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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타는 록키의 연대기 (2) -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슬라이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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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3-21 22:25:09

글 | 김정대(antoine@unitel.co.kr)


불타는 록키의 연대기 #2


1. Against All Odds


마침내 프로젝트에 ‘그린 라이트’가 들어왔다. 슬라이는 그토록 염원하던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비록 저예산 영화이긴 하지만!)의 주연을 맡게 됐다. 하지만 (아주) 잠시 동안 ‘스스로 일궈낸 기적’이 가져다준 환희를 아내 사샤와 함께 만끽하던 슬라이는 곧 엄습해온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완전히 얼어버렸다. 그는 그때서야 ‘막연히 꿈만 꾸던’ 철부지 배우 지망생 시기는 끝났고, 이제 냉혹한 현실과 1:1로 맞서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라이가 곧 찍을 영화는 향후 그의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터였다. 만일 이 영화가 실패한다면 그는 예전과 같은 인생의 낙오자로 다시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바짝 긴장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니었다. (1편에서 언급했듯) 어차피 슬라이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인물이었으니, 영화가 실패작이 되더라도 별로 잃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집까지 저당 잡힌 제작자들(윙클러-차토프 콤비)이나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에이전트 및 여러 지인들은 상황이 달랐다. 영화의 성패여부에 따라 그들은 졸지에 ‘길바닥 인생’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판국이었다. 말하자면, 이 모든 이들의 향후 운명이 슬라이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어도(!)’ 성공작이 돼야 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됐다. 슬라이는 이렇게 굳게 다짐하고, ‘자신이 낳은’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 전반을 철저히 감독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슬라이가 <록키>를 통해 성공 신화를 써나가는 과정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듯’ 생생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끝나는 순간, 슬라이의 성공 신화가 결코 ‘운’에 의한 것이 아닌, 철저한 준비정신과 뼈를 깎는 노력에 의해 탄생한 것임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록키>는 저예산 영화였다. 빠듯한 촬영 스케줄과 제작비의 살인적인 압박 속에 영화의 제작을 성공리에 마치려면 빈틈없는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 슬라이를 도와 - 이 고된 작업을 총지휘할 유능한 ‘선장’을 뽑는 것이 급선무였다. <록키>의 감독은 다음 네 가지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인물이 맡아야 했다. 1) 저예산 영화 연출 경험이 풍부할 것. 2) 한 달 이내에 촬영을 ‘실수 없이’ 마무리할 정도로 작업 스피드가 빠른 인물일 것. 3) 한정된 예산을 경제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일 것. 4) ‘몸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물일 것. 헌데,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이 사람이었다.


☞ 존 G. 아빌드센 감독


존 G. 아빌드센. 1935년 생. 국내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록키> 외에 <베스트 키드 The Karate Kid> 시리즈, <파워 오브 원> 등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연출 성향이 독특한 ‘괴짜’ 감독이다. <록키> 이전에 그는 피터 보일이 주연한 <조 Joe>(1970), 잭 레몬이 주연한 <호랑이를 구하라 Save the Tiger>(1973) 등의 수작 저예산 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 세상에 ‘제작비의 압박’을 달가워할 영화감독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빌드센 만큼은 예외였다. 한마디로 그는 ‘저예산 영화를 위해 태어난 사나이’라 할 만 하다.


☞ 존 G. 아빌드센이 감독한 1973년 작 <호랑이를 구하라>. 잭 레몬은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아빌드센은 쥐꼬리만 한 제작비를 200% 활용해 ‘제법 그럴 듯 해 보이는’ 규모의 영화를 찍어내는 데 명수일 뿐만 아니라,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라고까지 알려져 있다. 예컨대, <록키>의 메가폰을 잡기 직전에 연출했던 작품 <W.W. 앤 딕시 댄스킹 W.W. and the Dixie Dancekings>(1975)과 관련하여 그는 ‘도저히 믿기 힘든’ 괴소문을 영화판에 퍼뜨리기도 했다. 바로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 제작비를 당초 책정된 것 보다 오히려 삭감(!)해달라고 제작사측에 요청했다는 것.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 감독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버트 레이놀즈는 이런 감독의 황당한 행태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레이놀즈와 같은 대스타의 가치는 흔히 출연작의 제작비로 평가되곤 했기 때문이다. 즉, 아빌드센은 본의 아니게 ‘대스타’ 레이놀즈의 자존심을 건드린 셈이다.


하지만 제작비에 관한 그의 철학은 너무나 확고했다. 그는 당시 많은 할리우드의 감독들이 ‘쓸데없이’ 제작비를 낭비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아빌드센은 젊은 나이에 영화판에 뛰어든 뒤, 잔심부름꾼과 각종 소품 담당 등의 ‘하찮은’ 직을 거쳐서 프로덕션 매니저, 촬영 감독, 그리고 편집자 등 거의 모든 영화 스태프 일을 경험해본 뒤 감독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 극적인 신분 상승(?) 과정에서 선배 스태프들이 돈을 물 쓰듯 헤프게 쓰는 광경을 보며 많은 회의를 느꼈다. 그가 참여했던 대부분의 영화들은 책정된 것보다 훨씬 적은 제작비로도 충분히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가 저예산 제작을 선호한 또 다른 이유는 이러했다: 제작비가 줄어들고 제작 규모가 작아지면 스태프들은 보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으며, 감독의 통제력도 상대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스태프들은 제작비가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애를 쓰게 돼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저예산 영화에는 대규모 상업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부여되곤 한다. <록키>는 - 말하자면 - 이런 아빌드센의 연출 성향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다.


☞ 존 G. 아빌드센 감독의 1984년 연출작 <베스트 키드 The Karate Kid>. 랄프 마치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이 작품은 저예산으로 제작됐음에도 미국 내에서만 1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수입을 올리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록키>라는 제목의 ‘복싱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 아빌드센의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는 ‘복싱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라이가 쓴 각본을 읽어본 뒤 그의 마음은 180도 바뀌었다. (적어도 아빌드센이 보기에) 슬라이가 쓴 각본은 절대 ‘복싱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복싱’이라는 프레임을 차용한 휴먼 드라마였으며, 그때까지 그가 본 어떤 영화보다도 순수한 ‘러브 스토리’였다. 각본에서 아빌드센이 특히 매료된 부분은 (화끈한 복싱 장면이 아니라) 록키 발보아라는 이름의 어수룩한 청년의 때 묻지 않은 본성이 드러나는 부분 - 예컨대 그가 거북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나 에이드리언에게 서툴게 ‘작업’을 거는 장면 등 - 이었다. 아빌드센이 ‘찍은’ 장면들은 하나같이 섬세한 연출력이 요구되는 부분들이었는데, 바로 이것 때문에 <록키>는 그에게 ‘충분히 해 볼만한’ 도전으로 여겨진 것이다.


UA(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간부들은 아빌드센의 영입에 대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그들 역시 아빌드센이야말로 1백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최소한 본전치기 이상’은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UA가 말하는 ‘본전’의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UA가 주장하는 ‘본전(손익분기점)’이란 <록키>의 총 제작비인 1백 만 달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의 프린트 제작비와 홍보비 등 각종 부가 비용이 합쳐진 금액인 ‘2백 5십만 달러’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UA의 계산으로는 흥행수익이 ‘최소한’ 2백 5십만 달러는 넘어서야 <록키>가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 아빌드센이 연출한 전작들의 흥행수익을 고려한다면 이 ‘소박한’ 목표는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한편,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아빌드센이 낙점됐다는 소식을 듣자 슬라이는 다소 당황하기도 했다. 슬라이는 이미 아빌드센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2년 전, 슬라이는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W.W. 앤 딕시 댄스킹>의 오디션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슬라이에게 ‘물을 먹인’ 이가 바로 아빌드센이었다. (슬라이가 오디션을 본 W.W. 브라이트 역은 결국 버트 레이놀즈에게 돌아갔다.) 누가 알았으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야심작을 ‘2년 전 오디션에서 자신에게 퇴짜를 놓은 이’가 감독하게 될 줄을.


☞ 요(Yo)! 아빌드센! 또 만났군요!


UA가 아빌드센과의 협상을 마무리 지을 무렵, 슬라이는 <록키>의 각본 내용을 더욱 세련된 것으로 다듬고 있었다. (슬라이의 각본 수정 작업은 영화의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극의 주인공 록키 발보아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영웅상과는 더욱 동떨어진 인물이 돼 갔다. 슬라이의 표현을 빌면, 록키는 ‘건장한 성인의 몸과 15세 소년의 영혼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비록 똑똑한 두뇌를 지니진 못했지만, 본성이 매우 순수하며 쉽게 (마음의) 상처를 입곤 하는 인물이었다. 슬라이는 에이드리언과 록키의 관계 역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갔다.


록키 만큼이나 지독하게 인기가 없는 사회부적응자이며, 극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처녀 에이드리언은 록키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인 뒤 비로소 한 명의 ‘성숙한’ 여성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어주면서 두 사람의 낙오자는 - 슬라이와 사샤가 그랬듯 - 서서히 ‘정상인’이 되어간다. 록키가 최강의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의 시합에서 ‘끝까지 버티면서(go the distance)' 자존심(self-respect)이라는 생애 최고의 가치를 획득한 것은 에이드리언을 향한 뜨거운 열정(그리고 그녀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각본 작업 당시, 슬라이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런 ‘소박한’ 설정은 (혼란했던 70년대를 살아가던) 관객들이 록키-에이드리언이라는 ‘평범한 캐릭터들’(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소박한 애정행각’)에 감정이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기실, <록키>에서 묘사된 로맨스는 70년대 당시의 할리우드 일급 감독이나 각본가들에게는 ‘너무 촌스럽고 진부해서’ 시도할 가치조차 없는 소재로 치부되던 것들 중 하나였다. 오직 슬라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이상주의자’만이 용감하게(!) 이런 소재를 다룬 이야기에 ‘목숨을 걸 수’ 있었다.


☞ 에드워드 그로스가 쓴 ‘Rocky the Ultimate Guide'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여, 간단한 록키의 프로필을 이 자리에서 소개하도록 한다: 로버트 “록키” 발보아는 1946년생(물론 이것은 스탤론의 출생년도다)이며 필라델피아의 허름한 주택가에서 성장했다. 16세가 되어 그는 자신에게 ‘주먹질 재능’이 있음을 인식하고는 아버지의 ‘잔인한’ 충고를 따라 복서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충고란 이런 것이었다 - “너는 어차피 좋은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못했으니, 몸이라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게 나을 거다!” (이것은 스탤론의 아버지 프랭크 스탤론이 실제로 아들을 향해 내뱉은 말이다. <불타는 록키의 연대기> 1편 참조) 로버트 발보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 중 한명으로 추앙받는 록키 마르시아노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예명(그리고 ‘복싱 네임’)을 ‘록키’라고 지은 뒤 무작정 복싱 세계로 뛰어든다. 그러나 수 년 동안이나 그는 자신에게 붙은 ‘아마추어 무명 복서’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밑바닥 생활을 전전한다. 아마추어 복싱 시합을 해서 얻는 푼돈으로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부업을 찾게 된다. 때마침 록키의 주먹질 재능이 쓸만하다고 판단한 고리대금업자 토니 가조는 그에게 ‘해결사’ 직을 제안하고, 돈이 필요했던 록키는 이를 수락하게 된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순수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던 록키에게 해결사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가조는 몇몇 말을 듣지 않는 채무자들을 ‘폭력’(엄지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등의)으로 다스리라고 지시하지만, 록키는 차마 이 명령을 이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록키는 (실제 스탤론처럼) 29살이 될 때까지 궁핍한 아마추어 무명 복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록키>의 시작 부분에 비춰지는 장면은 ‘록키 대 스파이더 리코’의 아마추어 복싱 시합 장면인데, 이것은 결국 록키의 마지막 아마추어 시합이 됐다. 참고로, 이 신에서 록키에게 치사한 헤드버팅 공격을 하다가 (‘열 받은’ 록키에게) KO를 당하는 극중 캐릭터 스파이더 리코는 <록키 발보아>에서도 등장한다. 두 영화에서 스파이더 리코 역은실제 프로페셔널 복서였던 페드로 러벨이 맡았다. 참고로, 러벨은 <록키>의 제작이 진행 중이던 1976년 1월에 유명한 복서 켄 노튼과 맞붙었다가 KO패를 당하고 만다. 우습게도, 이 시합에서 러벨을 때려눕힌 켄 노튼은 <록키>의 제작 초기에 ‘아폴로 크리드’ 역을 맡을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시 후 본문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한다.


슬라이의 각본에 완전히 매료된 아빌드센은 파격적으로 낮은 연출료를 받고 메가폰을 잡기로 UA측과 합의했다. 영화를 연출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미 아빌드센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낮은 연출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과 스태프에게 들어갈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그것을 ‘좋은 배우들의 캐스팅’에 보태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 이런 아빌드센의 ‘고귀한(?) 희생정신’에도 불구하고 - 책정된 제작비가 워낙 적었기에 거물급 스타 배우들의 캐스팅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캐스팅의 방향은 처음부터 ‘각본에 묘사된 캐릭터와 최대한 가까운 성품 및 외양을 지녔으며, 상대적으로 몸값이 싼 연기파 배우를 뽑는 것’으로 고정됐다. 물론 프로젝트의 사실상의 총 책임자였던 슬라이도 아빌드센과 함께 캐스팅 과정 전반에 깊이 관여했다.


캐스팅 과정에서 슬라이와 아빌드센이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바로 ‘록키의 적수’인 아폴로 크리드 역을 맡을 배우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아폴로는 무하마드 알리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캐릭터로, 슬라이의 각본에서는 ‘대적할 적수를 더 이상 찾기 힘들 정도의’ 최강의 복서로 묘사돼 있었다. 따라서 이 역을 맡을 배우는 ‘전설적인 헤비급 복싱 챔피언’에 어울리는 체구와 탄탄한 근육을 가진 인물이어야 했다.


☞ 복싱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는 영화에서 ‘주먹 실력’ 만큼이나 빼어난 쇼맨십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결국 그의 탁월한 쇼맨십 덕분에 록키는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를 얻게 된다. 록키와의 운명적인 시합 전까지 아폴로는 46차례의 타이틀 방어전을 치러서 모두 승리한 최강의 헤비급 복서였다.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펼쳐지는 방어전에서 자신과 대결하기로 했던 맥 리 그린이 왼손 부상으로 시합 참가를 포기하자, 아폴로는그린을 대신할 적수를 찾아 어떻게든 방어전을 강행하려 하지만 적당한 인물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역사적인 미국 건국 200주년의 첫 날에 ‘정상급 프로페셔널 복서’와의 맞대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아폴로는 그 대안으로 ‘무명의 복서에게 기회를 준다’라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기회의 땅 미국의 생일에 ‘별 볼일 없는 아마추어 복서’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프로모터도 탄복할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아폴로는 순전히 ‘이탈리안 종마’라는 별명 때문에 록키 발보아를 자신의 시합 파트너(혹은 ‘희생양’)로 점찍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가 바로 이탈리아 인(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었기 때문이다.


최초에 슬라이와 아빌드센은 ‘실제 복싱 선수’에게 아폴로 역을 맡기려 했다. 관객이 스크린에서 아폴로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진짜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다!’라고 느끼도록 하려면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평소 슬라이가 가지고 있던 복서에 대한 철학(?)도 크게 작용했다. 슬라이는 (관객을 상대로 하는 영화배우와 마찬가지로) 복서는 관중을 상대로 하는 ‘행위예술가’이며 ‘쇼 비즈니스 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그는 ‘어느 정도의 쇼맨십을 갖춘’ 복서라면 배우로도 쉽게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복서 역을 맡을 배우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간 후, 제작자들이 마련한 작은 규모의 오디션 장에는 수 십 명의 복서들이 ‘최강의 세계 챔피언’ 역을 따 내기 위해 몰려들었다. 건장한 사내들이 운집하자, 고요했던 오디션 장은 즉각 ‘살벌한 전쟁터’로 돌변했다. 파이터 기질과 레퍼런스급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복서들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경쟁자들을 ‘본능적으로’ 도전자로 인식하고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그 중 몇몇 성질 급한 이들은 눈에 띄는 경쟁자에게 시비를 건 끝에 오디션 장에서 ‘즉석 타이틀 매치’를 벌이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헌데, 이런 오디션 장의 분위기보다 슬라이를 더 당황케 한 것은 오디션 결과였다. 오디션 장을 찾은 대부분의 복서들은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어떤 복서들은 하도 펀치를 많이 맞아서 뇌가 충격을 받은 탓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 어떤 복서들은 평소에는 배우 뺨칠 정도의 놀라운 입심을 발휘하다가도 막상 각본만 가져다주면 ‘얼어붙은 조각상’이 되곤 했다.


