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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  플레이 스테이션 탄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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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1 19:26:14

 마소의 액티블 인수로 핫한 가운데 이슈에서 비껴가서 전부터 써볼까 생각했던 플레이 스테이션 탄생의 이야기를 한번 써볼까 합니다. 다소 긴 글이 될테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플레이 스테이션2를 소개하는 쿠타리기 켄)

 

1. 플레이 스테이션의 뿌리는 닌텐도

 

플레이 스테이션의 개발 비사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이 사람을 빼면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I)의 전 회장이자 이제는 소니를 떠난 사람 바로 쿠타리기 켄이죠.

이 사람은 플레이 스테이션 아니 소니가 게임산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이자 플레이 스테이션의 아버지이고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게임 콘솔 업계의 판도는 매우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쿠타라기 켄이 게임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80년대 초반 그당시 모든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그의 자녀들도 닌텐도 패미컴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가 선물한 패미컴을 가지고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80년대 중반 소니 정보처리 연구소 소속이었던 그는 방송국에 방문 했다가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였던 시스템 G를 접하게 됩니다. 이 장비는 방송국에서 자막이나 로고 간단한 그림을 실시간 3D로 만들어 내는 장비였죠. 그는 이 장비를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으며 동시에 이러한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게임이었죠. 물론 당시로서는 초고가의 워크 스테이션에서나 가능한 기술이었기에 게임에 접목한다는 발상은 망상에 가까웠지만 그는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법칙)을 떠올리며 10년쯤 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쿠타라기가 게임 업계와 직접적으로 인연을 맺게 되는 일이 시작됩니다.

바로 그가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 패미컴의 주변 기기였던 디스크 시스템 때문이었죠

플로피 디스크에 게임을 수록해서 롬 카트리지를 대신할수 있게 만든 이 주변기기 개발 과정에

소니도 참가를 하게 되었고 여기서 쿠타라기는 소니가 개발한 2인치 디스크를 홍보했으나

최종적으로 선택된건 미쓰미 전기의 2.8인치 퀵 디스크였습니다.

비록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닌텐도의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의견을 교환하는등

본격적으로 게임업계에 대한 지식을 쌓을수 있었고 이는 후에 슈퍼패미컴 개발 과정에서

소니의 SPC 700이라는 칩이 사운드 칩셋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사실 쿠타라기는 이때 이미 자신이 꿈꾸는 콘솔 기기에 대한 비전을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패미컴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80년 초중반 이미 시작되었던 슈퍼패미컴 개발 과정에 협력 업체로 참가한

쿠타라기는 차세대 패미컴의 매체는 CD롬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했죠.

그러나 후에 밝혀진 닌텐도 회장 야마우치의 CD롬 이라는 매체에 대한 불신은 뒤로 하고라도 어차피 그는 외부인에 불과 했습니다. 거기다 당시로서는 CD롬을 주 매체로 삼는다는 생각은 너무나 이른 발상이었죠. 가정용 PC에서 조차 대부분 5.25인치 디스켓을 쓰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얼마안가 망상에 가깝게 여겨졌던 CD롬을 활용한 게임기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NEC가 발매한 게임기인 pc 엔진의 주변기기로 cd롬이 발매 된 것이었습니다.

다량의 동영상이나 노래 음성등을 수록해서 한층 더 풍부한 게임 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던 이 기기로

인해 CD롬 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이 부각 되었고 닌텐도의 라이벌이었던 세가 역시 메가 드라이브의

주변기기로 메가 CD의 개발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슈퍼패미컴의 개발이 막바지를 달려가던 무렵 쿠타라기는 다시 한번 CD롬을 사용하자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미 개발이 끝나가던 상황에 이제 와서 먹힐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닌텐도는 소니에게 슈퍼패미컴용 외장 CD롬 개발에 대한 권한과 그것을 활용해 소니만의 일체형 기기를 만드는 것을 승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당시 소니에서도 별로 탐탁치 않아 하던 사업이었습니다.

애초에 게임 회사가 아닌 가전 회사 전자 회사인 소니 입장에서 게임기는 별로 관심 없는 영역이었고 쿠타라기 켄은 제멋대로 날뛰는 이단아 트러블 메이커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사업을 추진할수 있었던 것은 당시 소니의 회장이었던 오가 노리오가 그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소니에서는 이건 게임 사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자제품을 만드는 사업이라고 못을 박으며 사업을 추진할수는 있게 되었죠.

 

2. 닌텐도와의 결별 그리고 소니 플레이 스테이션의 출항

 

 

(4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 소니 닌텐도 스테이션. 당시 개발에 참여한 누군가의 집에서 잠자고 있었다고. 한 수집가가 120만 달러에 팔라고 제안한 것을 거부하고 경매에 부쳤다는 슬픈 이야기가 )

 

그렇게 닌텐도 스테이션(?)의 프로토타입까지 개발을 한 1991년5월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닌텐도가 소니와의 CD롬 개발 사업 제휴를 철회한다는 소식이었죠.

이는 미국에서 열리는 CES쇼에서 제품 공개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이에 놀란 쿠타리기와 당시 홍보이사였던 마루야마 시게오는 미국으로 날아가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  아라카와를 만났으나 여기서 돌아온 답변은 소니와의 협력은 유효하지만 CD롬 관련 사업은 다른 회사와 하기로 했다는 말뿐이었죠.

 

그래도 설마하는 심정으로  CES에서 제품 공개를 결정한 소니였지만 닌텐도는 바로 다음날 필립스와 제휴해 슈퍼패미컴용 CD롬을 개발한다는 발표를 하며 소니의 통수를 제대로 갈겨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쿠타라기 켄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술한대로 당시 회장이었던 오가 노리오의 눈에 든 사람이었고 오가 노리오는 그를 잠시 소동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뉴 미디어 사업부로 보내게 됩니다.

