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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반스, 글렌 굴드에게 피아노를 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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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18:40:02

비도 오고 해서 갑자기 빌 에반스의 음악이 땡겼습니다. 듣다가 너무 느낌이 좋아서, 이 앨범에 대한 소개글을 한 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제 멋대로의 상상력이 가미된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그러나 소개된 객관적 사건들은 전부 사실입니다.) 블로그에 먼저 작성해서 평어체인 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앨범의 이름은 맨 마지막에 소개했습니다. 

 

굴드는 CD318 옆에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피아노를 지켰다....데이비드 바르일란은 뉴욕에서 CD318을 쳐본 경험-물론 굴드의 허락을 받고-을 전한다. 명인기를 요구하는 곡이었는데, 큰 코드를 치려고 준비하며 손을 높이 들어올리자, 바르일란이 악기를 세게 두드릴 것이라고 생각한 굴드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소리쳤다. "아, 안돼! 안돼! 하지마! 하지마! 기다려!"


- 『굴드의 피아노』, 케이티 헤프너

 

 

 

 

 글렌 굴드의 장르와 악기에 대한 까다로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게 평생 피아노를 후원했던 스타인웨이사에 글렌 굴드가 했던 기행, 불평, 배신은 보통 사람이 참아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잠시 잦아들었던 때가 있었으니, 바로 굴드가 스타인웨이의 CD174와 CD318을 만났던 때였다.


 스타인웨이는 19세기 말부터 리스트와 같은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자사의 피아노를 제공하며 홍보에 이용했다. 이러한 관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대규모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는데, 스타인웨이의 최상위 모델인 D모델을 전국 각 지역의 대리점에 비치해 두고 자사와 협력 관계에 있는 아티스트들이 그 지역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었다. CD는 이러한 피아노에 임의적인 번호를 붙여 서로를 구분했다. 스타인웨이는 피아니스트들이 특정한 피아노를 선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시로 번호를 서로 바꾸었고, 번호를 통해 모델의 특성을 알아챌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피아노 제작 방식의 특성상, 제작의 참여하는 기능공들과 톤 조정을 맡은 테크니션들의 숙련도와 예술적 재능에 따라 각 제품들은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특정 CD들도 암암리에 숭배를 받았다.

 

 CD15와 CD20은 라흐마니노프가 선호한, 풍부한 톤과 웅장함으로 유명했고, CD186은 호로비츠가 독점한 악기로, 액션의 빠른 응답과 다체로운 톤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다. 이외에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CD400, 게리 그래프먼 등, 많은 피아니스트가 유독 선호하여 복잡한 예약 계획을 세워야 했던 CD199,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음률이 흐뜨러지기 시작해서 쓰는 사람마다 끔찍하다고 고개를 저었던 CD266도 있었다. 


