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VER HEALTH CHECK: OK
1
프라임차한잔
2
프라임차한잔
ID/PW 찾기 회원가입

[블루레이]  [특집] 불타는 블레이드 러너의 연대기 #1

 
5
  83583
Updated at 2013-11-19 18:59:37

<블레이드 러너 2049> 개봉을 앞두고 김정대님 특집글 복원 작업의 일환으로 '블타는 블레이드 연대기' 텍스트 편집과 이미지를 리마스터링했습니다. 본 특집글은 2008년 당시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필자이신 김정대님의 개인 사정과 DP 내부 일정이 살짝 어긋나면서 2, 3부는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필자이신 김정대님은 여러분들께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사실 글 자체가 재편집되는 것에 대해서도 언젠가 한번 부정적인 생각을 밝힌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보시고 김정대님께 별도의 집필 요청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현실적으로 소용도 없구요 -_-) 다만 1부 글 자체만으로도 브레이드 러너의 초반 배경 지식에 관한 작은 백과사전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블레이드 러너를 제대로 보기 위한 준비 운동으로는 충분할 것입니다.저는 김정대님의 이 글을 재편집하며 몇 번이나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으며 제가 느꼈던 전율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편집자 2017. 9

 

글 | 김정대(adoniel21@gmail.com)


 

And still I dream he treads the lawn,

Walking ghostly in the dew,

Pierced by my glad singing through...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행복한 양치기의 노래’ 中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단편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 필립 K. 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글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관한 글이지 작가 필립 K. 딕의 전기가 아닌 만큼, 딕에 대한 소개는 그의 성장 환경과 작품의 분위기/스타일에 영향을 준 환경적 요인만을 간단히 짚어보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본격적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은 조금만 참아주시길...)

 

필립 킨드레드 딕은 1928년 12월 6일, 시카고에서 조셉 에드가 딕과 도로시 그랜트 킨드레드 딕 부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는 이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세상의 빛을 본 쌍둥이 누이 제인은 태어난 지 41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필립 K. 딕은 훗날 누이 제인이 사망한 이유가 ‘어머니 도로시의 태만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그에 의하면 도로시가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던 제인에게 적절한 조치를 제 때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딕의 이런 주장은 동시에, 그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인의 사망은 딕의 어린 시절, 아니 그의 생애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딕은 언제나 자신과 제인 사이에 ‘특별한 영적 유대’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느낀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에 대한 감정은 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성년이 되어 쓴 작품 속에도 직/간접적으로 투영됐다. 예컨대, 딕의 작품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신비한 여성’ 캐릭터들은 그가 그토록 연모했던 쌍둥이 누이가 형상화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의 필립 K. 딕. 딕과 그의 쌍둥이 누이 제인은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수준의 저체중아였다. 두 아이는 모두 ‘급성 영양실조’ 상태였는데, 어느 정도였냐 하면 ‘간신히 살아남은’ 딕의 경우도 의사로부터 ‘2-3일 내에 죽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정도다. 말하자면, 딕은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출발에서부터 자신의 반쪽(?)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결국 딕을 평생 괴롭힌 정신적 트라우마의 출발점이 됐다.

 

딕의 소년시절은 유쾌하고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경과민증에 시달렸으며, 천식을 앓았고, 먹고 삼키는 것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다. 다섯 살 되던 해에 그의 부모는 정식으로 이혼했으며, 1940년에 그는 어머니 도로시를 따라 버클리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훗날을 예견하듯)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 

 

10살 때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자는 꿈을 꾸었으며, 1944년에서 46년까지는 광장공포증과 다른 정신질환으로 집중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또한, 46년에 그는 심박급속증 진단을 받아 장기간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신경과민증과 정서불안, 그리고 약물 과용은 딕의 전 생애를 규정하는 키워드이기도 했는데, 그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던 것(그는 이혼을 무려 5차례나 경험했다) 역시 이와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장애도 그의 타고난 ‘예술적/문학적’ 감성을 훼손하지는 못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장애는 그의 문학적 재능에 플러스적인 요인으로까지 작용했다 할 수 있다. 딕의 소설 속의 설정이나 정서, 배경 등은 그가 겪은 이런 개인적인 문제들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딕은 대단히 총명하고 박식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놀랍게도 그의 정규 교육 커리어는 ‘대학(UC 버클리) 1년 중퇴’가 끝이다. 즉, 그는 이후 수많은 책들을 섭렵하며 ‘순전히 독학으로’ 자신의 학문적 지평을 넓혀간 것이다. 딕은 젊은 시절부터 미스터리, 호러, SF 분야의 책들을 좋아했는데 그가 선호한 작가들 중에는 H.P. 러브크래프트나 A.E. 반 보그트, 프레드릭 브라운과 같은 인물이 포함돼 있었다. 

 

24세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가 이후 발표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SF 장르였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딕은 당시 미국에서 ‘3류 장르’로 냉대를 받고 있던 SF 장르의 전문작가에서 벗어나 메인스트림 작가의 대열에 벗어나기를 오랫동안 갈구했으나, 결국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딕은 1962년에 발표한 [높은 성의 사나이 The Man in the High Castle]로 이듬해(1963년)에 휴고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커리어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필립 K. 딕의 출세작 [높은 성의 사나이](1962). 이 작품은 딕의 유일한 휴고상 수상작이다. 위 사진의 책의 표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소설은 2차 대전의 승자와 패자가 바뀐 상황을 배경으로 한 대체 역사물이다. 참고로, 이 소설은 국내에도 번역/출간됐다.

 

1965년에 또 다른 수작 [팔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The Three Stigmata of Palmer Eldritch](많은 팬들은 이 작품을 ‘궁극적인 LSD 소설’이라 칭하기도 했다)을 발표한 그는 1968년에 - 드디어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발표했고, 1969년에는 또 하나의 걸작 [유빅 Ubik](1998년에 나온 동명의 게임의 원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2005년에 타임 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중 하나로 뽑혔다)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1975년에는 [흘러라 내 눈물아, 경찰관은 말했다 Flow My Tears, The Policeman Said](1974)로 존 캠벨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딕의 소설의 작품성은 동료 SF 작가들에게도 널리 인정받았다. <블레이드 러너> UCE DVD의 서플먼트에도 참여한 바 있는 폴 새몬([퓨처 누아르: 메이킹 오브 블레이드 러너]의 작가)은 딕의 작품이 (경쟁자이자) 동료들에게조차 극찬을 받은 이유를 이런 한 마디로 설명했다: “딕의 소설과 같은 (독특한) 작품은 누구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딕의 소설은 비록 우리에게 친숙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도 기괴하며, 실존적인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소설 속에서 ‘평범한/진부한 리얼리티’적 요소를 찾는 것은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와 최상류층 인사들에게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딕의 SF 작품, 특히 5-60년대의 작품은 거의 예외 없이 짙은 사회적 메시지와 정치성(팬들 사이에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딕의 초기 작품들의 정치적 성향은 일반적으로 ‘좌익’쪽으로 분류된다. 비록 그는 훗날 좌익 성향에서 ‘스스로’ 이탈했다고 술회하긴 했지만 말이다)을 띠고 있다. 

 

많은 경우, 그의 작품은 ‘SF 장르의 틀을 빌려 (당시의 시대적 화두였던) 전체주의나 물질만능주의, 핵무기의 위협 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꼬고 빈정대는 풍자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리얼리티의 상대성과 도덕적 모호성, 그리고 휴머니즘의 본질에 대한 고찰 역시 그의 작품에서 단골로 다뤄지는 제재들이다. 

 

한 가지 주목할 만 한 점은, 후기로 갈수록 그의 작품에서 블랙 유머적 요소가 점점 줄어들고 신비주의와 종교적 모티프에 대한 (그의) 집착이 확연히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책을 쓸 당시의) 그의 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세한 것은 이후의 본문을 참조하시길.

 

이상 나열한 사항만 살펴보면 작가로서의 딕의 커리어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커리어의 초기와 중기에 그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그의 ‘주머니 사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 내내 그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는데(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는 인생 말기의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풍족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인 그에게 이런 상황은 견디기 힘든 악몽일 수밖에 없었다. 

 

원고료가 턱없이 낮은 SF 소설의 집필만으로는 도저히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 딕은(그는 당시를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의 연체료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다”라고 회고했다) 이것저것 부업을 하면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 모으려 했다. 당시 그가 했던 부업 중에는 ‘라디오 디스크자키 일’과 같은 특이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딕은 클래식 음악을 무척 즐겨들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 오페라 하우스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잡다한 추가수입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머니사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이 벼랑 끝까지 몰렸음을 직감한 그는 이 상황을 해결할 길은 단 하나, ‘이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소설을 쓰는 것’ 뿐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몸과 정신 건강을 담보로 한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암페타민(중추 신경을 자극하는 각성제)을 다량 복용하는 것. 이 위험천만한 도박은 초반에는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둔 듯했다. 암페타민을 다량(이라기보다는 ‘과다’)복용한 그는 ‘약발’에 힘입어 미친 듯이 소설을 써내려갔으며, 그의 집필/탈고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그는 이 시기에 ‘하루 60페이지 정도’의 글을 찍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딕은 훗날 자신이 암페타민에 중독됐던 것이 - 쾌락을 위해서가 아닌 -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자신의 절박했던 심경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딕은 이 무모한 도박의 대가로 ‘정신적 건강’을 - 영원히 - 잃게 된다. 딕은 곧 극도의 신경쇠약과 정서적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그의 아내(들)은 차례로 이런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딕의 신경쇄약과 스트레스, 우울증의 정도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이런 어지러운 상황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그는 약물 - 그리고 ‘LSD’ - 에 더욱 빠져들게 되고 알코올 중독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 신경쇄약과 자살미수, 이혼, 그리고 편집증적 망상은 이 시기 그의 정신 상태를 말해주는 키워드들이다. 

 

1971년 11월에는 그의 집에 누군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딕은 그것이 CIA의 소행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것은 당시 그의 편집증적 망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1972년에 그는 자살을 시도했고, 1974년 2월에는 자신이 미국과 소련 당국에 의해 박해를 받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으며,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딕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제재는 바로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의 파괴’다. 딕이 평생 집착한 리얼리티의 상대성 문제는 ‘통 속의 뇌’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만일 우리가 걷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생활하는 것이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단순히 뇌가 불러일으킨 착각에 불과하다면? 

 

어느 과학자가 최첨단 컴퓨터를 개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컴퓨터가 (노예로 잡힌) 우리의 뇌에 계속 전기적 충격을 가해 ‘마치 실제로 무언가를 경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과연 그것이 ‘리얼리티’가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왜냐면 당신이 그것을 증명하려 하면 컴퓨터는 더욱 강한 전기적 충격을 가해 당신의 정신을 구속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매트릭스>의 개념은 이미 오래 전에 필립 K. 딕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것이다.