 

닌텐도가 어째서 소니와의 제휴를 철회해 버렸는지에 대한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한때는 닌텐도가 팩 제조로 얻는 막대한 수익을 포기하기 싫었다 라는 말이 정설처럼 돌기도 했지만 이후 바로 필립스와의 제휴를 선언하고 한동안 개발 했다는걸 보면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닌거 같고 애초에 하드웨어 제조만 하기로 했던 소니가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닌텐도의 야마우치 사장이 분노해서 라거나(실제로 소니는 CD롬 발매에 맞춰서 함게 판매할 게임 몇개를 준비중이었습니다.) 좌충우돌 무대포로 일을 밀어 붙이는 쿠타리기의 스타일이 역시 만만찮은 꼰대력을 자랑하는 야마우치의 심기를 건드렸다거나 혹은 소니내에서 쿠타라기를 고깝게 보던 일부 사람들이 이당시 이미 게임 사업에 제대로 참전할 야심을 보이던 쿠타라기의 속내를 닌텐도에 찔렀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었지만 어느것도 확실한건 아닙니다.

 

어쨌거나 겉으로 보기에는 좌천의 형식이었지만 오히려 임원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쿠타리기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소니만의 콘솔을 개발할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쿠타라기는 좌충우돌 날뛰고 그의 부하 직원들이 사고의 뒷수습을 하느라 진짬을 뺐다는게 이당시 상황이었죠.

 

1992년 닌텐와의 제휴는 완전히 깨져버리고 소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간 비용 약 150억원 가량을 손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골치아픈 사업을 정리해 버릴려는 최종회의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쿠타라기가 나타납니다. 쿠타라기는 "이대로 물러나면 세간에서 우리를 조롱하게 될거다"라며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애초에 게임 사업을 따위로 생각하던 임원들은 '화투나 만들어 팔던 회사에 개망신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린거냐?'며 사업 철수를 주장했지만 쿠타라기는 '그런 닌텐도 따위에게 망신 당하고 끝내도 좋은거냐?'라고 되받아 칩니다. 그리고 결국 회장인 오가 노리오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독자노선으로 할수 있을지 증명해봐라 DO IT'이라고 선언하며 쿠타라기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3. 계속되는 난항

 

이렇게 사업에 대한 승인을 받은 쿠타라기는 그가 오래전 부터 꿈꿔오던 게임기의 모습을 그려내기 시작합니다. 매체는 당연히 CD롬 주프로세서는 32비트 그리고 무엇보다 3D를 원활히 구동할수 있는 그래픽을 탑재한 그런 기기였죠.

 

그러나 전자회사로는 일류였던 소니였지만 게임기를 개발해 본적은 없었던 소니였기에 쿠타라기는 함께 협력할 상대를 물색하게 되니 바로 세가였습니다.

당시 세가도 메가 드라이브의 뒤를 잇는 차세대 게임기 개발을 시작한 상태였으나 메가 드라이브(북미판은 제네시스)의 흥행을 주도한 세가 오브 아메리카에서는 현재 개발중인 기기가 너무나 난해한 개발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에 소니가 적절한 제안을 해오자 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니가 한 제안은 기기를 공동개발 발매하고 세가의 게임에서 얻는 수익은 세가가 소니의 게임에서 얻는 수익은 소니가 가겨간다 였는데 이는 게임회사로서는 압도적인 ip를 보유한 세가측에게는 리스크는 줄이고 이득은 얻을수 있는 매우 좋은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세가 본사에서는 '소니는 게임기도 만들어 본적도 없고 게임도 모른다. 우리가 왜 그들과 협업해야 하나?' 라는 말로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는데 이는 사실 메가 드라이브가 일본에서는 닌텐도에 참패하고 북미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자칫 주도권을 북미 세가측에 넘겨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무개발진들간의 회의에서 역시 2d를 고집하던 세가와 3d를 주장하던 소니측의 의견이 갈리면서 결국 협업은 무산되고 말았죠.

 

결국 소니는 완전 독자 노선으로 변경 게임기에 탑재할 메인 프로세서 개발과 생산을 위해 LSI 로직스와 계약을 맺고 그래픽을 담당할 칩셋은 도시바와 함께 개발 생산을 결정합니다. 선주문한 100만대 분량의 칩까지 들어간 비용은 1400억원 이상 이제는 더이상 후퇴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가게 된거죠. 

 

그러나 난관은 계속 됩니다.

게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됐지만 문제는 소프트 였습니다.

소니는 세가도 닌텐도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만드는 소프트 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불가능했죠. 그래서 서드파티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게임 회사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들 절대 다수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웠죠. 그도 그럴것이 몇몇 게임의 개발 유통을 해본 적은 있으나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을 해본적 없는 소니가 자체적으로 게임기를 개발한다는 것도 황당한 일인데 그 게임기가 3D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3D는 이제 막 업소용의 고가 머신이나 헐리웃의 영화 산업에서나 겨우 쓰이기 시작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가정용으로 만든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렸죠.

무엇보다 개발자들도 3D에 대한 이해도나 경험이 절대 부족했습니다. 태반은 손도 대본적이 없는 상황인데 게임기가 몇대나 팔릴지도 모르는 회사를 믿고 개발을 하라니 얼척 없는 소리로 들린 겁니다.

'아 네 열심히 해보세요' ' 100만대쯤 팔리면 그때 생각해보죠' '200만대쯤 보급되면 다시 이야기해 봅시다' 이런 냉대가 계속되던 와중에 쿠타라기는 의외의 지원군을 얻게 됩니다. 그건 바로 게임업계의 중견인 남코 였습니다.

 

(릿지 레이서1 아케이드 1993년작)

 

남코는 1993년 릿지 레이서1을 아케이드용으로 발매 하면서 당시 일본의 아니 전세계에서도 제대로 된 3D 게임을 개발해본 몇 안되는 회사였습니다.

문제는 릿지 레이서용으로 개발한 시스템22라는 기판이 너무나 고가여서 보급에 지장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남코는 닌텐도의 갑질로 인해 이시기 자체 콘솔을 개발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소니가 가져온 새로운 게임기는 비록 시스템22에 비하면 성능이 떨어지지만 계획대로만 나온다면 훨씬 저가에 게임을 개발하고 보급할수 있는 스펙이었죠.

