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단상] 곽정환 서울극장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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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3-11-08 18:16:57
http://search.daum.net/search?w=tot&nil_profile=ie&ref_code=ms&q=%EA%B3%BD%EC%A0%95%ED%99%98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네요. 충무로로 지칭되는 한국 영화의 구 시스템을 상징하던,
그리고 제 20대 시절 기억의 어두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이 갔군요.
부고 기사들에도 나오지만 1995년에 씨네21 창간 당시 뽑은 한국영화 파워 100인 중 1위를 차지했던 이죠.
1998년 CGV 개장 이후로 영화관에 가보시기 시작한 분들은 대체 왜 시내의 그저 그런 극장의 대표가 한국영화 파워 1위였는지 절대 이해하시기 어려울 거예요.
또, 서울극장 전성시대에 영화를 보셨던 분들도 단순하게 서울극장이 가장 큰 극장이고, 상징적 극장이라 파워 1위였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구요.
그것도 약간의 이유가 되긴 하죠. 영화 개봉 당일에 서울극장 앞이나 그 옆 커피숍, 골목길의 선술집들에는 영화관계자들로 가득했습니다.
개봉 당일 서울극장 매진 속도를 보면 이 영화가 몇 만 가는지 다들 예측이 가능하던 시기였으니까요.
당시 영화 비디오테이프의 가격은 세 가지였습니다. 극장 미개봉작, 극장 개봉작, 그리고 서울극장 개봉작이 가격이 달랐죠. 당연히 서울극장 개봉작은 겉표지에 커다랗게 서울극장 개봉작이라고 써 놓았구요.
그러다보니 듣보잡 영화를 서울극장 조조 1회나 심야 1회 상영 후 서울극장 개봉작이라고 붙이고 (영화정보가 부족한) 시골 비디오가게에 비싸게 팔아먹는 일종의 기만행위가 많았습니다.
---------------
그러나 곽회장이 당시 파워 1위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전국의 배급라인을 전부 쥐고 있었다는 겁니다.
며칠전에 일본의 외화 개봉시기가 왜 이리 늦나는 질문이 올라왔고, 그 가장 큰 이유가 일본이 3대 배급라인이 외화 배급을 장악하고 있어서 이들간의 담합과 경쟁 때문이라는 답변이 있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곽회장의 서울극장 라인이 사실상 독점 배급라인이었어요.
당시 디즈니, 20세기 폭스, 워너, 그리고 당시 꼬붕(?)으로 데리고 있던 (무려 씨네21파워랭킹이 곽회장에 이어 2위였던) 강우석의 씨네마서비스의 배급권을 모두 쥐고 있었으니...
(씨네마서비스 사무실이 서울극장 안에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극장이나 어느 영화를 죽이려면 그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극장에 메이저 영화사 영화 안 주면 영화관 고사.
어느 영화 개봉할 때 같이 대작영화 붙여버리면 영화 폭망이었죠.
실제로 동대문상가쪽에 (자신과 사이가 안좋았던 모 영화사 대표가) 멀티플렉스를 만들었을 때 그가 영화수급을 다 끊어버려서 8개 관 중에 6개가 똑같은 영화를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죠.
메이저 수입사들도 곽회장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습니다.
극장계에서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데,
타이타닉 개봉당시 역대 최다관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특히나 서울극장에서는 다른 극장에서 다 내려간 후에도 계속 개봉했었습니다. 관객이 거의 안들어도 계속 상영했죠. 왜였는지 아세요?
영화관에서 입장료를 받으면 나중에 이를 영화사와 정산하게 되쟎아요.
(이 때 나누는 비율을 부율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CGV가 토르2에서 그 부율 때문에 분쟁이 벌어진거죠)
근데 서울극장은 이걸 중간에 정산해주지 않고 극장개봉이 끝난 시점에서 일정기간 후에 정산해주기로 20세기 폭스와 계약이 되어 있었던 거죠.
당시가 1998년... IMF를 맞아 이자율이 20%에 육박하던 시기였습니다.
대단하죠? ^^
-----------------------------
그럼, 제가 20대에 곽회장과 가졌던 악연은 뭘까요.
당시 저는 지금은 없어진 삼성영상사업단의 영화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었죠. 정확히는 극장운영팀에 있었습니다.
당시 사업단은 (그래비티 개봉당시 다시 또 언급이 되는) 전설의 극장 씨넥스를 갖고 있었고
(그리워요T.T 그래비티를 씨넥스 맨 앞자리에서 봤어야 하는데...)
