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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단상] 기억에 남는 데이터 복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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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09:30:51


이곳에 들어오시는 분들이라면 많은 분들이 가까운 지인의 컴퓨터의 갑자기 사라진 데이터를 복구하기위해 도움을 드린 경험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얽힌 이야기들도 많을 것이구요, 저도 그 중 기억에 남는 하나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글 중에 많은 분들이 아실만한 분이 등장을 하는데 편의상 A 혹은 그녀라고 칭하게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실명으로 유명인의 이야기를 썼다가 본의아니게 여러 매체에 인용이 된 원치않는 경험이 있어서 그리하였습니다. 그냥 이곳 프차에서 몇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고 검색을 통해서 나오는 글이 되기를 원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물론 글을 읽으시면 누군지 금방 아실 수 있는 그런 분입니다. ^^;; 글의 성격상 경어체가 아닌 낮춤말로 쓰게 됨을 양해하여 주십시오. 저도 처음으로 경어체가 아닌 글을 쓰게 되지만 이렇게 해야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 개인적으로는 그 분을 사석에서 선생님으로 부르지만 여기서는 글의 문맥상 그녀라고 부르는 것을 그 분도 양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 그럼 본론으로..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동아리 등의 모임 후 어느 뒷풀이에서나 늘상 빠지지 않는 행사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순서였다. 지금이야 노래방이 있으니 이런 일이 없겠지만 그때만 해도 한 사람이 서서 노래를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히 소주를 기울이며 관심없이 각자 떠들다가 노래가 끝날라 치면 무조건 박수를 치는 그런 분위기는 캠퍼스 주변이면 어디서나 흔한 풍경이었다. 그때가 80년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이었고 이때 혜성같이 가요제를 통해 등장한, 놀랄만한 가창력을 가진 작은 몸집의 여가수가 부른 노래는 그야말로 국민가요라고 해도 될만큼 번져나갔고 이러한 뒷풀이 모임에서 그녀의 노래를 제대로 흉내(그녀의 노래는 도저히 똑같이 부를 수는 없었다 ^^)내는 학생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스타가 되곤 했었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저물어 갔고 그녀 역시 계속해서 쉬지 않고 히트곡을 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가수로 위치를 굳히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가창력하면 언제나 첫손에 꼽히는 대형가수가 되어 있었다.

그 후 거의 25년, 치기어린 대학생 시절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미국의 어느 자그마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추억의 한장을 장식해 줬던 가수가 그리 멀지 않은 같은 동네에 살게 된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꽤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쌍동이로 이루어진 두개의 도시 합쳐서 인구가 10만 남짓한 소도시에 그야말로 전설이 아닌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한국 가수가 와서 살게된 것은 나름 작은 도시의 흥미로운 가쉽거리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직장과 집 그리고 그때는 학위를 마치지 못한터라 주말이면 도서관에 박혀 살던 나에게는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이 되었고 가끔 쇼핑센터나 집 주변의 공원에서 아내와 우연히 스치는 일들이 있었던지라 이를 통해 이 전설적인 가수는 사람을 만나기를 꺼려한다는 얘기만을 들을 수 있었다.

가쉽도 몇달이지 어느듯 그녀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사라지고 이제 우리동네에 사나 하는 생각도 옅어질 무렵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부군 되시는 분과 안면을 트게 되는 기회가 생겼다. 작은 인연의 끈과 몇가지 일로 좀 더 A 씨 부부와 가까워질 기회가 있게 되었고 어느덧 저녁도 함께 하고 집에도 몇번 드나들 기회가 생기는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당시 A 씨 부부는 비교적 이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있는 편이라 누가 일부러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이곳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가 되었고 한국의 연예 매체들만이 미국에서 뭐하고 사나 유일하게 궁금해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부부와 함께 그 분 댁에 잠깐 들릴 일이 있었다. 내 차로 어디를 함께 다녀오던 길이라 차를 주차시키고 뒤늦게 차고를 통해 집으로 들어가다 보니 한쪽에 버려진 것처럼 놓여져있는 타워형 하얀 데스크탑 컴퓨터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컴퓨터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컴퓨터만 보면 다른 어떤 물체보다도 본능적으로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컴돌이인가 하면서도 곧 시선을 돌려 행여 찬 바람에 난방이 새어나갈까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에서 잠깐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그 컴퓨터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내게 되었다.

