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싱가폴의 아파트들
한국에서는 물난리가 났는데, 이런 거 올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관심있는 분들도 있을까봐서요.
싱가폴에는 다양한 형태의 부동산이 존재하는데, 단독주택도 있지만 이곳은 땅이 부족한 나라에 사는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곳이라 일반인들은 들어가기 힘듭니다.
그래서 다들 아파트에 삽니다. 그 아파트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주택공사에 해당하는 Housing Development Board (HDB)에서 만든 flat들이 있고 일반 사기업이 시공한 condo가 있습니다.
전자는 주로 매매 위주로 시장에 나오고, 렌트도 약간 나오는데, 외국인들이 들어가 살기 쉽지 않습니다. 렌트가 많지 않기도 하고, 외국인의 구매시에는 상당한 세금을 내야 하며, 나중에 팔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야지 팔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파트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싱가폴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노후가 빠르게 되고, 대부분 베란다(발코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벌레가 많이 살고 있어서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처음에 큰 바퀴벌레를 보고 기겁하는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당연하게 가격은 최근 많이 올랐음에도 저렴한 편입니다. 절대 가격이 저렴하다는 게 아니라 서울 등 세계 대도시 중심부의 집값에 비하면 그렇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은 주로 콘도에 살고 있는데, 이게 참 골때리는 주거 공간입니다. 일단 가격 자체가 엄청납니다. 매매, 렌트 둘 다 너무너무 비쌉니다. 뭐 이런 아파트에 그렇게 돈을 많이 쳐받는지 모르겠습니다.
비싼 가격에 걸맞게 이름도 참 섹시하게 지어놓습니다. 예컨데, The Marq on Paterson Hill, The King Grove, Thomson Impressions, Parc Vera, Parc Rosewood, Woodhaven, The Nautical, Casa Fidello, Orchid Park, Rivershire, Watertown, Haig Residences, La Vida, Rangoon 88, The Terrace, Austville Residences....구글 맵에서 검색해보면 다 나옵니다.
무엇보다 싱가폴 콘도가 대부분 다 공유하는 특징이라면, 헬스장과 수영장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런데 헬스장은 몰라도 수영장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이게 공간을 엄청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은 아파트 부지의 2/3가 수영장인 경우도 있습니다. 가보면 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각 동마다 하나씩 수영장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 수영장 때문에 관리비도 상당합니다.
만약 수영장을 없애버리고 가격을 좀 낮추고 관리비도 다운 시킨 콘도가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곳이 거의 없습니다. HDB flat에 사는 싱가폴인들 중에는 돈 벌어서 혹은 성공해서 콘도를 구매하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 많다더군요. 아마 그런 분들이 여유롭게 수영하며 럭셔리하게 사는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큰 수영장이 있는 주거 공간을 만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 더 마르크 언 패터슨 힐에 사는 사람이야"...랄까요.
그런데 이 수영장 딸린 비싼 콘도들도 그렇게 관리비를 많이 받지만, 싱가폴의 열대우림성 기후로 인해 노화가 꽤 빨리됩니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한국 아파트들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2016년에 지어졌다는 콘도에 사시는 어떤 분을 만나고 왔는데, 완공된지 6년밖에 안되었는데, 빗물이 흘러내린 자국과 곰팡이의 증식으로 건물들 모양이 그닥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콘도일수록 공간이 작게 나옵니다. 방들도 작고 주방은 더더욱 작습니다. 가보면 이런 작은 집에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받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새 콘도가 비싼데 면적은 코딱지만해요. 게다가 수영장은 넓은데 동간 간격은 좁아서 앞동의 일상이 다 보이는 곳도 많습니다. 아니 수영장 없애버리고 동간 간격 조정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최근 완공 콘도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민보다 "럭셔리 라이프"에 대한 욕망이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더 오래 있게 될 것 같은데, 집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적당한 정도의 돈을 주거비로 지불하고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은데 뭐 다들 이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그냥 다 업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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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동간간격, 건물간 간격 때문에 건물 사이에 빈 공간은 있을수 밖에 없고 싱가폴이 워낙 더운 나라라 수영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