 

헌데, 바로 이 시점에서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딕은 1974년 2월에서 3월에 걸쳐 ‘성스러운 체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시기에 ‘기괴한 기하학적 모형’(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타 게이트 신과도 흡사한)에서부터 추상화, 심지어 ‘여신’과 ‘예수’의 모습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한 신비로운 형상을 보았다고 훗날 술회했다. 다시 말해, 그는 ‘무언가에 홀린 것’이다. 딕은 이 때 신성한 힘이 자신에게 강령하여 “그 힘을 통해 사실 그대로의 우주를 보았고, 그것의 지각을 통해 진실의 존재를 보았으며, 내 자신을 해방시키는 행동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딕은 이후 자신이 ‘이중의 삶’(필립 K. 딕으로의 본래의 삶과 박해받는 성자의 삶)을 살게 됐다는 말까지 했다(흥미롭게도 부분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머서리즘’ - 잠시 후에 설명 - 을 연상시킨다).



필립 K. 딕이 말기에 쓴 <발리스 Valis>, <성스러운 침범 The Divine Invasion>, <티모시 아처의 윤회 The Transmigration of Timothy Archer>(이 세 작품은 ‘발리스 삼부작’으로도 불린다)은 그가 직접 경험한 ‘성스러운 체험’을 반영한 작품들이다.

 

물론 제 3자가 보기에, 이런 딕의 주장은 완전히 ‘정신병자의 미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아내였던 테사는 (놀랍게도) 이런 그의 주장의 진정성을 굳게 믿었다. 게다가, 이후 딕의 삶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주장을 ‘헛소리’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이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뒤, 딕의 삶은 크게 변모했다. 딕은 “그것은 나를 육체적으로 치유해 주었고, 또한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직 진단도 받지 않은 치명적인 선천적 결손증에 걸린 네 살 난 아들을 치료해주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테사에 의하면, 평소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딕은 ‘신성한 체험’을 한 뒤 자신의 수호신의 지시에 순응하여 즉각 병원으로 가 고혈압 진단을 받았고, 곧 건강에서 회복됐다고도 한다. 게다가 이 체험 이후에는 (놀랍게도) 그의 재정 상태도 한층 나아졌다. 1974년에 그의 수입은 1만 9천 달러였으며, 이듬해에 그것은 - 거의 두 배에 달하는 - 3만 5천 달러로 늘어났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외국어로 번역되는 그의 저서의 양도 늘어났다. 과연 딕은 ‘정말로’ 신성한 존재(즉 ‘God'이나 ’수호 천사‘)를 체험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본문과는 큰 관련이 없기 때문에 - 조금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 여러분의 몫으로 넘기겠다. 아마도 본문의 맥락상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것은, 바로 이 시기에 그가 - 드디어 - ‘할리우드의 콜’을 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소설이 1968년에 출간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내용과 분위기에서는, 앞서 언급한 필립 K. 딕의 사생활과 성장환경 외에도 60년대 후반의 미국의 상황 - 당시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 흑인 인권 운동, 히피 운동 등으로 요약되는 현대 미국사의 대표적인 격동기였다 - 의 그림자가 강하게 느껴진다. 

 

미국인들이 숭상하던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던 이 때, 도덕적 모호성과 휴머니즘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걸작 SF 소설(딕은 훗날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우리가 적만큼이나 사악한 존재였을 때 집필됐다”라고 말했다)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1982년 2월호 ‘스타로그’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딕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기원을 이렇게 밝혔다: 버클리 대 도서관에서 [높은 성의 사나이]의 집필을 위한 자료를 찾고 있을 때, 그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게슈타포에 관한 여러 건의 문서를 접하게 된다. 그가 본 문서 중에는 한 SS 요원의 일기도 포함돼 있었는데, 그 일기를 본 딕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딕은 그 일기의 한 구절을 특히 생생히 기억하게 됐다. 그 구절은 바로 이것이다 - “우리는 굶주린 아이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밤마다 잠을 깨곤 했다.” 딕은 일기를 읽은 뒤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의 주변에는 안드로이드가 존재한다. 인간과 외양은 완전히 동일하지만 속은 인간이 아닌 존재 말이다. 굶주린 아이들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불평하는 이들을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레플리칸트’는 딕이 아닌 데이비드 피플스에 의해 탄생한 단어다. 여기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소설에서 인조인간은 ‘Android’ 혹은 ‘Andy(Android의 약어)'로 언급된다)의 개념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딕은 소설이 말하는 안드로이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안드로이드란 생리학적으로는 분명히 인간이지만, 하는 행동은 인간적이지 못한 이를 은유하는 말이다.”

 

딕이 말하는 ‘안드로이드’의 개념은 (물론) 과거의 독일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딕이 더욱 두려워한 것은 2차 대전 후 이런 ‘(인간성) 결핍 현상’이 전 세계로 확산됐고,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안드로이드와 같은 인간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었다. 딕은 이런 ‘안드로이드적 성격’(혹은 ‘인간성 결핍 현상’)이 인류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류는 그것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된다. 만일 ‘안드로이드적 성격’을 모두 ‘죽여’버린다면 우리는 과연 안드로이드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매우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 될 것이다. - 소설을 읽은 분이라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주인공 데커드가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면서 점점 ‘안드로이드화’ 돼가는 부분을 떠올려 보시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이 소설과 관련된 몇 가지의 배경을 더 소개하도록 한다(이것은 궁극적으로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안드로이드’나 ‘도덕성/인간성의 문제’, 그리고 ‘시뮬라크라’는 굳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아니더라도, 딕의 많은 다른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제재들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만큼 이 제재들을 기막히게 다룬 예는 흔치 않다. 

 

이 소설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은 바로 ‘동정심(compassion)'을 가졌는지의 여부다.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만일 당신이 ‘감정이입 empathy'이 가능한 존재라면 당신은 인간이며, 그렇지 않다면 안드로이드다. 그리고 이 원리를 활용한 것이 바로 V-K 테스트(Voigt-Kampff Test)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V-K 테스트 시 사용되는 질문은 소설에 나오는 것을 상당부분 차용한 것이다.

 

V-K 테스트를 실시하는 이는 대상자에게 몇 가지의 질문을 던진 다음, 테스트 기계를 통해 대상자의 반응을 면밀히 지켜보며 그가 안드로이드인지 아닌지를 판별해낸다. 대상자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주로 ‘동물에게 해를 가하는’ 내용인데, 안드로이드는 인간과는 달리 감정이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 대해 a) 아예 반응을 하지 않거나 b) 거짓 반응을 하게 돼 있다. 

 

물론 안드로이드가 질문에 대해 거짓으로 반응을 할 경우는 반응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테스트 실시자는 그것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소설에서 V-K 테스트 시 데커드가 던지는 질문들은 딕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생명에 대한 철학관이 반영된 것이다. 딕은 어린 시절 딱정벌레를 괴롭힌 이후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연민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또, 어린 시절에 그는 덫에 걸린 쥐가 죽어갈 때의 비명소리를 오랫동안 계속 떠올리며 괴로워했다고도 한다.

 

“인간과 동물의 고통은 나를 미치게 한다. 내가 기르는 고양이들이 죽을 때마다 나는 신을 저주해 왔고, 이는 나의 진솔한 마음이다. 나는 신에게 분노를 느낀다. 나는 물을 수 있는 곳에서 신을 붙들고, 인간은 죄를 지어서 파멸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강요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 필립 K. 딕


자, 그럼 소설의 창작 배경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고,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소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한다. 참고로, 글쓴이는 소설의 미국 간행본만 읽어보았고 국내 번역본은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한글로 소개되는 용어나 명칭 중에는 국내 번역본의 그것과는 달리 표현된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국내 번역본을 읽어본 분께는)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한다.

 

소설의 배경은 1992년의 샌프란시스코다(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한 후 재출간 된 책에서는 시간적 배경이 2021년으로 변경됐다). 치명적인 핵전쟁("World War Terminus")이 있은 후, 지구는 방사능 낙진으로 인해 크게 오염됐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은 멸종 위기에 놓였으며, 살아남은 인간들 중 상당수는 방사능 때문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어 정신박약자(소설에서는 ‘치킨헤드 Chickenhead’라 불림)가 됐다. 

 

UN은 인류의 종족 보존을 위해 지구에서 생존한 이들에게 화성과 같은 외부 식민지(Off-World Colony)로 이주할 것을 종용한다(물론 ‘치킨헤드’처럼 이미 심각한 유전자의 손상을 입은 이들은 ‘스페셜 Special’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이주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주 장려책의 일환으로, UN은 이주자 전원에게 하인처럼 부릴 수 있는 안드로이드를 제공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인류의 종족 보존’과 관련하여 딕은 소설에서 재미있는 조크(?)를 하나 삽입했다. 아직 이주하지 않고 지구에 남아있는 ‘정상적인’ 남성들은 방사능으로 인해 생식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납으로 만든 거추장스러운 보호장구로 ‘중요한 부위’를 가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구의 인구밀도는 현격하게 낮아졌다. 물론 논리적으로 보면, ‘모든 정상인들(“스페셜”이 아닌 "정상 Regular" 카테고리로 분류된 이들)은 모두 오염된 지구를 떠나 외부 식민지로 갔어야 옳다(오염된 지구에 남은 ‘정상인들’은 당연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페셜’로 분류되는 이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 UN의 적극적 장려에도 불구하고 - 지구에는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정상인들’이 남아있다. 딕은 소설에서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1) ‘정상인들’에게 (비록 오염되긴 했지만) 지구는 오랜 삶의 터전이었고, (따라서) 여전히 친숙한 곳이기 때문에. 2) (‘정상인들’은) 머지않아 방사능 먼지가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가장 큰 배경상의 차이 중 하나는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소설 속의 샌프란시스코 시와는 정 반대로 영화 속의 LA 시는 ‘인구 과밀 지역’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헌데, 영화 속의 ‘넘쳐나는 LA 시민들’ 중 태반은 (아시아인들로 대변되는) 빈민-저소득층 시민들이다(이 부분은 소설 속의 설정 - 오염된 지구에 남은 이들 중 상당수는 ‘스페셜’들이다 - 과도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즉, ‘능력이 되는’ 이들은 외부 식민지로 이주한 반면, 지구에는 ‘능력이 안 되는’ 이들이 주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에 남은 이들은 고소득층 자본가들이 경쟁하듯 지어놓은 (햇빛을 가리는) 엄청난 높이의 마천루 때문에 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한다. 영화의 이런 설정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명백하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욕심대로 땅을 개발하고 노동력을 착취해 부를 축적한 뒤, 도시가 아래에서부터 황폐화되자 슬그머니 외부세계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광경 위에는 ‘교외로 점차 빠져나가는 부유층’과 ‘슬럼화되는 도심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빈민층’의 대비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여러분은 본 연재글에서 앞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될 영화의 제작 관련 정보를 통해 이 모든 은유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소설에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지 않는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소개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드 오르간 mood organ’과 ‘머서리즘 Mercerism’, 그리고 ‘버스터 프렌들리’다. 

 

‘무드 오르간’은 원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두뇌를 자극하는 일종의 감정 조절 장치로,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활필수품 중 하나다. 무드 오르간의 사용자는 기기의 다이얼을 원하는 수치에 놓음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이 기기로 조절 가능한 감정 모드는 수 백 가지에 이른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무드 오르간은 (본래의 역할인) 기분을 ‘업’시키는 도구로 뿐만 아니라, (반대로) 기분을 우울하게 해주는 도구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미래’에는 인간의 감정까지 기계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니, 흥미롭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지 않은가? 역시 딕 다운 발상이다).