샴페인: 아까 들어오면서 차고에 덩그러니 컴 한대가 놓였있던데 뭐예요?
A 님 부군: 아, 그거? 고장난거야. 지난번에 침수가 되어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하실에 침수가 되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쓰던 데스크탑 컴퓨터가 망가져서 그냥 버릴려고 내다 놓았단다.

샴페인: 저거 누가 쓰시던 건데요?
A : 제가 음악 작업 하느라 쓰던 거예요.
샴페인: 음악 작업요???

예전에 컴퓨터로 음악 한답시고 컴퓨터로 이것 저것 해보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음악 작업'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갑자기 머리를 툭 하고 한대 얻어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샴페인: 그렇다면... 음악 작업하시던 데이터들이 있었을 텐데 그것들은 괜찮아요?
A : 그거요? 뭐 할 수 없지요.

시크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얘기를 하는 그녀 때문에 한번 더 놀랐다. 이메일 작성하다가 적은 몇줄만 키조작 실수로 날려먹어도 온갖 난리를 치는 나로서는 자기의 음악 작업 데이터를 잃어버리고도 할 수 없지 뭐 하고 관조적으로 얘기하는 그녀가 순간 참 대단해 보였다.

샴페인: 데이터가 별로 없었나 봐요.
A : 그렇진 않아요. 이것 저것 이곳에 있는 동안 작업한 것들이 다 들어있었어요.

으악..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고야 말았다. 이때가 벌써 그분이 이곳에 머문게 2년이 넘었을 때이니 그 작업량이 적지 않았으리라 예상하는 것도 그리 무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응접실에는 자그마한 사이즈의 그랜드 피아노가, 몇개의 방으로 꾸며진 지하에는 한 방에는 드럼이, 다른 방에는 노래방 기계가 설치된 걸로 봐서 음악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을 그분을 생각해 보면 뭔가 중요한 데이터들이 있었으리라고 혼자 짐작해 보았다. 더구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게 어느정도 결정이 되면서 당시 14집을 준비하고 있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터였다. 무료하고 할 일 없는 이곳에서 편안하게 음악 작업을 해왔을 것임은 누구라도 짐작을 할 수 있었으리라.

오케이, 샴페인의 트레이드 마크 1번 오지랍 발동..

샴페인: 제가 한번 저 컴퓨터 복구해 볼까요?
A : 그러실 수 있겠어요?

당시 나는 그 분의 남편을 '선배님'이라고 불렀었다.

샴페인: 선배님, 제가 한번 저 컴퓨터 가져가서 들여다 볼께요.
A 님 부군: 그래? 너 고칠줄 아냐? 그러던지..

부부의 무관심속에 버려져 있던 차고 한쪽의 타워형 컴퓨터를 훌쩍 들어서 차에 싣고 돌아왔다. 버릴려고 내 놓았던 터라 어쩌면 며칠만 늦게 봤어도 그냥 사라졌을 그런 컴퓨터이다 (우리 동네는 쓰레기 픽업을 일주일에 한번씩 한다). 안되면 옵티컬 드라이브라도 건져서 중고로 써야지 하는 심정으로 들고 왔다. 물이 들어갔다면 메인보드나 그래픽 카드 그리고 메모리들은 복구불가능한 데미지를 입었음이 분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하드디스크를 떼어서 내 컴퓨터의 SATA 용 하드디스크 케이블에 연결해 보니 인식이 안된다. 그러나 플래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고르게 나는 것을 보니 하드웨어는 살아있는 듯 했다. 아마 어떤 이유에서든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생긴 듯 했다.