 사실 굴드의 연주 특성상, 그의 스타일은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상성이 잘 맞지 않았다. 굴드의 관심은 바흐와 기번스 같이 잔향이 적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고음악 레퍼토리에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스타인웨이의 피아노는 피아노와 피아니스트가 상호 기술적 발전을 이룩해가던 낭만주의 비르투오조 레퍼토리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스타인웨이의 음색은 풍부하고, 잔향이 널리 퍼지며, 음의 지속 시간이 길었다. 한마디로 으르렁거리는 저음과 보석처럼 찬란한 고음의 향연으로 콘서트 장 구석구석을 훑어내리는 종류의 악기였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스타인웨이에 소속되면서 이러한 특징들이 다소 변화하게 되는데, 그것은 호로비츠의 스타일이 풍부하면서도 강렬한 낭만주의적 특성 외에도, 정교하고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바로크와 고전주의에도 정통했기 때문이다. 호로비츠는 피아노 역사를 통틀어 가장 넓은 스타일의 스펙트럼과 레퍼토리를 가진 연주자였다. 호로비츠는 스타인웨이에 현재의 장점들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더 섬세한 타건에 반응할 수 있는 예민한 악기를 요구했고, 스타인웨이의 일부 제품들은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을 내놓았다. 굴드가 예외적으로 만족했던 CD174와 CD318은 이러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악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굴드는 호로비츠를 혐오했다. 이유는 호로비츠가 선택하는 프로그램이 비 음악적이고 연주에서 속임수를 쓴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굴드와 호로비츠의 연주 스타일과 완성도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아마도 굴드의 이러한 시샘은 영역수호를 위한 무의식적 공격성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이 비슷한 일이 굴드와 로잘린 투렉 간에도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굴드가 유명해지기 전 투렉에게서 영향을 받고 그를 높이 평가한 반면, 굴드가 등장해서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로, 더 업그레이드된 테크닉을 선보이자 투렉은 굴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투렉은 굴드가 죽은 이후, 굴드에 손색이 없는 골드베르크를 다시 녹음하고서야 이 질투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굴드는 CD174를 사용해 그 유명한 "골드베르크" 55년 녹음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피아노와의 인연은 짧았는데 클리브랜드 공연을 마치고 피아노가 뉴욕의 스타인웨이 창고로 돌아오던 중, 트레일러에서 떨어져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굴드는 엄청나게 낙담했고 다시 자신에게 맞는 파아노를 구하기 위해 수시로 뉴욕의 스타인웨이 사를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수고로움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살던 캐나다 토론토의 이튼 백화점의 콘서트 홀에 비치된 오래된 CD318를 발견하게 되는데, 당시 이 피아노는 노후화로 두 달 뒤 교체가 예정되어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단점들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피아노는 굴드에게 딱 맞는 피아노였다. 잔향이 적고 소리도 야위었지만 청량한 톤을 가졌고, 응답은 이전에 경험한 어떤 피아노보다도 즉각적이었다. 너무 응답이 빠른 나머지, 치기도 전에 해머가 멋대로 현을 때리기도 했는데, 굴드는 이것을 그 피아노의 딸국질이라고 불렀다.


 굴드는 이 피아노를 만난 후, 12~3년 동안 자신의 디스코그라피 황금기를 맞이한다. 자신의 주 레퍼토리였던 바흐와 슈트라우스를 녹음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브람스의 간주곡들을 녹음했으며, 자신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시벨리우스의 피아노 소나타를 녹음했다. 이 녹음들은 굴드다웠든 아니면 의외의 모습이었든간에, 지금까지도 굴드의 팬들에게 가장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작업들이다. 

 

 

 굴드는 음악에 대해서 모순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왔다. 낭만주의 비르투오조 연주를 혐오하면서도, 사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레퍼토리들에는 바그너와 브루크너, 슈트라우스가 섞여있었고, 대중음악을 경시했음에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를 듣기 좋아했으며, 자신의 직업적 연주가 끝나고 쉬는 동안에는 재즈 곡들과 팝곡들을 연주하고 놀았다.


