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복싱을 금지하는 게 사회적으로 이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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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에 앞서서 링크를 건 포스팅의 댓글만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와 rockid 님 간 대화입니다.
rockid 님의 댓글에 대댓글로 달까 하다가 포스팅으로 갈음합니다. 사실상 시한이 죽어버린 포스팅에서 개인적인 대화로 끝내기엔 꽤 흥미로운 주제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는 저나 rockid 님을 넘어, 많은 분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내볼만한 주제다 싶습니다. 전 본문 포스팅으로 제 의견을 갈음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할 얘기가 남았는가'가 하나고 '더 깊은 얘기를 하기엔 제 능력의 한계로 인해'가 둘입니다, 특별히 댓글을 달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댓글을 다는 건 생략을 하겠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아닌 관계로 꽤 빠르게 작성했기 때문에 오타 및 비문이 많습니다.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복싱의 허용 문제를 공리주의의 시선에서 보든, 자유주의의 시선에서 보든, 공통체주의에서 바라보든 또 다른 철학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든 핵심은 동일합니다. ‘개인의 선택 문제에 대해 사회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을 좀 풀어서 보자면 ‘복싱을 허용함으로써 사회에 야기할 수 있는 시그널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구속 찬반의견’도 그 형태를 달리하기 마련입니다.
미리 밝히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당연히 제 의견도 반박에 재반박이 가능한 불완전한 것일 뿐임을 밝힙니다.
1. 복싱은 영구적인 뇌손상을 야기한다. 의학 정보 온라인 데이터 베이스 검색(Medline search)을 해보면 관련 연구 결과가 숱하게 검색된다. 흔히들 아마추어 복싱의 경우 프로 복싱과 달리 뇌손상 문제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마추어 복싱 선수들의 경우도 스파링을 즐기던 경우엔 펀치드렁크 문제 등을 겪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도 숱하게 존재(1998년 기준 27개)한다.
- 여러 의학 전문가들은 복싱이 장기간 누적되는 뇌손상 문제와 직결되기에 사회적으로 금지가 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복싱 선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뇌진탕 증후군,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질병 등을 겪을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단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다.
2019년 글래스고대학 연구팀은 육체적 충돌이 복싱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축구조차 헤딩으로 인한 퇴행성 뇌손상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3.5배가량 더 높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같은 연구에서 프로 축구선수 출신들이 일반인보다 평균 3.25년을 더 살고, 암이나 심장질환 및 폐질환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더 낮단 결과도 명시됐지만, 세간에선 이 내용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편 거대한 덩어리들의 육체적 충돌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럭비 선수들이나 NFL 선수들의 뇌손상은 헤비급 복서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뇌의 내부적 충격흡수 정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참고로 NFL 선수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포지션별로 다르지만 50대 초반~50대 후반이다.
육체적 충돌을 전제로 만들어지지 않은 스포츠는 어떨까? 사람들은 모터바이크 경주 선수들이나 승마 레이싱 선수들 그리고 프로 사이클 선수들의 뇌손상 정도나 그 위험성이 권투선수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단 사실을 듣는 순간 꽤나 놀란다.
이제 스포츠도 아닌, 개인의 극기나 위대한 모험심과 연결이 되는 전문 산악인들의 뇌를 들여다볼 차례다. 고지대에서 뇌세포가 살살 녹아 사라진단 연구 결과는 구글에서 ‘Brain Cells into Thin Air’ ‘Mountain Climbing Kills Brain Cells’ 등의 키워드를 조합해서 그리 어렵잖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결과를 야기하는 활동으로 스카이다이빙 등도 잊지 말자.
‘뇌손상을 야기하기에 복싱을 금지해야 한다’란 주장이 참이 될 수 있다면, 같은 결론이 도출되는 숱한 활동도 금지가 돼야만 옳다. 이 논리는 형평성 문제 외에도 더 큰 문제를 잉태하고 있으니, 다른 영역에 적용시킬 때 나올 수 있는 금지 요구 목소리가 무궁무진하게 나올 수 있단 것이다. 예컨대 모터바이크의 위험성. 동일한 충격을 입을 시 자동차 운전자에 비해 바이크 운전자가 사망할 확률은 26배 더 높고, 부상을 입을 확률은 5배 더 높다. 고로 모터바이크는 금지돼야만 한다. 다시 이걸 자전거로 확장시킨다면? 극단적으로 대중교통 외 도로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은 없어질 것이다.