 

한편, ‘머서리즘’은 일종의 미래 종교로 보면 된다. ‘머서리즘’이라는 말은 전쟁 이전에 살았다고 하는 성자 윌버 머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종교의 신봉(?)자들은 감정이입 박스(empathy box)를 이용하여 집단적으로 ‘가상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감정 이입 박스의 손잡이를 잡은 이는 영상을 통해 머서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머서를 박해하는 악한들은 그에게 계속 돌을 던져댄다. 머서리즘의 신봉자들은 감정이입 박스를 통해 머서와 ‘하나’가 되어 그의 고통을 공유하며, 아울러 감정이입 박스로 연결된 다른 이들의 고통도 공유하게 된다. 

 

‘버스터 프렌들리’는 TV만 켜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토크 쇼의 호스트로, 소설의 후반부에서 로이 배티는 그가 사실은 ‘안드로이드’라고 주장한다. 프렌들리는 또한 ‘머서리즘’이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에 대한 증거(?)를 시청자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소설에서 차용한 또 한 가지 요소는 바로 ‘가짜(복제) 동물’이다.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 ‘동물’은 플롯 진행에 있어 필수적인 키워드로 기능한다. 소설 속의 (오염된 지구에 남은) 지구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가 ‘어떤 동물을 소유하고 있는가’로 표시된다. 전술했듯, (소설 속) 미래의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은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동물들은 그 희귀도에 따라 몇 가지의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지위가 높고 소득이 많은 상류층 인물일수록 (당연히) ‘희귀도가 높은’ 동물을 기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릭 데커드는 예전에 ‘그루초’라는 양을 한 마리 길렀는데, 안타깝게도 이 양은 파상풍에 걸려 그만 죽고 말았다. 이를 몹시 안타까워한 데커드는 인조 동물 제작 숍에 그루초의 모습을 본뜬 가짜 양 - 즉 ‘전기양’ - 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여 그것을 대신 키우게(?) 된다. 하지만 데커드는 이 전기양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만족감을 절대 얻을 수가 없다. 결국 그는 ‘돈을 벌어’ 진짜 동물을 사서 입양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안드로이드를 죽여서(소설 속의 용어로는 ‘폐기 retire’ 시켜서) 현상금을 타내야 한다. 결국 소설에서 데커드가 안드로이드를 쫓는 이유는 그것을 ‘폐기’시켜 받은 돈으로 ‘살아있는 동물’을 사기 위해서인 셈이다.

 

릭 데커드는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에 의해 고용된 ‘안드로이드 현상금 사냥꾼’이다(소설 속의 데커드는 ‘경찰’이 아닌 ‘현상금 사냥꾼’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데커드의 아내 아이랜은 그를 가리켜 ‘경찰에 의해 고용된 살인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묘사된 데커드의 모습은 <블레이드 러너>에 비친 (해리슨 포드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의 데커드와는 달리 그는 소심한 공무원형 캐릭터이며, 약간의 공처가 기질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그렇다. 소설속의 데커드는 ‘이혼남’이 아닌, 현재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다). 딕은 데커드와 아이랜 부부의 가벼운 말싸움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들의 관계가 순탄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독자에게 알려준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데커드의 일상사에서 유일한 낙이 있다면 옥상에서 기르는 전기양을 돌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전기양을 볼 때마다 ‘살아있는 진짜 동물’을 소유하고픈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진짜 동물’을 사기 위해서는 상당히 큰돈이 필요한데, 불행하게도 데커드의 주머니 사정은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니다.

 

직업의 특성상, 데커드는 ‘지구로 도망쳐 사람들 사이에 섞인’ 안드로이드가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데커드는 경찰국의 해리 브라이언트를 통해 8명의 ‘신형 넥서스-6 타입 앤디(andy, 안드로이드의 약어)’가 화성 식민지에서 탈출하여 지구로 잠입했으며, 그 중 2명이 선임 현상금 사냥꾼 데이브 홀든에 의해 ‘폐기’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브라이언트는 또한 홀든이 그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데커드의 임무는 뿔뿔이 흩어져서 인간들 사이에 숨은 나머지 6명의 안드로이드를 찾아 ‘폐기’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브라이언트는 데커드에게 ‘본격적인 임무에 착수하기 전에 로젠 사(안드로이드를 생산하는 업체)의 본부로 가서 V-K 테스트가 신형 넥서스-6 타입에게도 유용한지를 먼저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시애틀의 로젠 사 본부로 간 데커드는 그 곳에서 레이첼 로젠이라는 기묘한 분위기의 여성을 만나고, 그녀에게 V-K 테스트를 실시하게 된다. 그리고 데커드는 그녀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넥서스-6 NEXUS-6’란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신형 안드로이드에게 쓰인 브레인 유닛의 명칭이다. 이 명칭은 소설과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모두 등장하며, 안드로이드의 수명이 ‘4년’인 점 역시 소설과 영화가 공유하는 설정이다. 다만 소설에서는 안드로이드를 생산하는 업체가 ‘로젠 사’였지만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그 명칭이 ‘타이렐’로 바뀌었다(영화에서는 회사의 수장 이름 역시 - 엘돈 로젠에서 - 엘돈 타이렐로 바뀌었다). 또한 소설에서는 ‘8명의’ 안드로이드가 식민지에서 탈출한 것으로 돼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 수가 ‘6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안드로이드가 식민지를 탈출한 이유를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라고 설정했지만, 영화는 그 이유를 보다 설득력 있는 것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GIF 최적화 ON 
786K    272K

"Is this testing whether I'm a Replicant or a Lesbian, Mr. Deckard?"

 

전술했듯, <블레이드 러너>의 V-K 테스트 장면에 등장하는 질문들은 딕이 소설에서 묘사한 그것을 상당부분 차용한 것이다. 예컨대, 소설에는 데커드가 레이첼 로젠에게 “잡지에서 누드 여인의 사진을 본다면”이라는 질문을 하자 레이첼이 “지금 내가 안드로이드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하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동성애자인지를 테스트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은 거의 그대로(영화에서 레이첼은 데커드에게 “지금 내가 레플리칸트인지 여부를 테스트하는 건가요? 아니면 레즈비언인지를 테스트하는 건가요?”라고 되묻는다) 살아남았다.

 

데커드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본격적인 안드로이드 헌팅에 나선다. 첫 번째 타깃인 ‘막스 폴로코프’(이 캐릭터는 비록 소설에만 등장하지만, 성격상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리온 코왈스키와 유사하다)를 잡기 직전, 레이첼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신형 넥서스-6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데커드는 이 제안을 간단히 거절한다. 

 

그는 WPO 에이전트 행세를 하던 막스 폴로코프를 간신히 ‘폐기’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한다. 이후 그는 두 번째 타깃인 루바 루프트(소설에서 그녀는 ‘오페라 싱어’로 역시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를 헌팅하러 갔다가 (어이없게도) 경찰에게 붙잡혀 수수께끼의 경찰 헤드쿼터로 연행된다(데커드를 연행한 경찰관 크램스는 데커드가 ‘가짜 기억이 심어진’ 안드로이드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가 끌려간 경찰 헤드쿼터는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만든 ‘가짜’였다(이 부분은 딕의 작품에서 단골로 다뤄지는 리얼리티의 상대성, 시뮬라크라, 정체성의 혼란 등의 요소들이 블랙 유머적 톤으로 절묘하게 믹싱된 부분이다).

 

데커드는 그곳에서 자신의 세 번째 타깃인 갈란드(역시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데, 갈란드는 (자신이 안드로이드들의 소굴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현상금 사냥꾼 필 레쉬에 의해 ‘폐기’된다. 데커드와 레쉬는 곧 그 곳을 탈출하여 루바 루프트가 있는 미술관으로 가고, 루바는 그 곳에서 레쉬에 의해 ‘폐기’된다. 이후 데커드는 레쉬에게 V-K 테스트를 실시하게 되고(그는 레쉬가 안드로이드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데커드의 말을 들은 레쉬 역시 혹시 자신이 인간이 아닌 ‘기억이 심어진’ 안드로이드가 아닌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어 테스트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가 인간임을 확인하게 된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루바 루프트 파트에서는 작가 딕의 개인적인 예술 취향이 간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선, 오페라 싱어인 루바가 데커드에게 V-K 테스트를 강요당하기 직전 리허설하는 작품은 모차르트의 ‘마적’이다. 또, 루바가 ‘폐기’되기 직전 미술관에서 푹 빠져드는 그림은 바로 에드바르트 뭉크의 ‘사춘기’다. 루바는 (‘폐기’되기 직전에) 데커드에게 ‘사춘기’의 카피본을 사달라고 부탁하고, 데커드는 이 부탁을 들어준다(그는 25달러를 주고 뭉크의 그림이 있는 책을 사서 루바에게 준다). 

 

이 부분은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낳는다. 표면적으로 루바는 (‘오페라 싱어’인 인물답게) 예술작품에 대한 감식안이 있는 ‘상당히 진보된’ 안드로이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이런 2차원적 해석보다는 훨씬 복잡한 메타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 루바는 수명이 4년밖에 안 되는 안드로이드로, 당연히 ‘사춘기’를 경험한 적이 없다. 만일 그녀에게 ‘사춘기’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 의해 ‘심어진’ 가짜 기억일 것이다. 즉, 이 부분에서 루바 - 그녀는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는 뭉크의 그림을 보며 자신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사춘기의 기억’에 대한 상념에 잠겼던 것이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데커드가 무엇 때문에 곧 ‘폐기’할 안드로이드에게 자기 돈을 써가며 그림을 사주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도출할 수 있다. 

 

데커드는 루바에게 ‘그림’을 사준 것이 아니라 ‘기억’을 사준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독자는 차가운 현상금 사냥꾼 레쉬와의 대비(데커드가 루바에게 그림을 사주려고 하자 레쉬는 ‘예산’을 운운하며 차갑기 그지없는 성격을 그대로 내비친다. 또, 데커드와는 달리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루바를 ‘폐기’시켜버린다)를 통해 데커드가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인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데커드는 자신이 안드로이드를 쫓다가 비인간화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레쉬와는 달리) 적어도 그에게는 처음부터 ‘(상실한) 휴머니즘을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던 셈이다.


데커드는 ‘폐기’한 안드로이드에 대한 현상금을 받아 그것으로 ‘진짜(살아있는)’ 염소를 한 마리 (할부로) 산다. 염소를 집으로 데려온 데커드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나머지 세 안드로이드들의 소재를 파악했다’는 브라이언트의 전화를 받게 된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데커드는 ‘오늘은 휴식을 취해야겠다’라고 대답하지만, 브라이언트는 당장 안드로이드들을 잡지 않으면 그들은 관할권 밖으로 도망칠 것이라면서 데커드에게 즉각 출동할 것을 종용한다. 

