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진정한 선행학습
음, 약간 제 자랑 같아서 익명으로 글을 씁니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지금의 서울 특별시 미아리)에서 태어난 저는 당시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랬듯이 자녀는 많고 수입은 변변치 않아 먹고 살기 빠듯한 집에서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총기가 좀 있었는지, 국민학교 입학 전에 스스로 길거리 간판을 통해서 한글을 깨치고 만화가게를 들락거렸습니다.
만화가게 주인은 어린애가 한글을 깨쳐서 만화를 본다는 것이 기특해서인지 공짜로 만화를 보게 해주었습니다.
요즘과 다르게 당시 동네 만화가게는 기껏해야 수십권~수백권 정도 진열해 놓는 수준이라서 얼마 안가 모든 만화책을 섭렵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로는 "다시 살아난 목탁"이 있군요.
당시 책읽기에 맛들린 저는 읽을 책을 찾아 온동네 집집마다 다니면서 동냥 독서를 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에 있는 유일한 책은 3살 위인 형의 학교 교과서였습니다.
형이 교과서를 타오면 달력으로 책 표지 싸자마자, 형보다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
밤에는 식구들 다 잘 때 이른바 남포불 켜놓고 형 교과서를 읽었습니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글자만 읽다가 여러번 읽으면서 문장을 알게 되고 수십번 읽으면서는 내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의 교과서 전과목을 수십번씩 읽는 생활이, 형이 고등학교를 졸업 할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가정 형편상 형이 대학진학을 포기함에 따라 형의 교과서를 읽는 일은 제가 중학교 3학년때 끝났습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때 학교 성적은 그저 반에서 5등 이내, 점수로 따지면 90점~93점 정도를 왔다갔다하는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로지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니까, 교과서 밖에서 출제되는 문제는 가끔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보니까 따로 공부할 것이 없었습니다. 교과서는 이미 수십번 읽어서 외울 정도이기 때문에 수학과 영어 정도만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고2에 들어서니까 입시 때문에 공부해야할 과목이 약 20개로 늘었습니다.
(저는 예비고사 세대인데, 예비고사는 음악 미술을 포함한 고등학교 전과목이 출제되었습니다. 체육은 체력장으로 일종의 실기시험이었구요.)
대부분의 친구들은 여기서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워낙 공부해야할 과목이 많으니까, 이른바 취사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평균점수가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서 특별할 것이 없었고, 교과서 밖에서 출제되는 문제는 좀 놓쳐도 교과서 내에서 출제되는 문제는 다 맞추기 때문에 여전히 점수는 90~93점 대였습니다.
고2 때부터 저는 그대로인데, 다른 아이들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제가 전교 1등으로 올라서게 되고 이 성적이 고3 졸업때까지 이어지고, 예상하시겠지만 무난히 서울대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요즘같이 수행평가가 있었다면, 가난한 집에서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한 저는 도저히 학종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몇과목만 시험봐도 되는 현 수능시스템에서는 고액 쪽집게 과외를 한 아이들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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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글을 볼때 디피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하시네요 6학년5반 선배님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