 

☞ 무하마드 알리와 혈전을 벌이는 켄 노튼


‘통제 불가’의 어지러운 상황이 계속되는 와중에, 슬라이는 유명한 복서 켄 노튼에게 아폴로 역을 맡길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켄 노튼은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남긴 거물급 복서로, 1973년 3월에는 무하마드 알리와 시합을 벌여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시합에서 노튼은 알리의 턱을 박살내면서 ‘Jaw Breaker'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열 받은’ 알리는 이후 노튼과 두 번의 대결을 더 벌이게 되는데, 결국 두 번 모두 승리했다. 노튼-알리의 세 차례의 걸친 대결은 복싱 팬들에게는 조 프레이저-알리의 ‘트릴로지 매치’에 버금갈 정도로 흥미로운 시합이었다.) 

 

하지만 노튼에게는 치명적인 신체상의 약점이 있었다. 바로 ‘키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영화에 적절한 리얼리티를 부여하려면, 아폴로 역을 맡을 배우는 슬라이와 어느 정도 키가 비슷해야 했는데(참고로 슬라이의 키는 약 178 센티미터다), 안타깝게도 노튼은 키가 거의 2미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노튼은 ‘출연료가 작다’는 이유로 영화의 출연을 거부하고 말았다. 결국 슬라이는 다른 인물을 물색해야 했다. 그런데 그와 아빌드센이 이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한 배우 에이전트로부터 ‘우리 고객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라는 연락이 왔다. 에이전트가 추천한 인물은 기본적인 연기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 출신이어서 체격 조건도 충분히 충족될 것으로 보였다. 문제의 인물은 바로 이 배우였다.


☞ 칼 웨더스


칼 웨더스. 1948년 생. 본래 그는 오클랜드 레이더스 팀에서 활약한 풋볼 스타였다. 1974년에 그는 운동을 그만 두고 직업배우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록키>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주로 시시한 단역만을 맡아왔다. (풋볼 스타답게) 상당한 쇼맨십과 유머감각의 소유자였던 웨더스는 연기력도 겸비한 인물이었으나, 캐스팅 담당자들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그에게 섬세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주요 배역’을 맡기는 것을 기피해왔다. <록키>의 각본을 읽는 순간, 웨더스는 ‘아폴로 크리드야 말로 내가 반드시 꿰차야 할 역이다’라고 직감했다. 아폴로 역은 건장한 육체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연기력도 필요로 하는 배역이었기 때문이다. 웨더스는 ‘어쩌면 이 배역이 나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여겼다.


웨더스가 오디션을 보기 위해 제작자들의 사무실을 찾아온 것은 ‘계속되는 아폴로 캐스팅 삽질’에 슬라이가 지쳐가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왜 자신이 아폴로 역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해 (마치 영화에서 아폴로가 프로모터를 향해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듯) 침을 튀겨가며 역설했다. 슬라이는 1) 그의 놀라운 자신감과 2) 각본에 묘사된 것과 흡사한 분위기 및 풍채 때문에 (첫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잠시 후, 그에게 각본이 전달되고 슬라이와 함께 대사를 읊어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웨더스는 이 때까지만 해도 슬라이가 자신이 손에 든 각본을 썼으며, 영화의 주연도 맡을 인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슬라이를 막연히 ‘오디션 장에서 상대역을 맡아주는 아마추어 대역 배우’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슬라이의 엉성한 발음은 이런 그의 확신을 더욱 굳혀주었다. 웨더스의 대사 리딩 테스트는 성공적이었다. 슬라이 역시 웨더스의 연기에 대해 높은 점수를 매겼다. 헌데, 리딩이 끝난 후 웨더스는 제작자들을 향해 ‘슬라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이런, ‘진짜 배우’랑 같이 리딩을 했으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쉽군요!”


☞ “이런, ‘진짜 배우’랑 같이 리딩을 했으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쉽군요!”


웨더스의 이 한 마디에 ‘움찔’한 슬라이는 잠시 후 ‘그래, 너 얼마나 잘 났나 한번 보자’라는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 말대로 ‘진짜 배우’랑 했으면 더 잘했겠죠! 기왕 연기 테스트를 시작한 김에 복싱 신 테스트도 한번 해보죠? 당신 몸이 얼마나 훌륭한지 한번 봅시다!” 이 말을 들은 웨더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잠시만!”이라고 외친 뒤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옷을 벗고 다시 나타나 “준비 됐소!”라고 외쳤다. 슬라이를 비롯, 사무실에 있던 모든 이들은 그의 튼튼한 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슬라이는 그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막상 실제로 보니 그의 몸은 풋볼 선수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거의 ‘보디빌딩 선수’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기막히게 다듬어져 있었다. (훗날, 슬라이는 이 순간이 자신에게 큰 자극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 때가 되어 비로소 슬라이는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내 몸도 꽤 탄탄하다’라는 자신의 몸에 대한 확신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 존 맥티어난 감독의 <프레데터>에서 칼 웨더스는 ‘세계 최강의 몸짱’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어쨌거나 슬라이 역시 ‘기싸움에서 질 수는 없지!’라는 심정으로 웃통을 벗어 던졌다. 겉으론 태연자약했지만, 이 때 슬라이는 이미 웨더스의 막강한 육체 포스에 완전히 압도당한 상태였다. 간단한 대사 리허설 후 두 사람은 ‘테스트용’ 스파링에 돌입했다. 처음 얼마 간, 웨더스는 (마치 진짜 운동 선수처럼) 슬라이의 근처를 빙빙 돌며 가벼운 잽을 날렸다. 처음의 호언장담에도 불구(웨더스는 제작자들에게 자신이 과거에 ‘복싱’도 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웨더스의 복싱 동작은 사실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그의 유연한 무브먼트는 슬라이와 제작자들에게 ‘바로 이 배우다’라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헌데, 다음 순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의 연기에 심취한 -_-) 웨더스가 슬라이의 이마에 ‘진짜로’ 강펀치를 날린 것이다. 슬라이는 본능적으로 맞받아쳤고, 두 사람은 거의 ‘메인 이벤트’를 벌이기 직전까지 갔다. ‘이쯤에서 끝내지 않으면 영화를 찍기도 전에 두 사람 모두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갈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한 슬라이는 "이제 그만~(텔레토비 아님 -_-)”이라고 외쳤다. 웨더스는 만장일치로 아폴로 역을 따냈다. 그리고 그는 곧장 슬라이와 함께 ‘집중 훈련’에 돌입했다. (이 시기, 슬라이는 ‘오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체력 단련을, 오후에는 오디션 장에 들러서 아빌드센을 도와 캐스팅 과정을 총지휘하는’ 식의 바쁜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시 후 다시 설명하겠다.)


☞ UA의 간부들은 스탤론의 각본에 묘사된 아폴로 크리드의 면모가 무하마드 알리와 너무나 닮았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타고난 쇼맨십, 뛰어난 입담, 지칠 줄 모르는 승부 근성 등 모든 면이 그러했다. 이 때문에 UA는 스탤론에게 (알리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지 않도록) 아폴로의 묘사 방식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스탤론은 고민 끝에 간부들의 요구를 수용한 각본의 ‘수정본’을 먼저보여주어 UA 측을 ‘일단 안심’시킨 뒤에 정작 촬영용 대본에서는 기존의 아폴로의 면모를 부활시키는 모험을 감행했다. UA 간부들의 우려와는 달리, 무하마드 알리는 <록키>를 본 뒤 전혀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오히려 영화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본문 후반 부분 참조)


슬라이의 또 하나의 고민거리는 록키의 연인 에이드리언 역을 과연 어떤 배우에게 맡기느냐는 것이었다. 에이드리언은 <록키>의 플롯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였다. 그녀는 ‘미운 오리 새끼’ 록키가 ‘백조’로 거듭나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록키>의 플롯이 어느 정도의 호소력을 가지느냐는 에이드리언이 스크린에서 어떤 방식으로 묘사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슬라이가 쓴 각본의 초반부에 그녀는 극도로 낯을 가리는 ‘왕따-사회 부적응자’로 묘사돼 있었다. 플롯의 중반 이후 그녀는 (록키 덕분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서서히 배우게 된다. '밉상‘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그녀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변신을 거듭하여 엔딩 신에 이르러서는 몰라볼 정도로 예쁜 여성이 된다.


각본에 묘사된 모든 것을 제대로 영상화하려면, 에이드리언 역은 상당한 수준의 연기력을 지닌 여배우가 맡아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록키>의 제작비로는 ‘연기력이 충분히 검증된’ 여배우의 영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슬라이와 아빌드센은 어쩔 수 없이 ‘신인에 가까운(다른 말로 하자면 ‘몸값이 싼’)’ 여배우들 중 괜찮은 연기력을 지닌 이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록키>의 오디션 장에는 꽤 많은 신인급 여배우들이 에이드리언 역을 따 내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리딩을 한 여배우들 중 슬라이의 마음을 확 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단지 연기력으로만 따지면, 리딩을 한 여배우들 중에도 합격점을 줄 만한 이들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슬라이는 이들에게 ‘뭔가가 부족하다’라며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에게 부족한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슬라이 자신도 알지 못했다. 탈리아 샤이어가 슬라이를 찾아 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 <록키>에서 에이드리언 역을 맡은 탈리아 샤이어


탈리아 샤이어의 외모는 사실 슬라이가 각본을 쓸 당시 머리 속으로 그렸던 에이드리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최초에 슬라이는 에이드리언을 ‘긴 머리에 새처럼 호리호리한 체구를 지닌 캐릭터’로 설정했다. 초창기에 그가 이 역을 맡을 배우로 점찍은 이는 캐리 스노드그래스였는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에이전트는 ‘제시된 출연료가 너무 싸다’는 이유로 슬라이 측의 영입제안을 거부했다.) 샤이어는 깜찍한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채로 슬라이와 제작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언뜻 보기에 이런 모습은 ‘(극도로 수줍음을 타는) 하늘하늘하고 유약한 여성’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열의에 찬 그녀의 눈빛과 표정을 보는 순간, 슬라이는 그녀에게 (그동안 오디션 장을 찾은 많은 여배우들에게 결여된)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우선 슬라이 앞에서 기막힌 즉흥 연기를 선보였다. 짤막한 즉흥 연기가 끝난 후, 그녀는 슬라이 쪽으로 다가와서는 그의 턱을 겨냥해 장난스러운 잽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슬라이의 경직됐던(?) 마음은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고 말았다. ‘바로 이여자다!’라고 확신한 슬라이는 (자신도 모르게) 오디션 현장에 모인 스태프들을 향해 그녀를 꼭 캐스팅해야 한다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어찌나 열성적이었는지, 스태프들은 “알았네! 알았어! 그렇게 하지!”라며 슬라이를 애써 진정시켜야(?)했다. 샤이어는 이렇게 해서 에이드리언 역을 따냈다.


☞ <대부>에 출연한 탈리아 샤이어의 모습


샤이어는 7천 500불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저렴한 출연료만을 받고 에이드리언 역을 맡기로 했다. (참고로 이 금액은 당시 한 시간짜리 TV 쇼에 게스트로 나오는 배우가 받았던 출연료에 해당할 정도로 턱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샤이어는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형편없는 금전적 대우를 감수하면서까지 에이드리언 역을 따내려고 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946년 생으로 슬라이와 동갑인 탈리아 샤이어는 사실 <록키>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거의 신인급에 가까운 여배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완전한 무명의’ 배우였다는 말은 아니다. 몇 편의 저예산 영화에서 단역을 맡곤 했던 그녀는 1972년에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한 <대부>에서 코니 역을 맡으면서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렸다. 그녀는 1974년에 나온 <대부 2>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는데, 이듬해에는 이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을 알린 유일한 작품이 <대부> 시리즈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대부> 시리즈의 감독이 그녀와 ‘아주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탈리아 샤이어(본명은 ‘탈리아 로즈 코폴라’)는 바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여동생이었다. <대부>의 대히트 후 영화계에는 “탈리아 샤이어는 코폴라라는 든든한 ‘빽’ 덕분에 코니 역을 맡을 수 있었다”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이 소문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샤이어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녀는 ‘오빠의 지원 없이도 나는 연기자로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이들에게 입증하고 싶었다. 그녀는 ‘<록키>의 에이드리언 역이야 말로 배우로서 나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라고 여긴 것이다. 그녀의 직감은 정확했다.


☞ 스크린에 비친 에이드리언의 모습은 슬라이가 최초에 썼던 <록키>의 드래프트에 묘사된 그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순전히 탈리아 샤이어가 에이드리언 역을 맡았기 때문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였다. 영화에 비친 에이드리언은 슬라이와 샤이어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를 찍는 과정 내내 슬라이는 샤이어의 예리한 캐릭터 분석 방식과 열정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샤이어는 슬라이의 각본에 묘사되지 않은 ‘에이드리언의 불행했던 과거사’까지 스스로 ‘창작’하여 내면으로 체화하여 에이드리언을 입체적인 인물로 탈바꿈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턱없이 적은 제작비 때문에 <록키>의 스태프들은 제작 초기 단계에서부터 많은 애를 먹었지만, 적어도 캐스팅 과정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운이 계속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슬라이의 오랜 불행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있다는 전조이기도 했다.) 예컨대, 에이드리언의 오빠인 폴리는 대단히 복잡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여서, 역시 상당한 수준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가 맡아야 했다. 헌데, 슬라이는 때마침 액터즈 스튜디오 출신의 빼어난 연기파 배우 한 명을 ‘헐값에’ 영입할 수 있었다. 바로 버트 영이었다. 버트 영은 <록키> 이전에 샘 페킨파 감독의 <킬러 엘리트> 등에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이긴 하지만, ‘호남형’ 배우가 아닌데다가 주연급 배역을 맡기기에는 외모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관계로 캐스팅 디렉터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배경은 ‘가난한’ <록키>의 제작진에게는 오히려 큰 메리트로 작용했다. 비록 몸값이 저렴한 배우이긴 했지만, 연기력만 놓고 보면 영은 동년배의 인기 연기파배우들에 전혀 뒤질 것이 없었다.


☞ <록키>에서 폴리 역을 맡은 배우 버트 영


슬라이가 버트 영에 이어 잡은 또 하나의 행운은 바로 ‘버제스 메레디스’이었다. 각본 상 록키의 매니저이자 트레이너인 미키는 꽤나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돼 있어서, 적지 않은 (상대적으로 몸값이 싼) 노배우들이 이 역을 따기 위해 오디션 장을 찾았다. 1907년생인 버제스 메레디스는 이 일군의 후보들 중 가장 유명한 배우였는데(기실 메레디스는 <록키>의 출연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스타급’ 배우였다),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매우 겸손한 자세로 오디션에 임했으며 누구보다 빼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물론 이런 그의 태도는 슬라이를 비롯한 모든 이를 감동시켰다.


☞ 미키 역을 맡은 노배우 버제스 메레디스(우)는 ‘초짜에 가까운’ <록키>의 출연진 모두에게 정신적 지주가 됐다. <록키>에 출연하기 전, 그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장편영화와 TV 시리즈에서 기막힌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배우였다. 메레디스는 <록키> 1,2,3편에서 연달아 미키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록키 5>에도 잠시 출연했다.


2. Punch By Punch


<록키>의 촬영은 1975년 12월 5일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헌데, 문제는 스케줄 상 촬영 기간이 (저예산 영화답게) 고작 28일(!)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턱없이 짧은 기간 내에 실수 없이 촬영을 마치려면 빈틈없는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슬라이와 아빌드센은 미리 작성한 치밀한 계획표에 따라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몇 달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로 했다. 아빌드센이 기술상의 제반 사항 및 구체적인 촬영 스케줄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는 동안, 슬라이는 강도 높은 ‘몸 만들기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록키는 최강의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를 거의 ‘떡실신’ 직전까지 몰고 가는 캐릭터다. 당연히 슬라이에게는 이런 록키의 활약상에 어울리는 튼튼한 몸과 ‘그럴듯한 복싱 실력’이 요구됐다. 슬라이는 자신의 몸이 아직까지는 ‘세계 챔피언과 맞짱을 뜰 정도로’ 탄탄하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폴로 역으로 낙점된 배우 칼 웨더스의 근육질 몸매를 본 뒤, 슬라이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훈련의 강도를 훨씬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표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봤을 때, (스스로 보기에도) 헤비급 세계 챔피언으로 보일 정도’로 몸매를 가꾸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슬라이는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약 다섯 달 동안 살인적인 강도의 다이어트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실시했고, 빈틈없이 짜여진 식단에 따라 고른 영양섭취를 했다. 이 때가 바로 슬라이의 인생에서 최초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몸매 관리가 시작된 시기였다.

 

☞ <록키>의 촬영을 위한 체력단련 당시 스탤론에게 많은 조언을 해준 이는 바로 칼 웨더스였다. 선천적으로 좋은 몸을 타고 난 웨더스는 스타 풋볼선수가 된 이후에도 자기 몸을 관리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웨더스는 스탤론에게 효과적인 다이어트 및 운동 방법, 영양 섭취 방법 등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해주었고 이것은 훗날 슬라이에게 큰 자산이 됐다.


