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DP 필자들의 2005년 베스트 10 DVD (1) - 홍성녕
1. - 미래 속의 과거, 과거 속의 미래, 그 영겁회귀 이 영화 속에 포착된 시간의 어떤 특수한 리듬은 예술영화들 가운데서도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한두 번의 감상으로 그 핵심이 쏙 빠지는 작품은 예전에 어떤 시인이 표현했듯 ‘창녀처럼’ 버려진다. 예술 영화라고 다 여러 번의 감상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을 매일 보라면 나는 아마 못 참을 것이다. 세상에는 처럼 그와 같은 절정의 화려함으로 시간의 무상함을 형상화하는 작품도 있다. 이 타이틀은 2005년에 가장 기쁜 일 가운데 하나였다. 기묘하게도 이 작품은 그 순진하고 착했던 의 차기작이다. 이후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차기작은 아직도 알쏭달쏭한 였다. 는 보다 훨씬 더 잔혹해졌고 더욱 팝(Pop)적으로 자극적인 영화이다. 그런데 왜 큰 관심을 얻지 못했을까? 팬들은 키타노는 야쿠자의 잔혹함 속에 피어난 휴머니티를 그리는 감독이라고 못 박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 영화의 살벌한 비장비 속에 깃든 기묘한 유머감각이 좋다. 일본에서 칼 맞는 양아치가 캘리포니아에 가서 ‘나와바리 잡다’가 총 맞고 죽는 것 사이의 차이점은 있을까 없을까. 에라, 일본 야쿠자나 미국 갱스터나 그 넘이 그 넘이렸다. 나는 개봉일에 관람하고 나서 나는 이영애 언니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다. 이 작품이 좋은 각본과 연출이 한 배우를 중요한 레벨에서 변화시키는 흔치 않은 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0년쯤 후에 이 영화를 보면 시큰둥할 지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2005년 즈음에 한국의 공기를 마시며 이 영화를 본다는 것에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박찬욱 감독이 최소 윤리의 방어 라인조차 무너진 한국 사회를 피로하는 방식이 그 어떤 2005년의 영화보다 좋았다. DVD 타이틀의 모양새도 마음에 든다. 잡다한 부록 많다고 좋은 타이틀인 거 아니잖은가. 1. - Colossus or Giant or Whatever! 서구의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 전통이 부럽다. 한국의 수퍼스타들은 어째서 숭배와 경외만을 받을 뿐 다각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운가.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대개 권력과 무관하지 않아 결국 추잡한 인상만을 남기기 때문이고, 양심적으로 산 인물들은 지나치게 매니아 취향이 되어버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밥 딜런도 브리트니도 동시대 우상들이었지만, 쉽게 비교는 하지 말지어다. 브리트니가 50대쯤 되었을 때 “Hit me baby one more time: Britney Spears”같은 다큐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운 바 있다.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이런 작품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교양을 섭취할 때는 좀 진지해야한다. 1. - 티 나지 않는, 무뚝뚝한 표정의 전쟁 시니시즘 우리는 전쟁을 미친 짓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에서 장동건은 자기 동생 하나를 살리기 위해 남의 집 자식들 수십 명을 죽인다. ’80년대에는 를 보며 ‘미제 물러가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를 보며 독일군 밀리터리 용품을 탐내기도 한다. 전쟁이 미친 짓이라는 이유는 그것이 선이거나 악이라서가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생짜 혼란과 파괴의 혼합이기 때문이다. 대략난감이 아니라 완전난감이래서 까무러칠 지경이다. 에서 시니시즘은 심장과도 같다. 코멘터리, 부록 모두 충실하다. 최근 전쟁물들이 훌륭한 점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 작품의 위대함을 평가를 해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지옥에 영웅들이 왜 가 있담? 지옥에는 죄인들만 가는 건데 말이다... 형식과 스타일이 메시지를 가동시켜 뭔가를 느끼게 해준다는 아이디어는 현대 예술의 화두였다. 그건 의식/무의식의 상관관계를 관찰하여 인간의 인지구조나 사고발달에 관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를 대략 모더니즘이라 부른다. 