이미 대세는 3D다 라는 것을 알아챈 남코였고 설사 게임기 자체가 실패한다고 해도 이를 기반으로한 기판을 제작해 아케이드에 보급한다면 남코로서는 손해볼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남코의 이 생각은 적중해 플레이 스테이션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11 기판은 후에 철권 시리즈 소울 엣지와 칼리버 시리즈등 명작을 탄생시키며 플레이 스테이션과 아케이드 양쪽을 견인하는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어쨌건 이건 후에 일이고 서드 파티 확보에 계속된 실패를 맛본 소니의 게임 사업이 큰 위기에 봉착한건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대 이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것도 아주 엉뚱한 곳에서요

 

 4.  세가가 꽃다발을 건내다

 

 

1993년 8월에 열린 아케이드 게임쇼에서 게임업계의 역사를 바꾸놓은 게임이 등장합니다

바로 세가의 AM2 에서 개발한 버츄어 파이터 였죠.

지금 보면 애개 뭐야? 하겠지만 거의 30년 전의 일입니다. 불과 두달전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개봉되며 전세계에 컬쳐 쇼크를 준 해였죠.

바로 그때 폴리곤으로 만들어진 3D 캐릭터가 실제 무술 동작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며 격투를 하는 이 게임이 준 충격은 실로 엄청 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넋을 잃고 게임을 지켜봤으며 어떤 사람들은 사실 이미 만들어진 화면을 틀기만 하는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아케이드 센터에 처음 등장한 버파1을 보고 넋 나간듯 몇시간을 그냥 지켜 보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대 이 게임을 본 업계 관계자들은 곧 어느 회사를 떠올립니다.

바로 얼마전에 자체적으로 3D 구현이 가능한 황당한 게임기를 만든다며 게임을 개발하자고 찾아온 소니였죠. 이들은 곧 소니로 달려 갑니다. '당신들이 했던 그 소리 그거 진짜 가능한 겁니까?'

그렇게 몰려든 게임업계 관계자들에게 구타라기는 마치 이때를 위해 준비했다는 듯 비장의 카드를 꺼냅니다.

 

(ps1 테크 데모)

 

바로 실시간으로 구현되는 ps1의 테크데모였죠.

쥬라기 공원의 엄청난 이슈를 노린듯한 티렉스가 움직이는 실시간 테크 데모는 수많은 개발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습니다.

이런 화면이 워크 스테이션이 아닌 고작 가정용 게임기에서 구현 가능하다니(물론 테크 데모죠 데모)

이미 마음이 흔들린 수많은 게임사 관계자들에게 구타라기는 준비한 떡밥을 연이어 뿌립니다.

 

1. 소니가 제시한 ps1용 개발킷의 가격은 150만엔 정도였는데 이는 동시기의 새턴 보다 저렴한건 물론이고 한세대 이전의 슈퍼패미콤용 개발킷 보다 월등히 저렴했습니다. 심지어 이후 발매한 닌텐도64용 개발킷은 거의 억대를 호가할 정도였으니 개발에 들어가는 초기 비용의 문턱을 확 낮춘거죠.

2.아직 낯선 3d 게임 개발에 대한 기술지원을 위해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제공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했습니다. 이는 개발 난이도를 많이 낮추는 효과를 낳으면서 후에 캐릭터를 한발 움직이게 하는 것도 고역이라는 평가를 받은 닌텐도64와 그보다 더 악명 높았던 새턴의 개발 환경과 비교되며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회사들이 개발에 참여할수 있게 해주었죠

3.당시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닌텐도와 비교해 게임 제작과 라이센스 비용을 3분의1 이하로 낮추었습니다. 슈퍼패미컴은 게임팩 제조와 라이센스 비용을 합쳐 최소 3000엔이라는 비용이 발생했고 이는 후기로 갈수록 게임 가격이 급상승해 기본 9800엔에 만엔도 넘어가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데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의 접근을 유리하게 하고 게임사의 이익도 보전해 주는 역할을 했죠.

 

결국 버츄어 파이터1이 게임업계에 일으킨 커다란 충격은 아이러니 하게도 소니가 그 최대 수혜자가 되버리며 단숨에 200개가 넘는 서드 파티를 확보하게 됩니다.

버파1의 흥행에 웃고 있던 세가는 뒤늦게야 이런 상황을 파악했지만 이미 새턴의 개발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고 이제 와서 플레이 스테이션 처럼 3D 중심으로 노선을 갈아탄다는 선택은 불가능 했습니다.

이에 차선책으로 세가는 폴리곤을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메인 프로세서인 SH-2와 그래픽 프로세서를 하나씩 더 넣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제조 단가의 상승을 불러왔고 소니가 플레이 스테이션을 39800엔에 발매하겠다고 발표하자 원래 49800엔에 발매 하기로 한 새턴을 발매 프로모션이라는 이름으로 5000엔 할인해서 판매했고 이는 팔수록 손해나는 구조를 만들어 세가의 재정 악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두개의 메인 프로세서와 두개의 그래픽 프로세서를 탑재하면서 극악의 개발 난이도를 가지게 되었고 세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던 AM2연구소의 스즈키 유 마저 새턴의 성능을 제대로 끌어낼 개발자는 100명의1명도 있을가 말까다 라는 말을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칩셋을 우겨넣은 새턴은 스펙상으로는 2D 3D 모두 플레이 스테이션을 앞서는 성능을 가졌으나 그 성능을  이끌어낼 개발자가 없었던 거죠.

2D 성능은 원래 새턴의 강점이었고 이는 플레이 스테이션과 새턴에 이식된 2D 아케이드 게임을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지만 문제는 대세가 3D로 전환되는 시점에 어떤 발버둥을 쳐도 플레이 스테이션의 3D 성능을 넘어서는건 불가능하게 되며 주도권을 완전히 소니에 넘겨주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새턴과 플레이 스테이션 발매 초기는 자사의 강력한 아케이드 게임 이식을 기반으로 한 세가의 우세였지만 서서히 소니의 서드파티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고 이는 결국 새턴의 완패로 끝나게 되버리고 맙니다

 

5.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어준 닌텐도

 

세가가 만들어준 바람을 타고 이슈와 서드파티 두마리를 동시에 확보한 플레이 스테이션은 마침내 1994년 11월 발매했고 생각외의 흥행을 거둡니다.

