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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퇴계이황도 위선자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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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13:57:56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 사대부들은 이재(利財)를 쌓는 것을 죄악시했습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구분에서도 상인을 가장 아래에 놓았던 이유입니다. 부를 쌓고 이재를 중요시하면 인간의 본성을 잃고 도리를 어지럽힌다며 상공업의 발달을 억눌렀습니다.

이황도 『성학십도』를 통해 세속의 이익에 대해 경계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부동심(不動心)에 이르러야 부귀(富貴)가 마음을 음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貧賤)이 마음을 바꾸게 하지 못하여 도가 밝아지고 덕이 세워진다." ----중략---


이황이 남긴 땅은 약 36만 3542평 정도 입니다.이황은 대략 250~300명 안팎의 노비를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생계 걱정 없이 학문에만 전념했던 지방 지주들의 재산이 평균 전답 300~500두락, 노비 100여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답 3000두락에 노비 250여명 가까이 거느린 이황은 꽤 잘 사는 축에 속했던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황은 재산 증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각종 서찰을 보면 그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노비 규모를 늘리는 데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노비는 토지보다 더 가치 있는 재산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죠. 개간을 통해 전답으로 바꿀 수 있는 황무지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비를 많이 갖고 있다면 토지는 늘리기가 수월했던 거죠.

이황이 아들에게 남긴 서찰을 보면 그가 자신의 노비들을 양인(良人)과 결혼시키려고 무척 애썼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범금(范金)과 범운(范雲) 등을 불러다가 믿을만한 양인 중에 부모가 있어 생업을 의탁할 수 있는 자를 골라 시집을 보내고, 죽동에 와서 살게 한다면 더욱 좋겠다.“ (『도산전서(陶山全書)』 中)

이황이 노비들을 양인(百姓)들과 적극적으로 맺어주려고 했던 까닭은 당시 노비와 양인 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모두 노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일천즉천’(一賤卽賤〮부모 중 한 명만 천인이면 자식도 천인)이라고 합니다. 노비끼리 결혼시키는 것보다 이처럼 양천교혼(良賤交婚)을 시키면 노비를 손쉽게 늘릴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 중기의 사대부들은 노비들이 양인과 결혼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황은 노비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구입하기도 했는데, 간혹 강제력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연동(連同)에게 절대 방매(放賣)하지 말라고 지시해 놓았으니 너도 이에 따라 가르쳐주는 것이 좋겠다. 부득이 방매한다면 내년에 가서 네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할 만한 형편이 아니니 어쩌겠느냐.”
연동은 이황이 소유한 영천 토지에 거주하던 노비였는데 이황은 그가 토지를 팔려고 하자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은 다음 꼭 팔아야 한다면 이황 집안에게 팔도록 강권했던 것이죠.

또한 이들은 재산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많은 애를 썼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가문끼리 혼인 관계를 맺은 것도 부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이황만 하더라도 2차례 결혼 과정에서 전처와 후처가 처가에서 가져온 영천(382두락), 풍산(148두락), 의령(687.5두락)의 토지 덕분에 가산을 크게 늘릴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첨언하면 이황은 생전에 자신이 늘 넉넉치 않다고 여겼으며, 가뭄이나 흉년이 들 때면 경제적 곤궁함을 토로한 적도 많았습니다. 중상층 이상의 재산을 소유했던 그의 이런 '결핍' 의식은 재산 증식의 당위성과 원동력을 제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커뮤니티에서 어떤 유저가 노비장사하던 위선자라고 욕하길래 진짜인가해서 검색해보니 사실이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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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5-16 13:58:28

걸려서 세종한테 죽을 때 까지 일하지 않았나요???

2021-05-16 13:59:29

그건 황희...

2021-05-16 14:00:17

아.. 캄사ㅠ

WR
2021-05-16 13:59:51

그건 황희인듯..이황은 시대가 100년쯤 뒤죠.

2021-05-16 14:02:21

황희랑 헷갈리신 듯 합니다..

2021-05-16 13:59:45

자유경제주의시대에는 돈이 최고입니다. 돈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철학적 논쟁이 시작됩니다. 끝이 없는 얘기죠.

