는 홀로 저희 자식들을 키워내셨습니다. 저희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끔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물이 새고, 전기가 끊겨 불이 들어오지 않던 어두운 집에서 어린 여동생을 안고 있던 때가 떠오릅니다.”

 ‘프로스포츠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써 기능하지 않기 위해선’이란 문제가 이상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으려면 무시무시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존재하는 복지국가가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프로스포츠를 통한 부의 재분배 문제와 그 효율성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단순히 스포츠 영역에서 얘기하기 힘든, 그러기엔 복잡한 층위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3. 복싱은 원초적인 폭력성을 자극한다. 특히나 이는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 미국에서 범죄자들을 교화시키는 대표적 방법론 중 하나로 복싱을 활용하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지 포먼과 영혼의 맞다이 KO쇼를 펼치던 론 라일부터 저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 등 강력범죄를 포함 전과 수십범의 범죄자가 될 운명이었던 죄수들이 프로 복싱 선수로 탈바꿈된 예는 숱하게 많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개과천선이다. 

복싱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전문 코치들이 있다. 선수들은 매일 이어지는 연습과 다이어트를 겪어내며 극기를 체화한다. 링 위에서 나온 모든 행위는 오직 룰에 의해서만 판단/결정이 되기 때문에 이 룰을 존중하고 복종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심판에 대한 존중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통칭하면 복싱도 여타 투기 종목과 마찬가지로 규율을 배운다고 하겠다.

 복싱을 통해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단 것만을 상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반대로 복싱을 통해 자신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된단 사실은 왜 간과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모든 투기 종목은 육체적인 공격/수비를 전제로 한다. 폭력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소리다. 원초적 폭력이 문제라면, 또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육체적으로 더 약한 사람을 육체적 능력을 통해 굴복시키는 게 문제라면, 레슬링, 킥복싱, MMA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투기 종목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꼭 격투기 종목이 아니라고 해도 아이스하키는 어떠한가? 인포서의 활용도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지만, 폭력성 거세 작업의 일환으로 바디 체킹까지 금지시킨다면 아이스하키가 아이스하키일 수 있을까? 스포츠의 범주에서 폭력을 바라본다면, 그 요는 통제가 되는 폭력이냐 아니냐에 둬야 하는 것 아닐까?

 여담일 수도 있는 재미난 것 하나. ‘복싱은 원초적인 폭력성을 자극한다. 특히나 이는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복싱’을 ‘비디오 게임’으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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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아가 생각해볼 점이 있다. ‘협회-룰-심판-협회에 등록된 코치와 선수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제도권 복싱 경기이다. 이를 금지한단 건 복싱의 음성화 위험성을 간과하겠단 뜻과도 연결이 된다. 당장 복싱이 음성화가 되면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수 세기 전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필요에 따라 개정이 되고 있는 룰이 없어지거나 헐거워질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선 거의 안 알려졌지만, 화이트칼라 복싱이라는 이벤트가 존재한다. 주로 미국과 영국의 화이트칼라 출신 선수이고(무시하기 힘든 게 런던 클럽만 해도 가입 선수만 1,000명이 넘는다), 자선행사를 벌임과 동시에 동물로서 내재된 폭력성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변호사, 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늘어나는 추세다. 'MMA와 MBA가 만나는'과 같은 기가 막힌 표현도 이 콘텐츠를 설명하는데 즐겨 쓰인다. 선수들이 일반인인 만큼, 경기력은 당연하게도 형편이 없다. 그런데 'X밥 싸움이 가장 재밌다'는 속된 말이 있듯, 의외의 긴장감이 흐르는 건 함정. 

 

- 스웨덴에선 1969년 11월 28일 정부에 의한 복싱 규제가 시작됐다. 이듬해 1월 1일 모든 프로 복싱 경기에 대한 금지령이 실시됐다. 금지령이 풀린 것은 2007년이 돼서다. 의회의 표결로 가려졌고, 다수결 원칙이었다. 포스팅 서두에 밝힌 것처럼, 이 문제엔 정답이란 게 없다. 