비록 100만대 200만대 선점은 모두 세가의 몫이었지만 발매 당일 출하한 30만대 전량을 완판시키며 그때까지만 해도 소니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 진출에 대해 회의적이던 언론도 그제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죠.

 

그러나 문제는 역시 소프트 였습니다.

뒤늦게 서드파티들이 가세하긴 했지만 발매 초기에 충분한 소프트를 공급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소니는 아크 더 래드, 와일드 암즈 등 호평받은 RPG 게임을 발매하고 남코는 릿지 레이서1을 이식했지만 아직은 소프트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발매 초기인 1995년 2월말부터 4월초까지 약 40일 동안 단 한개의 게임도 발매하지 못한 암흑의 시기까지 있을 정도였죠.

이에 소니는 발매 1년도 되지않은 1995년 7월 1만엔 인하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선보였고 서서히 소프트들도 발매궤도에 오르며 조금식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1996년 2월 파격적인 소식이 날아듭니다. 바로 스퀘어의 플레이 스테이션 이적이었죠.

스퀘어는 닌텐도 자신을 제외하면 에닉스와 더불어 닌텐도 진영을 떠받치던 양날개 같은 존재였죠.

 

그런대 어쩌다가 스퀘어가 닌텐도와 결별을 하게 된걸까요?

이는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94년 4월 슈퍼패미콤으로 파이널 판타지6를 발매한 메인 디렉터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곧장 7편의

개발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당시 스퀘어는 파이널 판타지에 버금가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고 이로 인해 파이널 판타지 제작팀의 대부분이 빠져나가며 개발팀에 커다란 공백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나오게 된 게임이 바로 크로노 트리거 였습니다

 

(지금도 북미 유저들 사이에 최고의 JRPG로 꼽히는 크로노 트리거)

 

크로노 트리거는 드래곤 퀘스트의 메인 디렉터 호리이 유지와 파이널 판타지의 메인 디렉터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공동 제작하고 토리야마 아키라가 일러스트를 담당한다고 홍보되긴 했으나 호리이 유지는 원안을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사실상 이름만 빌려준 상황이었죠. 어디까지나 홍보를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시간의 공백을 가지게 된 사카구치는 전부터 그가 생각해온 야심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건 바로 영화와 같은 비쥬얼 연출을 보여줄수 있는 게임이었죠.

 

(파이널 판타지6의 오프닝은 당시 슈퍼패미컴의 한계를 시험하는 비쥬얼을 보여줬습니다)

 

(이제는 전설이 된 파판6의 오페라 씬)

 

사카구치는 이미 파판6의 오프닝이나 그 유명한 오페라 씬을 통해 그 가능성을 시험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거 슈퍼패미컴이 아닌 차세대 기기에서 그걸 보여줄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죠. 여기에 시나리오 작가인 키타세 요시노리 역시 시대의 대세는 3D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거라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닌텐도가 개발하는 차세대 기기가 여전히 롬 카트리지를 사용하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스퀘어와 닌텐도의 관계는 단순히 서드파티의 관계를 넘어서 사실상 세컨 파티나 다름 없었습니다.

닌텐도는 스퀘어에 개발 자금을 투자 하거나 빌려줬고 스퀘어는 파이널 판타지를 시작으로 수많은 히트작을 오직 닌텐도 기기로만 발매하고 있었습니다.

파판3의 발매이후 개발하던 패미컴용 파판의 차기작이 완성을 80%를 넘긴 시점에서 닌텐도의 요청으로 개발을 전면 폐기하고 슈퍼패미컴용 파판4만 발매하게 된 일도 있었죠.

 

사카구치는 야마우치 회장까지 만나서 차세대 기기의 미디어는 CD롬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야마우치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사카구치는 파판 차기작의 기술시험을 위한 데모를 만들어 닌텐도64의 개발킷으로 구동을 했으나 롬 카트리지의 용량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설상가상 야마우치 회장이 닌텐도64 발매후 추가하겠다고 한 대용량 주변기기의 정체 역시 롬팩처럼 64메가의 한계를 가진 64DD라는 기기란걸 알게 된 사카구치는 결국 자신이 만들고 싶은 새로운 파판을 구현할수 있는 유일한 기기였던 플레이 스테이션으로의 전격 이적을 결정하게 됩니다.

 

뜻밖의 대어가 자기 진영으로 오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소니는 반색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당시 닌텐도는 새로운 파판의 개발을 위한 자금을 스퀘어에 빌려주고 있었는데 이 돈을 전부 소니가 떠안겠다고 하는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죠.

여기 까지는 그래도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었고 야마우치 회장도 아쉽지만 잘해 보라는 격려를 해주었다고 합니다.(사실 당시만 해도 야마우치 회장은 소니를 경쟁사 취급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퀘어의 임원 일부가 언론에 닌텐도64는 글러먹은 기기다라고 험담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받은 야마우치 회장은 격분했고 다시는 스퀘어의 게임을 닌텐도 기기에 발매 못하게 해라 아니 아예 스퀘어 직원은 닌텐도에 발도 들일수 없다라고 선언해 버립니다. 이렇게 닌텐도와 스퀘어의 밀월 관계는 최악의 파국을 맞이했죠.

 

하지만 그런 내부 사정과는 별개로 스퀘어의 플레이 스테이션 이적은 시장과 유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됩니다. 닌텐도를 대표하던 RPG 게임인 파판을 이제는 플레이 스테이션으로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유저들이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옮겨가기 충분한 동기였고 더불어 시장의 지배자 닌텐도 아래에서 숨죽이며 눈치를 보던 여러 개발사들까지 잇달아 플레이 스테이션의 서드 파티로 참여를 시작하게 된거죠. 거기에 될놈될 이라고 스퀘어 이적 선언이 있은 불과 1개월 뒤인 1996년 3월 정말 누구도 생각못한 뜻밖의 게임이 대박을 치게 됩니다.