우리가 기억하는 스탠다드한 모더니즘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작품과 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면 그 차이가 재미있을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참 특이한 작품을 만들었다. 물론 딱 부러지는 뭔가는 없지만, 그것이 의 묘한 매력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일명 ‘떠도는 죽음의 연대기’라고나 할까. 영화평론가 정성일·허문영 공동 코멘터리도 귀한 보너스이다. 스타일과 형식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더 확장되어가는 시대이지만, 장-뤽 고다르 영화와 같은 작품들을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교양의 실종 때문이다. 교양은 지식검색창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팁들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교양은,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유엔진이 개인 속에 장착되어있느냐가 관건이다. 고다르 영화는 다시 봐도 대단하다. ‘찔러도 바늘 안 들어가는 영화’들이라 부르고 싶다. 변증법이 기계론적으로 사용되면 사람의 두뇌는 컴퓨터 CPU로 전락한다. 비판적 사유는 두뇌플레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 기백(spirit)을 발산케 해주는 메커니즘이다. 나는 구체적인 얘기들이 좋다. 나는 한국사회에 싫어하는 부분이 꽤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뭔가 있다는 듯이 감추는 태도이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교수님들도 이런 식이다. 현장에 나가서 당장 임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메뉴얼을 전수하는 곳이 학교라 한다면, (적어도) 요즘 문학계열 학과들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교수들이 자신들의 필드 체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려 하지 않을 때 학생들은 나중에 혼자서 모든 걸 감수해야한다. 나만해도 차라리 교수님들보다는 메탈리카나 너바나의 앨범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 그려진 메탈리카 멤버들은 치열한 생활인의 모습을 보인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싸우고 그러면서 어쨌든 작업을 마친다는 것. 이 영화에 밥 딜런·서태지 같은 신비주의는 없다. 솔직하고 리얼하다. 시대가 지나갈수록 윤리(라는 말 자체에 직업윤리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이 개인적으로 시큰둥했던 이유는, 모두 죽고 죽이는 거대한 파국을 배치하고서도 숙명적인 분위기가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이 에서 신의 의지와 개인의 비극을 주요 모티프로 사용했을 때의 그런 울림을 김지운 감독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어차피 처음부터 느와르였을까? 글쎄... 내게 은 에 들어있던 묘한 취향의 팝아트 학살극을 화려한 비주얼의 부조리 폭력물로 재해석한 영화로 보인다. 이 좋은 이유는 심플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아이러니 빼고는 복잡한 구석이 없다. 도시가 말을 하고, 숙명적인 분위기가 포스를 발한다. 뭐랄까, 싸나이의 로망을 쓸쓸한 측면에서 봤을 때의 에센스랄지 그런 것이 잘 담겨져 있다. 화질, 음질, 비주얼, 연기 다 좋다. 뭐가 모자랐을까? 모자란 것은 없었다. 과잉이 있었을 뿐이다. 한국 축구선수들은 월드컵에 나가서 좀 더 건방질 필요가 있다. 임상수 감독처럼 말이다. 임상수 감독이 이 영화로 ‘빅 게임’을 치렀다는 데 이의의 여지가 없다. 비록 패배했건만 내용까지 패배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이틀의 퀄리티, 모양새도 좋게 나왔다. 굳이 지금에 와서도 평가절하 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든 볼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 그 밖에 1차 후보로는 등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2006.01.06.)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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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자체만으로 베스트를 꼽은게 아닌 필자가 받아들이는 영화의 작품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둔게 리스트 선정 기준인 듯 싶네요. 잘 봤습니다 ^^
이 중 5편은 극장에서 봤던 영화이고, 소장 중인 타이틀은 3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