 

이미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바 있는 데커드는 레이첼의 도움 없이는 남은 안드로이드들을 잡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그녀를 호출해 도움을 요청한다. 데커드와 레이첼은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서 만나게 되고, 그 곳에서 정사(!)를 벌인다. 그러나 남은 안드로이드들을 잡기 위해 호버카를 타고 날아가던 중 데커드는 레이첼이 이전에 다른 현상금 사냥꾼에게도 (데커드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이첼은 지금껏 자신을 거쳐 간 다른 현상금 사냥꾼이 그랬듯, 데커드도 (마음이 흔들려) 결국 남은 안드로이드들을 ‘폐기’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그녀를 거쳐한 현상금 사냥꾼 중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이는 단 한명, 필 레쉬밖에 없었다). 이에 데커드는 그녀를 ‘폐기’시키겠다고 위협하지만, 결국 그녀를 살려주고 홀로 안드로이드들을 잡으러 떠난다.


소설에서 묘사된 레이첼의 면모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는 크게 다르다. 아마도 (소설보다) <블레이드 러너>를 먼저 본 뒤, 영화 속의 숀영의 이미지를 연상하며 소설을 읽은 분들은 딕이 그녀를 그린 방식에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소설에서 레이첼은 로젠 사의 지시에 의해 ‘의도적으로’ 데커드에게 접근한다. 즉, 그녀의 임무는 현상금 사냥꾼으로부터 로젠 사의 안드로이드를 보호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또한 로젠 사는 레이첼의 보고(그녀는 현상금 사냥꾼과 동행하며 그가 쫓는 안드로이드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하여 보고하는 임무도 띠고 있다)를 바탕으로 다음에는 ‘(V-K 테스트 등으로) 보다 식별하기 어려운’ 완성도 높은 안드로이드를 만들 터였다. 

 

즉, 새로 나올 넥서스-7 타입, 넥서스-8 타입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구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존재가 될 것이란 이야기다. 결국 딕은 소설에서 ‘두 방향’으로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셈이다: 첫째, 안드로이드는 (로젠 사에 의해) 점점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간다. 둘째, (반면) 데커드는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며 점점 비인간화 - 즉 ‘안드로이드화’ 돼 간다.


데커드의 타깃이 되는 나머지 세 명의 안드로이드들은 각각 로이 배티, 엄가드 배티(이들은 ‘부부’다!), 프리스 스트래튼이다. 안드로이드들은 ‘치킨헤드’인 J.R. 이시도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은신하고 있었다(이시도어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굳이 그를 모델로 한 배역을 찾는다면, 그것은 J.F. 세바스찬이 될 것이다. 하지만 - 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 세바스찬은 이시도어와는 반대로 ‘천재’에 가까운 인물로 설정됐다). 

 

이시도어는 안드로이드들이 (인간들에게서 버림받은) 자신을 특별하게 대해준다고 여기며 기꺼이 그들을 도와준다. 그는 우연히 밖에서 살아있는 거미 한 마리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것을 안드로이드들에게 보여주는데, 엄가드와 프리스는 신기한 듯 거미를 관찰하더니 ‘끔찍한 짓’을 벌이게 된다. ‘(이 신기한 생물이) 네 개의 다리로도 기어 다닐 수 있는 지 지켜보자’면서 가위로 거미의 다리 네 개를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이시도어는 큰 쇼크를 먹고 절망감에 휩싸인다. 잠시 후 아파트에 도착한 데커드는 우여곡절 끝에 안드로이드들을 모두 ‘폐기’시키는 데 성공한다.


로이 배티와 프리스는 소설과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모두 나오는 캐릭터지만 묘사된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소설의 로이 배티(딕은 로이 배티의 철자를 ‘Roy Baty’로 썼지만 영화에서는 그것이 ‘Roy Batty’로 바뀌었다)는 영화 속 캐릭터와는 달리 ‘유부남’이다. 그가 탈출한 안드로이드들의 리더라는 점은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이지만, 영화와는 달리 소설 속의 그의 죽음, 아니 ‘폐기’ 장면은 장엄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아마도 영화의 기막힌 엔딩 장면을 떠올리며 소설을 보신 분들은 이 부분에서 다소 실망(?)하셨을 것이다. 또, 영화와는 달리 소설 속의 프리스는 레이첼과 외모가 동일한 - 즉 ‘같은 모델’의 - 안드로이드다. 이 때문에 데커드는 - 프리스를 레이첼로 착각하여 - 위기를 자초하기도 한다.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 대한 소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글쓴이가 소설의 플롯을 여기에 소개한 것은 순전히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그리고 앞으로 소개될 영화의 뒷이야기에 대한)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따라서 소설을 ‘제대로’ 알고 싶은 분은, 글쓴이가 위에 소개한 플롯 요약에 만족하지 말고 꼭 책을 구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소설에는 위의 플롯 요약에 소개되지 않은 흥미진진한 내용도 - 당연히 - 넘쳐난다. 또, 위의 플롯 요약에서 데커드가 안드로이드들을 모두 ‘폐기’처리한 뒤의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생략됐음을 밝혀둔다(이 부분은 앞으로 소설을 읽을 분들의 ‘재미’를 위해 남겨두겠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 위에 소개한 플롯 요약만으로도 소설과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내용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엄청난(?) 내용상의 차이는 <블레이드 러너>가 제작 과정에서 겪은 숱한 난항을 간접적으로 짐작케 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오디오북으로도 발매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이 오디오북의 낭독을 맡은 이는 매튜 모딘과 칼리스타 플록하트다. 특히 매튜 모딘의 낭독은 꽤 근사(?)하므로, 관심 있는 분은 오디오북을 구해서 한번 들어보시길. 잠깐, 그런데 칼리스타 플록하트와 (<블레이드 러너>의 주연) 해리슨 포드의 인연은 이미 이 때 시작된 것일까?!


 

 

소설을 쓴 작가와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제작자 사이에 생기는 마찰은 아마도 영화라는 대중예술양식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의 작가는 일반적으로 영화 제작자들이 자신의 소설을 ‘그대로(word by word로)’ 스크린에 옮겨주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실현이 불가능하다. 영화는 소설과는 지향점과 (완성되는 과정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른 예술양식이며, (상업성을 완전히 포기한 순수예술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대중성과 상업성, 그리고 제작비의 구속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실상 작가의 1인 창작품인)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완벽한 ‘협동 예술’이라는 점이다. 이런 영화의 특질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 특히 디지털 특수효과 시대인 현재는 ‘더더욱’ - 부각되게 됐다. 이런 특질로 인해 많은 영화학자들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전통적 의미의 ‘작가주의’는 현대에 와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하거나, 대폭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특히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규모가 큰 영화들에서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현대에서도) ‘1인 창작품’에 가까운 소규모의 영화에서는 여전히 고전적 의미의 작가주의가 통용될지 몰라도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거대한 규모의 영화에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도 영화의 작품성과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가 ‘감독’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작가주의 무용론 혹은 ‘수정론’을 주장하는 이에 따르면) 적어도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공장’에 고용된 감독은 ‘탁월한 예술적 비전과 영화적 재능’만으로는 절대 자신이 의도한 완성도 높은 작품 - 즉 ‘감독의 영화’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작품 - 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훌륭한 상업영화를 만들려면 감독은 재능 있는 스태프를 뽑는 안목과 그들을 부리는 능력, 그리고 제작과정의 숱한 난항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추진력과 ‘정치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이런 능력들은 분명히 ‘예술적 재능’과는 별개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런 대형 영화에서는 재능 있는 스태프들의 기여치를 독립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작가주의와 관련된 논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폴린 카엘과 앤드류 새리스(미국 작가이론의 선구자) 사이에 있었던 논쟁일 것이다. 물론 폴린 카엘이 작가주의의 문제점을 꼬집기 위해 (대표적 작가로 추앙받던)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의 예를 들어 주장한 바는 후에 피터 보그다노비치 등에 의해 허점이 발견되어 비판당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주장과 같은 맥락의 공격은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내일을 향해 쏴라>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윌리엄 골드만은 <죠스>의 예를 들며 할리우드 시스템에 작가주의를 적용하는 데 대한 부조리함을 다음과 같은 조소어린 코멘트로 지적한 바 있다. “피터 벤츨리가 어느 날 롱 아일랜드의 해변에서 거대한 상어를 잡은 어부에 관한 뉴스를 신문에서 읽은 뒤 ‘만약 상어가 해변 근처로 와서 영역을 형성하고 그 곳에 계속 머무른다면?’이라는 가정을 떠올렸다. 그는 그 가정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고, 자눅-브라운은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샀으며, 벤츨리와 칼 고틀립은 영화의 각본을 썼고, 빌 버틀러가 촬영감독으로 고용되어 영화를 찍었으며, 조셉 알베스가 미술을 맡았고, 버나 필즈가 촬영분을 편집했으며, 현역에서 은퇴했던 밥 매티가 불려 와서 괴물상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존 윌리엄스는 - 아마도 그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을 - 멋진 곡을 만들어주었다. 도대체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째서 (이런 작품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전술했듯, 소설의 작가는 일반적으로 영화 제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줄 것을 요구한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것이 작가와 영화 제작자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의 출발점인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 브룩스 랜든의 견해를 인용하자면 - 상당수 작가들이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 착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할리우드가 내 소설에 대해 뭘 알겠어? 하지만 나는 영화에 대해 잘 안단 말이야!” 

 

그러나 많은 경우, 작가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원작에의 충실성’이다. 즉, 그들은 영화의 (협동적인) 제작 과정과 흥행에 관련된 메커니즘이나 미디엄의 특성, 대중적합성 등을 무시한 채 오로지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가’라는 한 가지 잣대로 작품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영화가 원작의 핵심정서나 테마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외형상 원작과 너무나 다르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작가는 영화를 무차별 공격하기 일쑤다.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인정’을 받은 수작 영화가 정작 원작자에게는 공격을 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유명한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2년에 TV 영화 <추적>을 연출하며 메가폰과 친숙해진 크라이튼은 1973년에는 <이색지대 Westworld>의 각본과 감독을 맡음으로써 할리우드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1978년에 그는 <코마 Coma>의 감독을 맡았는데,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로빈 쿡)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었다. 

 

크라이튼은 로빈 쿡의 원작소설을 직접 각색했는데, 쿡은 다른 사람도 아닌 크라이튼이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크라이튼은 자신과 매우 흡사한 배경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 크라이튼과 쿡은 모두 의대 출신의 소설가다 - 이미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에 의해 저작물이 각색된 경험이 있는(<안드로메다 스트레인>(1971)) 작가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심경을 잘 알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영화가 제작되기 전 크라이튼이 쿡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쿡은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내 책을 영화화한다니, 정말 기쁘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크라이튼의 대답은 전혀 뜻밖의 내용이었다. “아마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별로 기쁘지 않을 거요. 나는 당신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소. 내가 당신을 잘 안다고 해서 (할리우드의 제작자들과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의 책을 가지고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대로 고칠 것이오!” 

 

이후 크라이튼은 (정말로) 쿡을 배제한 채 자신의 뜻대로 <코마>를 각색했다. “원작자를 왜 참여시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크라이튼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 나는 원작자의 생각이 어떤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 영화 세트에 있는 사람이 왜 원작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신경 써야 하죠?”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이 일화는 원작자와 영화 제작자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좋은 예다.