개인적으로 쓰는 몇개의 복구툴을 차례로 돌려보니 '브라보!' 파이널 데이터에서 하드디스크에 있는 파일목록을 좌르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사실 모든 파일들을 다 복구할 필요는 없는 듯하여 조심스럽게 음악 데이터로 보이는 것들만 복구하기로 했다. 다행히 예전에 어쭙잖게 음악 소프트웨어들을 만지던 경험이 있어서 어떤 것들이 음악 데이터라는 것은 짐작이 가능했었고 주욱 화면에 펼쳐지는 음악 데이터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나즈막하게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파일들의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더의 수도 적지 않았고 그 중 하나의 폴더명은 다름이 아닌 요즘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가수와 연기자 그리고 국민 예능 프로그램 및 토크쇼에서 꽃미남으로 진가를 발휘하는 A 씨가 발굴하고 키웠던 슈퍼스타 L 군의 이름이었다. 아마 과거에 그를 위해 만들어 두었던 음악이었거나 아니면 그를 위해 만들어 두었던 음악이 아닌가 싶다. 파일의 날짜를 보니 제법 시간이 된 걸 보니 말이다. 파일의 확장자는 좀 생소해서 예전에 내가 쓰던 음악툴들은 아니지 싶었다.

조심스럽게 음악 데이터들만 살려서 가지고 있는 공 DVD 들 중에 그래도 제법 신뢰성이 젤 높다는 Verbatim 에 구웠다. 혹시나 이삿짐들 사이에 이거 무슨 CD 지? 하고 의아해 하다가 버려질까봐 예전에 증정 받았던 DVD 인쇄가 가능한 컬러 프린터로 DVD 표면에 제목과 내용을 정성스레 인쇄하고 한 오지랍 더해서 예전에 함께 식사를 같이 했었던 딸아이의 사진 하나를 컬러로 눈에 띄게 인쇄해 넣었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신 탓에 복구를 마치고 개선장군인양 의기양양하게 그 분의 집으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음악 데이터가 담긴 DVD 를 그 분의 손에 전해 드렸다.

A: 어, 이거 복구가 가능하던가요?

어느 정도는 기쁨에 가득한 얼굴로 맞아주리라고 예상했던 나로서는 살짝 미소가 감도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참 그녀답다고 생각을 했다. 많이 만나보진 못했지만 사석에서 만나는 그 분은 언제나 감정 표현이 지극히 절제가 되어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환하게 웃음을 잘 짓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옅은 미소 정도가 내가 볼 수 있는 전부 다였다. 덕분에 머쓱해 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국민가수의 사라질뻔한 귀중한 자산을 복구해낸 사람이 아닌가.

나는 약간은 수다스럽게 제법 곡들이 많던데 어떻게 이걸 그냥 포기할 수 있으셨냐고 침을 튀겼지만 그 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A: 그냥 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아... 다시 한번 경험하는 그녀의 시크함이라니... 저를 혹시라도 기억하시라고 딸아이 사진도 컬러로 인쇄해 넣었다고 얘기하는 나에게 그녀는 "좀 특별한 분이세요" 라고 짧은 말과 함께 조금은 더 큰 미소를 날려주었다.

A: 이거 신세를 어떻게 갚죠?

고마우셨긴 했나 보다. 당시에 떠날 날을 며칠 앞두고 있지 않았기에 당장 저녁이라도 한끼 얻어먹을 수 있기는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감사 말에 무심코 나온 나의 대답은 지금 생각해도 온 손발이 다 오그라들 정도이고 어디다 얘기하기도 부끄러운 멘트였다.

샴페인: 이미 대학시절에 저에게 좋은 음악으로 갚아주셨어요.

아.... 이 글을 읽으실 여러분들께 사죄를 구한다. 왜 그랬지?