체력단련과 더불어 슬라이가 병행해야 했던 것은 바로 ‘복싱 수업’이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다섯 달 동안, 슬라이는 자신을 ‘타이틀매치를 앞두고 있는 진짜 복싱선수’라고 생각하고 실제 복서들이 행하는 모든 격렬한 훈련을 소화해냈다. 이 기간 내내 슬라이는 새벽 네 시에 기상하여 두 시간 동안 러닝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는 곧장 체육관으로 달려가 오전 내내 스파링과 체력 단련을 실시했다. 단 몇 달만의 훈련으로 ‘10년 이상 복서로 생활한 남자의 몸매’를 만들어야 했기에, 훈련의 강도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슬라이는 캐스팅 과정이 끝난 뒤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고된 훈련에 할애했는데, 헤비백 및 스피드백 훈련, 줄넘기, 푸시업, 러닝, 스트레칭 등 그의 격렬한 운동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그를 ‘실제 프로페셔널 복서’로 착각할 정도였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훈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슬라이의 스피드백 및 헤비백 트레이닝 모습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트레이닝 도중 손가락과 손목을 삐는 일도 다반사였다. ‘내가 봐도 어설픈데 관객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웃을까’라고 생각한 슬라이는 각종 복싱 관련 자료 영상을 보면서 복서들의 트레이닝 동작(영화에서 록키의 트레이닝 장면은 클라이맥스 신과 중반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그것을 자신의 동작으로 흡수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여러분이 <록키>에서 보신 록키의 기막힌 트레이닝 장면은 슬라이가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완성한 감동적인 무브먼트다.


☞ 스탤론은 복싱과 함께 인생을 살다시피 한 인물 지미 갬비나를 트레이너로 고용하여 자신의 복싱 훈련 과정을 감독하도록 했다. 갬비나는 훗날 <챔프 The Champ>(1979)에서는 존 보이트를, <레이징 불 Raging Bull>(1980)에서는 로버트 드니로를 각각 훈련시키기도 했다. 갬비나는 <록키>에서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마이크 역을 맡은 이가 바로 그다.


복싱 동작 연구를 하며 슬라이가 깨달은 것은 ‘복싱은 절대 딱딱한 운동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슬라이는 복싱이 ‘상대방과 호흡을 맞춰(?) 행하는 근육 댄스’라고 정의했다. 스크린에서 슬라이의 움직임이 매끄럽고 리드미컬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슬라이의 동작이 잘못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슬라이는 당장 자신의 첫 번째 스파링 훈련 때부터 이런 철학을 적용시키려 했다. 헌데, 막상 스파링이 시작되자 슬라이는 머릿속에 담아둔 동작을 몸으로 옮길 겨를도 없이 ‘신나게’ 얻어맞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스파링 상대(실제 헤비급 복싱 선수였다)는 슬라이가 ‘진짜 복서가 아니고 배우’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슬라이를 가혹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마치 “복싱이 얼마나 고된 스포츠인지를 보여주마!”라고 벼르고 덤비는 것 같았다.


헤드기어를 통해 전해지는 ‘띵~~~’하는 충격은 슬라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순간, 슬라이의 머리 속에는 -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 ‘이 녀석을 죽여 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슬라이는 ‘호랑이의 눈’을 한 채로 곧 스파링 상대에게 접근해 기회를 엿봤다. 무정한 스파링 상대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슬라이에게 계속해서 연타를 날리고 있었다. 잠시 후, 마침내 기회를 포착한 슬라이는 강펀치를 상대에게 날리며 ‘확실한’ 복수를 했다. (훗날 이 스파링 때의 대결 모습은 록키의 파이팅 스타일 - 초반부에 신나게 얻어터지다가 중반부 이후 기회를 포착해 상대방을 정신없이 두드려 패는 것 -로 굳어졌다!) 집에 돌아온 스탤론은 온 몸이 멍투성이였으며, 후유증으로 약 한달 동안이나 끙끙 앓아야 했다.


☞ “록키 스타일 - No Pain, No Gain"


이 기간 동안 슬라이가 완수해야 했던 또 하나의 과제는 바로 ‘클라이맥스 시합 장면의 안무’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제작 초기에 슬라이와 아빌드센은 ‘복싱에 능한’ 스턴트맨을 고용해 실제 슬라이의 모습과 교차 편집하는 방식으로 시합 장면을 완성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를 위해 복싱을 할 줄 아는 몇 명의 스턴트맨이 실제로 초빙되기도 했다. 슬라이는 <록키>의 복싱 장면이 이전의 ‘시시한’ 할리우드 복싱영화의 그것과는 완전히 차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록키>의 클라이맥스 신은 ‘박력과 부드러움, 리얼함이 넘치는’ 복싱 장면이었다. 슬라이는 처음부터 ‘실제 시합 장면을 15라운드 논스톱으로 찍는’ 방식을 고집했다. 이렇게 해야 클라이맥스 신에 어울리는 다이내믹한 에너지와 리얼함이 고스란히 필름에 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안무가 필요했다.


최초로 초빙된 스턴트맨은 자신을 ‘록키 마르시아노와 싸운 적이 있는(마르시아노와 ’‘시합’을 한 게 아니라 ‘스파링’을 한 적이 있는 -_-)’ 복싱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슬라이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헌데, 슬라이가 복싱 장면의 안무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마치 ‘그냥 신나게 때리고 맞으면 되는 것이지 무슨 그런 복잡하고 세련된(?) 안무가 필요하냐’는 식이었다. 초빙된 모든 스턴트맨들은 반응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 슬라이가 ‘상당히 소화하기 까다로운’ 안무를 원하고 있다고 직감한 아빌드센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그러지 말고 자네가 원하는 동작을 세세히 구분해서 - Punch By Punch로 - 종이에 써 보는 게 어떻겠나? 각본을 쓰는 것처럼 말일세.” 실로 그럴듯한 아이디어였다. 

 

슬라이는 그날 당장 집으로 가서 테이프 레코더를 작동시킨 채 그간 머리 속에 그려온 동작들을 읊어댔다. 녹음이 완료되자, 슬라이는 테이프를 곧장 타이핑 담당자에게 가져가서 32 페이지에 이르는 ‘시합 장면 스크립트’를 완성했다. 아빌드센은 이 꼼꼼한 스크립트를 본 뒤 크게 놀랐다. 1라운드에서 15라운드까지 록키와 아폴로의 모든 동작 - 펀치 하나하나에서 발놀림, 표정 변화에 이르기까지 -이 거기에 빠짐없이 담겨 있었으며, 각 동작에는 상세한 주석이 달려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슬라이가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알 수 있었다. 여러분이 본 <록키>의 클라이맥스 시합 장면은 이 스크립트의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다. 록키와 아폴로의 모든 동작 중 - 손가락 동작 하나까지도 - 슬라이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록키>의 기막힌 클라이맥스 시합 장면은 수 개월에 걸쳐 슬라이가 흘린 땀의 위대한 결실이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스턴트맨들이 슬라이의 복싱 스크립트를 본 뒤 하나같이 손사래를 친 것이다. 그들은 “이봐요, 글로 쓰는 건 쉬울지 모르겠지만 (스크립트에 묘사된) 이런 건 실제로는 구현이 불가능합니다!”, “이 대로라면 영화는 아주 우스꽝스럽게 될 겁니다!”라면서 스크립트대로 ‘연기’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슬라이를 ‘철없는 이상주의자’라고 여겼다. 이에 격분한 슬라이는 새로운 스턴트맨들을 고용했으나, 그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미온적인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슬라이의 귓가에는 “싸구려 B급 영화 하나 찍으면서 요구 사항은 엄청나게 많군!”이라는 불평이 들리는 듯했다. 크게 낙담한 슬라이는 결국 아빌드센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스턴트맨 필요 없소! 내가 직접 모든 액션을 하겠소! 어차피 시합 장면 안무는 내가 짠 것이니, 그걸 누구보다도 리얼하게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오! 당장 칼 웨더스와 함께 연습을 시작하겠어요!”


☞ “까짓것, 우리가 직접 해버리죠 뭐!”


그리고 다음날부터 슬라이는 (진짜로) 칼 웨더스와 함께 ‘집중 훈련’에 돌입했다. 슬라이의 목표는 마치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댄스 동작과 같은) ‘우아하면서도 박력이 넘치는’ 복싱 장면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슬라이와 웨더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활화산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야 했고, 그 에너지가 관객에게 직접 전달돼야 했다. 적어도 영화의 클라이맥스 신을 보는 순간만큼은, 관객들이 영화의 주인공 록키가 되어 그의 고통과 투지, 환희를 ‘자신의 것’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해야 했다. 웨더스는 슬라이와 함께 (슬라이가 준비해놓은) 복싱 관련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며 스크립트의 동작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들은 잭 존슨 대 스탠리 켓첼의 대결에서부터 무하마드 알리 대 조 프레이저의 전설적인 시합에 이르는 ‘클래식 매치’들을 빠짐없이 훑어본 뒤 화면에서 본 ‘챔피언들의 몸동작’을 면밀히 분석해 머리 속에 ‘저장’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몇 주 간이나 하루에 4~5시간 이상 링에서 시합 장면의 ‘실전 리허설’을 실시했는데, 이 리허설은 어찌나 격렬했는지(실제로 두 사람은 리허설 기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부상을 입었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치 ‘실제 헤비급 복싱 시합’을 보는 듯했다. 한편, 아빌드센은 이 기막힌 장면들을 8 밀리 무비카메라에 담아서 리허설이 끝난 뒤 두 배우에게 보여주곤 했다. 두 배우는 이 촬영분을 보고 문제점을 파악한 뒤 다음 리허설에서 자신들의 연기를 더욱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것으로 다듬어갔다. 록키와 아폴로의 클라이맥스 시합 장면은 러닝타임 상으로는 고작 10분에 불과하지만, 이 짤막한 신을 위해 슬라이와 웨더스가 흘린 땀(그리고 ‘피’)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러닝타임 상 약 1분에 해당하는 신의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두 사람은 무려 35시간 반 이상의 리허설 시간을 가져야 했는데, 이는 그때까지 나온 어떤 복싱영화도 시도하지 못했던(혹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 존 아빌드센이 8밀리 카메라로 찍은 스탤론과 웨더스의 리허설 장면은 <록키> CE DVD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관심 있는 분은 확인해보시길.


슬라이가 수백 트럭 분량의 땀을 흘리는 사이, 5개월에 달했던 제작 준비 기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운명의 촬영 개시 일(1975년 12월 5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슬라이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영화의 촬영지는 (슬라이에게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인) 필라델피아에서 시작해 LA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본래 슬라이는 12월 4일에 아내 사샤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필라델피아로 ‘날아가서’ 다음날 촬영진에 합류하려 했다. 헌데, 막판에 슬라이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동승시키기로 한 개 ‘벗커스’ 때문이었다. 벗커스가 슬라이 부부와 함께 필라델피아로 가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벗커스도 영화에 ‘캐스팅’ 됐기 때문이다.


슬라이의 각본에 의하면, 록키는 에이드리언으로부터 ‘지저분한’ 개를 한 마리 얻어 기르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다. 이 개는 록키와 에이드리언의 사이를 더욱 돈독케 해주고, 록키가 러닝을 할 때 함께 곁에서 뛰는 등 영화에서 ‘작지만 꽤 중요한’ 역할을 하기로 돼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를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감독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개가 한 마리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록키>의 제작진에게는 ‘잘 훈련된 개’는 고사하고 햄스터 한 마리도 대여할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제작자들은 어느 날, 슬라이를 불러서 상당히 부끄러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슬라이. 혹시 자네 기르는 동물 같은 거 없나?” 슬라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벗커스’라고 못생긴 개 한 마리가 있긴 합니다만...” 이 말에 제작자들은 기뻐하며 이렇게 다시 물었다. “오, 그래? 그 개 자네를 잘 따르나? 혹시 간단한 연기 같은 것도 할 수 있나?” 슬라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 녀석한테 한 번 물어보죠.” 벗커스는 이렇게 해서 캐스팅됐다.

 

☞ 스탤론의 개 ‘벗커스’는 <록키> 1,2편에 연달아 출연했다.


슬라이 부부가 비행기를 탈 경우, 벗커스는 ‘인간’이 아닌 관계로 비행기의 화물칸에 실려야 했다. 슬라이는 자신이 아끼는 개를 몇 시간 동안이나 비행기 화물칸에 가둬놓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해 교통수단을 ‘기차’로 변경하기로 했다. (물론 이런 결정의 이면에는 ‘금전적인’ 이유도 깔려 있었다. 제작자들이 교통비를 대주지 않았기 때문에, 슬라이는 ‘자비’로 여행을 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비행기보다는 기차가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반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는 비행기와는 달리, 기차로 여행한다면 필라델피아까지 도착하는 데는 약 3일이 소요될 예정이었는데, 슬라이는 오히려 이 점을 ‘메리트’로 여겼다. 3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각본을 재검토하고 휴식을 취하는 등 많은 ‘부가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슬라이와 사샤, 벗커스는 ‘생각보다 훨씬 좁은’ 열차 칸에 갇힌 채 3일 간을 이동해야 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덜컹거림과 소음이 훨씬 심해서 각본 수정 작업은 고사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개 벗커스마저 기차 안에서는 ‘원수덩어리’로 돌변했다. 환경이 갑자기 바뀐 탓인지, 이 개는 ‘배변’을 완강히 거부한 것이다. 새벽에 열차가 잠시 정차했을 때, 슬라이는 속옷 차림으로 벗커스를 기차 밖으로 데리고 나가 ‘억지로’ 배변을 시키려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벗커스는 ‘무려 3일 간’이나 배변을 참는 진귀한 기록을 세우고야 말았다. 바로 이 때문에 기차 내에서는 진짜 골치 아픈 문제가 터졌다. 3일 동안 벗커스는 용케도 배변을 꾹 참고 있었으나, ‘가스’마저 참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벗커스가 좁은 기차 공간 내에서 ‘독가스’ 공세를 펼칠 때마다 슬라이와 사샤는 거의 질식사하기 직전까지 갔다.


☞ ‘원수덩어리’ 벗커스!


한편, 기차가 시카고 근처까지 왔을 때 슬라이는 면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흔들림으로 인해 세면대에 고여 있던 물이 기차 안의 양탄자로 왈칵 쏟아져버렸다. 이 때문에 슬라이의 짐들은 물에 흠뻑 젖고 말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했던 문제는, 바로 그 젖은 양탄자 위에서 벗커스가 잠을 잤다는 점이다. 슬라이가 잠시 눈을 붙인 뒤 일어나보니 벗커스는 ‘한쪽 면은 붉은 색, 한쪽 면은 베이지 색’인 괴물 개가 돼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슬라이는 사샤와 함께 비누를 들고 벗커스의 털에 물든 양탄자 색을 빼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벗커스의 털에 배인 색을 다 빼는 데에는 무려 11시간이 걸렸다. (이 사건 이후 벗커스는 비누만 보면 이를 갈며 덤벼드는 기괴한 습관이 생겼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슬라이는 완전히 녹초가 돼 있었다.

 

3. "Going the Distance"


벗커스 때문에 ‘생지옥’을 경험한 슬라이는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날 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음에도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있을 촬영에 대한 기대감(혹은 ‘긴장감’) 때문이었다. 그날 밤, 슬라이의 머리 속에는 각본에 묘사된 모든 신과 주옥같은 대사들이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와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12월 5일 새벽 네 시, 마이클 웨스트모어가 슬라이의 얼굴에 분장을 실시하면서 드디어 역사적인 <록키>의 촬영이 시작됐다. 웨스트모어가 분장을 하는 동안 슬라이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슬라이가 촬영 초반부에 많이 긴장했던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슬라이의 계약서에는 ‘연기력이 기대 이하로 판명날 경우 UA는 촬영 개시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슬라이를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장부터 슬라이는 제작자들의 마음에 쏙 드는 연기를 해야만 했다. 한편, 슬라이는 UA가 이 조항을 악용할 것에 대비하여 변호사 제이크 블룸을 통해 한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기도 했다. 바로 영화의 촬영 스케줄을 슬라이 쪽에 유리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촬영팀이 ‘비교적 돈이 많이 드는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먼저 감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슬라이의 연기가 내키지 않는다고 판단할 무렵이면 이미 ‘비싼 로케이션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됐을 터이니, UA 측으로서도 새 배우를 캐스팅하여 로케이션 촬영을 처음부터 다시 감행한다는 ‘멍청한’ 결정은 쉽게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슬라이의 생각이었다. 무명 배우가 험한 영화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 분장 전문가 마이클 웨스트모어는 <록키>가 낳은 또 한 명의 스타다. 웨스트모어의 분장은 거의 완벽에 가까워서, 스탤론이 분장을 한 채 숙소로 돌아오면 주위 사람들 중 누구도 그가 분장을 했음을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웨스트모어는 1986년에 <마스크>로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했다.


분장을 마친 슬라이는 촬영지로 이동하기 위해 트레일러에 탔다. 그 날은 슬라이가 경험해본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실제 날씨도 매서웠지만,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록키>에서 슬라이가 출연하는 신은 거의 90%에 달한다. 만일 영화가 망한다면 모든 책임은 슬라이에게 전가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영화인으로서 그의 인생은 ‘끝장’나는 것이었다. 잠시 후, 트레일러가 멈춰 섰다. 밖으로 나온 슬라이의 눈앞에는 한산한 필라델피아 거리의 새벽 광경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그 시각, 거리에는 (과거의 슬라이와 같은) 인생의 낙오자들 몇몇만이 여기저기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은 영화의 배경(특히 ‘인생의 낙오자 록키의 출신지’)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것이었다. 이제 그토록 꿈꾸던 야심작의 촬영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슬라이의 심장은 더욱 거세게 고동쳤다.