2. 복싱이 부를 획득할 수 있는 빠르고 쉬운 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 영역에 몸을 담게 되는 선수들 절대다수가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사실 프로 스포츠란 건 육체적 손상을 담보로 이뤄지는 활동이기에 많지도 않은 재산을 모은 상태에서 은퇴를 했다간 향후 닥쳐올 여러 만성질환에 의해 극빈층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종종 ‘아무개 챔피언이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서 개인파산을 신청했다’와 같은 뉴스가 일간지를 장식하지만, 실제 챔피언이 돼보지도 못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앞선 이유에 의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복서로서 메이웨더와 같은 거부가 되는 바람은 기실 환상에 불과하다.
- 메이저스포츠 선수들은 절대적으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 많다. 골프나 아이스하키처럼 장비 마련 비용 자체가 중산층 이상은 돼야 그나마 커버 가능한 경우가 아닌 이상 말이다. 축구를 예로 들자. 유럽이나 남미를 보면, 유소년 시절까진 중산층 이상 출신 아이들도 프로 선수가 되는 꿈을 많이들 키운다. 하지만 10대 초중반을 넘어선 시점부터 중산층 출신 아이들 대부분이 유소년 클럽에서 사라진다. 남는 건 대개 중하층민 이하 가계 출신 아이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산층 이상 출신의 아이들에겐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유형무형의 자산이 있다. 이 기득권을 통해 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고, 최소한 부모로부터 투자된 만큼만 공부를 해낼 수 있어도 부모들이 만들어낸 유형무형의 자산을 굉장히 높은 확률로 지켜낼 수 있다. 비록 그 자녀들이 벌어낼 연봉이 1년에 1,1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메시나 호날두에 비해 1/1,100에 불과하다고 할지언정, 1/1,100 이상이나 그 이하라고 해도, 나쁘지 않은 결과물임에 분명하다. 전 세계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축구를 해서 프로 선수가 될 확률(애당초 운동능력을 갖고 있단 소리를 듣는 아이들 간 경쟁이다)보다 일류대나 그에 준하는 대학에 입학할 확률(불특정 다수와의 경쟁률이기에)이 훨씬 높단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반대는 어떠한가. 선진국이 됐단 건, 중산층 비율이 그 사회 시스템상 극대치로 확대가 된 이후부터 사회 계층 간 이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어떻게 보면 대단히 안정적인 사회구조가 확립됐단 소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계층사회가 계급사회가 됐단 얘기다.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부를 통해 개천에서 용이 되는 꿈을 꾸는 것’도 쉬운 일도 아닌 게, 부모로부터 받을 유형무형의 자산이 없고 집안 환경부터 아이를 둘러싼 모든 주변 환경 자체가 공부하기 불리한 확률까지 높은 상황에서 사실상 ‘너의 능력만으로’ 이미 출발선이 다른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라 주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들 입장에서 차라리 육체 능력만으로 경쟁해 성공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기득권의 개입이 최소화가 되는, 그러니까 보다 정정당당한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소년 축구 클럽의 아이들이 10대 초중반을 넘어선 순간, 이 클럽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의 계층이 한 쪽으로 확 쏠리게 되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카카가 어린 시절부터 화제가 됐던 이유 중 하나는 축구의 왕국에서 희소한 중산층 이상의 집안 출신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복싱의 경우엔 메이저스포츠이지만 최고의 운동 재능을 가진 재능이 최우선적으로 찾는 스포츠가 아니게 된지 오래다. 미국을 예로 들면, 60/70년대까지만 해도 숱하게 있던 복싱 연습장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복싱 원로들이 NFL 거구들, NBA 거구들을 보며 “예전이라면 저 친구들이 복싱을 하고 있었을 거란 말이지”라고 입맛을 다시며 한탄을 하는 장면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때리고, 맞지 않아도 복싱 슈퍼스타들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단체 구기종목이 많아진 세상 아닌가. 70년대 초중반 전성기 지난 펠레가 연봉 100만 달러를 받으며 MSL에 입성했을 때, 이 100만 달러란 금액은 무하마드 알리와 같은 복싱 슈퍼스타들은 벌 수 있었지만 펠레를 제외한 전 세계에 있는 나머지 모든 단체 구기 종목 슈퍼스타들이 결코 손에 만지지 못한 금액이었다. 상전벽해한 것이다.