다행히,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음악 데이터는 모두 무사히 복구가 완료되었고 그 후 한번 쯤 더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녀는 그녀의 팬이 기다리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녀의 14집이 발매가 되었고 시간상 분명히 내가 복구한 데이터들은 그 앨범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복구를 완료한 시점에서 곡 선정은 이미 끝났던 단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15집에는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한국에 들어온다면 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일식집에서 저녁을 사줄 것을 약속하고 돌아갔고 그 후 내가 한국에 들어갈 일이 없어서 아쉽게도 그녀에게 약속을 지킬 기회를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14집이 나오고 얼마 안있다가 바로 내 이름을 적어놓은 싸인 CD 를 미국까지 보내주었고 그 일은 이곳에도 소개한 적이 있고 내 블로그에 좀 더 자세한 버젼으로 소개한바 있다 (http://myusalife.com/25)

사실 내가 복구한 노래들이 앞으로 15집에 들어갈지 아닐지는 전혀 모를 일이고 설사 들어간다 해도 내가 그녀의 음악을 틀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도 못할 것이다 (왠지 그녀가 발표하지 않은 음악을 먼저 들어보는 일이 매우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또한 꽃미남 스타 L 군의 다음 힛트곡이 될지 아닐지 역시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어떤 데이터 복구 작업보다도 기억에 남아있고, 생각할때마다 흐뭇해짐은 아마도 유명인과 어떻게든 인연이 닿아있는 일이기에 좋아하는 나의 속물근성의 발로임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녀가 잊기전에 한국에 가서 정말 비싸다는 그 일식집의 저녁을 얻어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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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1-01-25 09:38:39

이선희와 꽃미남 제자라면 한명뿐이네요.
ㅋ 강심장과 일박이일....

WR
1
2011-01-25 09:50:01

하하하... 너무 강력한 스포일러시네요. ^^;;

1
2011-01-25 09:40:48

누군가 했는데 블로그를 보니 그분! 이시군요. ^^

WR
1
2011-01-25 09:50:31

녜 맞습니다. 그분이세요. ^^;; 롱팔이님 아래 Miracle9 님이 쓰신 글에 등장하시던데 보셨어요? ^^

1
2011-01-25 09:42:35

가요제를 통해 등장한 몸집 작고 노래 잘하는 여자가수가 있는데
그녀가 부른 노래는 국민가요가 될 만큼 인기가 있었고.....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요...거의 실명공개나 마찬가지십니다.ㅎㅎ
거기다 꽃미남 제자 L군 이야기까지.

아무튼 부럽습니다.

WR
1
2011-01-25 09:50:58

하하하. 그래서 제가 본문에 이니셜을 쓰지만 누구나 알 수 있다고 했잖아요. 정말 one of a kind 이신 분이죠.

1
2011-01-25 09:48:23

대놓고 이선희 이승기네요

힌트가 너무 강력하셨음 ㅎㅎㅎ

WR
1
2011-01-25 09:51:30

아니 이름을 안 썼는데 이렇게 강력한 스포를... 하하하...
녜 누구라도 아실 수 있는 분이죠.

이 글을 프차분들만 보셨음 해서요. ^^

1
2011-01-25 10:15:25

평생을 간직할 만한 멋진 추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부럽습니다~!

WR
1
2011-01-25 10:40:36

좋은 추억으로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맺은 좋은 인연이었지요. ^^

2
2011-01-25 10:19:01

이선희 씨란 사실이야 이미 예전 샴페인 님의 덧글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 :-)

오늘 신문을 보니 이선희 씨가 2월 초에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갖는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선희 씨와 관련된 기억 중 가장 강렬한 것. 박미경 씨가 다비다 뭐다 얘기를 들으면 각광을 받던 시절입니다. 특집 프로그램이었나? 아무튼 가수들 많이 나온 날이었어요. 과거 디바들과 함께 그녀가 노래를 부르게 됐습니다. 라인업. 전설의 대형가수 패티김-그리고 이선희-박미경. 패티김과 이선희의 무지막지한 성량이 압도를 하더군요. 박미경 씨는 마치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가운데 낀 일반인의 수준으로 느껴졌을 정도입니다. 얼굴에서도 당혹감이 느껴졌을 정도였고요.

