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지극히 개인적인
1.
남편이 이 치료하러 치과 갔다가 다른 어금니를 이대로 더 두면 안 된다고 당장 임플란트 해야 한다고 해서 그날 발치하고 왔더군요. 제가 너무 황당해서 다른 치과도 가보고 그러지 어금니를 그렇게 쉽게 발치하고 오면 어쩌냐고 했더니 제가 과잉진료는 안 하는 곳인 거 같다고 해서 한번 가보라고 한 곳이기에 남편은 잘 알아서 하겠지 싶어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물건이든 옷이든 가서 대충이라도 둘러보거나 비교해 보지 않고 덜컥덜컥 사는 것 때문에
제가 보기엔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임플란트는 또 금액도 그렇지만 치료도 만만찮은 일이니 앞으로 어떻게 하려나 싶어 소심한 저는 좀 심란합니다.
요즘 구취도 심해지는 것 같고 치과 얼른 가라고 얘기하면 잔소리처럼 들릴까 싶어 말 안하고 있는데 남편은 걱정스런 제 마음을 알려나 모르겠네요. 사실 안 알아줘도 상관없으니 얼른 치과 좀 갔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2.
몇년 전 지인이 남편의 외도로 속을 끓이다가 희귀암으로 몇 달 만에 허망하게 떠나버렸습니다.
한 여자의 삶에서 남편이란 존재에 대해 또 부부 각자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지금도 남편을 사랑하고 또 천사같은 아이들을 만나게 해 준 사람이지만 그에게 너무 의존적이 되어선 안되겠구나, 같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나도 독립적으로 꿋꿋이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러했듯, 아주 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깊이 마음을 나누진 않았던 그 언니의 일은 정말정말 평범했던 제 삶을 흔들어 놓을 만큼 꽤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내 하루를 잘 살되, 소소하게 행복하게, 어느 순간 사라지더라도 후회없도록 살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3.
결혼을 할 때 로망도 판타지도 없었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남편을 믿었고, 존경하며,
그와 제 마음이 항상 같을 수 없음을 알고,
그저 서로 부족한 부분 채워가며 살면 좋겠다,
다만 화가 나더라도 부부간에도 말과 행동에 있어서 선을 넘지 말아야지 하고 막연하게나마 속으로 다짐했던 거 같습니다.
나이차가 있어도 살다보면 그런 거 다 없어지고 ‘야, 너’ 그러고 산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제가 아깝다 그런 소리 곧잘 하곤 했지만 그냥 웃는 건 사실 남편도 까다롭고 예민하고 철없는 저 맞추고 사느라 만만찮게 힘들었을 거라서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도 제 마음 편하게 해 줄 이만한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4.
작년부터 제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은 걸 조금씩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고분고분했는데 이젠 제 의견을 얘기하고 또 상황이 제 예상대로 흘러가거나,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니 그게 영 본인 마음을 불편하게 했나 봅니다.
냉각기가 몇 달 왔습니다.
남편은 그 기간 꽤 힘들어 했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시기 저는 꽤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하던 일들에서 남편과 연관된 부분이 쓰윽 빠지고, 관심 스위치고 꺼놔서 그런지 아이들 챙기고 살림하는 게상당히 수월해지더군요. 그래서…. 그만큼 남편은 더 힘들었겠지요.
나중에 화해를 하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술을 마시다 남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 삶에서 내가 빠져서 힘들었냐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당신이 불편하고 힘들던 그 여러 부분들 내가 잘은 못해도 메꿔주고 있었다는 생각은 안 드느냐고. 당신이 그 시기 힘든 것 내가 아는데, 알면서도 나도 살고 싶어서 화해하고 싶지 않았고 아는 체 하기 싫었다고.
우울증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해 코로나로 저 나름 여러 역할에 지쳐 있기도 했고,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늘상 있었는데 그러다 마음속에 묵혀 두었던 말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남편이 고깝게 듣거나 방문을 닫고 들어가니 저도 점점 마음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저희 부부는 예전처럼 잘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남편은 다정하고 가정적이고 책임감있는 사람입니다. 단점인 부분은 적지 않겠습니다. ㅎㅎㅎ
앞으로도 가끔씩 아이들 문제로 살짝 티격태격 할 거고, 남편은 아이 학원 숙제, 공부 봐주느라 언성 높아진 제 목소리 듣고 있기 힘들다고 할테지요.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 본인도 포함되어 있어 마음 불편할 때도 있을 거예요.(사실 그러라고 한 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모든 걸 제 위주로 먼저 챙긴다는 점입니다. 맛있는 것, 좋은 것도 내가 먼저,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무리해서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5.
부부간에도 배려가 필요하다는데
그게 또 타이밍이 안 맞으면 다 쓸데 없더라구요.
남편 배려하고 챙긴다고 했던 일들이 매번 결과가 좋았던 것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보니 속상한 마음 생기게 되고 오해도 생기게 되고.
그가 제게 필요로 하는 게 생겼을 그 타임에 귀기울여 들어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에너지가 많은 사람도 아니고, 사실 잘 챙기지도 못해서요.
제가 현명하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며느리, 이기적인 여자, 적당히 못된 엄마로 사니 오히려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속이 편하고 제 마음이 건강해야 불편한 감정들이 총알이 되지 않고, 아이들에게로 남편에게로 날아가지 않게 오늘도 제 위주로 삽니다.
평소에 사적인 얘기 잘 안 쓰고 싶고 어디다 얘기 못했는데 여기는 아무도 저를 아는 이가 없으니 지극히 “나 위주로”의 삶을 말할 수 있어 좋군요.
이 대나무숲에 말해 봅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아. 속시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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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 익명이 더 낫죠. 듣는 저도 아우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