 이런 모습은 재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가끔 찰리 파커를 듣긴 하지만 이런 음악들을 바흐를 듣고 연주하는 것에 비교할 수는 없으며, 여흥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하게 음악의 질적 차이를 주장했다. 그러나 반면 그는 빌 에반스를 남몰래 숭배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굴드는 자신이 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몇시간씩 통화를 이어가 상대를 짜증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빌 에반스도 굴드로부터 이런 전화를 종종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굴드가 공식적으로 천명한 음악적 취향으로 따지자면, 빌 에반스는 굴드의 취향과 그다지 맞지 않는 연주자였을 것이다. 물론 그 둘은 현대음악에 대한 취향을 공유하지만 다리우스 마요나 프랑스 인상주의를 선호한 에반스와 달리, 굴드는 전형적인 제2 빈악파의 숭배자였다. 게다가 에반스의 연주 스타일은 낭만주의적 감수성이 깊게 베어있어서, 그의 연주에는 따뜻함과, 풍부함, 부드러움과 센티멘털한 씁쓸함이 수시로 드러났다.(나는 에반스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늘 최상급 재료-유기농 우유와, 스페셜티 원두-로 만든 카페라떼가 연상된다.) 하지만 굴드는 에반스와 대화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아마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꽤 자주 에반스의 음반을 들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그다지 놀랄 것도 없지만, 정말 충격적인 일은 에반스가 그의 솔로 앨범을  녹음할 계획을 세웠을 때 벌어진다. 굴드가 자신의 피아노를 녹음에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굴드는 이 피아노를 자신의 분신처럼 아껴서 빌려주는 건 고사하고 누가 만지는 것도 싫어했다. 조율사가 조율을 마치고 피아노를쓰다듬자 굴드는 반 농담삼아 이렇게 말했다. "그냥 보기만 해요. 만지지는 말고." 굴드는 자신이 높게 평가하는 피아니스트에게 종종 이런 식으로 호의를 표시하곤 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아마도 리히터에게 자신이 그의 음반을 프로듀싱 해주겠다고 제안했던 일일 것이다. 물론 리히터는 그러한 제안에 대해 굴드가 "러시아에서 콘서트를 연다면(굴드는 그때 이미 전문 콘서트 연주자로서의 활동에서 은퇴한 뒤였다.) " 수락하겠다고 함으로서 사실상 거절하게 된다. 그러나 에반스는 거절하지 않았다. 에반스가 굴드에게 CD318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든 몰랐든 간에, 에반스는 그걸로 자신의 피아노 독주 앨범을 녹음하기로 한다. 에반스는 61년에 베이스 주자 스콧 나바로를 잃었고(사망), 62년 언더커런트를 녹음했으며, 솔로 앨범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빌 에반스가 굴드의 피아노를 받자마자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 피아노에는 그가 전에 추구했던 스타일과는 너무 상이한 특성과 미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반스에게는 이 상황이 하나의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에반스는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결과물을 내놓게 된다. 


 첫째, 이 앨범에서 에반스는 몽크가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를 많이 연주했다. 「Round Midnight」이나, 「Blue Monk」, 「Bemsha Swing」은 몽크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곡들이다. 당연히 몽크가 즐겨 사용하던 코드들을 차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난해하고 심오한 몽크적 접근은 에반스로 하여금 솔로 연주의 의미에 더욱 천착케 했을 것이다. 이  앨범을 전체적으로 듣고 있노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서는 '홀로됨'이다. 몽크는 예측불허의 리듬감과 화성진행으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떨쳤다. 그 흉내 낼 수 없는 창의성은 솔로 연주에 더없이 적합했으나, 콤보 연주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일스와 몽크의 연주 견해 차에 의한 불화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남아있다. 이 '어울리지 못하는 화성' 같은 형용모순 만큼이나 몽크적인 연주에는 '홀로 됨의 필연성이 있다.

 

 

 

 

에반스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작품들이 일류 바리스타가 만든 카페라떼라면, 몽크의 음악은 강한 개성을 가진 원두로 뽑아낸 스페셜티 드립 커피다. 그의 불협화음은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부드럽게 감싸는 우유거품 속에서는 그 야성적인 풍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CD318의 청교도적 음색은 이런 요구에 정확하게 부응했다. 


 아니다. 어쩌면 에반스는 이 피아노를 쳐보고 당혹감을 느낀 다음, 몽크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에반스는 굴드의 피아노가 요구하는 연주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굴드는 낭만적 감수성을 속으로 숨기고, 자신의 그 숨겨진 부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해오던 에반스에게, 자신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꼬마가 심술궂은 장난을 일부러 치듯이 문제를 던졌다. 그리고 에반스는 역시 솔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몽크와 함께-옆에 없는 몽크와 함께-굴드와 자신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굴드처럼, 피아노 건반에 얼굴이 닿을 듯 붙이고서. 마치 언제나 홀로 지내면서 가끔 마주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밀림 속의 오랑우탄들처럼. 


