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직장내 대화에서 '업무상 적정범위'에 대해 여쭙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 글을 씁니다.
비교적 긴 글이 될 수 있어서 바쁘신 분들은 pass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직장에서 겪은 일입니다.
조금은 특수한 면이 있는 일인데 구체적으로 쓰기는 어려워서 보편화해서 쓰겠습니다.
어느 날 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제가 다른 부서에 요청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해결을 담당할 부서의 하급자에게 요청했는데 (이후 과정은 저희 부서의 하급자가 담당합니다.)
이미 해결이 되었을 것으로 여긴 시간에 해결되지 않고 있어서 이유를 물으니 상대 부서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여 시간이 지체되어 못했고 결국 일반적으로는 하루에 해결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기다리던 고객이 그냥 돌아가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객의 complaint가 많았습니다.
상대 부서의 하급자에게 왜 요구 사항이 많아졌냐고 물으니 전에부터 그랬다는 식으로 대답하여 약간은 언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대 부서의 상급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저보다 2살 아래인데 군대가 면제라 직급은 저와 같았습니다(일반적으로 경력이 나이에 비례하는 직업입니다.). 이는 또한 저와 입사 동기이기도 해서 비교적 친하고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상대 부서 내에서는 하급자에게 하대를 하는 등 직장 내에서는 character가 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저는 주로 고객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process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얘기하는데 상대는 우리 부서에서 전화해서 부탁하면 다 해주지 않느냐면서 무슨 문제가 있는냐고 했습니다. 이런 대화가 공전되다가
상대가 좀 짜증이 났는지 저에게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해하지 마시라는 식으로 거의 애원조로 얘기를 했지만 저의 얘기는 듣지 않고 우리가 요청하면 무조건 다 해줘야 되느냐면서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다음에 얘기하자고 했더니 얘기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좀 황당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다음날 상대 부서의 책임자로 제 학교 동기에게 얘기하고 녹취파일을 전달했습니다. 저는 그 책임자가 중재하여 저에게 가벼운 사과라도 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책임자는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책임자는 상대방의 고교 선배입니다). 그래서 제가 인사팀에게 얘기했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도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제가 직장 부책임자(역시 상대방의 고교 선배)를 거쳐 책임자와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임자는 녹취파일을 듣고도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야 판단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상황 자체는 녹취파일에 모두 들어 있으므로 그걸로 판단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와서는 상대방도 ‘upset’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파일에서 다 들을 수 있지만 저는 맞고함을 치지 않았고 거의 애원조 부탁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이 upset 되었다면 대화가 길어져 짜증이 나서 정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해결하려면 윤리위원회를 열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둘 다 다칠 수 있다면서 은근히 협박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제가 다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요청했습니다.
그 이전에 부책임자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한 경우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문제 제기가 가능하지만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한 경우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엄밀하게 하급자는 전혀 아니지만 연하자는 됩니다.) 저는 참 세상이 거꾸로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윤리위원회에서 10여명의 위원들이 녹취 파일을 다 듣고 서로 논의를 한 이후에 저를 불러서는 상대방에게 먼저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잘못을 해서 먼저 사과를 해야 하냐고 하면서 잘못한 것을 알려 달라고 했으나 그 말은 못 하고 책임자는 때린 사람도 잘못이지만 맞은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른 위원은 잘못하지 않아도 사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상대방이 든든한 백이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후 윤리위원회에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어서 법무법인과 노무법인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수개월 후 결론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녹취파일을 제삼자에게 들려주는 것은 명예 훼손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통보를 받고 처음부터 상대가 제 상사가 아니므로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없는데 이렇게 물어서 아니라고 받고서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형식이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항의했고
얼마 후 최종 결론으로 상대의 행동이 ‘업무상 적정 범위 이내’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 일을 겪으면서 물론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성추행 당하고 자살한 여군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비록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이후 타당하게 해결이 되었다면 자살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일을 숨기고 묻어버리려는 상사들 때문에 자살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에게도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얘기하면 단편 소설(?) 한편이 될 수 있어서 이만하겠습니다.
제 속에는 정말 저 정도로 상대에게 예의 없이 하는 행동이 업무상 적정 범위 이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응어리진 물음이 남았습니다.
DP 내 집단 지성 여러분들의 허심탄회한 말씀을 듣고 싶어서 이 글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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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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