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오징어게임>의 특이점
<오징어게임>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오징어게임>은 결국 <도박묵시록 카이지><라이어게임><배틀로얄>의 내용들을 짜집기해서 내놓은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도박묵시록 카이지>나 <라이어 게임>의 경우, 그들을 끌어들이는 원천은 결국 '돈'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이성을 흔들 정도의 막대한 금액의 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작품의 경우 참가자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게임에 지면 막대한 빚을 지고, 주최자들은 이들에게서 어떻게든 돈을 뽑아먹겠다는 마인드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듯한 죽이지는 않고 '장기라도 뽑아먹기'조차 이들 작품들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장기를 뽑아 먹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그렇게 장기를 뽑아 짧게 돈을 벌고 그들을 비리비리하게 두느니, 차라리 그냥 장기를 냅두고 더 오랜 시간 동안 강제 노동을 통해 그들에게 돈을 뽑아먹겠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물론 <라이어게임>의 경우에는 그렇게 엄포를 두고 결국 아무것도 하진 않습니다만)
<오징어게임>의 피칠갑을 보고 <배틀 로얄>을 연상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배틀 로얄>의 경우 참가자들은 두 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그 게임에 뛰어든게 아닙니다. 그들은 국가의 강요에 의해 그 게임에 억지로 밀어넣어진 것이고, 그들은 그 게임에서 살아남는게 결국은 자신들을 죽음의 링에 몰아넣은 국가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징어게임>은 말그대로 참가원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참여합니다. 그 누구도 그들을 억지로 밀어넣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회의 모순 구조가 그들을 결국 게임에 참가하게 하지만, 그건 <배틀 로얄>과 같은 어거지스러운 구조가 아니죠. 그리고 그들은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등장할 법한 아이스러운 게임을 합니다. 하지만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패배한 자들은 죽지 않습니다. 그들은 탄광을 가든, 다른 어디에 가든, 강제 노동을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살아 있습니다. 반면에 <오징어 게임>에서 그들은 값없이 죽어갑니다. 그리고 그 시신은 아무도 모르게 소각되어 사라집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그래도 노동이 인간의 가치를 증명한다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에서는 더이상 인간의 노동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기껏해야 콩팥과 안구뿐이고, 오히려 그들이 스펙타클하게 죽어가는 광경이 부자들의 지갑을 여는 동기가 될 뿐입니다. 이 작품이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어쩌면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모든 가치를 만든다고 마르크스에 의해 칭송받았던 인간의 노동이 더이상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이 한낱 경마장의 말 취급 밖에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서늘한 시각이 현재 21세기의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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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지에서도 "실패하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게임" 도 있었죠, 굉장히 임팩트가 강했어요.
그 게임에서의 분위기가, 오징어 게임의 전체적인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카이지의 강제 노역은,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인간적이면서 비인간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