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원작보다 나았던 영화들
아래 스티븐 킹의 소설, 『그린마일』에 관한 비평문을 쓰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입니다.
세상에는 픽션 원작이 있는 수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대체로 탁월한 원작인 경우, 영화가 원작을 뛰어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린마일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스티븐 킹의 영화들인 내 마음의 아틀란티스(Heart in Atlantis)도 그랬고, 쇼생크 탈출도 미세하게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이 나았던 것 같습니다.
에스피오나지 장르 영화 중 수작으로 평가받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영화도 꽤 좋았지만, 소설의 정밀함을 따라가기에는 족탈 불급입니다.
제가 미국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옥의 묵시록"(리덕스) 인데, 이 작품과 이 작품의 원작인 저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각각 다섯 번 이상식 읽고 봤지만, 영화가 원작을 따라가기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다만 영화가 원작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시 베트남 상황에 대해서 독창적인 해석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지만 말이죠.
역시 러시아 영화 중 제 개인적인 선호에서 최고를 다투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도 렘의 원작에 배하면 너무너 협소한 주제의식(좋게 말하면 집중된 주제의식)으로 원작의 빛을 상당부분 퇴색되게 했다는 생각입니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필립 카우프만의 동명 영화(한국 명: 프라하의 봄)도 정말 잘만든 수작이긴 하지만 원작과 비교하기는 어림도 없습니다. 사실 좋은 소설은 다른 장르로 변환하기 힘든 문장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영화화가 너무 형편없게 이루어진 작품들도 많아서 이 리스트를 계속 하자면 끝도 없겠고, 반대로 원작보다 나았던 영화는 뭐가 있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역시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한 다라본드의 "미스트"는 준수한 원작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훨씬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각색이 평범한 크리쳐 공포물을 너무나도 인상적인 비극적 아이러니로 바꾸어 놓았죠.
마리오 푸조의 원작을 영화화 한 코폴라의 "대부" 시리즈는 저는 미세하게 영화쪽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아마 그중 절 반 이상은 배우들의 공이겠죠.
스텐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도 아서 클라크의 원작보다 훨씬 나았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해 두고 큐브릭과 클라크가 공동으로 작업을 한 것인데, 큐브릭이 말했듯 클라크의 대책없는 낙관주의는 영화에 비해서 소설을 다소 가볍게 만든 점이 있습니다. 대체로 클라크는 "인도된 진화론"을 믿는 편인데, 이것이 사실 현대의 과학적인 세계관을 훼손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클라크의 원작은 현대 진화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론인 "자연선택론"을 거부한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이 점은 클라크의 거의 모든 소설이 가지는 문제점입니다.)
참, 제이슨 본 시리즈는 한 편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원작보다 영화가 최소한 5배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청준 원작의 "벌레 이야기"를 영화화 한 "밀양"이나 임권택이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서편제"도 영화가 나았던 것 같습니다. 두 편 다 짧은 단편이라 스케치 같은 느낌이 있는데 영화들은 거기에 충분히 설득력있는 디테일들을 더해서 더욱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 원작과 가장 큰 격차를 가지고 훌륭한 작품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원작으로 영화화된, 박동원 감독의 동명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원작 자체가 이야기의 힘은 있었지만 표절 시비를 얻은 작품인데다가 마지막 결말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지식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폄하의 시선이 있었거든요. 그러한 작품의 마지막을 비틀어 여전히 군사정권의 그늘에 있음을 암시한 결말은 정말 창조적인 각색이었다 생각합니다. 여러 분들이 생각하는 원작을 능가하는 최고의 작품은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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