WR
5
2021-05-16 14:02:27

그런데 이황이 살던 시대는 성리학 그중에서도 가장 교조적인 사림파가 득세하던 시기였죠.이황은 그중에서도 현실정치보다는 재야에서 훈도들을 육성하던 이데올로그였구요.

2021-05-16 14:05:26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당시 조선은 돈(화폐)가 아직 제대로 사용되기 전이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회이기에 재산으로 축척이 가능한 땅과 노비에 주력한 사회이죠. 돈(화폐)사용 어느정도 활성화되면서 노비가 해방되죠(평생 노비를 데리고 사는 것보다 돈으로 사람을 사 쓰는게 훨씬 간편하고 좋습니다)

돈이 없는 사회에서 "돈이 최고다"라는 말이 좀 이상해서 좀 더해봤습니다.

2021-05-16 14:07:06

아. 저는 지금 시대를 얘기했습니다. 본문글에 대한 평을 할 수준이 안되어서요.

2021-05-16 14:16:38

돈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하는것에는 적극 동의하는데 돈이 최고다는 좀 글쎄 싶습니다. 역으로 기본수득없이 교양이 불가하므로 역설적인 재산 축척을 막기위해 대대적인 기본소득정책을 펴야한다고 말할수도 있거든요.

돈 빼고 어떤 이야기도 불가능합니다. 소위 기본요소죠. 하지만 돈이 최고다라는 것과는 그럭게까지 연계가..

2021-05-16 14:05:30

맹박이하고
같은 유전자연나 보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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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4:07:04

시대적 한계라는게 있죠.
그렇게 따지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도
노예제를 옹호한 위선자가 됩니다.

지금 기준으로 과거의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1
2021-05-16 15:25:58

성리학 시대에도 이랬는데..

자본주의시대에 다주택자 자본가 적대시하는게 말이 되느냐...가 숨은뜻 아닐까요

2021-05-16 14:09:37

이황이 어느 시절까진 정말 가난해서
사돈댁에 방문해서도 엄청 대놓고 천대 받았다 그러죠.
그래도 며느리 잘 챙겨줘서 며느리들이 시아버지 참 좋아라했다 그러던...

사돈댁 천대받고 그게 서러워 악착같이 재산을 벌은것인지...
아니면 저정도 규모의 재산 규모로는
당시 떵떵거리는 사대부들중에선 검소한것에 들어갔다는건지

저게 적은 규모의 재산이라기보다는
재산을 열심히 모아서 죽을땐 부자로 죽었다 쪽이 맞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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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6 15:18:52

조선은 이데올로기적 괴리가 심했던 사회입니다. 백성들 수취를 적게 해야한다는 목표로 전세계에서 거의 가장 낮은 세율을 적용한 국가이죠. 그런데 그 결과 백성들이 살기 좋아졌냐하면 그게 아닙니다. 조세가 적으니 행정기관에 운영비로 줄 돈이 부족하고 행정기관은 조세와는 별개로 돈을 뜯어낼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거든요.

지배층 사대부의 부축척문제도 비슷한게.. 일본같이 공고한 신분제사회에선 지방영주들의 자기 수입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일본같은 세습귀족이 없죠. 과거를 봐야 등용가능하고 이 과거를 볼만한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사대부일 뿐입니다. 이 사대부들은 제도적으로 정해진 수입이 없다보니 (공직에 나가지 않으면)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가 땅과 노비를 사적으로 모으는 형태로 부를 축척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이 괴리된거죠.

2021-05-16 14:40:36

일본은 귀족들의 수입이 보장되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어차피 지방영주는 그지방에 한명일텐데, 그 직위를 세습받지 못한 자식도 보장이 되나요?
그럼 귀족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필요한 수입도 계속 증가하지 않을까요?
아.. 봉건제에서 내전이 끊임없이 있어서 귀족 인구가 어느정도 조절이 되었을까요?

Updated at 2021-05-16 14:56:01

그 부분은 정확히는 모르는데.. "멜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수 없는 신세계"라고 인구론으로 본 경제사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일본의 예가 잠깐 나오는데, 영주로 대표되는 귀족자리는 맞아들에게만 승계되었고 그 아래 자식들은 사실상 방치되어(도시로 내몰려) 시스템이 유지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더라구요.