 

*. rockid 님께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지만, 덕분에 굉장히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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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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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03:06:49

자기 전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두 분 덕분에 평소 생각하기 힘든 주제를 접하게 되네요. 내일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정독할까 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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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03:13:38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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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04:28:27

NFL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건데 미식축구가 워낙 신체에 무리를 특히 머리에 무리를 많이 주다보니 그에 맞춰 충격을 완환시킬수 있는 헬멧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실제로 과거에 비하면 비할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대 아이러니한건 그런 헬멧이 개발될수록 선수들이 보호장비를 믿고 더욱 과감하게 몸을 굴려서 결국 신체손상은 줄어들지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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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4-25 14:44:41

 유익하고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어렴풋하게는 짐작했지만 고고도 산악등반이 뇌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료는 axl18님 덕분에 처음 접해보았습니다. 유익한 자료와  자료와 생각해볼법 한 주장을 제공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모호한 부분이 약간 있어보입니다. "미식축구나 고고도 산악 등반 같은 스포츠도 동일한 뇌손상의 위험을 주기 때문에 복싱을 금지하는 것이 부당하다."라는 주장은 그것이 형평성에 대한 주장일 때만 타당합니다. 맞습니다. 복싱을 금지하려면 그런 다른 스포츠도 금지해야죠. 그러나 저 주장이 "미식축구나 축구, 산악등반을 폐지하는 것이 부당하기 때문에 복싱  또한  폐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것을 은연중에 주장하고 있다면, 이것은 일종의 "선결문제요구의 오류", 미식축구와 같은 스포츠가 금지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증해야할 주장을 전제로 제시하는 오류에 해당합니다. 물론 alx18님이 그런 주장을 하실리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글을 가볍게 읽는 경우 오독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이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비교적 복싱에 비해 논란이 적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로서의 스포츠라서, 암묵적으로 이것이 존속되는 것을 당위라고 무의식 중에 전제하실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까요.

 

 전에  어떤 행위를 사회적으로 금지할지 말지를 정하는 것은 (공리주의와 개인자유의 대립을 적절하게 해소하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폐지나 허용은 그때그때 상황과 가치판단에 따른 가변적인 영역이며 절대적 윤리의 가치를 가진 정언적 명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복싱과 여타 뇌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스포츠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 폐지와 허용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문제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이런 스포츠들이 점진적인 폐지 수순을 밟는 쪽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역사적 추세를 볼 때 이런 흐름이 이미 세계사적 대세로서 형성되고 있고(프로스포츠로서의 복싱의 재허용과 같은 경우는 추세에 반하지만 지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싱으로 야기될 수 있는 위험과 편익에 대한 판단이 재고된 경우라 할 수 있겠죠.), 이로 비추어 볼 때 인류가 지금은 그 행위들에 대한 편익과 기회비용에 대한 가치판단을에 대해 광범위하게 합의하고 있는 상태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가 공리적 이익을 사회에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폭력과 위험의 감소가 어째서 공리적 유익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쉽게 합의될 수 있는 부분이라 가정하고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가겠습니다. 또한 다른 윤리적 입장에 비해 공리주의적 입장만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현재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인지과학과 관련한 철학적 입장에서, 오직 심회된 수준의  공리주의만이 가장 넓고 보편적인 도덕 원칙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 예측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도덕적 원칙들이 자의적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고통과 쾌락이 중요한 만큼 타자의 고통과 쾌락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신경써야 한다는 원칙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인간의 본성에 내제되어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과학적 추정들이 존재합니다. )

 

예전에는 당연하게 이루어졌던 여흥이나 행위들이 위험하다든지, 혹은 지나친 폭력성에 대한 거부감을 야기한다든지 하는 이유로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식축구나 고고도 등반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가 복싱 못지않은 불가역적 뇌손상을 야기한다면, 그것도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들"에서 말했듯이, 인류의 역사는 이런 폭력이나 손상의 위험을 최소화 하는 쪽으로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발전해왔습니다. 불과 1~200년 전만해도 고양이나 개의 꼬리에 불을 붙여서 날뛰는 것이나 목을 메달아 발버둥치며 죽어가는 것을 보며 배가 터지게 웃는 것, 사형수를 사와서 공개처형을 하는것이 이 노동계층의 일반적인 여흥이었던 때가 있었고결투가 명예를 중시하는 신사들의 행위였던 적이 있었죠