물론 복싱은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선수 개인의 힘을 통해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특히나 고급 사교육, 대학 교육과 같은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어린 재능들에게 말이다. 과거 슈거 레이 레너드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복싱이 없었다면, 저를 둘러싼 나쁜 환경들로 인해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를 일입니다. 복싱은 제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줬고, 스스로를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이런 그림을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NBA 슈퍼스타 케빈 듀란트가 MVP를 수상하며 말했던 내용이다.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진 않다. “어머니는 홀로 저희 자식들을 키워내셨습니다. 저희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끔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물이 새고, 전기가 끊겨 불이 들어오지 않던 어두운 집에서 어린 여동생을 안고 있던 때가 떠오릅니다.”
‘프로스포츠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써 기능하지 않기 위해선’이란 문제가 이상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으려면 무시무시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존재하는 복지국가가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프로스포츠를 통한 부의 재분배 문제와 그 효율성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단순히 스포츠 영역에서 얘기하기 힘든, 그러기엔 복잡한 층위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3. 복싱은 원초적인 폭력성을 자극한다. 특히나 이는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 미국에서 범죄자들을 교화시키는 대표적 방법론 중 하나로 복싱을 활용하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지 포먼과 영혼의 맞다이 KO쇼를 펼치던 론 라일부터 저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 등 강력범죄를 포함 전과 수십범의 범죄자가 될 운명이었던 죄수들이 프로 복싱 선수로 탈바꿈된 예는 숱하게 많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개과천선이다.
복싱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전문 코치들이 있다. 선수들은 매일 이어지는 연습과 다이어트를 겪어내며 극기를 체화한다. 링 위에서 나온 모든 행위는 오직 룰에 의해서만 판단/결정이 되기 때문에 이 룰을 존중하고 복종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심판에 대한 존중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통칭하면 복싱도 여타 투기 종목과 마찬가지로 규율을 배운다고 하겠다.
복싱을 통해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단 것만을 상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반대로 복싱을 통해 자신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된단 사실은 왜 간과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모든 투기 종목은 육체적인 공격/수비를 전제로 한다. 폭력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소리다. 원초적 폭력이 문제라면, 또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육체적으로 더 약한 사람을 육체적 능력을 통해 굴복시키는 게 문제라면, 레슬링, 킥복싱, MMA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투기 종목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꼭 격투기 종목이 아니라고 해도 아이스하키는 어떠한가? 인포서의 활용도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지만, 폭력성 거세 작업의 일환으로 바디 체킹까지 금지시킨다면 아이스하키가 아이스하키일 수 있을까? 스포츠의 범주에서 폭력을 바라본다면, 그 요는 통제가 되는 폭력이냐 아니냐에 둬야 하는 것 아닐까?
여담일 수도 있는 재미난 것 하나. ‘복싱은 원초적인 폭력성을 자극한다. 특히나 이는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복싱’을 ‘비디오 게임’으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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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아가 생각해볼 점이 있다. ‘협회-룰-심판-협회에 등록된 코치와 선수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제도권 복싱 경기이다. 이를 금지한단 건 복싱의 음성화 위험성을 간과하겠단 뜻과도 연결이 된다. 당장 복싱이 음성화가 되면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수 세기 전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필요에 따라 개정이 되고 있는 룰이 없어지거나 헐거워질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선 거의 안 알려졌지만, 화이트칼라 복싱이라는 이벤트가 존재한다. 주로 미국과 영국의 화이트칼라 출신 선수이고(무시하기 힘든 게 런던 클럽만 해도 가입 선수만 1,000명이 넘는다), 자선행사를 벌임과 동시에 동물로서 내재된 폭력성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변호사, 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늘어나는 추세다. 'MMA와 MBA가 만나는'과 같은 기가 막힌 표현도 이 콘텐츠를 설명하는데 즐겨 쓰인다. 선수들이 일반인인 만큼, 경기력은 당연하게도 형편이 없다. 그런데 'X밥 싸움이 가장 재밌다'는 속된 말이 있듯, 의외의 긴장감이 흐르는 건 함정.
- 스웨덴에선 1969년 11월 28일 정부에 의한 복싱 규제가 시작됐다. 이듬해 1월 1일 모든 프로 복싱 경기에 대한 금지령이 실시됐다. 금지령이 풀린 것은 2007년이 돼서다. 의회의 표결로 가려졌고, 다수결 원칙이었다. 포스팅 서두에 밝힌 것처럼, 이 문제엔 정답이란 게 없다.
*. rockid 님께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지만, 덕분에 굉장히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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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두 분 덕분에 평소 생각하기 힘든 주제를 접하게 되네요. 내일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정독할까 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