서울극장의 2개관을 임대하여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극장이 총 7개관이었는데, 삼성 2개관을 일개 신입사원인 제가 총괄운영했습니다.
곽회장(과 그 부인인 왕년의 인기배우 고은아 부회장)이 보기에 얼마나 만만해 보였겠어요.
영화 현수막을 걸자고 하면 사람들 안보이는 구석에 대강 걸어놓고,
팜플렛을 보내주면 자기네 팜플렛을 위에 놓고 우리영화는 사람 눈에 안띄는 밑에다 대강 박아넣거나 아예 전시도 안하고,
똑같은 영화를 우리쪽 관과 서울극장소유 관에서 같이 하면 우리쪽 시간표를 나쁜 시간대로 배정하고...
뭐 차별과 멸시가 한도 끝도 없었죠 ^^
결국 참다 못한 제가 20대의 치기로 어느날 사무실을 찾아가서 한국영화계 1위,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곽회장을 정면으로 치받았습니다. 이렇게 운영하시는 것은 불공정한 거 아니냐고.
생전 보지도 못했던 애송이가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와서 이렇게 나오니 얼마나 황당(혹은 당황?)했겠어요.
온 식구(아들이 상무)가 이후로 저를 거의 사람취급을 안했죠 ^^;;;
(특히 부회장님의 연기가 아주 훌륭했죠. 제가 가서 인사를 하면 매 번 60년대 영화에 자주 나오는 연기 스타일로 "어머 누구~시더라?" 하며 모르는 체 ㅎㅎㅎㅎ 차라리 외면을 하지 매 번 저 반응 ㅎㅎㅎ)
당시 우리쪽 과장, 부장님들은 돌아와서 치받고 왔다고 보고하자 잘했다고 칭찬해줬죠.
사실 그 분들도 늘 서울극장에게 열받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이 굽히면서 차별을 감수해 왔던 터라,
젊은 제가 일종의 대리만족을 시켜드린 셈이니까요.
뭐, 나중에 항의가 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왔더라도 "젊은 친구가 뭘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하고 넘시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ㅎ
----------------------
악연은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주 초기에 DP에 한 번 썼던 일화인데... (예전글 링크)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더니 그 회장님 목소리...
"야, 이자식들아, 동판을 이따위로 내? 딴데도 아니고 니네가 이럴수 있어?"
대뜸 반말...황당하지만 일단 숨을 고르고 답했습니다.
"저, 누구신지요?"
"나, 곽사장이야, 자네 누구야? 최부장 대!"
동판이 뭐냐 하면...
예전 신문이나 잡지의 영화광고에 저렇게 아랫쪽에 보면 상영하는 극장들 이름이 쭉 나옵니다.
그걸 동판이라고 합니다. 아주 예전에는 동판에다 각 극장을 배열해서 인쇄를 했다고 하네요.
이게 근데 그냥 나열이 아니라... 극장 서열이라는 사실... 모르셨죠?
저 퍼온 광고에도 해상도가 낮아서 다른 극장 이름은 잘 안보이지만 서울극장은 왼쪽에 원체 크게 나와서 잘 보이쟎아요.
근데 당시 우리가 어느 영화를 개봉하면서 명보를 저 자리에 딱 박아넣고, 오른쪽 위로 서울극장을 돌린 거죠.
그랬더니 곽회장님 흥분해서 우리 부장님 찾은 겁니다. 엄한 제가 하필 그 전화를 받았던 거고 ㅎㅎㅎ
------------------
벌써 15년이 지난 일화들입니다. 이젠 거의 기억에서도 사라져가던 악연인데,
오늘 이 분이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니 문득 기억이 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네요.
그 15년 동안 그가 아예 관심에도 두지 않던 CGV는 거물중의 초 거물이 되었고...
서울극장은 반대로 쇠락을 거듭해서 이젠 거의 찾지않는 극장이 되었고...
영화 개봉일에 서울극장 앞에는 영화관계자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죠.
당연히 영화사들은 서울극장이 아닌 CGV, 롯데, 메박과 협상을 벌이고 있구요.
충무로 시절 영화판의 마지막 상징같던 인물이 이렇게 사라졌네요.
그 충무로 시절을 추억으로 기억하는 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20대 중반의 제가 기억하는 충무로는 정말 합리성과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시스템의 극치였어요.
영화계가 지금처럼 발전한 것도 그 충무로 시스템을 벗어난 덕이 크다고 생각하구요.