그 앨범의 이름은 『Conversation with My Self』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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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1-05-15 20:17:11

 명필은 붓을 가린다...

WR
2021-05-15 23:34:44

붓의 털 한올이라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글씨를 안썼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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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5 20:22:17

좋아하는 음악가인 굴드랑 빌 에반스 사이에 접점이 있었다는 걸 글을 읽고 첨 알게 되었네요 ^^

추천꾸욱 & 스크랩합니다. 

WR
2021-05-15 23:37:12

감사합니다. 피아노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굴드는 공기의 속성을, 에반스는 물의 속성을 가진 피아니스트로 묘사됩니다. 공기는 뜨겁고 습하며, 물은 차갑고 습하죠. 둘다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은 피아니스트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1
2021-05-15 21:34:50

재미있군요. 괴팍한 천재와 또다른 천재들이 부딪히고 그러면서도 츤데레같은 면도 드러나고...

WR
2021-05-15 23:38:03

정서적으로 거부당할  불안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타인에게 느끼는 전형적 반응이죠.

1
2021-05-15 22:13:04

이런 전문적인 정성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네요

 

WR
2021-05-15 23:38:36

전문적인 글은 아니지만 읽고 즐거우셨다면 감사합니다. 

1
2021-05-17 21:28:16

이게 전문글이 아니면 뭐가 전문글일까요^^

앞으로도 이런글 올려주시면 감사히 보겠습니다.

1
2021-05-15 22:13:09

 와~ 글이 너무 좋습니다!

WR
2021-05-15 23:39:14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혼자 취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글이 길어져 버렸습니다. 올린 보람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2021-05-15 22:22:07 (180.*.*.31)

햐 음악계통에 종사하시나요?
내공이 어마어마하시네요

WR
Updated at 2021-05-16 00:08:10

아닙니다. 음악을 좋아해서 이것 저것 듣기는 하지만 잘 모릅니다. 내공이랄 것도 없고 다만 국내 번역된 굴드와 에반스에 관련된 책들을 전부 읽었는데, 거기서 기억나는 부분들을 참고했습니다.

1
2021-05-15 22:25:21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021-05-15 23:41:12

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Updated at 2021-05-15 23:29:45

굴드는 응답이 빠른 피아노를 좋아한걸로 아는데 그게 스타인웨이 cd318이었군요(빠른 반응을 위해 페달도 손을 봤다는).. 굴드의 피아노 연주는 바흐와 모차르트에서 가장 빛이 나죠.  빌 에반스 연주도 전형적인 굴드 피아노 느낌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바흐 파르티타 첨부해 봅니다. 

WR
1
Updated at 2021-05-16 00:07:42

CD318 외에도 개인적 소장품이어었던 치커링과 318전에 사용하던 CD174도 모두 응답이 빠른 피아노였습니다. 저도 올려 주신 파르티타가 굴드의 필모 중 도드라진 결절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녹음을 할 때는 CD174가 망가지고 CD318은 발견하기 전이라 두 피아노 중 어떤 것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저 녹음은 굴드가 잠깐 사용하고 흥미를 잃었던 CD205를 통해서 이루어졌을 거라 추측합니다. 또한 액션의 응답이 빠르지 않아도 균질하면 굴드는 그런대로 만족했습니다. 말년 80년대 골드베르크를 녹음하던 야마하가 그랬죠. 그러나 뛰어난 명인이 조율을 하지 못하면 금방 흥미를 잃었습니다. 

