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얄궂은 운명에 서러운 눈꽃을 날린 설부화용이었다
#1. 우크라이나가 낳은 역대 최연소 세계 유도 챔피언(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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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크라이나의 유도 천재, 최연소 세계선수권 2연패(20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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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단상입니다. 도쿄 올림픽에서 다리아 빌로디드의 경기를 본 후 느낀 감상만 적을 것입니다. 다리아의 사상 최연소 세계선수권 우승과 관련한 찬사는 #1에서 다뤘고,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하면서 -48kg에서 지배자가 됐단 소식과 경기 스타일로 인해 불거진 논란은 #2에서 다뤘습니다. 따라서 제가 느낀 감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1과 #2를 모두 참고하는 것을 권합니다.
지난 3년 간 48kg급의 지배자로 평가를 받던 다리아 빌로디드의 첫 올림픽 도전기는 실패로 끝났다. ‘동메달이 실패냐?’라고 묻는다면 ‘누군가에겐 커다란 성공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처참한 실패다’라고 답하겠다. 미국 농구 드림팀이 동메달을 땄다고 치자. 여기에 대고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당신들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으니 이미 승자야’라고 말한다면 기이할 정도의 공자왈맹자왈 위로라 헛웃음조차 안 나올 법하다.
다리아 빌로디드는 2018년 지난 대회 우승자인 일본의 푸나 도나키를 물리치고 17세의 나이로 우승을 거뒀다. 기존 최연소 세계선수권 우승자 타이틀을 갖고 있던 여제 료코 다니의 기록을 깨면서다. 2019년엔 도쿄에서 역시나 도나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세계선수권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올해 2월까지 전체 승률이 무려 94.6%에 달했다. 이런 선수에게 동메달이 만족스러운 결과가 될 수 있을까? 난 그리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실제 다리아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오직 금메달을 향해 달려왔고, 이를 위해 방해가 될만한 것들은 철저히 멀리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밝힌 바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48kg 4강전에선 푸나 도나키를 만나 패배했다. 다리아 빌로디드는 3/4위 결정전으로 가야만 했고, 문제는 ‘다리아에게 이 경기를 치를 의욕이 남아있느냐’였다. “3/4위 결정전을 포기하고 싶었어요. 이 경기를 치러야만 하는 의미가 제겐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전 정말이지 절망 속에 사로잡혔답니다. 그때 엄마가 ‘나를 위해 동메달을 가져와다오’라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 오직 제 안에만 머무르던 시선에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답니다. ‘맞아, 당신들은 내 곁에 늘 머물러줬어. 포기하고 싶을 땐 나를 지지해줬고, 늘 정진할 수 있게끔 독려해줬지. 아빠, 엄마, 당신들은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어. 고마워’라 생각하며 다다미(유도용 Tatami)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시라 리소니에게 한판승을 거둔 후 정말이지 펑펑 눈물을 흘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기뻐서? 부모님께 동메달을 바칠 수 있게 됐으니까?
운명이란 참 얄궂다.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격투가로서 172cm 48kg의 신체를, 그러니까 유도선수로서 필요로 하는 근력을 확보한 채 저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특히 오늘날 러시아 피겨 선수들이 초고난도 점프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통기한이 얼마나 짧은가*를 통해 거친 추론이 가능하다. 격투가로서도 마찬가지, 저 모델 신체를 유지한 채 승리를 위해 필요한 근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기는 관대하게 잡아도 10대 후반까지였다고 본다. 나름의 근거가 있는데, 다리아 빌로디드는 19세에 접어든 작년, 생뚱맞게도 -48kg 체급이 아닌 -52kg 체급에 도전했단 사실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후 20세 이후부턴 -52kg체급으로 자연스레 증량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 활주 느린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뛸 수 있던 이유 feat. 네이선 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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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빌로디드는 2달 반 뒤에 21세가 된다. 코로나 era로 인한 올림픽 연기로 인해, 꽉 찬 20세가 돼서야 도쿄 올림픽을 맞이할 수 있었단 소리다. -48kg으로 감량하는 데 더 큰 노력과 무리를 했을 테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을 신체적 부작용도 뒤따르지 않았을까 의심해보게 된다. 패배를 모르고 진격만 거듭하던 지난 시즌과 달리 올초부터 패배와 부상이 연이어 발생한 이유가 상대 선수들이 이 동체급 말라깽이 꺽다리를 상대하는 법을 익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리아의 몸이 ‘더 이상은 -48kg급에서 뛰지 말자’란 시그널을 보낸 까닭인지 난 모른다. 시간이 더 지나야 그 답을 알 수 있는 문제다. 지금은 각자가 그 이유를 추론하는 수밖에.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작년에 도쿄올림픽이 열렸을 테고, -48kg급 절대자로서의 위용을 자랑하던 19세 다리아 빌로디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확률은 올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유예된 1년이란 세월, 다리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운명이란 참 얄궂다고 말한 것이다. 그녀가 서럽게 흘리던 저 눈물은 거부할 수 없던 운명에 대한 야속함 때문 아니었을까?
"전 아직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제 꿈을 빼앗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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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드러난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경국지색이란 표현이 어린 선수에게 쓰기엔 지나친 것 같군요.
단순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 두가지가 더 큰 표현이라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