 

(쌈마이 티가 팍팍 나는 바이오 하자드1편의 오프닝)

 

캡콤조차 이런 게임이 팔리겠어? 그냥 기술 개발 한걸로 만족하자는 심정으로 발매한 바이오 하자드1이 뜻밖의 대박을 치며 3D를 강조한 플레이 스테이션이 다시금 주목받았고 여기에 얼마안가 소니는 1만엔 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인하를 한지 얼마안가 연말까지 연이어 가격인하를 하며 닌텐도64가 발매한 1996년 연말에는 이미 닌텐도64보다 더 낮은 가격에 시장에 기기를 공급하였고 이는 플레이 스테이션이 닌텐도64를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스퀘어의 이적이나 콘솔 가격 경쟁의 승리가 플레이 스테이션이 승리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닌텐도는 패미컴 시절부터 제작사들에게 여러가지 불합리한 조건을 강요하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대표적으로 팩 제조와 라이센스 비용을 합쳐  높은 금액을 책정해 두고 이를 사전에 완납 해야만 게임팩 제조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패미컴 후반기에 가면 3000엔에 달했다고 합니다.

즉 10만개의 게임을 발매하기 위해서는 3억엔 이라는 금액을 사전에 닌텐도에 입금해야만 게임을 발매할수 있었던거죠. 이같은 정책은 대형 개발사라면 모를까 항상 자금에 쪼달리는 중소 개발사들에게는 쉽게 감당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이야 제로 금리를 향해 가는 시대라고 하지만 80년대 금리가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은행대출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조차 쉽게 할수 있는게 아니었죠.

 

이는 필연적으로 게임 소프트 가격의 인상으로 이어졌고 패미컴 후반기인 80년대 말에 이미 8000엔이 넘는 게임이 나왔으며 슈퍼 패미컴 시절 부터는 10000엔이 넘는 게임이 나오는것도 더이상 놀랄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게임 가격의 인상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되었고 제작사들 입장에서도 게임 소프트 판매량에 영향을 주는 결코 반길 상황이 아니었죠.

 거기에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게임을 발매해도 게임 판매후 수익을 정산 받기 까지 최소 6개월이 걸렸으며 설령 비용을 감당할수 있다고 해도 생산물량을 정하는 것 조차 제작사의 맘대로 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닌텐도 유통 갑질의 상징인 '초심회'라는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초심회는 대형 게임 유통업체들의 연합체로 우리로 치면 총판 모임 같은것이었는데 닌텐도는 이 초심회에 막대한 실권을 쥐어 주고 유통의 전부를 책임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초심회는 이 지위를 이용해 소매점은 물론 개발사에도 갑질을 일삼았는데 대표적으로 A라는 게임사에서 우리가 야심차게 개발한 이 게임은 반드시 성공한다 자금도 준비 되었으니 50만개 발매를 원한다고 해도 초심회에서 '에이 니네 게임 재미없어 그 정도는 아니야 30만개만 찍어' 라고 하면 그렇게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CD롬이 아닌 롬팩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게임이 잘 팔려 추가 물량이 필요하다고 해도 실제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수개월 후 추가물량을 확보해서 출하해도 이미 중고가 유통되며 시장이 잠식되어 원하는 만큼의 판매를 할수가 없었던 겁니다.

거기다 초심회는 보험비 라는 명목하게 이렇게 판매되지 않은 게임으로 발생한 비용의 상당부분을 제작사에 떠넘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면 아예 개발 과정에까지 관여해 이 게임은 시장성이 없으니 개발하지 마라. 발매해도 우리가 소화 못해준다 라고 하거나 반대로 이 게임이 잘 팔렸으니 다음 게임은 이 게임의 후속작으로 만들어라 식의 얼척없는 요구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잘팔리는 게임을 받기 위해 인기없는 게임도 같이 떠안아라 식의 요구를 소매점에 하는건 놀랄일도 아니었고 나중에는 소매점들을 선별해 가맹비를 받고 게임 소프트 공급에 차별을 두는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이렇게 가맹된 소매점들은 매장 입구에 커다란 '황금마리오'를 전시해 두었는데 이런 매장의 경우

아예 비 닌텐도 게임은 취급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국 이 초심회는 소니에게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준 1997년에 가서야 해체되었다고 하지만 이후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비슷한 일을 해온 조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닌텐도가 이 초심회의 해체를 공식 선언한건 2016년이 되어서인데 물론 유통의 주도권이 디지털 다운로드가 된 시기이기도 하지만 스위치가 급부상 하게된 시점과 맞물리는 것도 결코 우연만은 아닐겁니다

 

이에 대응해 소니는 제작사에 굉장히 친화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게임 제작 비용과 라이센스 비용은 닌텐도의 3분의1도 되지 않는 900엔 이라는 비용을 책정했고, 일부 저가판 게임에는 그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을 책정해서 심플 시리즈라는 1500~2000엔 가격의 게임까지 나올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성 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초기 출하 물량은 소니가 전부 통제하는 대신 거기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소니가 책임을 졌고 CD라는 매체의 특성과 이미 음악 사업을 하고 있던 덕에 추가 물량이 필요할 경우에도 발빠르게 대응하는게 가능했습니다. 즉 소니가 직접 도매상의 역할을 한 것이었죠. 이는 거대 전자 메이커이자 음악 사업자 로서의 경험과 유통망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정책이 완벽한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거대 게임사들이 직접 유통을 하겠다는 요구를 받아들이며 더이상 적절한 물량 통제가 힘들어지고 했고 시장의 지배자가 되고 나서는 소니의 영업사원들이 소매점에 갑질을 하다가 문제가 되어 법적으로 제제를 받는 일까지 발생했으니까요.

 

여기서 알 수 있는건 결국 누군가가 지배자가 되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그걸 막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쟁이 필요하다는 진리일겁니다.