2021-05-16 15:15:57

일본도 적서차별이 심해서(이념적인 이유로든 경제적인 이유로든) 영국처럼 장남한테 상속 몰빵하는 바람에 차남 이하들은 알아서 살아야했죠.
다른 귀족집 양자로 들어가서 가문을 잇든가 처갓집 성으로 개명하고 처가의 대를 잇든가.

2021-05-17 07:16:36

육방이 무급이었단 말이 생각나네요. 하급관리 임금을 안주고 알아서 삥 뜯어 먹고살라는 암시. 이래저래 조선은 빨리 망했었어야...

2021-05-17 08:06:22

낮은 세율이라는게 결코 좋은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는게 더 생산적이겠죠. 공무원들에게 제대로된 월급을 줘야(도덕성만 강조하지 말고) 부정부패도 없어지는 법.

5
2021-05-16 14:13:08

원래 돈을 탐하지 않고 청빈하게 사는게 보수파의 가치였죠. 그걸 친일파가 진보에게 덧씌우면서 180도 바뀜.

1
2021-05-16 14:13:52

그 시절 잣대로 평가해야죠.
나름 선각자였던건 맞습니다.

2021-05-16 14:19:24

무협지도 아니고 공자맹자 성리학이 돈 되는것도 아니고 뭐 계급제 아니면 저렇게 학문이 발전할수 있나 싶습니다. 

당연히 그 당시에 지배계층인데 돈이 없을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계급제에서 부의 불균형은 그냥 넘어가는거죠. 뭐 

WR
2021-05-16 14:22:54

원래 돈많은 집안이었다 or 나라에서 녹읍을 많이 하사받아 부자가 되었다 이거라면 모르겠는데 본인이 매우 적극적으로 재테크를 해서 재산을 불린 정황이 있어서 말이죠. 그것도 노비장사를 한다던가 노비에게 재산을 강매하게 해서 불린다던가등 오늘날 윤리적관점에서는 매우 지탄받을만한 일들을 해서 말이죠.(돈많은 후처들를 들인건 그냥 그러려니합니다;)

3
Updated at 2021-05-16 14:34:00

양아치 새끼 이군요.. 일부러 양인과 결혼시켰다는데서 혀를 내두릅니다

WR
2021-05-16 14:49:01

지폐에서 빼버리고 싶네요.

11
2021-05-16 14:57:15

링크된 중앙일보 사설을 읽어보니... 이황은 밑밥이고, 결론은 마지막 문단에 있군요. 

2018년도 당시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돌려까기...-_-;; 좀 씁쓸합니다. 

5
2021-05-16 15:01:46

노비를 무슨 드라마 속의 "마님"하는 존재로만 알면 안됩니다..

 

노비의 재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보면 솔거노비가 아니라 외거 노비라는 것이고 이는 역은 제공하나 독립적인 경제권도 가지고 있는 농노와 유사한 개념이지요..

 

또한 노비는 경제력 이전에 가문과 가문간의 결합에 있어(결혼이지요) 가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 였어요..

 

그 당시 인구 1/3이상이 노비라고 보는데 그런 시대적 상황을 무시하고 지금 기준으로 덮어놓고 나쁜놈이라 그러면 그간 세상에 살다 갔던 전대의 사람들은 다 나쁜놈으로 만드는거죠..

 

그렇게 찧고 빻다 보면 자기도 나중에 똑같은 욕을 먹게됩니다.  

 

 

 

1
2021-05-16 15:11:16

본문 글로만 따지면 그냥 이황 본인이 이야기한 부동심에 이르지 못한 것 뿐임.

Updated at 2021-05-16 15:49:22

헐 충격이네요. 

그 시절 노비 재테크의 달인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2021-05-16 16:15:11

역사적 위안들이 성인군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환상에 갖히는거죠.

진짜 성인군자는 없어요.

심지어 예수 부처 공자 맹자라 하더라도 말이죠.

인간입니다.

1
2021-05-17 10:49:45

세상은 님의 생각보다 넓고 다양합니다. 
자기가 보는 차원의 세상이 모두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집에 갇히는거죠. 