 

교통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터사이클의 위험성이 충분히 알려지고, 사회적 경고가 명백하게 표시될 수록 아마 모터 사이클을 이런 저런 이유로 즐기려고 했던 사람들이 더욱 줄어들 것입니다. 시험과 안전 규칙이 더욱 엄격해질 수록 위험을 즐기려는 욕구는 전반적으로 감소될 것이고요.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결국 도심이나 차량 운행이 많은 도로에서의 모터사이클 운행제한과 같은 사회적 합의가 도출 될 수 있겠죠. 자전거의 경우, 자전거 전용도로의 확충과  엄격한 안전규칙이 전제된다면, 모터사이클과 같은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며, 오히려 자전거가 대중교통화되는 것이 교통안전에 훨씬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동선이 얼마나 겹치지 않도록 하느냐가 관건이겠죠. 

 

직업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위험 직업군이 지금도 유지되는 이유는 위험부담에 비해 사회적, 개인적 편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직업군에 더 나은 안전장치들이 도입될 수록 위험은 빠르게 줄어들고, 그러한 직업은 사라지거나 안전한 직업이됩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스포츠와는 다르죠. 지금은 아무도 스피노자처럼 골방에서 보호장비 없이 유리를 갈지 않습니다.

 

또한 말씀하신 것처럼 복싱의 유입에는 정말 다른 희망이 없는 도전자들이 유입되고 그 중에서 슈퍼스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처절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연민하고 또 존경합니다. 사회가 그들의 삶을 뒷받침할 도리가 없을 때, 앉아서 죽느니 뭐라도 해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인간승리의 가능성이 과장되어 팬이나 초심자들이 유입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해서, 복싱이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식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가짜 감동서사에 속아넘어가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제도가 영속되기 보다는, 즉 타이슨 같은 소년이 맨주먹보다는 글러브를 낀 손으로 남을 때려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 보다는, 다른 사회적 지원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 그 힘으로 남을 도울 수 있고, 보통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취미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 명의 챔피언보다 수많은 삶의 도전자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골고루 살 수 있는 그런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노력과 재능과 운을 통해 판돈을 독식하는 프로 스포츠를 통해 성공하려는 욕망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더 많은 사람이 부를 공정하게 재분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싱은 그런 사회적 조건이 형성되기 전까지만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고 폭력과 위험을 야기하고 즐기는 스포츠로서의 기능은 삭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회라면 오히려 복싱이  순진한 초심자들을 착취해 굴러가는 산업이라는 오명도 벗고 규모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겠죠. 오히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야 말로 그런 위험의 자발적 감수가 좀 더 숭고한 무엇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재고되지 않은 욕망의 복마전이 아니라요. 아니면 복싱은 지금과 다른 무엇으로 진화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호신술로서의 복싱이나 에어로빅으로서의 복싱으로 존속하는 경우가 있겠죠. 개인적으로 복싱은 슬픈 스포츠고, 폭력성을 싫어하지만 복싱의 리듬감이나 동작의 우아함은 멋집니다. 저는 우슈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철저하게 실용적 무슬이 아니고, 그걸로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더러, 공인된 폭력적 여흥이 되기 힘들다는 비실용성 때문입니다. 또 펜싱도 배우고 싶은데, 육체를 이용한 대결 승부의 짜릿함을 맛 볼 수 있으면서도 역시 시합을 통해서 누적된 결과로 경기자에게 치명적 결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들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반론이  있는데, 윤리적 당위를 현실논리로 부정하면 안된다는 것과, 지금의 폭력과 위험의 감소는 100년 전이라면 꿈도 못 꾸었을 만큼 인류의 진보가 이런 측면에서는 가파르다는 것입니다. (혹시 오해하실 분이 있을까 부연하자면, "폭력과 위험을 지속적으로 감소시켜야 한다."는 것은 공리주의적으로 타당한 주장이고 당위입니다. 그러나 "어떤 댓가를 감수하고라도 폭력과 위험을 근절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공리적 입장에서도 당위가 아닙니다. 위에 위험 스포츠의 폐지, 존속 문제가 정언적 명제가 아니라고 했으면서 뒤어서는 폭력과 위험을 감소시켜야 하는것은 당위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지실 분도 있을 것 같아 좀 더 분명하게 적습니다.)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주시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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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07:26:54
"한 명의 챔피언보다 수많은 삶의 도전자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골고루 살 수 있는 그런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글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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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08:24:48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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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4-25 08:32:32