 

또 굴드는 바흐와 달리 모차르트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진 않았습니다. 특히 모차르트 작곡의 절정인 피아노 협주곡을 그렇게 싫어했죠. 모차르트는 굴드가 싫어하면서도 막상 연주하면 좋은 녹음을 꽤 남긴 것도 재미있는 점인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비판도 받고 초기작품에 한정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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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00:10:50

그렇군요.  굴드의 모차르트는 협주곡 보다 발랄한(?) 소나타 곡들이 좋은것 같습니다.(소니 클래식에서 나온 피아노 소나타 모음 좋더군요). 그래도 굴드의 전문은 역시 바흐라고 생각합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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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00:14:48

굴드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모차르트의 초기 소나타는 이견의 여지가 없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려주신 16번은 굴드의 친구이자 아마추어 연주자였던 피터 오스왈트에게 재난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굴드는 자신의 연주를 같이 비판하면서 17번도 연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열을 올렸지만 오스왈트는 그건 잘했다고 평가했다더군요.ㅎㅎ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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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00:28:04

오스왈트가 굴드의 연주를 비판 한 이유는 굴드가 모차르트를 마치 바흐처럼 연주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미 모차르트 때부터는 C.P.A 바흐부터 화성보다는 멜로디가 더 중요한 시대로 이행한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굴드는 이 곡을 연주하면서 주요선율을 반주와 동등하게 연주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들어보면 그 와중에서도 기민한, 제가 즐겨 사용하는 비유인데, 마치 F-1 드라이버를 떠올리게 하는 타건 테크닉은 정말 대단하죠.  아마도 아토즈님이 감탄한 부분은 그 점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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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00:39:05

개인적으로 바로크 음악을 좋아해서 모차르트도 바흐처럼 연주하는 굴드가 더 끌리는지 모르겠습니다~굴드의 바흐 해석도 사실 맞는건지도 모르겠고요.. 터키 행진곡은 느릿느릿하게 독특한 해석으로 연주한것 같습니다. 

WR
1
2021-05-16 01:12:28

해석의 정통성은 재쳐두고 바흐 건반 솔로의 최고 스페셜리스트가 굴드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죠. 특히 골드베르크에서는 전범을 새로 만든 연주자니까요. 올려주신 모차르트의 연주에서도 정확한 템포와 특유의 스타카토, 명료한 음색, 정교한 테크닉이 두드러지네요. 저렇게 느린 연주에서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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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00:53:47

주말 등산 나가기 전에 재밌게 읽습니다^^.  전기나 자서전은 아니지만 뉴욕타임즈에 몸담았던 작가답게 굴드의 에피소드를 모아서 멋진 이야기를 써냈군요. 팩션 노블이나 판타지와 크로스되는 역사물을 내치면서도 이런 소소한 내용은 정말 좋아합니다. 케이티 헤프너가 해커(공저), 인터넷 탄생, 굴드 주제로 쓴 책들은 모두 흥미를 끕니다 - 엄마 이야기만 매력이 없고요^^

 

헤프너의 책들(원서, 번역)


 

그나저나 음악 틀어놓고 그 분위기에 단번에 타이핑하신 듯한데 재밌으면서 긴 글이 써내려지는 건 타고나야겠지요?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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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01:06:42

굴드의 피아노에 대해서는 해프너의 책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굴드의 전속 테크니션(조율사)들에 대한 귀중한 정보들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굴드에 관한 책이 6권 정도 되는데 밀도와 재미의 균형 면에서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굴드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굴드의 친구였던 피터 오스왈트의 전기를 참고했는데,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된 것 중에는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합니다. 굴드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각각의 음반이 어떤 상황에서 녹음된 것인지 간략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에반스에 대해서도 피터 페팅거의 전기가 번역되어있고, 아쉽게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솔리스트인 몽크에 대해서는 독립된 전기가 없습니다. 몽크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우습게도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와 자서전에서 얻었습니다. 특히 마일스의 구술 자서전은 정말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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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01:09:22

톰 행크스가 나온 터미널 영화를 최근에 다시 봤습니다. 아버지가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의 싸인을 모두 받았는데 한 사람이 빠져서 아버지 대신 미국에 왔다가 공항에 발이 묶인 이야기였는데 영화 자체 보다 잠깐 스친 싸인들하고 말미에 나온 아주 짧은 연주가 꿀맛이었습니다.
댓글의 많은 데이터는 저녁에 검색해서 댓글 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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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13:43:35

말씀하신 책들 찾아서 일단 리스트에만 올려놨습니다.