앞선 공연을 보며 생각을 했죠. 패티김의 전성기 실력은 과연 어느 수준이었을까 궁금해졌고, 이선희 씨와 같은 경우 미군 부대를 돌면서 공연을 펼치며 내공을 기르던(말도 통하지 않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콘서트 징하게 하면서 가수가 된. 조용필 씨도 같은 케이스이죠?) 레전드들의 실력과 비교할 수 있는 가수였구나, 비디오 시대에 나온 가수들 중(메이저에 올라온 이들을 기준으로 삼아야만 하겠죠) 노래실력 그 자체로 경쟁력을 지닌 이들은 얼마나 될까 등등.

WR
1
2011-01-25 10:47:12

2월에 카네기홀 공연은 저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뉴욕은 제가 있는 곳에서는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하고 가지 못한다는 것도 당사자분들께 말씀드렸습니다. ^^;;

패티김씨도 정말 훌륭하신 가수시죠. 언급하신 분들 모두 가히 전설적이라고 할만한 분들이시구요. 저는 성악을 하시는 어머니가 항상 차안에서 패티김/채은옥/혜은이의 음악을 듣고 다니셔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패티김씨는 직접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이선희님은 정말 잘 하시죠. 제가 감히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지만 그건 다음을 위해 아끼도록 하지요. ^^ 요즘같이 가수가 방송에 나와서 자기 입으로 노래를 못한다고 고백을 하고 보는 저희들도 가수가 노래를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사회에서 언급하신 가수분들은 정말 가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는 대표적인 분들이시죠.

가수는 역시 노래를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1
2011-01-25 10:58:50

역시나 샴페인 님의 넓은 발이란! :-)

전 할머니가 된 패티김 씨의 소리를 들은 것이지만, 엄청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직접 성량을 듣고 놀랐던 가수는 패티김과 전인권 씨 두 명입니다. 참고로 이선희 씨는 직접 듣지 못해서. 소리 자체에 대한 호불호야 갈릴 테지만 이는 제가 생각할 필요는 없는 부분이니. 하핫~

저도 같은 생각합니다. 가수의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비디오형 가수를 보면. 음, 가수란 칭호를 붙이기 꺼림칙하다고 할까요?(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요는 전 가수가 아녜요란 말과 동의어임을, 그리고 부끄러워할 일임을 왜 모를까요? 축구 선수가 전 축구 못해요라 말하는 것과 동의어인데 말이죠. 비웃음 살 일이죠) 그리고 이선희 씨의 실력에 대한 사례 중 하나가 '한 레스토랑에 유명 성악가가 있었는데 그 앞에서 그녀가 노래를~' 아닌가요? 예전 덧글을 통해 읽었던 기억이 또 났어요. +_+b

그나저나 어머님께서 성악을 하셨단 말입니까?(전공을 하셨단 말씀이죠?) 그 나이대의 분께서 성악을? 상당히 놀랐습니다. ^^;;;

WR
1
2011-01-25 11:07:07

전인권씨는 들국화가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전에 그의 컨서트를 참 많이 봤었습니다. 1집을 발표하기 전에 이미 10번 이상 직접 본 것 같습니다. 뭐 1미터 코앞에서 정도라고 해도 될만큼요. 작게는 우리 학교에서 10여명 모여있던 곳에서부터 이태원의 라이브라는 카페 그리고 크게는 서강대에서 공연까지.. 여러가지 일로 인하여 목소리가 많이 망가지기 전의 신선했던 그는 정말로 대단했었습니다. 특히나 초기 드러머가 없었던 들국화의 (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3인 시절) 공연에서 노래가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드럼 스틱으로 심벌을 치던 그의 퍼포먼스는 아직도 뇌리에 쟁쟁합니다.