자, 그렇다면 필립 K. 딕의 경우는 어땠을까? 물론 그와 영화 제작자들 사이의 관계가 원만했다면 글쓴이는 (굳이) 많은 지면, 아니 공간을 할애하가며 장황하게 ‘서두’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실, 딕과 영화 제작자들 사이에 있었던 트러블은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제작자들과 갈등을 빚은 이유는 위에 설명한 ‘일반적인 작가들의 에고이즘’ 때문이었을까? 어느 정도까지는 맞다. 하지만 딕은 물불 가리지 않고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앞뒤가 꽉꽉 막힌’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영화 제작자들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다.


필립 K. 딕의 작품 중 제일 먼저 영화화되어 대중에게 공개된 작품은 <블레이드 러너>지만, 이 작품이 딕의 생전에 영화화가 시도된 유일한 작품은 아니다. 예컨대, 1970년대 초에는 프랑스 감독 장 삐에르 고랭이 딕의 [유빅]의 영화화하려 했다. 딕은 고랭을 위해 각본까지 써 주었으나, 이 계획은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또, 딕이 1953년에 발표한 단편 [두 번째 변종 Second Variety](<스크리머스>의 원작)이나 66년에 발표한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토탈 리콜>의 원작) 등도 이미 딕이 살아있을 때 영화화가 시도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들은 딕이 사망한 지 한참 후에야 스크린에 걸리게 됐다. 딕은 이 작품들의 영화화와 관련하여 할리우드에 매우 안 좋은 감정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작 판권 계약을 체결한 뒤에는 영화 제작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으며, 하다못해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영화 제작자들이 딕의 의견을 구하는 것을 꺼려한 것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딕의 작품들은 상업영화 제작자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기발한 요소들을 ‘분명히’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 자체로 상업영화의 재료가 되기에는 ‘심하게’ 부적합하기 때문이다(아주 간단한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보자. 만일 ‘원작에 묘사된 주인공 캐릭터의 면모를 그대로 유지하여’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 리콜>을 만들었다면, 관객이 해리슨 포드나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같은 근사한 이미지의 주연 배우를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제작자 입장에서는 메스를 들고 (딕의) 원작에 대한 대수술 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딕이 이것을 불쾌하게 여길 것임은 명백해보였다(물론 딕은 한참 후에 데이비드 피플스의 <블레이드 러너> 각색본에 대해 매우 열린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제작자들이 처음부터 고려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딕은 이런 제작자들의 처사에 대해 ‘모욕적이다(Insulting)’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폴 버호벤이 감독한 <토탈 리콜>은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캐너 다클리> 등과 더불어) 필립 K. 딕의 소설의 ‘보기 드문’ 성공적인 각색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토탈 리콜>의 내용은 원작이 된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와는 크게 다르다. 그리고 그 내용상의 차이는 로날드 슈셋(<토탈 리콜>의 공동 각본, 제작)이 1974년에 딕으로부터 판권을 구입한 후 겪은 각색 과정에서의 난항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 <토탈 리콜>은 16년 동안 무려 7명의 감독과 45 차례의 각색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영화화 됐는데 - 이 과정을 상세히 글로 옮기면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버금가는 두터운 (영화) 역사책 한 권이 나온다 -_-; - 영화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던 개리 골드만은 딕의 소설을 각색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필립 K. 딕의 소설에 충실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할리우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토탈 리콜>의 감독으로 내정됐다가 중도 탈락한 인물 중에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 1년 가까이 매달려 <토탈 리콜>의 각색 작업을 지휘한 크로넨버그가 각색본을 (제작자) 로날드 슈셋에게 보여주자, 슈셋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이건 필립 K. 딕 버전이잖소?” 이에 대해 크로넨버그가 “우리가 하려는 게 바로 그거 아니오?”라고 묻자, 슈셋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화성판 <레이더스>’란 말이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화는 책이 출간된 다음해인 1969년부터 시도돼 왔다. 최초로 이 작품의 영화화에 관심을 나타낸 이는 다름 아닌 마틴 스콜세지였다. 

 

그는 소설을 본 뒤 매료되어 친구이자 각본가, 영화평론가인 제이 콕스(훗날 <순수의 시대>, <갱스 오브 뉴욕>의 각본을 씀)와 함께 영화화를 고려했으나, 이 계획은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4년, 딕은 마침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화 판권을 팔아 목돈을 챙기게 된다. 판권을 구입한 이는 바로 허브 자페(<바람과 라이온>의 제작자)였다. 당시 저예산 SF 영화의 제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허브 자페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상업적’ 가능성을 엿보고 딕으로부터 판권을 구입했고, 아들인 로버트 자페에게 각본 작업을 맡겼다. 그런데 우연히 로버트 자페가 쓴 각본을 입수하여 읽어본 딕은 그만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로버트 자페는 소설을 ‘코미디풍 액션물’로 각색한 것이다! 딕은 자페의 각본을 읽는 내내 분노감과 절망감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얼마 후, 로버트 자페가 영화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딕을 찾아왔는데, 공항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딕이 내뱉은 말은 이러했다: “여기서 맞을래요? 아니면 우리 집에 가서 맞을래요?!”

 

로버트 자페는 이 말을 듣고 흠칫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내 각본이 그렇게 형편없었나요?” 여기에 대해 딕은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라고 대답했다. 다행히도 ‘통 넓은’ 사내인 로버트 자페는 딕의 무자비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좀 더 나은 각본이 나올 수 있도록, 내게 조언을 좀 해주시오”라고 요청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급진전되어,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허브 자페는 판권이 만료된 1977년까지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고 딕과 로버트가 나눈 ‘건설적인 대화’는 결국 무용지물이 됐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화에 실패한 허브 자페는 대신 딘 쿤츠의 소설을 각색한 <데몬 시드>를 만들어 1977년에 발표했다(‘비운의 감독’ 도날드 캠멜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의 각본 역시 로버트 자페가 썼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이 영화에서는 당시 할리우드 SF 영화의 시류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기술문명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담은 SF 영화의 제작 편수가 부쩍 늘어나게 된다. 특히 과거에 ‘인간을 돕는’ 도구적 존재로 묘사되던 컴퓨터가 이 시기 이후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 9000, <콜로서스: 포빈 프로젝트>의 콜로서스 등)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데몬 시드>에 등장하는 컴퓨터 ‘프로테우스 IV'는 이런 경향의 극단에 위치한 것으로, 이 컴퓨터는 인질로 붙잡은 인간 여성(수잔 해리스)에게 자신의 아이를 임신시킨다는 황당한 계략을 꾸미게 된다.

 

즉, 프로테우스 IV는 이 태아의 영혼을 통해 ‘재탄생’하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맹렬히 저항하던 수잔은 결국 프로테우스 IV의 협박에 굴복해 ‘기계의 아이’를 갖는 데 동의하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태아는 컴퓨터가 만든 인큐베이터에서 길러진다. 그리고 영화의 끝 장면에서 드디어 ‘기계 아이’가 공개되는데, 그 모습은 관객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아이를 감싸고 있던 ‘쇠껍질’이 벗겨지자, 수잔과 그녀의 남편 눈앞에는 예전에 죽은 딸의 모습이 보인다. 결국 수잔 부부는 이 ‘악마의 씨’가 단지 죽은 딸과 외모가 같은 기계의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죽이지 못한다. 이 기막힌 반전은 기술문명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그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현대의 인류를 풍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또한 ‘궁극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SF 영화가 머지않아 대중들 앞에 선보일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페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화 계획이 진행될 당시, 딕에게 접근한 또 한 명의 영화인이 있으니, 바로 햄튼 팬처였다. 영화 팬들에게 <블레이드 러너>의 공동 각본가이자 제작자로 알려진 팬처는 사실은 ‘연기’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인물이다. 1975년 초, (당시) 영화 제작자로 성공하여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던 팬처는 자신의 ‘1호 제작 작품’이 될 영화의 소재를 찾고 있었다. 당시 그가 점찍어둔 작품은 바로 윌리엄 버로우즈의 [네이키드 런치]였다. 팬처는 버로우즈의 에이전트를 만나 소설의 판권을 얻기 위해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었는데, 그는 ‘만에 하나, 버로우즈 측으로부터 판권을 얻지 못했을 경우’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백업 계획을 하나 더 세우기로 했다. 그는 친구인 짐 맥스웰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의 소재로 적당한 소설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고, 맥스웰이 추천한 작품은 다름 아닌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였다. 팬처는 즉시 소설을 구입해 읽었고, 거기서 충분한 ‘상업적 잠재력’을 엿보았다.


사실 햄튼 팬처는 처음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었을 때 ‘훌륭한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다. 소설에서 그가 인상 깊게 본 요소는 바로 ‘잠재적 상업성’과 ‘독특한 스타일’이었다(그는 소설의 주인공 릭 데커드를 카프카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니, 그런데 ‘독특한 스타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소설에 무슨 ‘잠재적 상업성’이 있냐고? 

 

당시 팬처가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시선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그것과 동일했다. 즉, 그는 소설을 읽으며 ‘현상금 사냥꾼이 안드로이드를 쫓는’ 액션물을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당시 팬처는 머지않아 할리우드에 SF 영화의 중흥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예상은 얼마 가지 않아 - <스타워즈>와 <미지와의 조우>의 대성공으로 - 현실화됐다). 따라서 딕의 소설이 제공한 영감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판권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갔던 팬처는 (어찌된 영문인지) 도무지 필립 K. 딕과 접촉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려는 찰나,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팬처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오기 직전, 우연히 SF 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딕과 관련된) 사정을 들은 브래드버리는 주머니에서 작은 주소록 수첩을 꺼내더니 거기서 딕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팬처에게 알려주었다(딕과 레이 브래드버리는 친구 사이였다). 팬처는 당장 다음날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결국 딕과 통화하여 약속을 잡는 데 성공했다(결과적으로 <블레이드 러너>가 탄생하는 데에는 또 한명의 저명한 SF 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가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딕과 팬처의 첫 만남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다. 팬처의 회고에 따르면 이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으며, 전반적인 대화의 흐름도 매끄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딕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화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말하자면, 딕은 팬처에게서 받은 좋은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근본적으로는 ‘할리우드식 장사꾼’이라고 여기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것이다. 팬처는 이런 반응에 크게 실망하고 소설의 영화화를 잠시 보류하게 된다. 하지만 팬처는 이 때 한 가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딕은 팬처가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그에게는 판권을 팔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팬처가 딕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소설의 영화화 판권은 허브 자페에게 넘어가 있었다).


젊은 시절의 햄튼 팬처

 

그런데 팬처가 소설의 영화화를 거의 포기하려고 할 즈음에, 또 하나의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팬처의 친구였던 브라이언 켈리가 ‘꺼져가던 불씨’를 살린 것이다. 이전에 TV극을 무대로 활동하던 배우였던 켈리는 1970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후 그는 배우 생활을 접고 (팬처처럼) 영화 제작자로 ‘전업’하여 크게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가슴에 품게 됐다. 팬처는 영화화에 적당한 소재를 찾고 있다는 켈리의 말을 듣고는 그에게 (자신이 거의 포기한 프로젝트였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추천해주었다. 켈리는 곧 소설을 구해서 읽었고, 거기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팬처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켈리는 곧장 딕의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얼마 후 소설의 판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켈리는 (팬처가 처음 시도했을 때와는 달리) 일이 너무나 쉽게 풀린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추정했다. 첫째, 켈리가 딕 측과 판권 협상을 벌였을 때는 (팬처 때와는 달리) 허브 자페가 보유하고 있던 판권이 이미 만료된 때였다. 둘째, (켈리의 추정에 의하면) 딕은 당시 돈이 필요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 없이 소설의 판권을 켈리에게 다시 판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켈리는 2천 달러를 딕에게 지급하고 (팬처를 대신해)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독점하게 됐다. 이제 남은 일은 영화를 ‘책임지고’ 제작할 수 있는 파트너를 구하는 일이었다.