물론 자기가 직접 검증해보지 않은 사실이나 위인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자기가 이리저리 요모조모 다 따져보지도 않고...
심지어 안목이나 소견도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좁은 인식의 틀에 이 다양하고도 다차원적인 세상을 우그러뜨려놓으면...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이란게 얼마나 협소하고 왜곡되었을지... 
우물 안의 개구리도 이런 정저지와가 따로 없는 것이지요. 

예수나 부처나 공자는 님이 쉽게 입에 담을만한 정도의 수준의 인물이 아니에요. 
맹자나 이황은 모르겠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연쇄살인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 격차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개인마다 그 차원의 차이가 큰 존재입니다. 

임스님이랑 문재인 대통령이 분명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인간이지만...
개인의 인품과 안목을 두고 봤을 때 같은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쉽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달라이라마나 프란치스코 교황 정도만 되어도...
님이 상상할 수 없는 정신세계와 선한 행위를 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환상이나 편견을 다 떼고 봐도 격 자체가 달라요. 

2021-05-17 13:31:54

제가 성인군자들을 비하하거나 쉽게보기 때문에 이런 댓글을 단건 아닙니다 ^^;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고뇌와 갈등 감정은 다 가지고 있다는거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안한 존재하는거죠.
제가 예를 잘못들었나봐요.

1
2021-05-17 14:11:07

부처와 예수, 공자의 시작이 불안한 인간존재였더라도..

그 분들이 다달은 상태과 과연 고뇌와 갈등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걸까요?

예만이 문제가 아니라 견해 자체가 틀렸다고 전 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조차 내 식견의 틀에 끼워 맞추는거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이 외려 낫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인간이라는 짐승에서..

보다 더 나은 인간으로서 거듭 나야할 존재라고 전 봅니다. 

 

님처럼 보면... 심지어 누가 봐도 다른 경지에 오른 사람조차..

자신의 눈높이로 추락시켜버리면...

그냥 그렇게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님의 견해가 맞을 수도 있고 제 견해가 맞을 수도 있으나...

그 견해에서부터 이미 가능성과 목적지는 결정되는 법입니다.

2021-05-17 16:36:18

해탈의 경지나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도 많이 있겠죠.
근데 본문에서 그동안 존경해왔던 인물에 대해 실망할 필요 없다는 취지로 쓴글입니다.

1
2021-05-17 17:50:59

많이 있을리가요....

 

그리고 그런 의도셨다면 이황만 이야기하면 될 일이지... 예수, 부처, 공맹까지 끌고 들어 성인군자는 없고 인간만 있다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지요. 그리고 그 주장도 기대할 것이 없으니 실망할 것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계속 ~은 아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시는데...

그럼 그게 아닌 말을 쓰면 되었던 것이고,

그렇게 쓴 걸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거듭 말씀드리지만..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하는게 좋습니다.

힘들 수도 있지만 그게 맞아요, 

2021-05-17 18:24:15

네^^ 제 생각의 한계를 많이 느껴요.
워낙에 부족한 인간이라.

Updated at 2021-05-16 16:52:19

퇴계는 리理가 기氣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리론主理論을 열심히 주창했는데.. 이는 리와 기는 같은것의 양면일 뿐이라는 정통성리학에도 위배되죠.  주기론主氣論에 가까운 율곡 이이 및 고봉 기대승과도 관점이 많이 달랐고요.  퇴계는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대부는 리理고 천한 육체적 가치를 지닌 평민,노비는 기氣이니 리가 기를 조종하는게 우주의 법칙이란 의식이 다른 사대부들보다 유난히 강했을수 있습니다.

2021-05-16 17:28:48

그때 당시에도 밤퇴계 낮퇴계란 말이 있었다고 해요.
원래 저 말은 퇴계 선생의 왕성한 정력을 빗대는 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본문 글을 보고 나니
퇴계 선생이 평소 하는 말하고 행동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도 뭔가 이상했으니 그런 말이 떠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21-05-16 17:30:46

역사적 위인의 어두운 부분이라 몰랐던 사실인데 재산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셨나 보네요.

2021-05-16 19:39:21

 그때 당시 청문회가 있었으면 청문회 통과하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그려

2021-05-17 10:49:37

이러니 저러니해도 역사가 발전 하고 있다는 증거로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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