☞ "Streets of Philadelphia"


트레일러에서 내린 슬라이의 얼굴에 매서운 겨울 바람이 칼질을 해댔다. 그는 거리에 발을 내딛자마자 프로젝트의 ‘선장’인 아빌드센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둘러봤다. 슬라이는 아빌드센이 ‘당연히’ 감독 의자에 앉아서 확성기를 들고 ‘액션!’을 외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는 아빌드센의 몸을 밟아버릴 뻔 했다. 아빌드센은 (그 차가운) 도로가에 누워서 뷰파인더를 통해 열심히 화면 구도를 측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아빌드센은 슬라이 이상으로 영화 촬영에 몰입한 상태였다. 이 모습을 본 슬라이는 ‘아! 우리가 감독 하나는 제대로 골랐구나’라고 확신했다.


잠시 후, 아빌드센의 ‘액션!’ 소리와 함께 로버트 “록키” 발보아는 슬라이의 각본에서 튀어나와 ‘실제 인간’으로 재탄생했다. 슬라이가 이 날 처음으로 찍은 신은 록키가 추리닝과 스타킹 캡을 착용한 채 훈련을 하는 장면이었다. 촬영 첫 날에만 슬라이는 무려 30킬로미터를 달려야 했다. 둘째 날, 슬라이는 시청과 독립기념관 등 필라델피아의 명소들을 배경으로 하여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헌데,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너무나 열심히 뛴 탓인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슬라이는 카메라만 돌아가면 평소보다 50%이상 ‘오바’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슬라이에게 갑작스러운 정강이 근육통이 생긴 것이다. 저녁 여섯시 경, 스쿨킬 강가를 ‘신나게’ 달리던 슬라이는 살인적인 통증 때문에 바닥에 누워서 다리를 잡고 신음하고 있었다. 아빌드센이 슬라이 쪽으로 급히 달려왔다. 슬라이는 당연히 그가 “이봐, 무슨 일인가! 당장 병원으로 가세!”라고 외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빌드센은 전혀 뜻밖의(?)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촬영감독을 향해) 어서 찍어! 이 장면을 놓치면 안돼! 저 리얼하고 생생한 ‘고통스런 표정’을 필름에 담으라고! 이봐, 슬라이! 기어갈 수 있겠나? 자네의 기는 모습을 필름에 담자고!” 순간 슬라이에게는 ‘살인충동’이 생겼다!


☞ "Run Forrest, Run!"


안타깝게도, 슬라이가 ‘온몸을 던져서’ 연기한 이 장면은 영화의 최종 편집본에서는 (러닝타임 관계상) 잘려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 신을 찍으며 슬라이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빌드센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기막힌 영상을 만들어내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이런 아빌드센의 임기응변술은 훗날 감독으로 데뷔할 슬라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셋째 날, 아빌드센은 록키와 에이드리언이 애완동물 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신을 찍었다. 에이드리언이 일하는 애완동물 가게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실제 애인동물 가게인 'J&M Tropical Fish'에서 촬영됐다. 이 가게는 <록키>가 대히트한 후에는 ‘명소’가 됐지만, 영화 촬영당시만 해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가게였다. (물론 제작팀이 이 가게를 촬영 장소로 결정한 이유는 ‘대여료가 싸기’ 때문이었다.) 가게 내부에는 병든 동물들이 여기 저기 널려있었고, 각종 오물과 동물의 배설물로 인한 퀴퀴한 냄새 때문에 배우들은 연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곳에 2~3일만 더 있다가는 누구라도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 같았다. 헌데, 놀랍게도 이런 가게의 우중충한 분위기는 사회 부적응자인 에이드리언의 이미지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다. 뿔테 안경과 스웨터를 착용하고 그 곳에 서 있으니, 탈리아 샤이어는 영락없는 ‘왕따 처녀’로 보였다. 슬라이는 (이런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여 열연을 하고 있는 샤이어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 애완동물 가게 신은 필라델피아 현지에서 대여한 실제 가게를 배경으로 해서 촬영됐다.

 

☞ 이 장면은 ‘철창 속에 갇힌 듯 살고 있는’ 에이드리언의 상황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슬라이 자신이 그녀의 열연에 부응하는 연기를 하는 것 뿐이었다. 그날 저녁, 슬라이와 샤이어는 ‘록키와 에이드리언이 밤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신’(스케이트장 신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이 신은 록키가 에이드리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과 이어질 예정이었다. 헌데, 촬영 도중 카메라가 말을 듣지 않아 두 사람은 같은 연기를 수 십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날씨가 워낙 추웠기 때문에, 촬영이 지연됐을 때 스태프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 배우가 독감이라도 걸리게 된다면 (고작 28일밖에 안 되는) 촬영 스케줄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촬영팀이 추운 날씨 속에 애를 먹고 있을 무렵, 한 무리의 청년들이 촬영팀을 에워싸고 슬라이를 향해 돌을 던지며 마구 야유를 보냈다. 몇 분 동안 그들의 야유를 무시하던 슬라이는 급기야 ‘폭발’하고 말았다. 촬영 감독이 필름을 갈아 끼우는 사이, 슬라이는 청년들 중 가장 요란하게 야유를 보내던 ‘녀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 뒤 이렇게 말했다. “어이, 친구! 내가 보니 자네 아주 쓸만한 것 같네!” 그 청년은 슬라이에게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슬라이는 “이봐, 우리 악수나 한번 하지!”하고 손을 내밀었다. 청년은 어리둥절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슬라이는 그 손을 잡은 뒤 온 힘을 다해 ‘뭉개버렸다’. ‘뚜두둑’하면서 손가락 관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엾은 이 청년은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라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악수(?)가 끝난 뒤 슬라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봐, 나랑 같이 영화나 찍어보지? 내가 보기엔 자네는 연기 좀 할 것 같은데? 우린 친구 아닌가! 악수도 했잖아! 내가 자네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카메라맨을 보낼 테니 자네는 친구들과 ‘러브 신’을 한번 연출해보라고!” 이 말을 듣고 청년과 그 친구들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예상치 못했던 작은 소동 덕분에 슬라이는 (‘열 받아서’ -_-;) 잠시 동안이나마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 <록키>에서 스트리트 싱어로 나온 이 청년은 바로 스탤론의 동생인 프랭크 스탤론 주니어다.


☞ 이 장면에 등장하는 취객은 트로마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로이드 카우프만이다.


촬영 4일 째, 예상치 못했던 일이 또 발생했다. 고리대금업자 ‘가조’ 역을 맡기로 한 배우가 촬영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슬라이는 부랴부랴 친구였던 조 스피넬에게 전화를 걸어서 ‘땜빵’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슬라이는 1975년 작 <안녕, 내 사랑 Farewell, My Lovely>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조 스피넬을 알게 됐다.) 급히 현장에 투입된 스피넬은 제대로 된 대사 연습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고리대금업자 역을 어찌나 능청스럽게 잘 소화해냈는지, 하마터면 슬라이는 그를 향해 “요(Yo)! 돈 좀 빌려주쇼!”라고 외칠 뻔했다. 특히 그가 ‘지시대로 채무자의 손가락을 부러뜨리지 않은’ 록키를 향해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스피넬은 약간의 천식 증세가 있었는데, 긴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 부으면서 숨이 막힐 때면 (촬영을 중단하는 대신) 재빨리 흡입기를 꺼내서 흡입을 한 뒤 연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곤 했다. 스피넬의 놀라운 즉흥연기 덕분에 ‘각본에도 없었던’ 이 장면은 영화 초반부에서 가장 에너제틱하고 생생한 장면이 됐다.


☞ 스탤론과 조 스피넬의 열연 장면


☞ 조 스피넬은 1980년에 악명 높은 컬트영화 <매니악 Maniac>에서 각본과 주연을 동시에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8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촬영을 마무리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 스피드와 노동량이 필요했다. 때문에, 이 기간동안 슬라이 일행은 밤잠을 설치면서 하루 18시간 씩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아빌드센의 작업 스피드와 열정은 슬라이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부터 비관적이었던 몇몇 스태프들은 아빌드센과 슬라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목숨을 걸고’ 영화를 찍어대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록키>는 ‘발버둥쳐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구려 B급 영화’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완전한 무명 영화인이었던 슬라이가 프로젝트의 주도자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가장 큰 불만요인이었다.


‘<록키>는 보나마나 실패작이 될 것이다’라고 확신한 몇몇 스태프들은 ‘자신들의 향후 커리어’를 우려하여 영화의 크레딧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영화의 촬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이다. (뻔뻔스럽게도, <록키>가 흥행에 크게 성공한 후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크레딧에 다시 올려달라며 UA 측에 소송을 제기했다.) 슬라이는 이들의 태도에 분노를 느꼈지만, 어차피 ‘무명의 영화인’으로서 이런 시련을 겪을 것은 예상 했던 바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 ‘진짜로’ 피가 마르도록 애를 태운 이들은 바로 제작자인 어윈 윙클러 - 로버트 차토프 콤비였다. 연재 글 1편에서 잠시 언급했듯, 이들은 영화의 완성에 대한 보험으로 자신들의 집을 저당 잡힌 바 있다. 영화의 제작비가 최초 책정된 금액인 1백만 달러를 초과할 경우, 추가 제작비는 모두 두 제작자가 ‘주머니를 털어서’ 지원해 줘야 할 판이었다. 28일이라는 촬영 기간은 그들이 보기에도 빡빡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의 ‘스케줄 오바’는 불가피해보였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아빌드센은 놀랍도록 완벽하게 스케줄을 지켜서 완성도 높은 필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촬영지를 LA로 옮긴 뒤에도 그의 작업 스피드는 전혀 줄지 않았다.


☞ 위 신은 <록키>의 트레이닝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록키>의 촬영기간 동안 스탤론은 일단 카메라만 돌아가면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의’ 괴력을 발휘하곤 했다. 스태프들은 밴을 타고 록키의 러닝 신(위 장면)을 찍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찌된 영문인지 카메라를 들이대자 스탤론의 스피드는 (촬영일 내내 죽도록 뛰어다녔음에도)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스탤론이 갑작스럽게 스피드를 올리는 위 신은 사전에 계획된것도 아니고 치사한 조작(필름을 빨리 재생시킨다든가 하는)을 통해 만들어진 것도 아닌 ‘100% 스탤론이 현장에서 급조해낸’ 장면이다. 촬영팀은 스탤론이 뿜어내는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필름에 고스란히 담는 데 성공했으며, 빌 콘티의 기막힌 음악은 그 에너지를 몇 배로 증폭시켜 위 신을 영화 사상 길이 기억되는 명장면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편, 극악한 제작 여건은 제작진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을 안겨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매니저가 되겠다고 집으로 찾아온 미키에게 록키가 고함을 지르는 장면을 찍을 때가 그러했다. ‘극도로 가난했던’ 제작진은 근처에서 제일 값이 싼 아파트의 방 하나를 대여해서 (촬영용) 록키의 거처로 활용했는데, 외관상으로도 지저분한 이 곳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마저 풍겨서 슬라이와 촬영팀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금 언급하는 신에서 나오는 록키의 대사 “그래요, 이 곳 냄새 구립니다! That's right, It stinks!"는 각본에 있던 것이 아니라 슬라이가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내뱉은 애드립 대사다.) 영화 중 록키가 에이드리언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뒤 “거기 큰 벌레가 있으니 이리(소파로) 와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방의 바닥에는 실제로 큰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본래 록키와 미키가 대화를 나누는 신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길고 격렬’하지는 않았다. 헌데,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고) 슬라이가 화장실로 들어간 뒤 ‘지저분한 거울’을 보는 순간 슬라이의 뇌리에는 불행했던 과거와 한없이 초라했던 자신의 거처가 스쳐지나갔다.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생긴 그는 화장실 문을 연 뒤 복도로 빠져나간 미키 역의 버제스 메레디스를 향해 '각본에도 없는’ 즉흥대사를 정신없이 날려댔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빌드센은 몸짓으로 신호해서 카메라맨에게 이 기막힌 애드립 장면을 고스란히 필름에 담도록 했다. 슬라이가 광풍과도 같은 즉흥대사를 모두 뱉어낸 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아빌드센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의 즉흥연기는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슬라이는 ‘혹시나’ 싶어서 카메라맨 쪽을 돌아봤다. 카메라맨은 ‘당신 연기 모두 다 필름에 담았으니 안심하라’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음향 녹음 담당자가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녹음기 배터리가 다 됐어요........”


☞ “으아아~~~”


슬라이는 거의 12차례의 재촬영을 거듭한 뒤에야 처음과 같은 놀라운 열연을 재현할 수 있었다. 아빌드센 역시 이 신이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여 슬라이가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이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이 장면은 <록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신 중 하나가 됐다.


☞ 문제의 애드립 신


록키의 아파트에서 촬영을 진행한 마지막 날, 슬라이와 샤이어는 ‘키스 신’을 찍게 됐다. 이 장면은 영화의 두 주인공의 관계가 급진전되는 전환점인 동시에, ‘왕따 처녀’ 에이드리언이 허물을 벗고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와도 같은 중요한 신이었다. 헌데, 이 장면을 찍던 중 슬라이는 샤이어가 입술 벌리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처음에 그는 샤이어가 ‘극도로 수줍음을 타는 에이드리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연기를 펼친다고 생각했으나, 몇 차례의 촬영이 거듭되고(이 신은 무려 8시간에 걸쳐서 촬영됐다) 입술 근육이 ‘얼얼해질’ 때까지 그녀가 입술을 벌리지 않자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촬영이 끝난 뒤 그녀는 슬라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입술을 벌리지 않은 건, 제가 지독한 독감에 걸려서예요!” 하지만 샤이어의 이 돌발연기(?) 덕분에 이 신은 각본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리얼한 장면이 됐다.


☞ “감기 조심하세요~”


그러나 샤이어의 극진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슬라이는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주사를 맞으면서 슬라이는 과연 다음 신의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을 해야 했다. 다음에 찍을 신은 아폴로와의 결전을 앞둔 록키의 혹독한 훈련 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 해서든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하필이면 이럴 때 독감에 걸리다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촬영을 연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고 나니 슬라이에게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힘이 다시 생겼다.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록키의 훈련 장면은 처음부터 ‘다소 과장되도록’ 찍게 되어 있었다. 이 훈련 장면은 ‘록키가 흘리는 땀방울이 스크린을 통과해 관객의 얼굴에 튈 정도로’ 박력이 넘쳐야 했다. 헌데, 슬라이의 ‘미친 듯한’ 연기를 보니 굳이 트릭을 써서 이 신을 과장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훈련 신 중에는 록키가 두 팔로 푸시업을 하는 부분이 있었다.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고 아빌드센이 ‘액션’을 외치자 슬라이는 정신없이 푸시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이 아니라 ‘한 팔’ 씩 교대로 바닥을 짚으며 마치 날아갈 듯 푸시업을 하고 있었다. 촬영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 놀라운 장면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슬라이는 촬영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어깨에 불이 나고 있음’을 느꼈다. 몸을 던진 열연 덕분에 이 장면은 기가 막힌 에너지를 전달하게 됐지만, 슬라이는 밤새도록 어깨 통증으로 끙끙 앓아야 했다!


비슷한 일은 ‘록키가 푸줏간에서 쇠고기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신’을 촬영할 때도 일어났다. 이 장면은 거의 하루 종일 촬영됐는데, 슬라이의 트레이너 지미는 부상을 우려해서 손가락에 몇 겹의 테이핑을 해 주었으나 워낙 촬영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정신없이 쇠고기를 가격하던 슬라이는 촬영이 끝난 뒤 관절뼈가 나가고 손가락 중간 마디가 ‘납작’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슬라이의 손은 지금까지도 이 상태다.) 하지만 이런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 덕분에 또 하나의 기막힌 신이 탄생했다.



<록키>에서 가장 유명한 신은 뭐니 뭐니 해도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 신이다. 지금부터 이 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록키>의 사전 제작 과정에서 아빌드센은 ‘가렛 브라운’이라는 카메라맨이 찍은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다. 카메라맨이자 발명가인 가렛 브라운은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들고 찍기를 할 수 있는’ 카메라 장비를 연구해왔는데, 1973년에 마침내 그 장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 이 장비는 바로 오늘날 ‘스테디캠’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가렛 브라운은 바로 스테디캠의 발명자였다. 