햄튼 팬처의 친구인 브라이언 켈리는 <블레이드 러너>의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켈리가 1순위로 점찍은 제작 파트너는 바로 마이클 딜리였다. 딜리는 켈리가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안면을 튼 영국 출신의 제작자로, 이전에 <이탈리안 잡>, <머피의 전쟁>등을 제작한 바 있으며, 켈리가 연락을 취할 무렵에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의 제작에 한창 매달리고 있었다. 켈리는 그에게 자신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했다면서,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유했다. 딜리는 켈리의 권유를 받아들여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켈리는.....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딜리가 켈리에게 ‘퇴짜’를 놓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딕의 작품이 상업영화에 적합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딜리가 보기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모호하고 대중 친화력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켈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딜리를 계속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딜리의 관심을 끌만한 -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의 마음을 바꿔놓을 만한 -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켈리는 팬처에게 다시 돌아가 ‘딜리가 흥미를 느낄 만한’ 트리트먼트(영화의 줄거리와 중요한 장면들, 등장인물 등을 압축해 적은 글)를 작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팬처는 8페이지짜리 트리트먼트를 공을 들여 작성했고, 켈리는 그것을 들고 다시 딜리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딜리의 대답은 이번에도 “노우"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켈리와 팬처는 (이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프로젝트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그들은 딜리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을(켈리의 끈질긴 낚시질에 딜리는 계속 ‘노우'라고 말하면서도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최종병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바로 ‘완성된 각본’이었다. 그리고 이 ‘최종병기’를 만드는 극히 까다로운 작업은 -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 햄튼 팬처가 맡게 됐다. 


<블레이드 러너>의 각본 초고를 쓴 햄튼 팬처는 비록 배우로 영화 커리어를 시작하긴 했지만, ‘글 쓰는 일’에 낯선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시나 소설 따위를 창작하는 것을 즐겼으며, 이미 배우로 데뷔하기 전에 여러 편의 습작 시나리오를 쓴 바 있다.

 

사실 팬처는 프로젝트의 초창기만 해도 ‘자신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애당초 그는 ‘제작자’로 활동하여 돈을 벌기 위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영화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터였다. 그러나 켈리는 (꽤 오랫동안 원작소설을 끼고 살아온 데다가 글재주까지 있는) 팬처야 말로 소설을 각색할 적임자라고 주장하면서 그에게 각본을 쓸 것을 계속 종용했다. 최초에 켈리의 제안을 거절했던 팬처는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펜을 들게 된다. 팬처는 자신이 각본을 쓰는 대가로, (소설 판권의 독점 보유자였던) 켈리에게 영화의 권리 및 ‘돈 문제’에 대해 50:50 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고 켈리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계약이 체결된 직후, 팬처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각색 작업에 착수했다.

 

거의 1년에 걸친 이 고단한 작업 기간 동안 켈리는 팬처의 조력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팬처의 집세를 직접 내줬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실에 들러서 용기를 불어넣어주었고, 각본의 상태를 일일이 체크하는 ‘감독자’의 역할까지 해냈다. 이런 열성적인 지원에 힘입어 (결국) 팬처는 1차 각본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완성된 각본에 대만족을 표시한 켈리는 그것을 들고 즉각 마이클 딜리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켈리는 각본을 딜리의 책상에 툭 던져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마이크, 이 각본을 이번 주 내에 읽고 월요일까지 꼭 답변을 주게! 지금 다른 영화사들이 이 각본을 사려고 줄을 서 있다네!” 물론 ‘다른 영화사들이 줄 서 있다는’ 켈리의 말은 뻥이었다. 딜리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의리상’ 모른 척 했다 -_-; 그로부터 얼마 후, 켈리는 딜리로부터 이런 통보를 받았다. “당장 계약하세!” 딜리 역시 팬처의 각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브라이언 켈리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졸라대던 때, 마이클 딜리는 (당시 제작하고 있던) <디어 헌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디어 헌터>의 제작과정은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차기작인) <천국의 문>의 축소판, 혹은 ‘예고편’이라고 할 정도로 험난한 것이었다(<디어 헌터>와 <천국의 문>의 제작 당시 일어난 기막힌 사건들을 합쳐서 모두 풀어놓으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버금가는 분량의 대하소설 한 권이 나온다 -_-;). 

 

고단한 촬영일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배우들이 지쳐서 나가떨어졌고, 곳곳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으며, 촬영 지연과 거듭되는 추가촬영으로 인해 제작비는 순식간에 두 배로 뛰었고, 제작기간 내내 안팎으로 다채로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존 카잘과 관련된 유니버설과 치미노의 대립(마이클 치미노는 카잘이 암에 걸려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촬영을 강행했고, 이를 뒤늦게 안 유니버설은 카잘을 다른 배우로 교체하려 했다)은 이 때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 끔찍한 ‘전쟁’은 심지어 공식적인 촬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디어 헌터>의 북미 배급권을 가진 유니버설은 마이클 치미노를 배제한 채 영화를 두 시간 길이로 편집하려 했고(본래 영화의 러프 컷의 길이는 네 시간에 달했다), 치미노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편집본으로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개인적인 시사회를 여러 차례 열어서 ‘좋은 입소문’을 인위적으로 퍼뜨렸고, 유니버설의 편집본이 상영될 극장의 영사기사를 매수하여 시사회를 고의적으로 망치도록 하려는 시도를 벌이기도 했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횡포와 치미노의 완벽주의 사이에서 딜리는 그야말로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딜리는 결국 <디어 헌터>의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의 대성공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을 잊게 된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악몽은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했던 그가 <블레이드 러너>로 훨씬 지독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을!

 

자, 그렇다면 2년 여 동안 고집(?)을 피우던 딜리를 굴복시킨 팬처의 첫 번째 각본은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까? 우선 팬처는 소설과는 달리 영화의 배경을 LA로 설정했으며, 이야기의 스케일을 대폭 줄였다(애당초 팬처가 구상한 영화는 제작비가 9백만 달러 정도 드는 ‘소규모 SF’ 영화였다). 또, 주인공 데커드의 아내 아이랜의 비중을 줄이고, (대신) 레이첼과 데커드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하여 두 사람을 연인 관계로 설정했다(완성된 영화에서 묘사된 레이첼과 데커드의 관계는 결국 여기에서 유래한 셈이다). 

 

하지만 이 각본에 그려진 데커드의 모습은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어찌 보면 소설에서 묘사된 것보다도 더 볼품없는 이미지였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팬처는 이 각본에 당시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환경 문제’라는 이슈를 노골적으로 반영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원작소설에서 간간이 언급되는 환경오염(파괴)에 관한 이슈들을 대폭 확장시켜 아예 영화의 핵심적인 테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각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엔딩인데, 여기서 레이첼은 데커드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데커드는 (자신도) 자살을 하기로 결심하고 사막으로 향한다. 사막을 정처 없이 걷던 그는 결국 지쳐서 모래 위에 쓰러지는데, 바로 그 때 그의 눈앞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 거꾸로 뒤집혀서 한참동안 바둥바둥하던 그 거북이는 가까스로 몸을 뒤집은 뒤 총총걸음으로 데커드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그는 문득 '깨달음'을 얻고는 일어나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다. 이후 카메라는 데커드가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풀백하고, 곧이어 관객은 아름답고 푸른 지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카메라는 다시 풀백하여 광활한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곧 영상이 페이드아웃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You look down and see a tortoise."

 

팬처가 구상한 오리지널 엔딩의 ‘거북이 일화’는 완성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데이브 홀든이 리온에게 행하는 V-K 테스트의 질문 중 하나(“남생이 질문”)로 살아남았다(주: 국내 발매된 DVD에서는 이 부분의 tortoise(남생이)가 ‘자라’로 번역됐다).

 

팬처의 주장에 따르면 그의 각본을 읽어본 사람은 모두 (위에 묘사된) 오리지널 엔딩에 환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 한 사람’은) 이 엔딩을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필립 K. 딕이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딕은 엔딩 신뿐만 아니라 팬처의 첫 번째 각본의 ‘모든 것’을 혐오했다. 딕에 따르면 ‘팬처의 각본은 소설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전혀 담지 못했으며, 구태의연한 할리우드의 클리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데다가 문체마저 촌스럽고 진부한’ 끔찍한 작품이었다. 그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긴 부분은 (레이첼이 자살하고 데커드가 ‘깨달음’을 얻는) 오리지널 엔딩과 데커드의 내레이션이었다(그렇다. 팬처의 첫 번째 각본에는 이미 데커드의 내레이션이 있었다. 딕은 이 내레이션이 너무나 할리우드적이고 케케묵은 것이라고 여겼다. 이 측면에서 보면, 딕이 ‘급조된 내레이션이 삽입된’ 북미 개봉판 <블레이드 러너>를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은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만일 딕이 <블레이드 러너>의 개봉일까지 생존하여, 극장에서 데커드의 어색한 내레이션을 들었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화병으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팬처의 첫 각본에 대한 딕의 무시무시한 혐오증은 - 다음 편에서 자세히 언급될 - ‘TV 가이드 사건’으로도 곧장 연결됐다.


딕이 팬처의 각본을 보고 광분한 데에는 그가 이 각본을 접하게 된 상황과도 약간의 관련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것이다: 딕은 1980년 초까지도 <블레이드 러너>의 제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처음으로 그의 소설을 각색했던) 로버트 자페의 전화를 받은 뒤에야 이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1980년 초, 자페는 딕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해요!”라고 외쳤는데, 어안이 벙벙해진 딕이 “뭘 말이오?”라고 묻자 자페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문에서 봤는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대요!” 딕은 이 말을 듣고는 원작자에 대한 예의를 눈곱만치도 갖추지 않은 - 그는 영화의 제작이 시작되면 ‘당연히’ 자신이 그 사실을 먼저 알 권리가 있다고 여겼다 - 영화 제작자들에 대해 심한 분노감을 느꼈다.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모욕감을 떨치지 못하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팬처의 각본을 손에 넣게 됐는데(사실 이 무렵에 팬처는 이미 각본을 여러 차례 손 본 상태였으나, 공교롭게도 딕의 손에 들어간 각본은 제일 처음에 작성된 것이었다), 그는 당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기 때문에 각본의 내용이 더더욱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사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팬처의 첫 번째 각본은 절대 - 팬처가 공개적으로 욕한 것처럼 - 형편없지는 않았다). 딕은 얼마 후 친구인 레이 브래드버리와 함께 식사를 하며 ‘<블레이드 러너>의 제작자들이 자신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더라’라는 불평을 늘어놨는데, 브래드버리는 그 말을 듣고는 펄쩍 뛰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분개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것은, 이 때 입에 거품을 물면서 딕의 편을 들어주던 브래드버리는 바로 ‘그 몹쓸 제작자들’에게 다리를 놔준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팬처의 각본은 이후 수차례에 걸쳐 수정됐다. 팬처의 각본에 만족을 표시하여 켈리와 계약을 맺은 딜리는 다음 단계로 - 영화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인 - ‘자금줄’과 감독을 물색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딜리는 팬처의 각본을 여러 스튜디오에 돌리면서 투자자가 나타나기를 애타기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팬처의 각본을 본 스튜디오들은 대체로 각본 자체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매겼으나, 그것의 대중성과 상업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명배우 그레고리 펙까지 나서서 팬처의 각본을 열렬히 홍보했으나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그레고리 펙은 우연히 팬처의 각본을 입수해 읽게 됐는데, 각본이 설파하는 환경보호에 관한 메시지와 휴머니즘적인 테마에 완전히 매료된 그는 ‘이런 영화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여기고 MPAA(미국영화협회)와 스튜디오들에 팬처의 각본을 ‘강추’하는 서한을 직접 보내는 열의를 보여줬다).

