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993년 홍콩 여행
제가 가장 처음으로 간 여행지가 홍콩이었고 1993년이었습니다. 케세이 퍼시픽을 타고 갔는데 왜 홍콩 항공이 Air Hong Kong이나 Hong Kong Airlines가 아니라 Cathay Pacific인지 의아했었죠. Cathay가 역사적으로 유럽권에서 "중국"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은 아주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거란족을 뜻하기도 했죠. 당시에는 순전히 영어로만 된 것 같은 항공사 이름이 더 이국적이고 뭔가 더 서양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김포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지금은 사라진 카이탁 공항으로 도착했는데, 비행기 바로 아래에서 홍콩 시내가 보이자 덜컥 겁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이렇게 낮게 날아도 되는 걸까. 이거 건물에 부딛히지 않나?
밤에 도착했는데, 숙소도 예약 안하고 왔습니다. 당시엔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화나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하곤 했는데 가난한 학생이라서, 그리고 전화 영어도 자신이 없어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총 여비로 홍콩달러를 조금만 환전해와서 꽤 빡빡하게 아끼면서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PC통신에서 들을 바대로 미국 달러도 가져왔는데 (원화->홍콩달러보다 원화->미국달러->홍콩달러가 더 환율이 좋음) 그것도 얼마 없어서 역시 아끼면서 다녔습니다.
일단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버스를 탔는데, 비용이 한국의 공항버스 가격의 2배 정도였습니다. 물가가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숙박비 등이 비싸서 충킹맨션에 있는 저렴한 숙소에 묵었습니다. 밖은 슬럼가 건물같은데 안에는 상당히 깨끗하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서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음식값이 한국보다 싸더군요. 당시 한국에서 서울시내 일반적인 한식집에서 육게장, 냉면 같은 음식이 2000-3000원 사이었는데, 홍콩에서는 스트리트 푸드는 말할 것도 없이 싸고, 일반적인 식당에서 먹는 우육탕면 등이 1000원 정도였습니다. 고기도 많아서 배부르게 먹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맥도날드도 한국에서는 (학생기준으로) 꽤 비싼 곳이었는데 홍콩에선 그 절반 가격정도였죠.
서울과 여러모로 많이 비교를 했는데, 확실히 외국인(백인, 흑인, 인도 및 남아시아인)이 길에 많은 것이 서울보다는 더 국제화된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빌딩들도 더 높고 호화스럽고, 야간에 네온사인도 장난이 아니더군요. 이야....여기가 말로만 듣던 홍콩이구나. 심지어 길거리를 지나는 젊은 여성들도 더 이쁘고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듯 했습니다.
공각기동대와 중경삼림 등이 나오기도 전이었고, 그런 애니, 영화에 나오는 약간 우울한 모습이 아직까진 홍콩에 겹쳐져 있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공원에 모여 태극권을 하시는 어르신들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어느 홍콩 아저씨 댁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배고픈 여행자에게 너무나 맛난 것들을 주셔서 아주 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에게 좀 대접해 주는 거다"라고 하시던데, 지금 그 아저씨는 어떠신지, 살아 계신지조차 모르겠네요. 연락이 오래 전에 끊겨서 말이죠.
그리고 홍콩은 아직 영국 식민지 시절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영어가 여기저기에서 매우 잘 통했습니다. 세상에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곳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홍콩은 스탑오버로 들리던 곳이었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비행기편을 탑승 3일 전쯤 전화로 리컨펌을 해야 했는데, 당시는 이 "리컨펌"을 하지 않으면 비행기가 취소되기도 해서 매우 긴장한 상태로 캐세이 퍼시픽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의외로 쉽게 했습니다. 한 가지만 빼놓고 말이죠. 원래 출발지가 어디냐고 물어서 "서울"이라고 했더니 못알아들어서 "한청"(漢城)이라고 했더니 알아듣더군요. "씨울"이 맞냐고 다시 묻길래 맞다고 한 기억이 납니다. 아직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중화권에서는 서울이 "한청"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말이죠.
다시 카이탁으로 돌아오니 전면 유리에 비행기들이 여럿 기착해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홍콩의 고층건물들이 보이더군요. 나름 장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 즈음에 홍콩을 다시 갈 일이 있었는데 상당히 많이 달라졌더군요. 일단 카이탁은 이미 사라지고 없고, 물가는 더 비싸지고, 특히 음식이 상당히 비싸더군요. 그리고 중국화가 많이 진행되어서 북경어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영어는 잘 안통했습니다. 1993년의 홍콩의 젊은 여자들은 아주 많이 새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2018년에는 어찌된 일인지 한국 여자들보다 수수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이 많이 발전한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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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몇번 갔는데 항상 침사츄이에 있는 쉐라톤, 인터컨티넨탈, 하얏트같은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홍콩은 중국에 넘어간후로 본토 관광객들 때문에 개판되서 더이상 매력을 못느끼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