 

브라운은 이 장비의 성능을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몇 개의 ‘실험 쇼트’를 찍었는데, 그 중에는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계단을 배경으로 한 것이 있었다. 브라운은 여자친구에게 계단을 뛰어오르도록 한 다음 스테디캠 장비를 든 채 따라가면서 그녀의 모습을 찍었는데, 이렇게 찍힌 촬영분에서는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빌드센이 본 것은 바로 이 촬영분이었다. 그는 즉각 브라운에게 연락을 취해 “맙소사! 그 장면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건가요? 그리고 그 장면을 찍은 곳은 어디죠?”라고 물어봤다. 브라운이 촬영을 했던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계단은 즉각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에 추가됐다. 슬라이의 각본에는 (역시) ‘록키가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계단을 뛰어오르는 신’이 추가됐고, 얼마 가지 않아 브라운 자신도 스테디캠 장비를 들고 <록키>의 촬영팀에 합류했다.


☞ 스테디캠의 발명자 가렛 브라운. 그는 영화 촬영 부문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이 장비를 개발한 공로로 1978년에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다.


각본에 의하면 록키는 박물관의 계단을 ‘두 번’ 오르게 돼 있었다. 처음 계단을 오를 때는 몸이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록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정상이 도달한다. 하지만 두 번째는 (여러분이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다르다. 이 부분은 록키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가난뱅이 무명복서에서 인생의 승리자로 거듭난다는 비주얼 메타포를 담고 있다. 빡빡한 스케줄에 쫓기던 제작진은 두 장면을 같은 날 새벽에 한꺼번에 찍었다. 본래 슬라이가 구상한 이 장면의 내용은 ‘록키가 벗커스를 들고 계단을 끝까지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이는 격렬한 훈련의 결과 록키의 체력이 얼마나 강화됐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체중이 60킬로가 넘는 개를 들고 72개의 계단을 오르려고 하니 슬라이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장면을 찍다가 디스크+관절염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슬라이는 벗커스를 들고 계단을 반쯤 오르다가 ‘영화를 채 완성하기도 전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이 두려워 이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대신 ‘록키가 혼자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내용을 바꿨다. (슬라이는 이 때 포기한 ‘벗커스’ 아이디어를 수정해서 <록키 발보아>의 계단 신에 활용했다.)

 

☞ 역사상 최초로 스테디캠이 활용된 장편영화는 무엇일까? 만일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틀렸다. 정답은 바로 <록키>다. 영화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록키>의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 신은 (놀랍게도) 스테디캠 장비가 활용된 최초의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가렛 브라운은 <록키>의 이 장면 이외에 <바운드 포 글로리>(<록키>와 거의 동시에 제작됨), <엑소시스트 2>등에서도 스테디캠을 활용한 멋진 쇼트를 선보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참고로, <샤이닝>의 유명한 스테디캠 쇼트 역시 브라운이 찍은 것이다.


아빌드센은 후반 제작 과정에서 록키의 훈련 장면을 어떻게 편집할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가 원한 것은 숨 막힐 듯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신이었다.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그런 신 말이다. 궁리 끝에 아빌드센은 ‘음악’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미리 작곡된 음악에 맞춰서 훈련 장면을 편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이내믹한 리듬감이 부여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아빌드센은 영화의 음악을 맡은 빌 콘티에게 ‘훈련 장면에 삽입될 1분 30초 길이의 음악’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콘티는 곧 훈련 장면에 어울리는 ‘힘찬’ 음악을 작곡해줬다. 듣고 있노라면 당장 추리닝을 입고 근처에 있는 계단으로 가서 마구 뛰어오르고 싶어지는 그런 음악 말이다. 얼마 뒤, 아빌드센은 ‘30초 분량의 음악이 더 필요하네’라며 콘티에게 음악의 길이를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음악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아빌드센은 결국 음악의 길이를 (웬만한 노래 한곡 길이인) 3분으로 늘리고, 훈련 장면 전체를 이 음악에 맞춰서 편집하기로 했다. 아빌드센의 계산대로라면, 훈련 장면은 그 자체로 ‘아드레날린을 마구 유발하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될 예정이었다.


헌데, 이 신을 더욱 파워풀하게 만들 방법을 궁리하던 아빌드센은 다음 순간 콘티에게 약간 황당한 요구를 해왔다. ‘음악에 가사를 붙여 달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아빌드센은 이 장면의 음악을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록키에게 힘을 실어주는 파이팅 송’으로 만들기를 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콘티의 음악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붙었다.

 

Trying hard now

It's so hard now

Trying hard now

Getting strong now

Won't be long now

Getting strong now

Gonna fly now

Flying high now

Gonna fly, fly, fly...

사실, 이 대사는 그냥 읽어보면 ‘풋~’하고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유치한 것이었다. 실제로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녹음한 이들(콘티의 아내 셸비의 친구들이었다)의 첫 반응도 그러했다. 그들은 콘티가 ‘노래를 녹음해서 음반으로 낼 예정’이라고 설명하자 모두 비웃었다. ‘과연 이런 (바보 같은 가사가 붙은) 노래가 담긴 음반을 누가 살까’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슬라이의 훈련 장면과 결합된 곡의 임팩트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영화가 개봉한 뒤 관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체 계단 신에서 나오는 곡의 제목이 뭐냐’라며 궁금해 했다. 


 

영화의 히트와 함께 문제의 곡 ‘Gonna Fly Now'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Gonna Fly Now'는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전까지 별 볼일 없는 영화음악가였던 빌 콘티는 즉각 대스타가 됐다. 그리고 그 해(1977년) 여름에는 더 믿기 힘든 사건이 터졌다. 7월 2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Gonna Fly Now'가 당당히 넘버 1에 등극한 것이다. ‘경음악’에 가까운 영화음악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결코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당시 미국을 휩쓸던 <록키> 열풍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주는 좋은 예다.


☞ 세상에서 이보다 더 기막힌 노래 제목이 있을까? 'Gonna Fly Now'는 <록키>의 주제와 내용을 그대로 대변하며, 훈련 장면의 록키의 이미지와도 딱 맞아 떨어진다.


 

☞ 위 장면과 관련하여 DVD의 음성해설에서 아빌드센 감독은 한 가지 재미있는 고백을 한다. 본래 이 장면은 ‘줌 백(Zoom back)'으로 찍혔다. 즉, 원래대로라면 두 팔을 들고 환호하는 스탤론의 클로즈업이 비친 뒤 카메라 시선이 뒤로 물러나 박물관 계단을 원경으로 비춰주게 돼 있었다. 그런데 막상 촬영을 마친 뒤에 아빌드센의 뇌리에는 ‘이런! 줌 인(Zoom in)으로 촬영을 할 걸!’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즉, 아빌드센은 박물관 계단의 원경에 머물던카메라 시선이 스탤론 쪽으로 점점 다가가 마지막에는 ‘드디어 해냈다’는 환희에 찬 그의 표정을 보여주며 신을 마무리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에게는 재촬영을 할 돈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후반 제작 과정에서 아빌드센은 아주 유치한(?) ‘트릭’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신을 기어코 만들어냈다. 어떻게 했냐고? 간단하다. 필름을 ‘거꾸로’ 재생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은 트릭’ 덕분에 이 신은 더욱 관객들이 평생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됐다.


워낙 제작비가 적었던 탓에, <록키>의 촬영 과정에서는 대형 상업영화에서는 생각하기도 힘든 우스운 일이 수도 없이 발생했다. 예컨대, 에이드리언에게 록키와 데이트하러 나갈 것을 종용하던 폴리가 오븐에서 칠면조 고기를 꺼내 다리를 뜯은 뒤 문 밖으로 휙 던지는 장면을 보자. 이 장면은 연속으로 5~6 테이크쯤 반복해서 찍혔는데, 문제는 소품으로 준비된 칠면조 고기가 한 개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 밖에서는 두 명의 소품 담당자가 담요를 들고 대기하고 있다가 버트 영이 칠면조 고기의 다리를 뜯은 다음 던지면 잽싸게 뛰어가서 그것을 받곤 했다. (물론 다음 테이크에서는 ‘다리를 다시 붙인’ 이 칠면조 고기가 재활용됐다.) 이 광경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버트 영은 테이크가 반복될 때마다 담요를 든 소품 담당자들이 칠면조를 받기 힘든 위치로 휙 던져버리는 짓궂은 장난을 치곤했다. 당연하게도 다음 순간, 밖에서는 ‘제기랄!’하는 소품 담당자들의 욕설이 들려오곤 했다.


☞ “어이~ 칠면조 좀 잘 받아보쇼!”


하지만 ‘저예산 영화’라는 제약은 때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쪽에서 영화의 완성도에 결정적 기여를 하기도 했다. <록키>의 플롯은 태생적으로 ‘다이내믹’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지만, 놀랍게도 영화에서는 분위기상 축 처지는 부분이 거의 없다. 119분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은 마치 ‘액션영화’처럼 빠르게 흘러가는데, 이로 인해 관객이 클라이맥스 신에서 느끼는 짜릿함의 강도는 무한대로 증폭된다. 이런 기묘한 현상이 발생한 근본적 이유는 - 물론 스콧 콘라드의 편집이 뛰어났던 탓도 있지만 - 영화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촬영됐기 때문이다.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록키>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자신이 입을 의상을 직접 준비해야 했다. 촬영이 시작된 후, 스탤론은 문뜩 ‘록키가 모자를 쓰고 다니면 상당히 독특해보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스탤론 자신이 좋아했던 배우 찰리 채플린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촬영지인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후 허름한 모자 하나를 구입했다. 하지만 제작진 중 몇몇 이들은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을 보더니 손사래를 쳐댔다. 록키가 모자를 쓴 모습이 <프렌치 코넥션>에서의 진 해크만을 연상시킨다는 게 그 이유였다. 즉, 이들은 영화가 <프렌치 코넥션>의 설정을 모방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을 우려한 것이다. 어이가 없어진 스탤론은 ‘무조건’ 모자를 쓰겠다고 고집했고, 몇 차례의 설전 끝에야 결국 록키는 모자를 쓰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 록키는 관객의 뇌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캐릭터가 됐다.


 

제작비와 관련하여 발생한 해프닝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바로 ‘스케이트장’ 사건이다. 본래 슬라이의 각본에서 록키와 에이드리언은 스케이트장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데이트를 하게 돼 있었다. 아빌드센은 이 부분을 읽어 본 뒤 슬라이에게 ‘너무 정적이다.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대신 두 사람이 같이 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보다 동적인 신으로 내용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동의한 슬라이는 (자신이 스케이트를 탈 줄도 모르면서 -_-;) 스케이트장 신을 각본에 새로 삽입했다. 새로 삽입된 신에서 록키와 에이드리언은 약 300명 정도의 엑스트라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며 이야기를 나누게 돼 있었다. (슬라이는 ‘엑스트라들 사이에서 뒤뚱뒤뚱 어설프게 스케이트를 타는 두 커플의 모습’이 매우 코믹하면서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윙클러-차토프 제작자 콤비가 슬라이와 아빌드센을 호출했다. 다음은 당시 슬라이와 제작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슬라이: 요(Yo)! 무슨 일인가요?

제작자들: 무슨 일이긴! 돈 문제지 -_-; 이봐! 우리의 쥐꼬리만한 제작비로는 300명이나 되는 엑스트라를 모을 수 없다네. 그렇게 많은 스케이트화도 당연히 대여할 수 없고!

슬라이: 좋아요! 그럼 엑스트라는 몇 명이나 모을 수 있나요? 200명?

제작자들: 더 낮춰서 잡게!

슬라이: 150명?

제작자들: 더 낮춰!

슬라이: 75명?

제작자들: 동원할 수 있는 엑스트라는.......‘1명’일세.

슬라이: "........................................"

순간 슬라이와 아빌드센은 넋이 나간 듯 서로를 멍하니 바라봤다. 애써 쓴 스케이트장 신은 이제는 필름에 담을 수 없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슬라이는 눈물을 머금고 처음에 썼던 ‘레스토랑 신’을 부활시킬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아빌드센은 여전히 이 아이디어에는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아빌드센은 1명의 엑스트라(스케이트장 청소부)를 최대한 활용한 신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고, 그 결과 ‘폐장한 스케이트장에서 록키와 에이드리언만이 스케이트를 탄다’는 내용이 탄생했다. 록키는 스케이트장 청소부에게 10달러를 쥐어주며 10분 동안 에이드리언이 스케이트를 타도록 허락해줄 것을 부탁한다. 에이드리언이 어설프게 스케이트를 타는 동안 (스케이트를 전혀 탈줄 모르는) 록키는 러닝을 하며 ‘수다’를 떤다. 두 사람이 나름대로의 빙상 데이트(?)를 즐기는 동안 청소부는 “8분 남았소!”, “7분 남았소!”라고 계속 외쳐댄다. ‘기막히게 코믹한 동시에 한없이 사랑스러운’ 이 스케이트장 장면은 결국 열악한 제작 환경이 만들어낸 최고의 부산물이었다.

☞ <록키>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신


☞ 버트 영이 야구 배트로 탁자를 내리치는 이 장면에서 스탤론의 ‘깜짝 놀란’ 표정은 연기가 아닌 진짜다. 아빌드센은 버트 영에게 배트로 한번 내리칠 때마다 ‘대사’를 하나씩 내뱉으라고 주문했는데, 영은 이 주문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고 그날따라 촬영이 진행되던 방 안의 온도도 (과도한 난방으로 인해) 40도 이상이어서 매우 ‘열이 받은’ 상태였다. (훗날, 영은 아빌드센의 이 주문이 결과적으로는 적절한 것이었다고 인정했다.) 테이크가 7~8차례 반복되자 폴리 역에 완전히 몰입한 영은 배트를 더욱 거세게 휘둘러댔다. 폴리가 록키 옆에 있는 탁자를 내리치는 부분에서, 스탤론은 테이크가 거듭될수록 영의 배트가 점점 자기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영이 정말로 ‘열 받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이 장면은 놀랍도록 생생한 리얼리티를 발산하게 됐다.


스케줄의 막바지, 드디어 ‘가장 까다로운 신’의 촬영의 촬영이 임박했다. 바로 록키와 아폴로의 클라이맥스 시합 신이다. 제작진은 이 신의 촬영을 위해 LA 스포츠 어리나(L.A. Sports Arena)를 대여했다. 헌데,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경기장의 관중석을 채우는 일’이었다. LA 스포츠 어리나의 복싱 경기장은 1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플롯 상) 명색이 ‘최강의 세계 챔피언의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 게임’인데,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당연히 경기장의 관중석은 ‘만원’이 돼야 했다. 그러나 스케이트 장을 메울 ‘300명’의 엑스트라도 확보하지 못한 ‘가난한’ <록키>의 제작진이 1만 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동원할 재력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제작진이 이 신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엑스트라는 고작 200여 명이었다. 결국 촬영팀은 이 200여 명의 엑스트라를 활용해 관중석을 ‘만원’으로 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했다.

 

 

☞ <록키>에 등장하는 엑스포지션 신 중 가장 중요한 신은 바로 위의 두 신이다. 록키가 이웃 소녀 마리를 집에 데려다주며 인생에 대한 ‘훈계’를 하는 장면(위 사진)은 록키의 선한 품성과 순진한 내면세계를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신이다. 그러나 UA 측은 ‘중심 플롯(복싱 이야기)과 관계없는 늘어지는 부분’이라는 이유로 이 신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 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아빌드센은 이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으며, 결국 그의 고집대로 이 신은 최종 편집본에 삽입됐다. 아빌드센의 판단은 정확했다. 관객들은 이 신으로 인해 록키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게 됐다. 한편, UA 측은 록키가 시합을 앞두고 에이드리언에게 ‘아폴로에게 이길 가능성은 없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아래 사진)도 필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슬라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시합이 펼쳐지기 전에 관객에게 ‘록키의 목표는 아폴로를 꺾는 것이 아니라, 끝(15라운드)까지 버티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만 엔딩 신의 감동이 제대로 살아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 신은 스케줄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촬영팀은 ‘단 한 테이크’로 이 신을 성공적으로 찍어야 할 만큼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스탤론과 샤이어는 ‘단 한 테이크’만에 이 신의 촬영을 무사히 마쳤고, 그 결과 <록키>의 플롯은 더욱 탄탄하게 됐다.


바로 그때, 촬영 감독인 제임스 크랩이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경기장 전체를 어둡게 한 뒤 록키와 아폴로가 있는 부분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것이다. 몇 안 되는 엑스트라들은 이 스포트라이트 주위에 몰아넣으면 그만이었다. 아폴로가 ‘화려하게’ 입장하는 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폴로가 움직일 때, 스포트라이트는 그를 따라 계속 이동하며, 엑스트라들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따라 분주히 재배치될 예정이었다. 물론 이런 ‘잔 트릭’만 계속 쓸 경우, 관객들이 ‘혹시나?’하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었기에 아빌드센은 시합장면 중간 중간에 ‘관객들이 꽉 차 있는’ 장면도 가끔씩 보여주기로 했다. 그럼 이 장면은 어떻게 만드느냐고? 간단하다. ‘할리우드 저예산영화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용한’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그 방식은 바로 ‘기록 영화의 일부 신을 슬쩍 빌려오는 것’이다. <록키>에 등장하는 ‘만원 관중’ 신은 실제로 찍은 것이 아니라, 바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졌던 ‘무하마드 알리 대 조 프레이저’ 경기의 기록 영화에서 가져다 쓴 것이다.