 

한편, 이 시점에서 딜리 사단에 영입된 케이티 하버 - 그녀는 <어둠의 표적>, <겟어웨이>, <관계의 종말>, <철십자 훈장> 등 샘 페킨파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감독의 조력자로 활약했으며, 페킨파와는 연인 사이이기도 했다 - 는 딜리, 팬처, 켈리와 함께 영화의 감독을 맡을 인물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들은 마이클 앱티드, 애드리안 라인, 브루스 베레스포드,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영국 출신의 그 사람’ 등 여러 유망주들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버가 특히 주목한 인물은 - ‘그 사람’이 아니라 - 바로 호주 출신의 (당시) 주목받는 감독이었던 브루스 베레스포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베레스포드는 당시 이미 다른 프로젝트에 착수한 상태였기 때문에 딜리 사단에는 합류할 수가 없었다.


할리우드 진출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호주 감독 브루스 베레스포드는 흥미롭게도 리들리 스콧이 <블레이드 러너> 제작에 합류한 직후에는 <무법자 모랜트>로 세계적인 호평을 이끌어내 할리우드 ‘스카우터’들의 표적으로 급부상 하게 된다. 베레스포드는 이 영화로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베레스포드는 또한, 한때 <토탈 리콜>의 감독으로 고려된 인물이기도 하다.

 

딜리 팀에 의해 ‘최초의 감독’으로 선정된 인물은 뜻밖에도 중견 감독인 로버트 멀리건이었다. <앵무새 죽이기(알라바마에서 생긴 일)>나 <42년의 여름>등으로 국내의 고전 영화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인 멀리건은 (그러나) 인간관계를 테마로 하는 드라마의 연출을 장기로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SF 영화의 감독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멀리건을 적극 천거한 햄튼 팬처는 그를 천거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감독의 장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팬처의 각본에서는 (원작 소설과는 달리) 레이첼과 데커드의 로맨스가 매우 중요한 플롯 상의 키워드로 부각되는데, 멀리건이야 말로 이런 부분을 훌륭하게 영상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멀리건은 팬처의 각본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곧 딜리 사단에 합류하여 팬처의 각본을 함께 다듬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막상 각본의 수정작업이 진행되면서 팬처와 딜리는 자신들의 선택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멀리건이 머릿속에 그린 영화는 딜리 팀이 생각하고 있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멀리건은 - 최초의 기대와는 달리 - 영화의 로맨스적 요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문제는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를 딜리나 팬처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적인 불화(?)에도 불구하고 딜리 팀은 몇 달간이나 멀리건과 머리를 맞대고 영화의 스토리의 질을 향상시킬 방법을 논의했다. ‘영화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음에도, 딜리가 멀리건을 쉽게 자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멀리건이 메이저 스튜디오인 유니버설과 무척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유니버설은 당시 멀리건 때문에 팬처의 각본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에 투자를 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금줄’을 애타게 찾던 딜리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메리트였다. 허나 이 모든 것은 1979년 말, 멀리건이 공식적으로 프로젝트에서 이탈하면서 공중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메가폰은 - 우리가 기다리던 - 바로 ‘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다.

 

<디어 헌터> 때 마이클 치미노 감독과 한 바탕 전쟁을 치른 유니버설은 한 때 <블레이드 러너>의 감독으로 선정됐던 멀리건((위 사진)과도 짤막한 ‘국지전’을 치렀다(주: 멀리건이 딜리 팀에 합류한 때는 팬처의 각본에 명기된 영화의 제목이 <블레이드 러너>가 아닌 <위험한 나날들 Dangerous Days>였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영화는 정확히는 <위험한 나날들>로 불려야 하나, 읽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그냥 <블레이드 러너>로 부르기로 하겠다). 당시 유니버설은 <블레이드 러너>의 투자에 참여하는 대가로 여러 가지 ‘딴지’를 걸고 있었는데 -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영화를 그다지 상업성이 있는 작품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 그들이 불만을 토로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팬처의 각본에 묘사된 엔딩이었다. 유니버설은 - 돈을 벌기 위해서는 - 영화가 반드시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팬처는 (물론) 이에 반기를 들었고, 나름대로 프로 의식이 투철한 감독이었던 멀리건 역시 이 주장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영화의 중요한 돈줄인 유니버설을 끝까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 팬처와 멀리건은 스튜디오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안심시키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내게 된다. 바로 ‘가짜 엔딩’이 포함된 각본을 유니버설에 제출하여 그들을 안심시킨 뒤 실제로는 팬처-멀리건이 원했던 본래 엔딩대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팬처는 폴 새몬과의 인터뷰에서 이 가짜 엔딩의 내용을 '와도 비슷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로이 배티는 세바스찬(전술했듯, 그는 원작소설의 J.R. 이시도어에 해당하는 인물이다)을 아파트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이후 데커드가 들어와 배티를 죽인다. 데커드가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그 곳에서는 레이첼이 기다리고 있다. 이후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카메라에서 멀어져간다.


 

 

리들리 스콧은 1937년 11월 30일에 엘리자베스-프랜시스 퍼시 스콧 부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영국의 사우스 실즈였으며, 위로는 프랭크라는 형이 있었고 아래로는 - 훗날 형만큼이나 유명한 영화감독이 될 - 동생 토니가 있었다. 스콧의 아버지 프랜시스는 본래 사업가였으나 2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군에 입대, 하사관이 되어 군인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이 때문에 스콧의 가족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발령지를 따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하게 된다. 그들은 1952년, 프랜시스가 제대하고 사업가로 복귀한 후에야 정착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스콧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바로 어머니 엘리자베스였다고 회고했다. 2차 대전 당시 프랜시스가 군복무 관계로 집을 비웠을 때 그녀는 홀로 - 아버지의 몫까지 -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스콧은 “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강인한 여성상은 바로 그녀(어머니)에게서 유래한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유명’ 영화감독들과는 달리, 리들리 스콧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유년기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이 있다면 바로 ‘그림’이었다. 특히 스콧은 어린 시절 자신이 만화책을 무척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또래 아이들과의 차이가 있었다면, 그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것을 다소 지나칠 정도로 ‘분석적으로’ 봤다는 사실이다. 즉, 그는 (단순히 흥미 본위로) 만화책을 한 번 읽고 던져버린 것이 아니라, 각 컷의 구성 상태와 그림체, 캐릭터의 배치, 명암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철저히 ‘연구/분석’을 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것이다. 소년시절 그의 장래 희망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1954년에 스콧은 자신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웨스트 하틀풀 예술 대학에 진학해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58년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에 입대할 준비를 하게 된다(주: 영국은 1960년까지 징병제를 실시했다).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군대 문화에 익숙했던 스콧은 투철한 사명감(!)으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려 했으나, 이 때 - 약간 뜻밖이겠지만 - 아버지가 나서서 그를 말렸다. 그는 아들이 군대에서 재능을 썩히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스콧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디자이너로서 대성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스콧은 아버지의 권고를 따라 입대를 연기하고 RCA(영국 왕립 미술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궁극적으로는 이 결정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블레이드 러너> 개봉 당시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리들리 스콧이 어린 시절 거의 유일하게 적성을 보인 분야는 예술’이라는 흥미로운 정보가 실려 있었다.

 

스콧은 RCA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며 자신의 재능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켜나갔다. 그런데, RCA에 다니는 동안 그가 ‘진짜로’ 건진 수확은 - 전공 공부가 아니라 - 바로 ‘영화와의 운명적 조우’였다. 스콧은 “나는 RCA에 진학하고 나서야 진정한 영화광이 됐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이 시절 시간이 날 때마다 극장으로 달려가 다양한 영화를 섭렵했다. 스콧이 ‘영화광의 길’로 접어든 이때(1950년대 말~1960년대 초)는 영국 영화사, 아니 세계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손꼽힌다. 

 

이 시기는 바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시대였으며, (역시 프랑스에서 유래한) 작가이론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영국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극작가들이 주도한 앵그리영맨 운동이 시대를 정의하는 키워드로 떠올랐으며, 영화가 ‘소셜 리얼리즘’이라는 가치를 포용한 것은 영국 영화사에서 손에 꼽히는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프리 시네마의 대표주자들이었던 린제이 앤더슨, 카렐 라이츠, 토니 리차드슨 등이 남긴 영화들은 오늘날까지도 영화 학도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는 영국 영화사의 주요 유산이다. 스콧이 바로 이런 중요한 시기에 영화에 눈을 떴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스콧과 영화와의 ‘진짜’ 접촉은 아주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어느 날, RCA의 창고에서 물건을 찾던 스콧은 볼렉스 16밀리 카메라를 발견하고 크게 흥분하게 된다. 카메라를 발견한 순간 그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 “아, 이제 나도 ‘나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구나!” 그는 곧장 RCA의 허가를 얻어 카메라를 빌렸고, 자비를 털어 필름과 레코딩 장비를 구입한 다음 ‘자신만의 영화’의 촬영을 개시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리들리 스콧의 첫 번째 단편영화 <소년과 자전거 Boy and Bicycle>다.


<소년과 자전거>

 

<소년과 자전거>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영화의 주인공은 16세의 소년 ‘토니’다. 학교를 ‘땡까기로’ 마음을 먹은 토니는 집을 나온 뒤 자전거를 타고 자신이 사는 동네 근처를 방황한다. 토니의 자전거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동네의 가게, 바닷가, 그리고 낯선 오두막집 등을 차례로 비춰준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사운드트랙에서는 토니의 독백(그야말로 ‘잡다한 내용’)이 흘러나온다. 식료품 가게에서 사탕을 사고 다리 밑에 숨어서 담배를 몰래 태우기도 하던 토니는 바닷가에서 버려진 오두막집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살펴본다. 그 때, 오두막집에 살던 부랑자가 돌아오고 크게 놀란 토니는 오두막집을 빠져나와 자전거를 타고 달아난다.