 

 

6. 마치며

 

플레이 스테이션의 시작은 쿠타라기 켄 이라는 트러블 메이커의 몽상에 가까운 발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의 40년전에 3D 중심의 게임기를 만들겠다는 허무 맹랑해 보였던 발상은 10여년후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을 만들어준 계기는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큰 라이벌들이었습니다.

 

세가는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게임을 만들어 놓고도 정작 자신들은 그 배에 올라타기를 거부 하다가 결국 시장에서 완전히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닌텐도는 한 시대의 제왕이었지만 지나치게 그 자리에 안주했으며 장인정신 이라고 포장된 고집을 꺾지 않다가 그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대가 흘러 한때 마이크로 소프트 본사 한 구석의 사무실에서 뭐 하는지 모를 이상한 놈들 취급을 받던 게임부서는 수십조원을 들여 회사를 인수하고 수천만의 가입자를 보유한 서비스를 하는 초대형 공룡으로 성장 했고 이제는 명백히 게임 시장의 돌풍의 최중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닌텐도는 한쪽에서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쌓고 조용히 경쟁사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죠.

 

한동안 시장을 지배하던 소니는 과거의 세가가 닌텐도가 그러했듯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고 또 자리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며 서서히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소니가 지금 조여오는 위기를 진정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들의 운명역시 누구도 장담할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게이머로서의 저는 모든 회사가 언제나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고 계속 경쟁하는게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좀 팔어 이 자식들아 게임기가 무슨 유니콘이냐? 여자친구야? 왜 못 사는건데? 

님의 서명
잃은 것과 남은 것 사이, 그 어딘가
57
Comments
4
2022-01-21 19:31:32

선추천 후감상하고 난 다음에 추천버튼 하나 더 어디있나 찾아보고 갑니다...

2
Updated at 2022-01-21 19:34:47

https://m.thisisgame.com/webzine/series/nboard/213/?series=125&page=15

참고로 본문 내용과 관련 된 더 많은 콘솔 이야기는 디즈이즈게임에서 [더게임툰]으로 연재됐으니 한번들 보러 가시는게...

WR
1
2022-01-21 19:42:27
 감사해용
1
Updated at 2022-01-21 19:39:26

와 정성스런 글 고맙습니다 천천히 읽으며 정독....을 하겠습니다

풀스1이 발매될 당시 으뜸게임 길동지점에서 1등구매하고 게임할 행복한 마음에 집에 와 220에 그대로 꼿아서.......사망을 시켰드랬죠
나도 울고 게임샾 사장도 난감해하고
그당시 40 얼마 언저리 였던걸로 기역하는데
생개해보면 닌텐도와 세턴게임들이 그당시에 하나에 거의 5~6만원 내외로 샀드랬죠
물가를 대비해보면 지금의 게임디스크들은 가격이 오르지 않았어요

WR
1
Updated at 2022-01-21 19:44:33

플스1 발매시기에는 잠시 게임과 멀어졌던 때라 사질 못했는데 나중에 후배집에 가서 철권3를 신나게 했었죠. 기기가 오래되면 CD가 튄다고 하나? 그런 증상 때문에 이쑤시개를 꼽아놓고 뭐 그런 요상한 짓을 하고 있더군요

2022-01-22 11:17:24

플스1때는 시디갈기도 하고 그랬죠 ㅋㅋ

1
2022-01-21 19:48:42

5-6만원도 나온지 좀 지났을 때 가격이고, 철권2, 파판7 같은 인기작들은 심하면 출시일에 20만원씩 찍기도 했죠. 이런 저런 물가가 참 많이 올랐는데ㅡ그 와중에 가격이 거의 안 오른 것 중에 하나가 게임소프트 아닌가 합니다. 뭐 학생 시절엔 참 비싼 물건이기는 했습니다만.ㅋ

1
2022-01-21 19:42:47

오오, 유튜브 용으로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적어주시다니 

 

- 필립스의 손을 잡은 이유는 소니의 손을 들어주면 CD롬 게임기 + CD미디어 주도권을 쥔 공룡이 닌텐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필립스는 게임산업에는 관심이 있지만 플랫폼 사업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고른 거죠.

 

- Do It은... 음 사실 뻥튀기에 가깝고 사실은 닌텐도란 기업이 소니와의 계약을 전면 파기한 것 때문에 체면이 망가졌기 때문에 밀어붙인 겁니다. 소니 문화상 실패의 책임은 수장만 지는 식이기 때문에 (즉 쿠타라기) 그냥 해봐라 분위기였다고 하네요. 

 

WR
1
2022-01-21 19:45:08

어차피 공장장님이야 다 아시는 이야기잖아요 

1
2022-01-21 19:50:31

아뇨 처음듣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꾼의 재능이 있으시네요^^

 

1
2022-01-21 19:43:00

일단 추천에 30% 읽었습니다.
나중에 또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R
1
2022-01-21 19:45:23

천천히 읽어주세요 

1
2022-01-21 19:49:39

나름 콘솔경력도 길고 게임잡지나 루리웹등을 통해 자주 접한 게임사이긴 해도 이리 가독성 좋게 정리해 주시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전 플스로 스퀘어 넘어가기전에 스퀘어에서 N64 맛뵈기로 만든 파판6 3D 테크데모 전투씬보고 지렸던 기억이 나네요.
바하무트랑 알렉산더가 3D로 전투를...!!!
짧은 영상이었는데 용량이 80메가였던가 해서...
더 충격받았죠 (슈퍼패미콤 용량 많은 게임이 32메가 시절에)

WR
1
2022-01-21 19:52:46

결국 그놈의 용량 때문에 발매가 좌초됐죠. 스펙상의 성능은 닌텐도64가 명백히 우위였던지라 닌텐도64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다못해 추가 기기라도 CD였다면

1
2022-01-21 19:49:43

 완전 몰입해서 정독했습니다. 이런 글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WR
2
2022-01-21 19:53:26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Updated at 2022-01-21 19:51:59 (125.*.*.5)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는 제 인생의 보물입니다.