 

글렌 굴드 Glenn Gould 피아니즘의 황홀경 - 피터 오스왈트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 Peter Pettinger

 

그런데 2009년도에 나온 몽크에 대한 책은 바로 구해졌어요. 평점도 높고 무려 600페이지가 넘어갑니다. 만일 번역된다면 1000페이지는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Thelonious Monk: The Life and Times of an American Original -  Robin D.G. Kelley

 

1997년에 나온 첫 전기라고 합니다.

Straight, No Chaser: The Life and Genius of Thelonious Monk - Leslie Gourse


 

검색의 그물에 얻어걸린 책이지만  이 책에는 굴드를 다룬 비평이 4-5개나 들어있습니다. 흥미있어 보여서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경계의 음악 에드워드 사이드 음악비평집

 

마지막으로 오늘 다녀온 곳입니다.  힘든 만큼 보람은 있는데 너무 피곤하네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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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7 01:47:38

와 마지막 사진은 그림인 줄 알았어요. 몽크의 새 평전은 정말 보고 싶네요. 하지만 번역이 될 가능성은 요원해보이니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영어판을 구해봐야겠죠. 사이드의 경계의 음악은 저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책입니다. 지금은 제가 저 책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할 깜냥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사이드가 선호하는 피아니스트가 굴드, 브렌델, 폴리니, 바렌보임 같은 피아니스트인데 대략 취향이 짐작이 갑니다. 절반은 소박하고, 절반은 화려한 음색의 연주자들이지만 넷 다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징이 굉장히 명료한 피아니스트 들이거든요. 곡의 뉘앙스와 구조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연주자들이죠. 이 밖에도 브뤼노 몽생종과 미셸 슈나이더, 샹드린 르벨 등 프랑스 저자들의 책이 한국에서는 번역되어있습니다. 특히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피아노 솔로"의인기는 어마어마하죠. 저는 이 책에 아주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꼭 읽어봐야 하는 책임에는 틀림 없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들을 다시 읽어볼 기회가 생기면 한 번 주욱 소개와 단평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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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01:57:36

멋진 글이면서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포스팅이네요.

저도 굴드형님 연주 가끔 듣는데 처음에 이분 CD 사서 접할 때

연주사이에 기대치 않은 음성이 들려 놀랬었지요.

독특한 영화로 글렌 구드에 관한  32편의 짧은 이야기도 기억이 나네요.

굴드의 다양한 자아들일지 기행이 맘 속에 울림을 주더군요.

그리고 본문에서 조명을 받은 분들이 어딘가에 모여 서로의 연주를 향유하는 어떤 장소가

있었으면 합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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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02:07:46

그 영화가 93년 작이니 굴드가 세상을 뜬지 11년만에 만들어진 영화죠. 새삼 굴드의 죽음이 그렇게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나 하고 놀라게 됩니다. 그때도 이미 굴드는 신화였죠. 사실 오늘도 유툽에서 언급하신 그 영화를 몇 장면 다시 봤습니다. 그러다 에반스를 듣고 싶어졌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거죠. 

 

말씀하신 그 장소는 우리의 상상과 기억 속에 소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 공간 속에서는 서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괴팍한 굴드와, 적어도 굴드만큼 괴팍했던 몽크가 열띤 토론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연주를 주고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굴드는 아마도 흥 재즈 따위~ 하면서 무시하는 척 하겠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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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0:09:27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굴드 숭배자로서 이런 에피소드와 천착하는 글이 너무 좋네요. 

