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댓글에 상처 받았다면, "타인의 말이 객관을 보장하지 않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독선을 권하는 말이 아닙니다.
https://blog.daum.net/kjs4311/8518809
오늘 아침에 황현산님의 비평집 '말과 시간의 깊이' 중에서 [갇혀 있는 생명과 소모되는 생명]의 도입부를 읽는데, 80, 90년대에 한국에 프티 부르주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계급이 형성됐고 그들의 생활 감정, 자의식, 세계관이 사회적 표준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하더군요. 또한,
"그들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며 어떤 다른 방식의 삶이 자신의 안에서건 밖에서건 따로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다. 표준의 가치를 행사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의미와 기호를 무효화하고 모든 논의를 기이한 상대주의로 중화해버리는 그 태도에 있다." 부분을 읽으니 기성 문학과 예술이 당혹해 하는 부분이 수긍이 가더군요.
이들은 "결코 주눅이 드는 법도 없어서 어떤 '공갈'도 쉽게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확보된 생계의 여유로 몸짓을 가볍게 늘릴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청춘들이 매우 싼값에 유서 깊은 상표 하나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통찰력도 인내심도 없는 재능들의 기회주의적 태도에 변명할 거리를 만들어주기 십상이다."
황현산님의 말은 돌려까기인 것인가 직설인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네요. ㅎㅎ
제가 주목한 부분은 황현산님이 결론을 내려 제시한 일반 논거였습니다.
"객관성의 말은 수시로 변하는 한 자아의 형편 속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모든 타인의 말들, 모든 주관적인 말들의 집합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객관적이고 순결한 말, 곧 타자의 말을 바란다면, 이 주관성의 숲을 헤쳐나가며, 나의 주관성과 다른 주관성들과의 관계를 늘 다시 조절하며, 자신의 언어를 모험에 바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모든 주관적인 말들의 집합, 이거 디피 글들을 보며 평소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 숲을 헤쳐나가며 ~ 조절하며 ~ 자신의 언어를 모험에 바치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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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원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 아마도 직설이겠죠? 쁘띠 브루주아 계급의 특징에 대해서 정말 너무나 속 시원히, 그러나 날카롭게 비판을 하시네요. 저도 누군가에게는 그리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지금 저와 다른 삶의 가능성과 유익성에 대해 부정해 본 적은 없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겠습니다. 오히려 다른 삶을 꿈꿨다는 것을요. 정말 일찍 가신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