어찌되었건, 이제 가신 분을 너무 까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운 생각도 듭니다만,
돌아가신 분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남기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봤습니다.
그나저나, 영화는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전진하고 구시대 인물들은 역사가 되어 가는데... 에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네요. 충무로로 지칭되는 한국 영화의 구 시스템을 상징하던,
그리고 제 20대 시절 기억의 어두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이 갔군요.
부고 기사들에도 나오지만 1995년에 씨네21 창간 당시 뽑은 한국영화 파워 100인 중 1위를 차지했던 이죠.
1998년 CGV 개장 이후로 영화관에 가보시기 시작한 분들은 대체 왜 시내의 그저 그런 극장의 대표가 한국영화 파워 1위였는지 절대 이해하시기 어려울 거예요.
또, 서울극장 전성시대에 영화를 보셨던 분들도 단순하게 서울극장이 가장 큰 극장이고, 상징적 극장이라 파워 1위였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구요.
그것도 약간의 이유가 되긴 하죠. 영화 개봉 당일에 서울극장 앞이나 그 옆 커피숍, 골목길의 선술집들에는 영화관계자들로 가득했습니다.
개봉 당일 서울극장 매진 속도를 보면 이 영화가 몇 만 가는지 다들 예측이 가능하던 시기였으니까요.
당시 영화 비디오테이프의 가격은 세 가지였습니다. 극장 미개봉작, 극장 개봉작, 그리고 서울극장 개봉작이 가격이 달랐죠. 당연히 서울극장 개봉작은 겉표지에 커다랗게 서울극장 개봉작이라고 써 놓았구요.
그러다보니 듣보잡 영화를 서울극장 조조 1회나 심야 1회 상영 후 서울극장 개봉작이라고 붙이고 (영화정보가 부족한) 시골 비디오가게에 비싸게 팔아먹는 일종의 기만행위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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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곽회장이 당시 파워 1위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전국의 배급라인을 전부 쥐고 있었다는 겁니다.
며칠전에 일본의 외화 개봉시기가 왜 이리 늦나는 질문이 올라왔고, 그 가장 큰 이유가 일본이 3대 배급라인이 외화 배급을 장악하고 있어서 이들간의 담합과 경쟁 때문이라는 답변이 있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곽회장의 서울극장 라인이 사실상 독점 배급라인이었어요.
당시 디즈니, 20세기 폭스, 워너, 그리고 당시 꼬붕(?)으로 데리고 있던 (무려 씨네21파워랭킹이 곽회장에 이어 2위였던) 강우석의 씨네마서비스의 배급권을 모두 쥐고 있었으니...
(씨네마서비스 사무실이 서울극장 안에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극장이나 어느 영화를 죽이려면 그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극장에 메이저 영화사 영화 안 주면 영화관 고사.
어느 영화 개봉할 때 같이 대작영화 붙여버리면 영화 폭망이었죠.
실제로 동대문상가쪽에 (자신과 사이가 안좋았던 모 영화사 대표가) 멀티플렉스를 만들었을 때 그가 영화수급을 다 끊어버려서 8개 관 중에 6개가 똑같은 영화를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죠.
메이저 수입사들도 곽회장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습니다.
극장계에서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데,
타이타닉 개봉당시 역대 최다관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특히나 서울극장에서는 다른 극장에서 다 내려간 후에도 계속 개봉했었습니다. 관객이 거의 안들어도 계속 상영했죠. 왜였는지 아세요?
영화관에서 입장료를 받으면 나중에 이를 영화사와 정산하게 되쟎아요.
(이 때 나누는 비율을 부율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CGV가 토르2에서 그 부율 때문에 분쟁이 벌어진거죠)
근데 서울극장은 이걸 중간에 정산해주지 않고 극장개봉이 끝난 시점에서 일정기간 후에 정산해주기로 20세기 폭스와 계약이 되어 있었던 거죠.
당시가 1998년... IMF를 맞아 이자율이 20%에 육박하던 시기였습니다.
대단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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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20대에 곽회장과 가졌던 악연은 뭘까요.
당시 저는 지금은 없어진 삼성영상사업단의 영화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었죠. 정확히는 극장운영팀에 있었습니다.
당시 사업단은 (그래비티 개봉당시 다시 또 언급이 되는) 전설의 극장 씨넥스를 갖고 있었고
(그리워요T.T 그래비티를 씨넥스 맨 앞자리에서 봤어야 하는데...)
서울극장의 2개관을 임대하여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극장이 총 7개관이었는데, 삼성 2개관을 일개 신입사원인 제가 총괄운영했습니다.