이선희님은 실제 세계 수준의 오페라 가수인 성악가를 제가 만나게 주선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뭐 굉장했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드릴 기회가 있기를.. ^^ 어머니는 음 성악을 전공하지는 않으셨지만 (예전 글에서 저와 직업이 같다고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 프로 수준의 분들이 설 수 있는 무대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홀 같은 곳)에 몇번 서신 적이 계시고 컨서트 경력도 많으셔서 그냥 저는 성악을 한다고 얘기합니다. 괜히 혼돈을 드린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의 가수는 점점 더 엔터테이너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얼마전 신승훈씨의 무대를 보면서 전율을 느꼈었습니다. 실력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가수가 노래를 잘하고 정치인이 정치를 잘하고 전문인이 자기 전문 분야에서 잘하는 걸로 각광을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회겠죠. ^^

1
2011-01-25 10:31:16

항상 적극적으로 인생의 모멘트를 맞으시는 샴페인님,

그 기를 좀 본 받아야 될텐데요. ^^

WR
1
2011-01-25 10:48:20

어휴, 제가 본받을게 무에 있겠습니까? 그져 조그만 일이 있으면 늘려 말하기 잘하는 탓이겠지요. 의연민단님이야말로 삶의 자세나 가족을 향한 사랑이나 제가 본받아야할 부분이 많은 분이시지요. 언제나 따뜻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1
2011-01-25 11:22:03

이선희님 볼때마다..'정말 아름답다'라고 생각되는 분인데..
샴페인님은..정말 부러운 추억이 많으시네요..^^
긴 글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WR
1
2011-01-25 11:32:04

저보다 더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 레마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사실 작년 9월 이후에 프차에 처음 쓴 글이랍니다. 몇가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너무 게으르고 또 글 못쓰는 병에 걸렸었더라지요. 그래도 이렇게 좋은 말씀 주시는 분이 있으니 허접하고 장황한 글이나마 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

1
2011-01-25 11:50:27

84년도 겨울쯤에 이선희님께 팬레터 보냈다가 답장을 받은게 아직 남아있습니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초창기 친필 싸인도 있지요.
벌써 26년전이군요......

WR
1
2011-01-25 11:53:18

우와.... 정말 오랜 팬이시군요. 더구나 친필 답장까지.. 여러모로
기억에 남으시겠어요.

그러게요.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1
2011-01-25 11:57:00

그땐 데뷔초기라 아마도 시간 나는대로 대부분 답장을 해주셨던것 같습니다.^^

WR
1
2011-01-25 12:00:41

그러한 열정이 더더욱 팬을 많이 모으셨던듯 합니다. 저도 팬들에게 무척 잘한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곳까지 미국 다른 지역에서 멀리서 오신 팬들에게도 정말 잘하셨었어요.

1
2011-01-25 12:26:02

일식집이 어디일지...
스시효면 저도 좀 델고 가주세요. ㅎㅎ

WR
1
2011-01-25 12:28:39

스시효 정도면 제가 기대를 않지요. ^^;; 나중에 다녀온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아직 모릅니다요. ^^;; 스시효가 아
님은 압니다만.. ^^

1
2011-01-25 14:30:23

재미있는 일화네요. 잘 봤습니다.

며칠 전 미국에 있는 여동생(결혼 전에는 친여동생이나 다름 없었는데 이 녀석 유학가고 시집 가면서 연락이 뜸해졌었죠)하고 거의 3년만에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되서 통화까지 했었는데요.
깜짝 놀랐어요.
사는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일리노이주라고 동네는 말해도 잘 모를거라면서 얘기하는데 그 곳이 바로 '샴페인!!!'.
이상하게 반갑더군요. 객지에서 고향사람 만난 기분.
어! 나 거기 아는 분 있는데...아..직접 아는 분은 아니고 블라블라...

여동생이 자기가 아는 분일지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암튼 재미있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두 분이 아는 사이 이실지도 ㅎㅎ

WR
1
2011-01-25 22:24:17

해인종석아범님 반갑습니다. 정말 아무로 모를 수 있는 이 도시를 저 때문에 기억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쩌면 아는 분이실 수도 있겠네요. 저도 이 일로 해인종석아범님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겠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WR
2021-12-27 10:46:19

 본문 중에 링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게 하나 있어 추가합니다.

https://myusalife.tistory.com/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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