 

10년이 넘는 공부 기간 동안 친구들은 안 만나더라도 가끔(?) 위닝 일레븐 게임을 통해서 공부의 답답함을 달래던 중, 플레이스테이션 2가 DVD 감상이 가능한 줄 알고 열심히 영화도 보고 이 디피를 알게 되어서 오랜 기간 동안 같이 했네요.

그때의 술 친구들 공부하느라 다 떠났지만 디피와 지금도 같이 한 것에 대해서는 무척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교수가 된 이 시점에도 디피는 제게 큰 활력제입니다.

 

그러나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는 4 Pro 까지만 하고 5 부터는 글쎄요, 고민이긴 합니다^^

 

사랑합니다, 디피~

WR
3
2022-01-21 19:54:17

게임을 열심히 해도 난 교수가 됐다. 학부모님들께 자랑하고 싶은 게이머의 모범사례십니다

1
2022-01-21 19:57:39

글 잘 봤습니다. 간만에 정독했네요 ^^
마지막은 저도 하고 싶은말이네요..ㅋ
며칠전 엑박 예약 도전했다 실패했는데
엑박은 재고가 있긴한건가 싶더라구요
구매하기 버튼 보이기도 전에 품절이라고 뜨는거 보면 재고도 없이 허위로 예약어그로 끄는거 같기도 합니다 ;;

WR
1
2022-01-21 20:03:43

한번에 푸는 물량이 100대 밖에 없다는 소리가 있는걸 보면 올해도 사기는 힘들거 같습니다 

1
2022-01-21 20:02:41

 와~ 이런 글은 진짜.. 최고네요 !!!

저도 선추천 하고 천천히 정독해야 겠습니다.

WR
1
2022-01-21 20:04:05
 감사합니다
1
2022-01-21 20:04:49

중간에 제가 한 때 몸담았던 회사의 칩셋 이름이 나오네요...깜짝....이런 정보는 어떻게 다 수집하시는 지...대단합니다.

 

몇 해 지나면 VR과 메타버스 상에서 게임으로 이런 히스토리를 주역이 될 기업들이 지금 열심히 승기를 잡기 위해서 일하고 있겠죠... 마소가 돈 쓴 만큼 남게 될 것인 지....

WR
1
2022-01-21 20:11:16

인터넷 시대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30년 넘는 겜돌이 인생이라 주워 듣고 필요하면 찾아보고 하는거죠 

1
2022-01-21 20:06:46

넷플릭스용 영화로 만들어도 흥미로울만한 백사이드 스토리로군요.
시의적절하고도 쑥쑥 읽히는 글입니다.
추천 세번 누르고 갑니다요

WR
1
2022-01-21 20:12:44

각색하기 나름이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
Updated at 2022-01-21 20:10:43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닌텐도가 소니와의 협업을 차버린 건 게임개발의 주도권을 소니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슈퍼패미컴에는 쿠타라기가 만든 사운드칩이 탑재됐지요.
쿠타라기가 야마우치에게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해가며 탑재하도록 설득한 이야기도 유명하죠.
당시로서는 오파츠급의 오버스펙을 자랑하던 좋은 칩이었고 후에 개량판이 플레이스테이션1에 탑재되기도 했지만 전 이게 슈퍼패미컴 게임의 개발 난이도를 엄청나게 높여버렸으며 슈퍼패미컴 게임을 개발하는데 소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운드칩의 문제는 당시 대세로 쓰이던 FM음원과 달리 샘플링 음원인 PCM이라는 겁니다.
지금 같은 세상은 죄 샘플링 음원을 쓰지만 바이트도 아니고 비트 단위에서 노는 롬팩 게임에서 샘플링 음원은 용량(단가)를 잡아먹는 범인이었고 그마저도 DMA를 지원하는 물건이 아니었던 관계로 제대로 된 소리를 내려면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다른 게임기들은 주파주 변조에 기반한 음원칩이 메인에 PCM은 보조적인 입장이었지만 슈퍼패미컴은 모든 소리를 PCM으로만 내야 했습니다.

슈퍼패미컴은 심지어 개발킷도 고가의 소니제 웍스테이션을 썼는데 아마 이 사운드칩 때문일 겁니다.
소니는 칩도 납품하고 슈퍼패미컴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들에 소니제 웍스테이션도 팔면서 남는 장사를 했지만 이렇게 개발환경을 소니에 의존하게 된 닌텐도는 불만도 많고 불안했을 겁니다.

WR
1
2022-01-21 20:14:57

그럴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여러가지 나도는 이야기중 하나가 소니가 본격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참여하려는 의사를 숨기고 있다가 들통나서 야마우치 회장이 분개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게임회사로는 닌텐도가 으뜸이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해도 결국 기업의 규모로 보면 소니의 상대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겠죠. 그리고 그게 지금 소니와 마소의 상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재밌는 부분입니다

1
2022-01-21 22:37:33

국산 스파 2가 DMA지원하기 전엔 음성 나오던 중간에 다른 음성이 나오면 무조건 먼저 나오던 음성이 끊어지던 기억이 나네요.

Updated at 2022-01-22 07:47:15
16비트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된 스파2도 슈퍼패미컴판을 제외하면 동일했습져.
묘하게 티가 덜 나도록 잘 이어붙이기는 했지만요.
메가드라이브와 PC엔진은 애초에 PCM을 1채널 밖에 쓸 수 없으니 뭐 당연했습니다만...

특이한 건 역시 사운드칩에 DMA가 안 돼서 PCM 소리가 찢어지던 메가드라이브와 달리 PC엔진은 패미컴의 리코칩을 개량한 물건이라 사운드도 CPU에 내장되어 있던 덕에 사실상 DMA가 가능해서 1채널 뿐이지만 PCM음원만큼은 또렷하게 들렸습져.
(패미컴도 사운드는 CPU내장, 무려 PCM도 지원...)
2022-01-21 20:23:56

좋은 글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WR
1
2022-01-21 20:26:01

감사합니다 

2022-01-21 20:35:39

정말 이런 정성 글에 추천 한 개밖에 못 드려 미안할 정도입니다.