WR
2021-05-16 11:46:2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셔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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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1:08:36

일요일 아침에 많은 영감을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WR
2021-05-16 11:47:02

읽고 즐거우셨다면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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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19:52:11

음악 전공자가 아니시라면서 사용하신 음악용어와 음악에 대한 이해도는 왠만한 뮤지션들이나 음악평론가들 이상이신데요? 꽤 긴 글인데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정도로 문장력도 훌륭하십니다.

보통의 평론가나 칼럼니스트의 글들은 현학적이지만 음악의 기술적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음악전공자, 전문 음악인들의 경우 그 반대로 문장력, 전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월간 객석의 고정 칼럼니스트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최소 과거 음악 관련 일을 하셨는데 지금은 취미로만 즐기고 계신 분이 아닌가..

조심스럽지만 예측해봅니다.

더군다나 국내에 재즈와 클래식 두 장르에 모두 정통하신 분들이 귀한데 

편견없이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시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극과 극은 통하는 것처럼 보통 자신에게 부족한 면이 강점인 사람에게 끌이기 마련이죠

에반스와 굴드는 재즈와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상이성은 차치하고라도

낭만주의 혹은 인상주의와 바로크, 잔향과 서스테인을 많이 활용하는 에반스와 릴리즈를 극단적으로

짧게 쓰는 굴드, 무엇보다도 톤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데

까칠하고 거만한 굴드가 에반스를 높게 평가한 것은 아마도 자신에게 없는 부분에 대한

리스펙이 아니였을까 싶네요? 오늘 처음 안 사실이지만

그래도 블루지한 면이 강한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들보다

덜 즉흥적이고 계획적인 에반스가 굴드에겐 맞았을지 모르겠네요

 

스타인웨이의 일련번호에 대한 스토리, 빌 에반스의 Alone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conversation with myself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던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WR
Updated at 2021-05-16 22:36:34

너무 과찬이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음악을 배우거나 관련 일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제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기 위한 것으로, 이런 글이 남에게 읽힐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습니다. PCHwy님을 기억하는게 언젠가 브레디 멜다우의 음악을 소개해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때 설명에 많은 것을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음악적 식견에 관해서라면 PCHwy님이 저보다 훨씬 더 풍부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분이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니 앞으로 글을 쓰고 보이는데 부담이 조금 줄었습니다. 

 

제가 굴드와 에반스에 대한 스토리를 알게 된 것은 16년도 해프너의 책을 통해서입니다. 저는 이전부터 

conversation with myself가 에반스의 디스코그라피 중 매우 이질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었습니다. 에반스적인 특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터치나 화성이 다른 독주 앨범들에 비해서 거칠고 난해하다(연주가 조악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이 사연을 알고 나서 그 이유를 조금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염두해보고 들으니 과연 피아노의 음색도 다른 에반스의 음반과는 다른 점들이 느껴지더군요. 

 

말씀하신대로 굴드와 에반스에게는 극과 극이라고 할만한 차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굴드가 낭만주의에 대해 가졌던 양가감정을 보면 사실은 교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굴드의 엄격한 음악관이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눌렀을 것이고 에반스에게서 어떤 해방감을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두 피아니스트는 Solo의 의미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에반스는 심지어 트리오를 할 때의 인터플레이도 철저하게 각파트의 독립적인 솔로연주를 지향했지요. 그 점을 간파한 굴드가 에반스에게 신호를 보냈고, 에반스는 그러한 굴드의 신호에 가장 창의적인 대답을 준비했을 것이라 상상해봤습니다. "피아노 솔로" 라는 측면에서 몽크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재즈피아니스트는 아마 에반스 그 자신밖에 없었겠죠. 이 음반은 바로 이렇게 철저히 혼자였던 3명의 피아니스트들의 흔적이 에반스의 손 끝으로 아로세겨진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이 음반의 제목이 "conversation with myself"인 것은 바로 그 세 명의 초상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만큼 닮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글을 썼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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