곽회장(과 그 부인인 왕년의 인기배우 고은아 부회장)이 보기에 얼마나 만만해 보였겠어요.
영화 현수막을 걸자고 하면 사람들 안보이는 구석에 대강 걸어놓고,
팜플렛을 보내주면 자기네 팜플렛을 위에 놓고 우리영화는 사람 눈에 안띄는 밑에다 대강 박아넣거나 아예 전시도 안하고,
똑같은 영화를 우리쪽 관과 서울극장소유 관에서 같이 하면 우리쪽 시간표를 나쁜 시간대로 배정하고...
뭐 차별과 멸시가 한도 끝도 없었죠 ^^
결국 참다 못한 제가 20대의 치기로 어느날 사무실을 찾아가서 한국영화계 1위,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곽회장을 정면으로 치받았습니다. 이렇게 운영하시는 것은 불공정한 거 아니냐고.
생전 보지도 못했던 애송이가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와서 이렇게 나오니 얼마나 황당(혹은 당황?)했겠어요.
온 식구(아들이 상무)가 이후로 저를 거의 사람취급을 안했죠 ^^;;;
(특히 부회장님의 연기가 아주 훌륭했죠. 제가 가서 인사를 하면 매 번 60년대 영화에 자주 나오는 연기 스타일로 "어머 누구~시더라?" 하며 모르는 체 ㅎㅎㅎㅎ 차라리 외면을 하지 매 번 저 반응 ㅎㅎㅎ)
당시 우리쪽 과장, 부장님들은 돌아와서 치받고 왔다고 보고하자 잘했다고 칭찬해줬죠.
사실 그 분들도 늘 서울극장에게 열받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이 굽히면서 차별을 감수해 왔던 터라,
젊은 제가 일종의 대리만족을 시켜드린 셈이니까요.
뭐, 나중에 항의가 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왔더라도 "젊은 친구가 뭘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하고 넘시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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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은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주 초기에 DP에 한 번 썼던 일화인데... (예전글 링크)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더니 그 회장님 목소리...
"야, 이자식들아, 동판을 이따위로 내? 딴데도 아니고 니네가 이럴수 있어?"
대뜸 반말...황당하지만 일단 숨을 고르고 답했습니다.
"저, 누구신지요?"
"나, 곽사장이야, 자네 누구야? 최부장 대!"
동판이 뭐냐 하면...
예전 신문이나 잡지의 영화광고에 저렇게 아랫쪽에 보면 상영하는 극장들 이름이 쭉 나옵니다.
그걸 동판이라고 합니다. 아주 예전에는 동판에다 각 극장을 배열해서 인쇄를 했다고 하네요.
이게 근데 그냥 나열이 아니라... 극장 서열이라는 사실... 모르셨죠?
저 퍼온 광고에도 해상도가 낮아서 다른 극장 이름은 잘 안보이지만 서울극장은 왼쪽에 원체 크게 나와서 잘 보이쟎아요.
근데 당시 우리가 어느 영화를 개봉하면서 명보를 저 자리에 딱 박아넣고, 오른쪽 위로 서울극장을 돌린 거죠.
그랬더니 곽회장님 흥분해서 우리 부장님 찾은 겁니다. 엄한 제가 하필 그 전화를 받았던 거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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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이 지난 일화들입니다. 이젠 거의 기억에서도 사라져가던 악연인데,
오늘 이 분이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니 문득 기억이 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네요.
그 15년 동안 그가 아예 관심에도 두지 않던 CGV는 거물중의 초 거물이 되었고...
서울극장은 반대로 쇠락을 거듭해서 이젠 거의 찾지않는 극장이 되었고...
영화 개봉일에 서울극장 앞에는 영화관계자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죠.
당연히 영화사들은 서울극장이 아닌 CGV, 롯데, 메박과 협상을 벌이고 있구요.
충무로 시절 영화판의 마지막 상징같던 인물이 이렇게 사라졌네요.
그 충무로 시절을 추억으로 기억하는 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20대 중반의 제가 기억하는 충무로는 정말 합리성과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시스템의 극치였어요.
영화계가 지금처럼 발전한 것도 그 충무로 시스템을 벗어난 덕이 크다고 생각하구요.
어찌되었건, 이제 가신 분을 너무 까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운 생각도 듭니다만,
돌아가신 분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남기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봤습니다.
그나저나, 영화는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전진하고 구시대 인물들은 역사가 되어 가는데...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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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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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삼성이 약자일 때도 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