☞ 이 장면은 사실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졌던 ‘무하마드 알리 대 조 프레이저’의 경기의 일부분이다.


촬영을 앞두고 제작진은 LA의 몇몇 신문과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작은 광고를 하나 내보냈다. 광고의 내용은 이러했다: “X월 XX일 LA 스포츠 어리나에 오셔서 ‘관중’ 엑스트라 역을 맡아주시는 분들에게는 무료로 치킨 식사를 대접합니다!” 촬영 당일 아침, 제법 많은 사람들이 ‘공짜 치킨’을 얻어먹기 위해 (-_-;) 스포츠 어리나에 운집했다. 한편, 제작진은 록키와 아폴로의 시합 장면을 더욱 빛내기 위해 몇 명의 ‘특별 엑스트라’를 초빙할 것을 기획하기도 했다. 바로 ‘실제 프로페셔널 복싱 챔피언들’이었다. 이들은 록키와 아폴로의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까메오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작진의 요청을 받은 챔피언들 중 ‘보잘 것 없는 싸구려 영화’를 위해 경기장을 찾은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그 한 명은 바로......‘조 프레이저’였다.


슬라이와 촬영팀은 거물급 복서 조 프레이저가 경기장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흥분했다. 프레이저는 ‘가난한’ 제작진에게는 분이 넘칠 정도의 ‘귀빈’이었다. 게다가 그는 필라델피아를 대표하는 영웅 중 한명이었기 때문에 <록키>의 설정에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프레이저가 친히 경기장에 행차했다는 소식은 수 십일에 걸친 강행군에 지칠 대로 지친 촬영팀에게는 대단한 활력소가 됐다.


☞ <록키>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한 조 프레이저. (우측)


본격적인 시합 장면의 촬영이 시작되기 전, 두 가지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포스터 사건’이다. ‘결전’이 벌어질 경기장의 양 사이드에는 록키와 아폴로의 모습이 각각 그려진 커다란 포스터 두 장이 걸리게 돼 있었다. 헌데, 포스터의 제작자가 ‘엉뚱한 사각 팬티’를 입은 슬라이의 사진을 참조하는 바람에 록키의 사각 팬티 색을 잘못 칠해버렸다. (록키는 흰 바탕에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팬티를 입고 경기를 하게 돼 있었으나, 포스터 속의 록키는 빨간색 바탕에 흰 색 줄무늬가 있는 팬티를 입고 있었다.) 물론 제작진에게는 포스터를 다시 제작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아빌드센과 슬라이는 궁리 끝에 프로모터 저겐스가 ‘깜짝 출연’하는 신을 급조해냈다. 시합 전, 경기장을 찾은 록키는 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저겐스에게 포스터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한다. 하지만 저겐스는 “무슨 상관인가?”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저겐스의 말투에서는 ‘어차피 너는 돈벌이가 되는 쇼를 위한 희생양일 뿐이다’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결국 실수를 땜빵하게 위해 급조된 이 신 덕분에 관객은 이후 펼쳐질 시합에서 록키를 더욱 동정하게 된다. 슬라이와 아빌드센은 이렇게 해서 ‘또 한번’ 위기의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반전시켰다.

 

☞ 문제의 '포스터 신'


아빌드센과 슬라이의 놀라운 임기응변술은 다음에 발생한 해프닝 때 또 다시 발휘됐다.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슬라이는 소품 담장자에게 ‘The Italian Stallion'이라는 글자가 등에 새겨진 갈색 가운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슬라이는 바로 이 가운을 입고 경기장에 입장할 예정이었다. 헌데, 막상 완성된 가운을 본 뒤 그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가운의 사이즈가 ‘최홍만’ 선수에게나 어울릴 정도로 거대했던 것이다. 슬라이가 이 가운을 입으니 마치 어린 아이가 어른 외투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대로 촬영을 강행했다가는 자칫 클라이맥스 신의 심각한 분위기가 ‘개그 콘서트’ 수준으로 망가질 우려가 있었다. 궁리 끝에, 아빌드센은 슬라이에게 경기장에 입장하기 직전에 탈리아 샤이어에게 ‘급조된’ 대사 한 마디를 날릴 것을 제안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아래의 재미있는 신이다.

 

☞ 스탤론은 관객들이 ‘어? 가운이 너무 큰 거 아냐?’하고 비웃기 직전에 이런 대사로 선수를 친다. 아빌드센과 스탤론이 ‘위기의 상황’에서 급조한 이 신은 멋들어지게 효과를 발휘했다.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경기장에 도착한 칼 웨더스는 슬라이와 함께 사각 팬티를 입은 채 호흡을 가다듬으며 곧 진행될 촬영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했다. 두 배우에게 이 때의 심경은 ‘운명의 시합을 앞두고 있는 무하마드 알리-조 프레이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두 사람은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나, 온 몸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있었다. (영화에서 비친 시합 전 광경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슬라이는 아폴로의 등장 신이 매우 ‘특별하게’ 보이길 원했다. ‘어떻게 하면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시합의 주인공을 특별하게 보이도록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슬라이는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폴로는 (모델이 된 무하마드 알리처럼) 흑인이다. 그런 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복장을 하고 경기장에 입장한다면? (1960년대 흑인 폭동 사태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당시 미국에서 가장 민감한 사회적 이슈는 역시 ‘인종 문제’였다.) 이것이야 말로 ‘기회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기막힌 메타포가 되지 않겠는가? 또한, 그것은 ‘기회의 나라에서 성공한 챔피언이 또 다른 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영화의 플롯과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빌드센 역시 이 아이디어를 좋아했으나, 단 한 사람만은 정색을 하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바로 아폴로 역을 맡은 당사자 웨더스였다. 그는 아폴로의 이런 모습이 인종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관객들에게 엉뚱하게 받아들여지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더 나아가, 그는 만일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자신의 향후 배우로서의 커리어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빌드센은 웨더스의 볼멘소리를 듣고는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니, 일단 촬영을 해보고 결정하세. 만일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나는 그 장면을 영화에 포함시키지 않겠네. 약속하네.”라고 그를 설득했다. 결국 이 장면의 촬영은 예정대로 강행됐고,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이었다. 당초의 우려와는 반대로, 이 장면은 웨더스라는 배우를 관객들에게 (긍정적으로) 각인시킨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 아폴로가 조지 워싱턴 복장을 하고 입장하는 이 신에서 엑스트라들은 ‘스포트라이트’의 주위에만 몰려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움직임에 따라, 엑스트라들은 재빨리 재배치되곤 했다. 한편, ‘가난한’ 제작진은 아폴로가 탄 보트를 화려하게 장식할 돈이 부족했기에 보트의 ‘한쪽 면’만을 요란하게 장식한 뒤 그쪽 면만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이 날, 경기장에 모인 200여명의 엑스트라들은 (당연하게도) 슬라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그가 이 경기장에서 뭘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공짜) 치킨 식사’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헌데, 슬라이가 ‘바보 같은’ 가운을 입은 채 입장하고, 잠시 뒤 웬 근육질 흑인 배우가 조지 워싱턴의 복장을 한 채 배를 타고 입장하자 엑스트라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예상치 못했던 구경거리를 본 뒤, 그들은 (제작진이 전혀 예상치 못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두 배우가 링 위에 올라가고 ‘뭔가가 시작되려 하자’ 엑스트라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잠시 후 웨더스가 가운을 벗자 이번에는 ‘엉클 샘’ 복장이 나타났다. 이 모습을 본 엑스트라들은 거의 ‘야유’에 가까운 환호성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과 잡동사니 쓰레기를 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이는 향후의 ‘난장판 상황’을 예언하는 불길한 징후였다.


☞ <록키>는 스탤론에게 있어 ‘가족 영화’나 마찬가지였다. 스탤론은 동생인 프랭크 스탤론 주니어(영화 초반부의 거리 싱어로 등장)에서 시작해 아내인 사샤(그녀가 등장한 신은 아쉽게도 최종 편집판에서는 삭제됐다), 아버지인 프랭크 스탤론, 심지어 애견인 벗커스까지 영화에 모조리 출연시켰다. 록키와 아폴로의 시합 장면에서 타임키퍼(위 사진) 역으로 까메오 출연한 인물이 바로 스탤론의 아버지인 프랭크 스탤론이다.


록키와 아폴로의 시합 장면은 ‘시간 흐름의 역순으로’(즉 15라운드에서 시작해 1라운드를 끝으로 마무리 짓는) 촬영됐다. 이유는 바로 ‘분장’ 때문이었다. (이 방식으로 촬영하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분장이 흐려지는 문제점을 오히려 ‘메리트’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슬라이와 웨더스는 당초 계획한 대로 15라운드를 ‘쉬지 않고 논스톱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은 분장을 고치는 순간뿐이었다. 이것은 스케줄이나 예산을 따져 봐도 너무나 당연한 전략이었다. 이 날, 이 장소가 아니고서는 엑스트라들을 모아 놓고 이런 촬영을 할 기회가 없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블루레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시합 장면의 촬영이 시작되려는 찰나, 슬라이는 ‘뭔가 허전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이 날 최고의 귀빈이었던 ‘조 프레이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당황했다. 슬라이는 아빌드센에게 “요(Yo)! 프레이저 씨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고, 아빌드센 역시 당황하여 조감독에게 프레이저의 행방을 물었다. 조감독은 다시 부하 스태프에게 ‘귀빈’의 행방을 물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소문 끝에 쇼킹한 사실이 밝혀졌다. 프레이저는 거의 다섯 시간 동안이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구도 그에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라고 알리지 않은 것이다. 순간, 슬라이를 비롯한 스태프들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들은 애써 섭외한 ‘귀빈’이 지금쯤 무척 화가 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 때 누군가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프레이저를 모시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다행히도 프레이저는 제작진의 무례를 관대하게 용서해줬고, 기꺼이 영화 촬영에 응했다.


☞ 복싱계의 전설 중 한 명인 조 프레이저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아폴로 크리드 역을 맡은 웨더스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흥분하여 각본에 있지도 않은 대사(위 사진)를 마구 읊기도 했다.


슬라이와 웨더스가 주먹을 맞교환할 무렵, 관중 엑스트라들은 제공된 치킨 식사를 대부분 먹어치운 상태였다. 이후 그들은 ‘보너스로’ 두 배우의 ‘그럴듯한 쌈박질’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슬라이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록키 파’와 ‘아폴로 파’로 완전히 나뉘어 치열한 응원전(혹은 ‘비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경기장 분위기가 용광로처럼 뜨거워지자, 슬라이와 웨더스는 수 십 일 동안 가졌던 리허설 시합 때보다도 훨씬 격렬한 ‘오버 액션’을 자신도 모르게 보여주고 있었다. 웨더스는 리허설 때보다 훨씬 빠르고 다이내믹하게 움직였고, 슬라이 역시 이에 질세라 스피디한 무브먼트를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펀치를 피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사전에 계획된 안무를 약간씩 벗어나는 이런 ‘오버 액션’ 때문에 펀치를 제대로 피하지 못해 시합 도중 간간히 상대방의 펀치를 ‘진짜로’ 얻어맞곤 했다. 관중들이 멀리서 보기에 두 사람은 영락없이 연기가 아닌 ‘실제 복싱 시합’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 구경거리’에 푹 빠져들어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사전에 짜여진 스크립트대로, 슬라이가 웨더스를 코너로 유인한 뒤 레프트 훅을 겨드랑이에 꽂아 다운시키자, 관중 엑스트라들은 미친 듯 환호하며 들고 있던 치킨 뼈와 각종 쓰레기를 링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통제가 불가능한 ‘폭도’들이 돼가고 있었다. 웨더스는 곧장 일어난 뒤 슬라이를 거칠게 몰아붙였으며, 아폴로를 응원하던 관중 엑스트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치킨 뼈를 ‘록키를 응원하던 엑스트라들’ 쪽으로 마구 던져댔다. 링 위에서 슬라이와 웨더스가 치열한 ‘주먹 싸움’을 벌이는 동안, 관중들은 이런 식으로 ‘치킨 뼈’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난장판에 가까운 격한 분위기 속에서도, 슬라이와 웨더스는 그럭저럭(혹은 ‘간신히’ -_-;) 처음 계획한 대로의 연기를 진행시켜 나갔다.


☞ 촬영 현장의 ‘카오스에 가까운’ 열기는 그대로 <록키>의 클라이맥스 시합 장면에 담겼다.


그러나 잠시 후, 생각지도 않았던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슬라이의 아버지 프랭크 스탤론이었다. 그는 영화상에서만 타임키퍼 역을 맡은 게 아니라, 실제 촬영장에서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즉, 그가 종을 울려야 슬라이와 웨더스는 코너로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헌데, 두 사람이 한창 신나게 서로를 가격하고 있을 때, 프랭크 스탤론은 ‘시합 관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종을 울리는 것을 깜빡 잊었다. ‘때가 됐는데도’ 종이 울리지 않자, 슬라이에게는 덜컥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대로 계속 시합이 진행되다가는 ‘오버 상태’의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날아오는 웨더스의 펀치(웨더스 역시 분위기에 파묻혀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에 위기감을 느낀 슬라이는 아버지 쪽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뭐하시는 겁니까? 종 안 울려요? 아들이 묵사발 되는 꼴 보려고 여기까지 오셨나요?” ‘자존심’이라면 레퍼런스급임을 자부하던 프랭크 스탤론은 아들의 이 외침을 듣고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적반하장 격으로 이렇게 받아쳤다. “너나 잘해 임마! 종은 내가 알아서 칠테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신경질적으로 종을 쳤다.


☞ “너나 잘해 임마!”


촬영이 진행되면서, 슬라이와 웨더스는 당초 계획된 동작이 아닌 ‘즉흥 연기’를 간간이 펼치기도 했다. 헌데, 즉흥 연기 도중 웨더스는 펀치를 잘못 날려 엄지손가락이 부러지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는 남은 라운드 내내 참기 힘든 고통 속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슬라이 역시 비슷한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런 불상사가 생긴 이유는 바로 그들이 낀 글러브 때문이었다. 시합 장면에서 슬라이와 웨더스가 낀 글러브는 ‘카사노바’ 복싱 글러브로, 잘못 휘두를 경우에는 복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제품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이유로 이 글러브의 사용이 금지됐다.) 슬라이는 ‘화면발이 잘 받는다’는 이유로 이 글러브를 선택한 바 있는데,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촬영 내내 고생을 해야 했다.