저도 스티븐 핑거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스피븐 핑커책은 구입은 해놓고 너무 두꺼워 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의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의학과 통계, sns 의 발달로 과거보다 폭력이나 위험성 노출된 스포츠나 산업현장에서의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나갈 거라고 봅니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는요. 다만 그 과정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나 보다 과격한 격투기 등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은 반복될 거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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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08:37:02

공감합니다. 핑커 뿐 아니라 맷 리들리나, 마이클 셔머 등 다른 비슷한 학문적 베이스(진화생물학)가 있는학자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한 것으로 압니다. 

2021-04-25 10:17:05

후끈하군요, 화이트 칼라 복싱 경기 재밌게 봤습니다. 

나 개인의 잠재적 폭력성은 어떻게 할 수 있겠는데 본능에서 비롯된 스포츠가 건강에 안 좋은 것이 한 두개가 아니므로 복싱 또는 어떤 모습으로든 약속된 규칙이 있는 스포츠는 참여자와 주관자와 관객이 있는 한 상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역사가 시소게임이라고 한다면 한쪽에는 21세기 쯤 와서 인간이 제법 더 인간다와 지는 방향성이 앉아 있고 그 반대편은 기술 발달로 인한 자본 집적과 양극화의 심화(판데믹으로 가속)로 인한 인간 소외가 앉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만 근사하지 인간소외라는 점잖은 말에는 보기도 듣기도 싫은 현재 세상의 나쁜 것을 다 일컫는 말입니다.

 

짧게 왔다가는 세상, 만일 제가 그 시소의 중간에 앉아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인다 해서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이 좋아 읽기만 해도 막 생각이 안드로메다로 가는군요. 즐거웠습니다.

 

2021-04-25 10:31:57

 화이트칼라스포츠는 한국에도 있죠. 생활체육복싱이라고 1년에도 수차례 대회가 있습니다. 그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쓴글이네요.

2021-04-25 13:54:57

 

 복싱의 뇌 손상 관련해서는 경험상 확실히 안 좋습니다.

3분 3라운드 스파링만 해도 기량 차이가 엄청나게 나지 않는 이상 가드위로라도 지속적인 충격을 계속 받게 되는데 그중 몇방은 잠깐씩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충격입니다. 거기서 좀 더 심하면 다리가 풀리고 다운까지 되지만요.

보통 스파링에선 헤드기어가 있고, 많이 쓰는 스파링 글러브가 14온스인데 그정도면 상당히 쿠션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다운까지는 잘 되지 않지만요.

제대로 들어오는 펀치는 가드 위로 들어와도 아주 잠깐이지만 머리속 전기가 나갔다 들어온달까요? 그게 딱 맞는 표현 같습니다. 순간 정전.

그냥 쉽게 생각해도 그게 뇌에 좋을리가 없지요.

 

지금 아마추어 복싱에서 관련 문제 때문에 차라리 헤드기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는데요.

헤드기어의 울림떄문에 더 많은 뇌손상이 온다고 하여 못하게 하는데 맨머리로 맞는게 확실히 웅~~하는 충격은 적지만 대신 더 딱딱하고 정전효과는 좀 더 심하고...

좀 거친 스파링이라도 하고나면 며칠동안 잠깐씩 기억상실처럼 시간도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베어너클 경기에 관해서는 복싱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나름 할 말도 많지만 그건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하기로 하죠. 

 

2021-04-28 13:07:34

뒤늦게 정독하고 댓글도 다 읽었습니다. 오래된 논쟁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음지화 하는거보다 제도화 하는 쪽의 의견입니다. 두분 덕에 좋은글과 의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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