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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석불역에서 구둔역까지, 그리고 지평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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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21:54:04

어버이날인 지난 토요일

중앙선 석불역에서 구둔역까지 찻길을 걸었습니다.

 

요사이 걷기 붐을 타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중 경기도에서 조성한 여러 '경기옛길'중 평해길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았습니다.

평해길은 한양에서 강원도 강릉을 지나 평해까지 이르는 옛 관동대로의 경기도 구간을

구리부터 양수 양평 용문을 지나 강원도 경계까지

10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도보로 걸을 수 있도록 개통한 길입니다.

오래전 이 길로 단종이 유배길을 떠났고,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을 데리고 한양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길이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인과 함께 조금만 걸어보자며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석불역에서 내렸습니다.  

무인역이지만 블록장난감으로 조립한 것 같은 모양때문에 꽤 유명세를 타는 역입니다.

시골 마을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역이지만

처음 만들때 이렇게 지을 생각을 했을까 보면 볼수록 궁금해지는 역입니다.

  

 

여기서 구둔역으로 가는 길이 고래산 임도로 산을 넘어 가기에 고래산길로 부릅니다.

 

정겨움이 느껴지는 경기옛길 스템프함

 

큰길에서 처음으로 갈라지는 길

느낌으로 고래산 들어가는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돌아봐도

안내표식도 없고 그 흔한 리본도 붙어있지 않아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 고래산 들어가는 길을 못찾아 그냥 찻길로 넘어갔습니다. 

 

고래산 임도로 걸으면 10Km가 넘어 서너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찻길로 오니 석불역에서 보통 걸음으로 한시간 정도 걸리네요.

가끔 길옆에 물을 채워 놓은 논이 있으면 논둑길을 따라 조금 돌아 나왔습니다.

찻길이라 바닥은 딱딱했지만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 덕분에 그리 덥지 않게 걸었습니다.

다니는 차들도 그리 없었고 이따금 지나가는 차들도 경적없이

걷는 사람들을 위해(?) 살짝 피해가는 친절함 덕분에 편하게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갈림길에서 슬레이트 모양의 구둔역 안내판이 맞아줍니다.

 

찾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던 안내판

 

 

2012년 개봉된 건축학개론으로 유명해진 구둔역(九屯驛) 

구둔역은 194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중앙선의 간이역이지만

청량리-원주간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기존 노선이 변경되어 2012년 8월 16일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 구둔역을 기차로 찾아 가자면 일신역에서 내려 10여분 걸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중앙선 무궁화호 열차중 일부 시간에 출발하는 열차만 정차합니다.)

 

예전 무궁화호 카페칸에서 찍은 한 컷

카페칸이 없어진 이제는 느낄 수 없는 향수로 남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2012년 봄 개봉된 영화 "건축학개론"의 메인 카피는

간결하지만, 일상적으로 말하는 첫사랑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 카피입니다.

포스터를 보고 있으면 잠시 시간을 거슬려 가슴이 뛰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역 외벽에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포스터가 서있습니다.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날이 풀리면 작은 카페가 문을 열었는데(오른쪽 문) 찾는 사람들이 없는 탓인지

문이 닫혀 있어 아쉬웠습니다. 

 

 

구둔역은 김연아가 나온 광고 촬영지로도 이름세를 많이 탔습니다.

 

 

대합실에 남아있는 그 시절 열차시간표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구둔역은 1년에 한번 정도는 그냥 찾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생각나면 청량리역에서 기차에 오릅니다.

몇해전 겨울 끝무렵 눈소식에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챙겨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폐역이지만 너무 황량하지도 않고

온전하게 남이있는 철길등 아스라한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허전함이 전부가 아닌 따뜻함이 남아있는 슬쓸함이 참 좋은 곳입니다.

  

 

구둔역앞 스템프함

 

물을 가득 채운 논에는 모내기 준비가 한창입니다.

  

  

 

구둔역을 나와 큰길에서 석불역으로 가는 고래산 임도 입구를 찾았지만

오늘 여정은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지평 근처에 왔으니 막걸리나 마시자며 택시를 불렀습니다.

택시 기사님이 지평이라고 특별한 데가 없다고 해서 용문역으로 바로 갔습니다.

(양조장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고 합니다.)

 

기름에 살짝 구운 두부와 녹두전에 지평막걸리 한잔 합니다.

  

냉장고에 지평막걸리가 두종이 있길래 꺼내봤습니다.

처음 접하는 일구이오는 약간 도수가 높게 나왔는데 맛이 괜찮았습니다.

 

처음 목표한 고래산 길은 걷지 못했지만

지인은 구둔역에서 생각나지 않는 첫사랑을 기억하느라 힘들었다고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래서 막걸리가 더 맛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이 되면 구둔역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앞마당을 온통 노랗게 물들인디고 하니

오는 가을 이번에 못한 길도 걸을 겸 다시 찾아 볼 생각입니다. 

 

스템프함에 비치되어 있는 경기옛길 가이드북 & 패스포트

 

평해길 지도

  

평해길 스템프

  

예전 구둔역 갔다와서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제주도 카페 서연의 집에서 (2013. 7)

 

 

 

 

님의 서명
가슴이 떨릴때 떠나라 곧 다리가 떨릴 날이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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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5-16 10:38:44

건축학개론이 인생영화 중 하나인데
구둔역.. 시간내서 꼭 가보고 싶네요.^^

WR
2021-05-16 21:09:27

건축학개론이 인생영화중 하나이면

한번쯤 찾아가볼만 합니다.

청량리역에서 그리 1시간 거리라 멀지도 않습니다.

가을 풍경이 제일 아름답다고 합니다.

2021-05-16 10:45:56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듯한 아련함이 느껴지는 사진과 글입니다...

WR
2021-05-16 21:15:31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는 영화의 내용에 더해

폐역이 주는 아련함이 어울려 진한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5-16 10:51:03

역시 디피다운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한번 가봐야 겠네요.

WR
2021-05-16 21:16:23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 나들이를 추천합니다.

Updated at 2021-05-16 11:29:57

걸어가는 길이 따로 생겼군요.재작년에 자전거 타고 가 봤는데 한가하고 평화롭더군요.

WR
2021-05-16 21:19:09

소식을 접하고 갔는데 길을 못찾아 아쉽기는 하지만

즐거운 하루 보냈습니다.

먼발치 뒤에서 찍은 사진이 더할나위 없이 여유롭게 보입니다.

2021-05-16 11:41:59

등산보다 적당한 높낮이 있는 길 걷는 걸 좋아해서 트랭글 앱 따라 서울둘레길이나 구리둘레길 등 걷고 있습니다. 이곳은 트랭글 코스북 등록은 안되어있군요. 개인분들이 다녀오시고 올리신 것들은 보이구요. 가까운곳만 다니다보니 기약은 없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걸어보고 싶네요.

WR
2021-05-16 21:33:24

저도 요새 서울둘레길을 작년에 이어 다시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북한산길을 따라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 다른 길도 조금씩 기웃거리며 찾아갑니다.

구리둘레길 찾아봐야겠네요.

 

2021-05-16 12:12:05

녹두전!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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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21:35:23

막걸리에 녹두전은 필수죠.

구운 두부도 못지 않게 좋았습니다.

2021-05-16 13:47:04

석불역은 코레일에선 역을 안만들려고 했는데
지자체에서 부담해 만든 역이라 디자인이 다르죠. 근처에 구 중앙선 폐역도 아직 남아있더군요.

WR
2021-05-16 21:41:05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지자체도 탁월한 발상으로 역을 만든 것 같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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