☞ <록키>의 클라이맥스 시합 장면 촬영에는 총 6대의 카메라가 동원됐다. 가렛 브라운 역시 스테디캠을 들고 촬영팀에 합류했는데(위 사진의 표시된 인물), 그가 포착한 장면은 이전의 영화에서는 구경하지 못한 진귀한 것이었다. (복싱을 하는 두 배우를 시종일관 - 잔 기교 없이 - 한 프레임에 담은 영화는 <록키>가 처음이었다. 이 영화는 또한 기존에 보지 못한 다양한 시점 - 로프 밖에서 관전하는 관객의 시점이나 주심의 시점 등 - 으로 복싱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줘 관객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DVD의 음성해설에서 가렛 브라운은 한 가지 재미있는 고백을 했다. 브라운은 <레이징 불> 촬영 당시에도 스테디캠 오퍼레이터로 고용된 바 있는데, 마틴 스콜세지는 브라운의 촬영 모습을 보고는 그를 해고해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콜세지는 <레이징 불>이 <록키>처럼 보이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발생한 해프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슬라이의 각본에 묘사된 엔딩 장면은 우리가 본 영화의 그것과는 좀 달랐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15라운드까지 훌륭하게 버틴 록키는 결국 판정패한다. (영화와는 달리 각본에서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를 통해 아폴로의 승리가 ‘확실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록키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달성했으며(시합 후, 미키는 “심판들이 어떤 결정을 했든 난 상관 안 하네. 승리자는 자네일세!”라고 록키를 격려한다.) 관중들의 상당수는 이미 그에게 완전히 매료된 상태다. 시합 후 아폴로는 열혈 팬들의 손에 들려서 (마치 ‘인기 록가수’처럼) 옮겨지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록키 역시 (그의 투혼에 매료된) 팬들의 손에 얹혀서 옮겨지게 된다. 록키는 예상치 못했던 팬들의 환대를 받고는 황홀경에 빠진다. 한편, 에이드리언은 구름같은 관중들을 헤치고 록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워낙 관중들의 기세가 사나워서 발걸음조차 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국 록키는 에이드리언과 조우한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던 록키는 (관중들의 손에 들린 채로) 에이드리언을 안기 위해 몸을 굽히고, 에이드리언은 점프를 하여 그의 품에 안긴다. 영화는 에이드리언의 다음과 같은 외침으로 마무리된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 영화가 개봉한 직후 떠돌았던 소문과는 달리, 아빌드센과 스탤론은 <록키> 촬영 중 거의 마찰이 없었다. 아니, 그 반대로 두 사람의 관계는 ‘모든 감독-주연배우들이 꿈꾸는 환상의 궁합’ 그 자체였다. 아빌드센은 늘 스탤론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스탤론 역시 아빌드센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린 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록키-아폴로의 시합 후 장내 아나운서가 판정 결과를 발표하는 장면(위 사진)을 연출할 때가 바로 그런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스탤론은 자신이 쓴 각본대로, 영화에서 ‘아폴로의 승리’가 확연히 드러나길 원했다. 그러나 아빌드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장내 아나운서의 발표가 있는 순간, 관객들은 이미 록키에게 완전히 감정 이입을 한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이 장면이 록키의 심리상태(판정 결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15라운드까지 버텼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고 있는)에 맞춰서 연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아폴로의 승리를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울려 퍼져야 했다. 아빌드센은 슬라이와의 ‘작은 논쟁’에서 결국 이겼고, 문제의 장면은 아빌드센의 뜻대로 연출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시합의 촬영일에 아빌드센은 실제로 ‘웨더스와 슬라이가 관중 엑스트라들의 손에 들려서 나가는’ 장면을 찍으려 했다. 헌데, 막상 웨더스의 몸이 엑스트라들의 손에 들린 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시합 장면을 보고 흥분한(?) 상태였던 몇몇 엑스트라들이 웨더스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어서 엑스트라들의 손 위로 ‘운반되던’ 슬라이 역시 몇몇 이들이 자신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폭도로 변한’ 엑스트라에게 당한 것은 슬라이와 웨더스 뿐만이 아니었다. 버트 영을 비롯한 몇몇 배우와 스태프들 역시 엑스트라들에게 ‘얻어맞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빌드센은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게 위해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아빌드센과 슬라이는 각본에 묘사된 것과는 다른 엔딩 신을 고안해 내야 했다. 공교롭게도, 각본상의 ‘오리지널 엔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이 깨달은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록키에게 가장 ‘뿌듯하고 짜릿한’ 순간은 경기가 끝난 직후, 그러니까 15라운드가 끝나는 종이 울린 때다. ‘최강의 챔피언과 겨뤄서 끝까지 버틴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은 바로 이 순간에 정점을 이루게 돼 있었다. 이후 전개되는 유치한 ‘록 가수’ 퍼포먼스(-_-;) 신은 이 순간의 환희를 희석시킬 위험이 있었다. (‘록 가수’ 퍼포먼스 신의 촬영이 무산된 후, 아빌드센과 슬라이는 ‘록키와 에이드리언이 손을 잡고 대기실로 사라지는’ 엔딩 신을 구상했고, 실제로 촬영까지 했으나 이 신 역시 ‘절정의 순간의 환희’를 반감시킨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빌드센과 슬라이는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러갈 수 있는’ 록키의 인생 최고의 순간을 ‘정지 화면’으로 만들어 영화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인생의 승리자가 된 록키에게 사랑하는 연인 에이드리언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 영화사상 길이 남을 이 명장면은 촬영 과정에서의 불상사로 말미암아 ‘우연히’ 탄생했다.


새로운 엔딩 신의 구상을 마친 아빌드센은 곧 ‘추가 촬영’을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제작진에게는 또 다시 200여명의 엑스트라를 모을 금전적, 시간적 여력이 없었다. 궁리 끝에 제작진은 ‘당장 모을 수 있는’ 엑스트라들만을 급히 모아 링 세트의 한쪽 끝에 몰아놓고 그 쪽에서만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어차피 많은 엑스트라들이 모였던 날에 찍은 촬영분과 교묘하게 교차편집 될 예정이었으므로, 카메라가 엉뚱한 곳을 비추는 등의 실수만 없다면 엔딩 신을 이런 방식으로 찍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추가 촬영 날, 제작진은 가까스로 50여명의 엑스트라를 모을 수 있었다. 엑스트라들을 주로 스태프들(윙클러-차토프 제작자 콤비 포함)의 일가친척으로 구성돼 있었다. (-_-;) 다행히도 촬영은 별다른 실수 없이 마무리됐다.


4. "Yo, Adrian! I did it!"


한달 여에 걸친 촬영이 끝난 뒤, 아빌드센은 스콧 콘라드와 함께 편집 작업에 매달렸다. (<록키>의 촬영은 1976년 초에 마무리됐지만, 정작 영화의 개봉은 11월 말에야 이루어졌다.) 한편, 영화의 개봉을 약 6달가량 앞둔 시점에서 슬라이-사샤 부부는 결혼한 이래 최대의 경사를 맞이했다.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슬라이는 불행했던 자신의 젊은 날이 2세에게 되풀이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점성술의 신봉자답게) 아들이 ‘황소자리’ 태생이 되도록 출생일을 의도적으로 조정하려 노력했다. 또한 그의 아내 사샤는 ‘아이가 특정일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슬라이는 이 시간대가 자신의 아이가 출생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믿었다)에 나오도록’ 부단히 자기 최면을 걸었다고 한다. ‘슬라이 2세’는 1976년 5월 5일에 태어났는데, 슬라이는 아들이 어린 시절 자기가 받았던 모욕(아버지 프랭크 스탤론의 “너는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몸이라도 제대로 가꾸는 게 나을거다!”라는 발언으로 대표되는)을 절대 경험하지 말라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세이지(Sage, '현자’)’라고 지었다. (당장 이 부분에서 슬라이가 자신의 암울했던 과거에 대해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다.)


☞ 슬라이와 사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세이지 스탤론은 <록키 5>에서 록키의 아들로 출연했다.


세이지 스탤론의 출생은 <록키>의 ‘밝은 앞날’을 예언하는 기분 좋은 징후였다. 아빌드센은 편집이 진행 중이던 <록키>의 러프 컷을 가지고 몇 차례의 테스트 시사회를 했는데, 결과는 모두 대성공이었다. 특히 남가주대에서 영화과 학생들을 모아놓고 가진 러프 컷 시사회에서는 아빌드센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의 폭발적인 호응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간부들도 몇 명 ‘몰래’ 자리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는 쇼크를 받아 아빌드센에게 즉각 자사의 차기작 연출 제안을 했을 정도였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의 결과는 더욱 놀라왔다. 관객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마치 ‘진짜 복싱 시합을 보는’것처럼 열광했으며, 엔딩 신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특히, 슬라이가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는 장면은 바로 미국 연출가협회 시사회 때의 반응이었다. 900명에 달하는 할리우드의 ‘실세’들을 모아놓고 가진 이 시사회는 (‘수준 높은 양반들’을 모시고 개최된 시사회답게) 슬라이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나도 조용한 가운데’ 진행됐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뽐뿌질’ 돼야 할 시합장면에서조차 별다른 반응이 없자, 슬라이는 ‘이제 난 끝장났다’라고 크게 낙담했다. (슬라이는 나중에야 이런 ‘고요한 반응’이 미국 연출가협회 시사회 특유의 광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헌데, 막상 시사회가 끝난 뒤 상영관을 빠져나온 슬라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 백 명의 귀빈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기립박수 공세’를 펼친 것이다. 그들의 박수소리는 슬라이의 불행이 막을 내렸음을 알리는 ‘팡파레’와도 같은 것이었다.


☞ <록키>의 개봉 당시 홍보용으로 배포된 포스터중 하나. 영화에서 실제로는 채택되지 않은 엔딩 신이 그려져 있다.


물밀 듯 쏟아지는 호평 공세에 슬라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성공을 거둘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했다. <록키> 이전까지 각본가로서의 그의 능력은 검증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의 능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슬라이는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시사회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할리우드의 유명인사들은 앞을 다투어 슬라이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는데, 슬라이는 메시지 봉투에 적힌 ‘눈부신’ 이름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쓰러질 뻔 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과 같은 ‘천한 무명 배우’가 이름만 들어도 현기증이 느껴지는 명사들의 축하 편지를 무더기로 받게 될 줄을.


UA는 본래 <록키>의 예상 흥행수입을 (많아봐야) 5백만 불 정도로 잡아놓고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시사회를 거친 뒤 그들은 ‘넝쿨째 굴러온 자이언트 호박’을 잡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이미 <록키>가 개봉할 즈음에는 ‘UA가 심상치 않은 슬리퍼(Sleeper, 예상외의 성공작) 작품을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이 영화판에 퍼져 있었다. 이에 흥분한 UA측은 (1년 전과는) 태도를 180도 바꿔, <록키>의 홍보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UA의 홍보팀은 특히 프로젝트의 창시자인 슬라이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역점을 두어 영화의 홍보를 진행했다. 슬라이는 이런 홍보 방향에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인 인물이었다. 그는 글 쓰는 솜씨만큼이나 언변이 빼어났기 때문이다. 영화에 개봉에 즈음해 이뤄진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사, 그리고 ‘<록키>가 어째서 자신의 이야기인지’에 대해 재치 넘치는 언변으로 답변했다. 평생 그를 괴롭히던 ‘어색한 발음’는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그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더욱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게 됐다. 듣기 거북한 슬라이의 발음은 언론 매체가 떠드는 그의 과거가 ‘날조된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한 확실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 “오호! 이거 예감이 심상치 않은데???”


공교롭게도 이런 언론의 호들갑은 일부 평론가들의 신경을 건드려 ‘악평’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예컨대, 뉴욕 타임즈의 인기 평론가인 빈센트 캔비는 <록키>를 가리켜 ‘<위대한 개츠비>(글쓴이 주: 잭 클레이튼이 감독한 1974년 판을 말한다) 이후 가장 과대 포장된 영화’라고 신랄하게 공격했다. 흥미로운 것은 캔비나 피터 레이븐과 같은 이들이 입을 모아 영화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바로 영화의 ‘퇴행적 센티멘털리즘과 로맨티시즘’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에 의하면 <록키>는 과거(특히 프랭크 카프라 시대)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센티멘털리즘을 그대로 차용했을 뿐,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특히 레이븐이나 폴린 카엘(사실 그녀의 <록키> 평은 혹평이 아닌 ‘중간적 입장’에 가깝다. 그녀는 플롯에 넘쳐나는 ‘순수함’ 등과 같은 영화의 장점도 분명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등 제법 많은 이들은 <록키>와 고전 영화 <마티 Marty>(1955, 델버트 만 감독)의 내러티브 및 정서 상의 유사성을 지적하고(물론 슬라이가 <마티> 같은 작품의 틀을 차용해 <록키>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표방하는 ‘정서’면에서 <록키>가 이런 고전 작품들과 닮았다는 지적은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록키>가 이런 고전 영화들의 요소를 차용한 ‘짜깁기 영화’라고 단정 지었다. 물론 아빌드센과 슬라이로서는 이런 ‘끼워 맞추기식’ 평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 델버트 만 감독의 <마티>. 


슬라이와 아빌드센은 <록키>는 평론가들이 ‘진부하다’고 경시해온 고전적 낙관주의를 시대의 요구의 맞춰서 부활시켰을 뿐, 과거 작품들의 ‘생각 없는’ 모방작은 절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아빌드센은 몇몇 평론가들의 ‘진부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다. “나는 ‘진부하다’라는 말이 결코 나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실, ‘진부함’에는 ‘좋은 진부함’과 ‘나쁜 진부함’의 두 종류가 있다. ‘좋은 진부함’이란 관객의 감성의 기저를 자극하는 가식 없는 솔직함을 말한다. 반면 ‘나쁜 진부함’이란 ‘좋은 진부함’인 척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 경지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한 것을 말한다. <록키>는 단연코 전자에 속한다. <록키>가 비현실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라고? 웃기는 소리다. 영화를 제대로 보고 말하라. 록키는 ‘운’에 의해서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15라운드까지 버티고, 사랑하는 여자를 손에 넣은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묘사됐듯, 그는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화에 묘사된 사건 중 ‘리얼리티’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빌드센의 분석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바로 이것이 관객들이 <록키>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 <록키>의 열혈 팬인 킴 베이싱어는 <록키>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록키>의 가장 훌륭한 점은 관객이 ‘스크린 밖’에서 록키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록키>만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이다. 대부분의 다른 영화에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도중’에만 극중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록키>는 다르다.” <록키>가 어째서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7~80년대의 수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실제로 그들을 구해내기까지 했는지는 베이싱어의 이 설명을 들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나 개봉 직후의 폭발적인 대중 및 언론들의 반응(위에 언급한 몇몇 평론가들을 제외한 다수의 평론가들은 <록키>에 대해 대단한 호평을 했다)은 이런 몇몇 평론가들의 ‘삐딱한’ 반응을 완전히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록키>는 시네마 II 극장에서 개봉 주말에만 4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는데, 크게 당황한 극장 관계자들은 넘쳐나는 관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즉각 ‘정규시간 외 추가 상영’을 결정하기도 했다. 극장 입장에서, 이것은 1960년대 중반 007 영화가 선풍적 인기를 누리던 때 이후 실로 간만에 보는 진풍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곧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예외 없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졌고, 관객들 중 태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로 극장문을 나섰다.


슬라이의 거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팬레터’가 매일같이 배달됐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당신 영화 <록키>가 내 인생을 바꿔놨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슬라이는 아직까지도 이런 내용의 편지를 종종 받는다고 한다.) 영화가 극장에 걸린 기간 내내 TV와 라디오, 신문은 ‘록키’라는 새로운 민중 영웅의 탄생에 대해 떠들어댔고, 슬라이는 졸지에 신세대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슬라이의 과거사가 널리 알려진 후, 좌절을 경험하고 있던 많은 젊은 남성들은 ‘제 2의 슬라이(혹은 ‘록키’)’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됐고, 많은 중년 여성들은 ‘모성애’에 가까운 감정으로 그를 동경하게 된다. 물론 젊은 여성들이 슬라이의 멋진 몸매에 반해 너 나 할 것 없이 ‘X 등급’의 상상을 하게 된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의 영화에 대한 반응도 단연 화젯거리였다. 슬라이의 우상 중 한 명이었던 찰리 채플린은 <록키>를 두 번이나 극장에서 봤는데, 이후 “<록키>처럼 관중의 기립박수가 길고 우렁차게 이어진 영화는 처음 봤다”라고 상영관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명감독 프랭크 카프라 역시 <록키>에 완전히 매료된 인물 중 하나인데, 그는 “<록키>를 본 뒤 ‘ 이것이야 말로 내가 만들길 원했던 영화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록키>는 내가 근 10년 동안 본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극찬했다. <록키>가 개봉되던 시점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미 카터 역시 영부인 로절린 여사와 함께 영화를 본 뒤 큰 감명을 받고는 슬라이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영화 속 아폴로 크리드의 모델이 된 무하마드 알리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슬라이에게 ‘시 한편’을 써서 보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록키는 위대하고 우리 모두는 당신, 스탤론을 사랑한다”


☞ “우리 모두는 당신, 스탤론을 사랑한다” - 무하마드 알리


슬라이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거짓말 같은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UA 측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UA의 입장에서, <록키>의 성공은 ‘할리우드의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가 궁극적으로 바라던 꿈의 실현 - ‘싸구려 영화로 큰 돈을 버는 것 - 이나 다름없었다. 천문학적인 수입(1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록키>의 북미 최종 수입은 결국 1억 달러를 넘어섰다)과 함께 UA는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를 덤으로 얻게 됐다. 바로 ‘프랜차이즈 상품을 통한 부가 수입’이었다. <록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슬라이의 모습이 그려진 티셔츠, 각종 인터뷰와 영화 이야기가 실린 책, 포스터 등 다양한 부가 상품들이 제작됐는데, 이 상품들은 모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슬라이의 성공신화는 이게 끝은 아니었다. 아니, 이 모든 것은 잠시 후 일어날 ‘진짜 쇼킹한’ 사건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 스탤론이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 위에 남겨놓은 ‘영광의 자국’. <록키>가 개봉한 후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계단은 손에 꼽히는 ‘명소’가 됐다.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록키 흉내를 내기 위해’(혹은 ‘인생의 영감을 얻기 위해’) 이 계단을 찾고 있는데, 참으로 우스운 것은 이들 중 태반이 정작 박물관 내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5. Sly Goes the Distance


1977년 1월 29일에 거행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록키>는 총 6개 부문에 걸쳐 후보로 지명됐고, 당당히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획득했다. 슬라이와 아빌드센, 그리고 제작자들은 이미 이 순간부터 - 할리우드 영화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 ‘아카데미 석권’이라는 장밋빛 꿈을 꾸게 된다. 당시 미국을 강타하고 있던 <록키> 열풍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꿈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얼마 후, 아카데미 후보작 리스트가 발표됐을 때 이들은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 <록키>는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포함, 무려 10개 부문에 걸쳐 후보로 지명되면서 <네트워크 Network>(시드니 루멧 감독)와 함께 그 해 아카데미 최다부문 노미네이션 작품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특히 슬라이는 남우주연상과 오리지널 각본상 부문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것은 이전까지 단 두 사람 - 찰리 채플린과 오손 웰즈 - 만이 가지고 있던 진귀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록키>가 주요 부문의 상을 석권하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경쟁작들이 워낙 쟁쟁했기 때문이다. 우선, <록키>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평가되던 <네트워크 Network>를 보자.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10개 부문 걸쳐 후보로 지명된 이 작품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등 - 작품상을 제외한 -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상을 모두 휩쓴 바 있다. 특히 뉴욕 비평가협회상에서도 각본상을 수상한 패디 차예프스키는 - 역시 각본상 후보에 오른 슬라이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각본상을 탈 것이 거의 확실시됐다. (공교롭게도, 패디 차예프스키는 몇몇 평론가들에 의해 <록키>와 비교되곤 했던 <마티>의 각본을 쓴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피터 핀치와 페이 더너웨이 역시 강력한 수상후보였는데, 특히 피터 핀치는 ‘사후에 아카데미 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는 진귀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피터 핀치는 안타깝게도 1977년 1월 1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핀치 외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사후에’ 노미네이트되어 화제가 됐는데, 바로 영화음악가 버나드 허먼 - <택시 드라이버>와 <옵세션>으로 동시에 후보로 지명 - 이었다.)