덕택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WR
Updated at 2022-01-21 20:40:19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2022-01-21 20:49:04

디피는 눈팅만해도 식견이 풍부해지게 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WR
1
2022-01-21 20:53:05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1-21 21:04:34

선추천 후감상하겠습니다. 정독해야죠. 감사합니다 좋은 글.

WR
2022-01-21 21:17:41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2022-01-21 21:32:36

넷플릭스 '하이스코어' 강추 합니다!

84년부터 시작한 겜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더라고요!

WR
2022-01-21 21:33:44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한번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2022-01-21 21:42:42

순식간에 정독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ㅎㅎ
PS3 발매때쯤 소코에 근무했던적도 있어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추천 꽝!! 하고 갑니다^^

WR
2022-01-21 22:14:5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22-01-21 21:50:06

새턴과 플스 사이에서 고민하다 선택의 결정적인 원인이 철권1이였죠
그 오프닝의 충격이란...그시절의 남코가 좋았어요
그리고 전 슈패미도 메가드라이브도 아닌 피씨엔진 파 였는데
PC-FX가 그 모양으로 나올줄은...발매게임이 50개는 되려나요

WR
2022-01-21 22:15:53

PC-FX 나름 광고 할때는 좋았는데 막상 열어보니 그냥 동영삼 보면서 버튼 누르는 기기였죠. 그래도 그보다 더한 삽질을 한 애플의 피핀도 있으니 위안을

2022-01-21 21:48:12

곧 정성글로 등록 되겠네요.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22-01-21 22:16:1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1-21 22:39:14

멋진 글입니다 ^^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남과 더불어 몰랐던 사실들도 부가되어 너무 즐겁네요.

저는 3D 격투도, 파판 시리즈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파판 7이 보여주던 마법 연출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WR
2022-01-21 22:42:11

당시는 게임에서 좀 멀어졌던 시기라 플스도 사질 않아서 그 감흥을 제대로 느끼진 못했습니다. 대신 나중에 온갖 매장에서 아주 지겹게 틀어주던 파판8의 eyes on me가 더 기억 납니다

2022-01-22 00:01:10

땡삐 감자핫도그 굴다리 용던 전자랜드지하가 떠오르는 글이네요.근래 이렇게 긴글 잘 안읽는데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WR
2022-01-22 05:52:51

지방에 살던 저도 방학때 서울 친척집 놀러와서 용던에 방문했다가 눈탱이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Updated at 2022-01-22 00:03:08

어릴때 이 이야길 들었을땐 꿈과 희망이 넘치는

일본 게임산업의 환상 같은 이야기 였는데

나이 먹고 게임판에 들어가 현업에서 일하면서

다시 복기해보니 그냥 욕망의 항아리였더군요.
독선과 아집과 기득권의 싸움판이었달까...


그리고 세월이 지나 게임판을 떠나서  이글을

읽어보니 저렇게 치고받고 싸울걸 저 회사들이

일찌감치 손을 잡고 플랫폼 개발을 했었다면

지금 전세계 게임판 판도가 달라져 있을텐데

라는 생각부터 드네요. 

WR
2022-01-22 05:54:45

지나고 나서 보면 다 그런거 같아요.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세가가 일지감치 소니와 손을 잡았다면 닌텐도가 닌텐도64의 매체를 CD로 했었다면 세가가 버파를 기점으로 완전한 3D를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했다면 어땠을까? 싶죠. 그야말로 WHAT IF? 지만요.

2022-01-22 00:02:33

하지만 PS2 구라까기로 세가 드캐의 생명줄을 끊은 소니는 나의 원수!

마지막줄은 다 TSMC 때문이다 마 이렇게 생각합니다.

WR
2022-01-22 05:56:47

하하 그래서 구타라기 별명이 구라까기였죠. ps2 마케팅은 구라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DVD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선점 효과도 매우 커서 자체 미디어를 고집하던 세가의 고집이 또한번 발목을 잡은 셈이 됐습니다

2022-01-22 03:49:36

 저는 몸안에 게임 유전자가 없어서 수많은 게임기를 신문물이라는 이름으로 사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 본 게임이 거의 없습니다. 덕분에 제 아이들만 신이 났었죠. 온갖 신형 게임기가 사달라고 안 졸랐는데도 집에 척척 생기니.. ^^  그런데 이런 게임기 보유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플레이스테이션 1 이 발매된 후 일어납니다. 당시 저는 동생에게 선물을 사줘야할 일이 있었고 당시 이미 20대였던 동생은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달라는 말에 아마 35만원쯤 주고 사줬던 것 같습니다 (90년대 초반?).

 

나중에 집에 동생이 게임기를 가지고 와서 릿지레이서와 철권을 돌리는데 그야말로 신세계더라구요. 3D 라는게 이렇게 실감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 두게임을 동생이랑 너무나 재밌게 했었습니다(그리고 동생이 집에 간 이후에는 뭐.. 더 이 게임을 하는 일은 없었지만요 ^^).

 

플레이스테이션이 이렇게 비게이머인 저같은 사람에게도 이런 충격을 주었으니 시장의 반응이 어땠을지 기대가 됩니다. 거의 한편의 책에 가까운 재밌는 이야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혹시 '게임마켓 1983' 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는지요? 키노님 글 덕분에 그 책도 생각이 나네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전설의 게임 개발자가 되는 이야기. 정말 재미있더라구요.

WR
2022-01-22 05:58:29

샴페인님 자녀 분들은 축복 받았네요. 게임기 잘 사주시는 아버님 덕분에요.  오래전 저도 재믹스V를 사기위해 식음을 전폐한 농성 끝에 성공했고 그게 30년 넘는 겜돌이 인생의 시발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게임마켓 1983 기억해 두겠습니다

2022-01-22 09:16:24

팩트를 위해 말씀드리자면 제가 사준게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산건데 안하니까 자녀들이 하는거죠. 그게 그거인가요? '게임마켓 1983' 은 안 읽어보셨으면 한번 고려해 보세요. 저처럼 게임 역사를 모르는 사람도 굉장히 재밌게 봤거든요. 게임의 역사를 환히 꿰고 있는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서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인데 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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