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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청각과 기억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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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5 13:09:23

사람을 포함하는 포유류는 아주 가는 (수백 나노미터 수준) 섬모의 움직임으로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포유류의 청각기관은 초소형, 고효율, 고감도의 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청각 능력은 많은 회원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종합적인 측면에서 현재 개발되어 있는 어떠한 음향센서나 진동센서들보다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람의 청각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건 사람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능 좋은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우리의 뇌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더구나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등 여러 센서를 통해 유입되는 다른 형태의 정보가 혼재하는 상태라면 더더욱 처리가 어려울 것입니다. 유입되는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래서 뇌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을 사용해 정보를 선택적으로 저장합니다. 뉴런과 시냅스라는 뇌조직에 정보를 저장하는데, 신경과학자들은 이것을 기억 엔그램이라고 부릅니다.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정보는 엔그램에 저장되는데, 시냅스가 장기 강화 (long-term plasticity, LTP)로 가면 정보가 기억이라는 형태로 오랫동안 저장되고 장기 약화 (long-term depression, LTD)로 가면 정보가 사라집니다. 장기 강화로 가기위해서는 프라이밍 자극 (priming stimulation)과 학습을 통해 시냅스를 강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정보는 3~5초의 짧은 시간만 지나면 사라지는데, 프라이밍이 부족하거나 지속적인 학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억이 어떤 형태로 형성되고 저장되는지, 어떻게 소환되는지, 어떤 엔그램이 기억에 선택되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만큼 뇌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해하고 있는 사실이 내일 다르게 설명될 수도 있으니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업데이트가 안 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회원님의 특수한 환경 때문에 perfect pitch를 얻으려 매일매일 학습하고 있다는 경험담을 봤습니다. 꾸준한 학습과 노력을 통해 0.5db의 차이도 구분이 된다고 하시더군요. 학습을 통해 시냅스가 성공적으로 강화되어 소리가 기억으로 저장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비슷한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소리를 구분하는 것도 학습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오디오 환경에서 같은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는다면 작은 변화를 알아 차릴 수도 있겠다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청음회를 가면 기기나 악세서리를 바꾸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음의 변화를 얘기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그 음악에 학습되어 있지 않고 그 음악이 기억되어 있지 않다면 변화를 알아차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기기나 악세서리를 바꾸었을 때 측정되는 데이터를 보여주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같은 맥락에서 청감 블라인드 테스트도 인간 기억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설계되었다면 좋은 검증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의 논쟁의 원인은 모두가 수긍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아직 없기 때문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령 무대가 깊어졌다는 표현을 한다면 어떤 측정방식의 데이터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모두가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소리의 기억 방식이 영상의 기억 방식과 강하게 연계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혀진다면 (단순한 가정입니다) 소리를 평가하는 기준도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부 제조사는 무협지 같은 표현을 통해 기술적 발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으로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런 업체는 퇴출되는 게 마땅합니다. 기술이 있는 제조사라면 소리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제시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의 기술과 지식으로 소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절대적이라는 인식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몇 가지 측정방식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감상하는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계속 던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지금의 데이터와 해석이 내년엔 부정확한 방식이라고 입증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과학이니까요. 객관적 데이터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자세와 새로운 기준이 더 정확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가 병행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게 더 중요한가를 따지기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이런 시각도 고려해 보시라는 의미에서 쓴 것이니 읽어보시고 도움되는 부분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잘못된 표현이나 기분나쁜 표현이 있다면 그런 의도는 아니고 제 표현의 부족함 때문이니 너그럽게 받아 들여 주십시오

 

그런데.... 여친이나 와이프의 달라진 게 없냐는 질문에 남자들이 사색이 되는 이유는 프라이밍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학습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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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2-05-25 13:53:46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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