☞ <네트워크>에 출연한 피터 핀치는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최초에 <네트워크>의 제작사 MGM은 표가 분산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화의 공동주연이었던 윌리엄 홀덴을 남우주연상 후보로, 그리고 피터 핀치를 남우조연상 후보로 하여 홍보 활동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핀치는 이 소식을 듣고는 “무슨 소리냐! 내가 왜 조연이냐!”라면서 크게 반발했다. 핀치는 그 해 시상식이 생애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안을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남우주연상을 손에 넣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1976년 8월에서 1977년 1월 사이, 핀치는 무려 300 차례에 달하는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연기의 탁월함을 ‘스스로’ 선전하고 다녔다. 1977년 1월 14일, 핀치는 ‘굿 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하기 위해 베버리힐즈 호텔에서 시드니 루멧 감독과 만났는데, 안타깝게도 그 곳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핀치는 사후에 - 생전의 뜻대로 - 윌리엄 홀덴과 함께 ‘공동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결국은 남우주연상을 따 냈다. 하지만 시상식 후 몇몇 이들은 이 수상이 ‘죽은 이에 대한 추모’의 의미가 강했다고 주장했다. 훗날, 홀덴은 사석에서 이 시상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 “만약 핀치 그 자식(Son of a b**ch)이 죽지만 않았다면 아마 내가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탔을 것이다!”(윌리엄 홀덴은 이미 1954년에 <제17 포로수용소>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물론 <록키>가 맞닥뜨려야 할 적수는 <네트워크> 뿐만이 아니었다. 총 8개 부문에 걸쳐 후보로 지명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알란 J. 파큘라 감독) 역시 만만치 않은 경쟁 상대였다. 어디 그 뿐인가? UA의 또 하나의 야심작 <바운드 포 글로리 Bound for Glory>(할 애쉬비 감독)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마틴 스콜세지 감독) 역시 <록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들이었다. 작품상 외에 관심이 집중된 부문은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이었다. 안타깝게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슬라이의 상대는 피터 핀치와 윌리엄 홀덴(<네트워크>), 로버트 드니로(<택시 드라이버>) 등 ‘이름만 들어도 우울해지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었다. <록키>의 주인공이 그랬듯, 슬라이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것’ 자체에 만족을 해야 할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슬라이가 수상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존 G. 아빌드센이 감독상을 놓고 겨뤄야 할 상대들 - 알란 J. 파큘라, 리나 베르트뮐러, 시드니 루멧, 잉그마르 베르히만 - 역시 만만치 않았다. 과연 <록키>는 - 슬라이가 그랬듯 -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 우디 거스리의 전기영화인 <바운드 포 글로리>는 사실 <록키>가 예상외의 대박 히트를 기록하기 전까지는 UA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한) ‘주력 홍보 상품’이었다. ‘철저한 싸구려 영화’로 기획된 <록키>와는 달리 <바운드 포 글로리>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UA가 ‘주력 프로젝트’로 점찍고 적극적으로 밀어준 작품이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 즈음하여 두 영화의 위상은 바뀌게 된다. 누가 알았으랴? ‘부자 영화’ <바운드 포 글로리>가 ‘천대받던 가난한 영화’ <록키>에 밀려서 ‘2순위 시상식 홍보 작품’이 될 줄을. 흥미롭게도 <록키>와 <바운드 포 글로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스테디캠의 발명자’ 가렛 브라운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는 것이다.


1977년 3월 28일 오후 7시, LA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할리우드의 모든 영화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제 4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슬라이는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한) 다른 영화인들과는 달리 흰 색 셔츠의 목단추를 푼 채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됐다. 열린 셔츠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그의 ‘야성적인’ 목 부위와 가슴의 윗부분은 시상식을 지켜보던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TV 카메라에 비친 그의 모습에서는 당당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슬라이는 시상식 초반부터 객석을 가득 메운 귀빈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화제가 된 장면은 바로 슬라이가 여우조연상을 수여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가는 부분이었다. (슬라이는 이 날 여우조연상의 프리젠터였다.) 갑자기 단상을 향하던 슬라이 앞에 웬 거구의 사나이가 불쑥 나타나 이렇게 외쳤다. “내가 바로 ‘진짜’ 아폴로 크리드다!” 그렇다. 이 사나이는 바로 ‘복싱계의 살아있는 영웅’ 무하마드 알리였다. 그는 이 시상식을 빛내기 위해 ‘특별 게스트’로 초빙된 것이다. 알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자넨 내 스크립트를 훔쳤어! 어디 자네가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고!” 이어서 알리는 슬라이와 함께 장난스러운 ‘즉석 스파링’을 했다. 시상식장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짤막한 ‘깜짝 쇼’가 끝난 뒤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나눴고, 잠시 후 슬라이는 단상에서 이렇게 외쳤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시상식에서 저는 어쩌면 상을 하나도 못 받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살아있는 전설’(알리를 가리킴) 옆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감계 무량합니다. 오늘 이 순간은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깜짝 스파링’을 하는 스탤론


이어서 슬라이는 여우조연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는 베아트리스 스트레이트(<네트워크>)였다. 곧 이어, 윌리엄 홀덴이 편집상을 수여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했다. 수상자는 <록키>의 스콧 콘라드와 리처드 할시였다. 그들이 몇 달 동안이나 허름한 편집실에서 흘린 땀은 결국 이렇게 보상받았다. 콘라드는 “나의 평생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입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사실, 이 때 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꽤나 오랫동안 프리젠터의 입에서는 ‘<록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음향상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게 돌아갔으며, 촬영상은 <바운드 포 글로리>의 하스켈 웩슬러가 수상했다. 관심을 모았던 주제가 상 부문은 안타깝게도 <스타탄생 A Star is Born>(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Evergreen')에게 돌아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빌 콘티는 실망감에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물론 ‘Evergreen'은 시상식 전부터 주제가상을 탈 강력한 후보로 주목돼왔다. 하지만 시상식이 거행될 즈음, 'Gonna Fly Now'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콘티의 기대감은 결코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각종 TV 쇼와 스포츠 프로그램에서는 이 곡이 거의 ‘주제가’처럼 쓰이고 있었고, 이미 필라델피아에서는 이 곡이 ‘제 2의 시가(市歌)’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결국 아카데미 회원들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손을 들어줬다.)


☞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획득한 <스타탄생>


다음으로 오리지널 각본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예상대로, <네트워크>의 패디 차예프스키가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갔다. 슬라이 역시 자신이 각본상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수상 결과에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까지의 ‘분위기’였다. <록키>는 그 때까지 ‘편집상’ 하나밖에 건지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부문에서 <록키>가 수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록키> 팀은 더욱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UA는 탈리아 샤이어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 공세를 펼쳤지만, 아무래도 그녀가 <네트워크>의 페이 더너웨이를 꺾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자칫하다가 <록키>는 ‘무관의 제왕’, 아니 ‘1관의 제왕’이 될 수도 있었다. 초조해하던 <록키> 팀이 활짝 웃게 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감독상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간 잔느 모로의 입에서 “<록키>의 존 아빌드센!”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이다. ‘비주류 저예산 영화’ 감독이었던 아빌드센에게 이 순간은 1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을 장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자신에게 ‘무한한 영광’을 안겨준 주인공인 슬라이와 힘차게 포옹한 뒤 단상에 올라 이렇게 수상소감을 밝혔다. “<록키>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스탤론은 자신의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모두에게 선사했고, 결국 승리자가 됐습니다!” 슬라이는 객석에서 이 모습을 보며 마치 자신이 수상을 한 것처럼 기뻐했다.


☞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존 G. 아빌드센 감독


곧이어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자는 - 예상대로 - 고(故) 피터 핀치였다. (특이하게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다섯 명의 배우들 중 이 날 시상식에 참석한 인물은 슬라이와 윌리엄 홀덴 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여우주연상 수상자 발표가 이어졌다. 수상자는 - 역시 예상대로 - <네트워크>의 페이 더너웨이였다. 이제 남은 것은 작품상 뿐이었다. 참고로, 이 때까지 가장 많은 상을 가져간 영화는 <네트워크>(각본, 남우주연, 여우주연, 여우조연)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남우조연, 미술, 음향, 각색)로 각각 4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챙긴 바 있다. <록키>는 강력한 작품상 수상 후보이긴 했지만, 분위기로 보아 누구도 수상에 대해 ‘확신’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페이 더너웨이


그런데 작품상 발표자인 잭 니콜슨(전년도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남우주연상 수상)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묘한 뉘앙스의 코멘트를 했다. “올해 노미네이트된 영화들 중에는 ‘재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고, 평단에서 ‘재난’으로 여겨진 영화도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 하군요!” 물론 니콜슨의 이 멘트는 당시 미국 영화계의 조류를 풍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록키>의 제작진에게 이 멘트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희망의 메시지’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연재 글 1편에서 잠시 언급했듯, <록키>는 당시 할리우드의 경향(‘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추구하는)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복고풍의 ‘희망적인 주제’를 택한 첫 번째 영화 중 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록키>와 작품상을 놓고 경쟁을 벌였던 다른 영화들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네트워크>, <택시 드라이버> 등 -의 면모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제작진의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잭 니콜슨의 입에서는 ‘<록키>!’가 호명됐고, 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이 터졌다.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어윈 윙클러 - 로버트 차토프 제작자 콤비는 격앙된 표정으로 무대를 향해 나아갔는데, 어찌나 흥분했는지 윙클러는 나가는 도중 자신도 모르게 배우 베아트리스 스트레이트의 머리를 엉덩이로 치기도 했다. (-_-;) 윙클러와 차토프는 도중에 환호를 보내고 있던 슬라이를 ‘붙잡아’ 그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세 사람은 마주잡은 손을 힘차게 치켜들었다.


☞ “아름다운 밤이에요!”

 

곧 이어 제작자들은 그 날의 ‘기적’을 가능케 해준 은인 슬라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수상소감을 밝혔다.


차토프 : “(슬라이를 향해) 당신의 꿈을 우리와 함께 나누고, 또 멋진 연기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인생의 패배자였던 록키가 끝까지 버티고(go the distance)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신 아카데미 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윙클러 : “우리로 하여금 ‘록키’의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날의 ‘진짜 주인공인’ 슬라이의 마지막 멘트가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록키’들에게 전합니다!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록키> 팀.


불운했던 무명 영화인 슬라이의 성공 신화는 이렇게 완성됐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빌드센 감독은 이렇게 밝혔다. “나는 <록키>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기껏해야 며칠 정도 개봉관에 걸린 후, 싸구려 재개봉관을 전전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죠.” 기실, 아빌드센에게 이 날의 감회가 남달랐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시상식이 있기 직전, 그는 초기대작이었던 <토요일 밤의 열기>의 감독 자리에서 해고됐기 때문이다. (아빌드센이 떠난 후 <토요일 밤의 열기>의 메가폰은 존 바담이 잡게 됐다.) 말하자면, 아빌드센은 이 날 오스카 트로피로 자신을 ‘자른’ 이들을 향해 한 방을 확실히 먹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편, 슬라이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나에게 가장 기쁜 일은 <록키>가 앞으로 수 십 년 동안 모든 이들에게 생생하게 기억되리라는 것입니다!” 정작 자신은 오스카 트로피를 하나도 손에 넣지 못한 데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큰 것을 얻었으니 상관없습니다!” 이런 묘한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영화 속 주인공 ‘록키’처럼 정작 슬라이 자신은 챔피언 트로피를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트로피보다 더욱 값진 것을 손에 넣은 것이다. 1977년 4월 11일자 뉴스위크지의 표지에는 슬라이의 사진과 함께 커다란 글씨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록키가 할리우드를 KO 시키다! (ROCKY KO'S HOLLYWOOD)” 이 한 줄은 슬라이의 감동적인 ‘인생 역전’ 스토리에 매료된 모든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멋진 문장이었다.


 

07.4.19 | 김정대(antoine@unitel.co.kr)


※ 주의 : 본 리뷰 컨텐츠의 저작권은 필자와 'dvdprime.com'에 있습니다. 리뷰 중 모든 캡춰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MGM Home Entertainment'의 소유이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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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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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3-20 09:02:39

록키가 스탤론의 인생이 어느정도 투영되었다고 듣기만 했는데 록키 자체가 그의 인생이네요.
다소 길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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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09:20:46

최고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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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09:59:20

좋은글 감사합니다. 단숨에 읽었습니다. 록키를 재발견 하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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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1:25:06

록키 전편 소장하길 참 잘했어요 

V탄에 아들이 진짜 아들이었다니... 놀랍네요 ㅎㅎ

에프터 어스 같은 설정이었다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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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1:51:09

진짜 눈물이 절로 나는 글이네요.
그야말로 ROCKY S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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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1:59:27

 일단 스크랩 먼저 하고 이따가 퇴근후에 무릎꿇고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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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2:39:04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난입한 알리와 주먹 다짐(?)을 벌이는 스탤론의 영상이 유튜브에 있네요.

영상 중간부분에는 그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풋풋한 조디 포스터도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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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3:57:05

그냥..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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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5:11:55

록키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이 글을 끝까지 읽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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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5:27:10

어릴 적 영화를 첨 보았을 때 그 희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록키"가 아닌가 싶습니다.

갖은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에도 주저 앉지 않고 우뚝 일어 설 수 있기를,

나 아니 우리, 더 나아가 우리 민족 전체가 챔피언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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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5:59:28

 반빠바반빠~반빠빠반.  반빠바반빠~반빠빠반.  반빠바반빠~반빠바반.

빠라바~~~ 빠라바~~ 빠라바~~ 빠라반~~

 고너 플라이~ 나우~~

 

EBS 토요명화에서 록키도 다시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 사관과 신사 다시 보니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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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6:49:00

록키도 감동이지만 리뷰도 엄청난 감동을 주네요.

보석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더불어 리뷰에도 언급되는 스텔론옹의 장남은 몇 년전 안타깝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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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8:04:02

처음 게재되었을 때도 지금도 여전한 활홀경을 선사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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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8:08:05

하나하나씩 주옥같은 글들이 복구되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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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8:49:09

이 글이 [크리드 2] 개봉 때 맞춰서 오픈되었으면 몇 백만 돌파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마 그런 망상을 해 봅니다. 김정대님 그리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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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21:10:13

대략적으론 알고 있었는데..이 정도 스토리일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제목처럼 눈물없인 읽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록키 지금 다시 시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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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21:20:52

이번 주말엔 가족들과 록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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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09:48:50

정말 이 많은 글을 정독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록키  구매욕구가 스물스물 ㅠ.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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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5:55:55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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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6:42:42

울컥하면서 보게되는 리뷰입니다

오락영화로만 알았던 록키를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실베스타 스탤론이 존경스러워집니다

록키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아이 오브 더 타이거인데

1편에 나오는 주제곡도 유명하군요    

소장하고 있는 컴프리트 사가 박스세트를 시간내서 꺼내봐야 겠습니다

정성스런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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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7:53:42

관련 영상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정독했습니다. 

리뷰를 한 시간 넘게 읽은 적은 처음인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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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21:17:51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인생의 첫번째 영화입니다
다음에도 다른 영화인생 이야기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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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2 01:45:55

엄청난 리뷰네요. ost도 다시 찾아서 듣게 되고, 그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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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2 08:47:19

주제곡만 들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날려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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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2 10:48:58

역시 다시 읽어도 감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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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09:47:28

책 한권에 가까운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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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8:50:01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리마인딩 해주신 영화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정말 재밌게 글 잘 쓰시네요.

글솜씨에 한번 더 감동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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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4 11:45:02

잘 읽었습니다 록키가 작품상 받은 사실을 오늘 알았습니다 감동이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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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13:23:06

와 영화보다 저 재미있는 연대기네요. Gonna fly now가 왜 아카데미상을 못 받았나 했는데 제가 좋아하던 Evergreen이었군요. 재미와 감동을 준 연대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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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13:53:05

추천 안 할 수가 없네요.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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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13:57:34

감동 감동 감동!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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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17:51:34

 정말 감동의 작품이죠. .. 기억에 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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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22:40:28

리뷰 읽고 록키를 다시 감상하니 배우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찡하네요 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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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7:40:33

 너무나도 감동받았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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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3 18:56:05

록키 영화 볼 때마다 마지막에 눈물 흘리는데, 이 글 읽으면서도 또 울고 있네요. 뒷얘기가 마치 영화의 확장판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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