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예술가들의 비틀린 정신세계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요 얼마간 에릭 클랩튼의 백신 거부 문제와 더불어 인종차별 얘기도 불궈지는 거 같은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알지 못했던 것 같네요. 이제라도 알게 되서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예전에 에릭 클랩튼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 얘기를 알게 된 다음엔 '엥? 블루스를 하는 사람이 흑인을 혐오한다고?'라는 기괴한 상황에 경악했죠. 이건 판소리를 하는 외국인이 한국인을 혐오한다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건 백인이 흑인을 기술적으로 착취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예전처럼 그의 음악을 즐겨 듣지 않게 되더군요. 에릭 클랩튼의 음악에는 음악적 감동이 있지만 그건 결국 굉장한 기술장인의 영혼까지 베낀 음악이 아닌가.....
그런데 에릭 클랩튼처럼 비틀렸지만 영혼까지 흔들 수 있는 초고수급 기술장인들이 예술계에는 꽤 있습니다. 우리 문학계에는 대표적으로 서정주가 있죠. 서정주의 시들은 아름답습니다. 현대 한국어의 극한을 추구한 그의 시들은 한국어를 모어로 삼는 사람이면 누구나 훌륭한 감정적 울림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과도할 정도의 권력 부역자였습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텐데 그랬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는 일제시대부터 전두환 시대까지 일평생을 권력에 굽신거렸죠.
일본에는 미시마 유키오가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아주 독보적인 우익 천황주의자였던 그는 할복 자살로 자신의 삶을 괴상하게 끝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쓴 작품들은 번역문을 뚫고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탐미적입니다. 서브컬처로 가면 얼마전에 경계를 넘어선 성적 상상력과 골수 우익 추종으로 우리나라 가이낙스 팬들을 엄청나게 실망시킨 사다모토 요시유키도 들 수 있겠군요.
사실 예술가들이 비틀린 정서를 갖게 되는 경우는 아주 자주 보게 됩니다. 비틀린 판단력도 마찬가지로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들의 예술적 미학에 일정 수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마이너한 정서에서 빚어내는 독자적이고 독특한 스타일과 보편 정서의 황금률은 아티스트가 가진 색깔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곤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에릭 클랩튼의 이중적 면모, 서정주의 굴종적 면모가 그들 작품 세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그렇기에 더 거부감이 드는 면도 있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2007년까지도 자신의 과거 인종차별 발언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그 발언에 대한 수정은 듣지 못했고, 사람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대로 들었으니 안 바뀐다고 이상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뭐 그렇게 살라고 하고, 중요한 건 저를 포함한 소비자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봤다가 그 거죽 너머에 있던 실체를 알고 급격하게 밥맛이 떨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살다 보니, 그들의 작품이란 게 그리 독보적이고 독자적이어서 없으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이 점점 줄어들더군요. 왜냐하면 그들의 탁월한 작품들은 물론 대단하지만, 그만큼 대단하고 또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작품들도 DB가 쌓이다 보니 많이 있더라는 겁니다. 또한 그들 정도로 지속적인 성과를 내진 않았어도, 무명이거나 상업적으로 묻힌 아티스트지만 작품 중 일부는 그런 성공한 아티스트가 거둔 성과만큼 훌륭한 결과물들이 있어서 발견하고 즐기게 되기도 합니다. 골아픈 사람들을 제낀다고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끔, 좀 더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긴 거죠.
이러한 상황은 현대인들이 가질 DB가 커지고 누릴 게 많아진 만큼 갖게 된 편의인 듯합니다. 그래서 덕분에 이런 흑역사나 흑화된 문제들을 접하게 되도 과거보다는 덜 신경쓸 수 있게 되더군요. 물론 기분이 별로인 것과 그들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에 생채기가 난 것은 안타깝지만, 그런 정도의 생채기는 받아들여야 하는 게 또 나이가 들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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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