 

약 27분 정도 되는 길이의 이 흑백 단편영화는 스콧의 ‘궁극적인 가족 영화’라 할 만하다. 우선, 영화의 주인공 소년 토니 역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생 토니 스콧이 맡았으며, 영화의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토니의 어머니 역은 실제 토니(그리고 리들리 스콧)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가 맡았다. 또, 영화 끝부분에 갑작스레 등장하여 관객을 놀라게(?) 하는 부랑자 역을 맡은 이는 바로 스콧의 아버지 프랜시스다(프랜시스는 영화의 결정적인(?) 신에 찬조출연을 한 것 외에, 카메라를 잡고 있는 스콧을 태운 차를 직접 운전하여 아들의 영화가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소년과 자전거>에 등장한 스콧 가족. 위로부터 차례대로: 토니 스콧, 스콧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아버지 프랜시스

 

스콧은 독학으로 얻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 그는 정식으로 영화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 이 단편 영화를 완성시켰는데, 그 준비과정이나 제작과정이 상당히 철두철미했다. 특히 그는 직접 쓴 각본을 바탕으로 - 자신의 디자인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 모든 신의 스토리보드를 꼼꼼하게 그려서 이후에 있을 촬영을 위한 ‘완벽한 청사진’을 만들었는데, 이후 영화 제작 전에 모든 신의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리는 것은 그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영화의 촬영은 약 6주에 걸쳐 진행됐으며, 촬영이 끝난 뒤 토니 스콧의 내레이션이 후시 녹음됐다.

 

<소년과 자전거>는 청년 시절의 스콧이 어떤 영화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로도 매우 가치가 있다. 예컨대, 영화의 많은 신은 들고 찍기 방식으로 촬영됐는데, 이 신들의 다큐멘터리적인 터치에서는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소셜 리얼리즘 계열 영화의 영향이 직접 느껴진다. 또, 스콧은 영화를 만들 당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 푹 빠져있었는데, 그는 아키라에 관한 자료를 뒤져 그가 즐겨 썼던 필터를 알아내 <소년과 자전거>의 촬영에 쓴 카메라에 응용하기도 했다. 

 

<소년과 자전거>는 순전히 스콧의 개인적인 습작으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후에 작품성을 인정받아 대중에게 공개해도 될 정도로 깔끔하게 ‘재포장’되기도 했다. RCA를 졸업한 후 스콧이 다른 일에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RCA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된다. 내용인즉, “BFI(영국 영화 협회)로부터 250파운드를 지원받았으니 학교로 잠시 들러서 <소년과 자전거>의 후반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해달라”는 것이었다. 스콧은 이 요청을 받아들이고 <소년과 자전거>의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음향 효과 추가, 불안정했던 후시 녹음 상태의 보정 등)하게 된다. 지금 기록으로 남아있는 <소년과 자전거>는 바로 이 버전이다(주: 혹시 이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스콧의 <결투자들> SE DVD를 구입하시길. 서플먼트로 이 작품이 수록돼있다).

 


아마도 <소년과 자전거>의 크레딧을 끝까지 보신 분들은 자막에서 ‘의외의 인물’을 하나 발견하고 다소 놀랐을 것이다. 바로 음악을 맡은 ‘존 배리’다. 아니, 이 자막의 존 배리가 아카데미 음악상을 네 번이나 수상한 - 그리고 ‘007 시리즈’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인 - 그 존 배리가 맞냐고? 놀랍게도 ‘그렇다.’ 

 

그런데 유명인사인 존 배리 - 당시 배리는 영화음악가가 아닌 록-재즈 뮤지션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 가 무엇 때문에 ‘전혀 무명이었던’ 청년 리들리 스콧의 습작에서 음악을 맡았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배리는 스콧을 ‘기특하게’ 여겨 그에게 무료로 음악을 선물한 것이다. 스콧은 <소년과 자전거>에 어떻게든 배경음악을 삽입하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음악을 살 만 한 돈이 없었다(그는 BFI로 받은 250파운드를 이미 후반 제작과정에서 모두 써버렸다). 배리는 이런 스콧의 재능과 열정을 높이 사, 바쁜 와중에서도 시간을 내어 <소년과 자전거>를 위한 곡을 녹음해주었다.

 

1961년, RCA를 졸업한 스콧은 BBC에 입사하여 (훗날의 ‘영화인생’을 위한) 중요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그는 BBC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통상적인 어시스턴트 과정을 건너뛰고 곧장 미술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후 그는 빠른 속도로 영상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료주의와 어떻게 맞서는지, 어떻게 하면 빠듯한 예산 하에서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지 등을 ‘몸으로’ 익혀나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미술 감독의 직책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카메라 뒤에 서기를 갈망하게 된다. 스콧의 재능을 눈여겨 본 방송국의 상사는 그를 BBC의 감독 양성 프로그램에 투입시키고, 스콧은 이곳에서 직접 35밀리 카메라로 습작을 만들며 체계적으로 연출 경험을 쌓아갔다. 1965년에 그는 드디어 (BBC에서의) 공식적인 1호 감독작을 연출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제트 카스 Z-Cars>(BBC의 인기 경찰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였다. 이 작품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아담 애더먼트는 살아있다! Adam Adament Lives!>(인기 TV 시리즈 어벤저를 본떠서 만든 어드벤처물) 등 많은 TV 시리즈에서 자신의 연출력을 과시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관심은 통속적인 내용의 브라운관용 흑백 영화 대신 다른 쪽으로 옮겨가게 된다. 바로 ‘광고’였다. 30~60초라는 짧은 시간 내에 (창작자의) 다양한 실험적 기교를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광고는 타고난 비주얼 감각을 지닌 스콧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새로운 갈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담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1964년, 당시 나이 27세였던 스콧은 과감히 BBC에서 나와 자신만의 광고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당시 RCA를 막 졸업한 동생 토니를 꼬드겨(-_-;) 사업 파트너로 만든 그는 결국 1967년에 광고회사를 정식으로 설립하여 운영하게 된다. 이 회사가 바로 그 유명한 RSA(Ridley Scott Associates)다. 스콧은 이후 이 회사의 대표로 3천 여 편의 광고를 찍으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RSA는 또한 유능한 비주얼리스트들의 등용문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는데, (동생) 토니 스콧을 비롯해 휴 허드슨, 피터 웹 등 많은 인재들이 이 회사를 거쳐서 영화와 광고계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형제들은 용감했다!”

 

RSA의 주가가 점점 높아지면서 스콧은 제법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됐다(당시 스콧은 아내와 두 아들 - 훗날 역시 CF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제이크와 루크 - 을 둔 가장이었다). 하지만 비주얼리스트로서 그의 궁극적 목표였던 ‘장편영화 감독’으로의 데뷔는 아직은 요원한 듯했다. 특히 자신의 라이벌로 여겨지던 CF 감독들 - 예컨대 ‘알란 파커’ 등 - 이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리면서 그에게는 “이러다가 나는 평생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한 채 광고만 찍게 되는 건 아닌가”라는 조급증에 휩싸이게 된다(당시 스콧의 나이는 40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론 스콧이 이 시기에 감독으로 데뷔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 무슨 마가 낀 것인지 - 그가 추진하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1971년에 그는 직접 쓴 각본으로 <러닝 인 플레이스>라는 강도 영화를 찍으려 했으나,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프로젝트의 추진을 보류해야 했고, 이듬해에는 각본가 존 에드워즈를 고용해 호러 영화 <캐슬 엑스>를 찍으려 했으나 역시 제작비 조달에 실패하고 말았다. 또, 70년대 중반에 그는 조셉 콘라드의 단편 [듀얼 The Duel]을 각색해 TV용 영화로 제작하려 했다. 그런데 제랄드 본 휴즈가 각색한 각본을 보고 감명을 받은 스콧은 ‘이 각본은 TV용 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아깝다’라고 느끼고 그것을 장편영화로 확장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바로 <결투자들 The Duellists> 프로젝트다. 

 

그러나 당초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던 프랑스의 제작사가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 것 같다”면서 발을 빼면서 프로젝트는 (또 다시) 무산될 위기에 직면한다(<결투자들>은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따라서 제작자가 ‘아무리 작은 규모로 만든다고 해도 상당한 제작비가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난처한 상황에 빠진 스콧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는 - 그 유명한 - 데이비드 퍼트냄이었다. 훗날 ‘미다스의 손’으로 이름을 떨칠 퍼트냄은 <결투자들>의 각본을 보고는 큰 감명을 받아 스콧에게 “내가 어떻게든 제작비를 마련해볼 테니 함께 영화를 만들자”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퍼트냄에게도 당장 ‘돈줄’을 확보할 묘책은 없었다(그는 <결투자들>외에 다른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콧의 문제를 해결해주게 된다. 바로 스콧의 라이벌인 알란 파커였다.

 

알란 파커의 장편영화 데뷔작 <벅시 말론>

 

스콧을 만나기 전, 데이비드 퍼트냄은 (스콧처럼) 광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신예 알란 파커를 감독으로 영입해 <벅시 말론>을 제작했다. 그런데 1976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 이 작품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헌데, 승리감에 도취돼 환호성을 지르고 있던 퍼트냄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는 바로 파라마운트사의 간부 데이비드 픽커였다. <벅시 말론>을 보고 완전히 반한 픽커는 퍼트냄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거 정말 끝내주는 영화군요! 혹시 아는 사람 중에 알란 파커처럼 재능 있는 신인감독이 또 없나요?” ‘뭔가’를 직감한 퍼트냄은 그 자리에서 리들리 스콧을 추천했고, 이에 픽커는 “그 사람을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퍼트냄은 즉각 스콧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이곳(칸)으로 튀어오시오!!”라고 외쳤고, 비행기를 타고 급히 프랑스 땅을 밟은 스콧은 쉴 겨를도 없이 퍼트냄 및 픽커와의 만남을 가졌다. 세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결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픽커는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영화의 제작비로 1백만 불을 대 주기로 결정했다.

 

<결투자들>의 이야기는 주로 ‘겨울’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진다. 사실 이것은 스콧이 영화를 찍은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콧은 파라마운트가 제작비 지원을 하기로 결정한 뒤 불과 얼마 뒤에 사전 제작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곧장 촬영에 돌입했는데, 당시는 겨울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스튜디오는 “아니, 곧 살인적인 추위가 엄습할 텐데, 이럴 때 영화를 꼭 찍어야겠느냐?”라며 기겁했지만, 스콧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만일 봄까지 기다리다가는 영화의 제작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결투자들>의 촬영은 1976년 9월에 시작해 크리스마스 무렵에 마무리됐다. 1백만 불이라는 제작비가 말해주듯, 이 영화는 소규모의 시대극이었다. 정말로 재미있는 점은, 영화에 캐스팅된 이들의 면모가 1백만 달러라는 (쥐꼬리만 한) 제작비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다(?)는 것이다. 우선 영화의 주연인 두 명의 ‘결투자들’은 키스 캐러딘과 하비 케이틀이 각각 맡았고, 이 외에도 에드워드 폭스, 피터 포슬스웨이트 등 영화 팬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배우들이 캐스팅 명단에 포함돼 있다(심지어 명배우인 알버트 피니까지도 스콧을 위해 찬조 출연해줬다). 그러나 스콧의 재능이 정말로 빛난 부분은 - 이런 쟁쟁한 인물들을 한 데 끌어 모았다는 게 아니라 - ‘영화의 스케일’이었다.

 

아마도 <결투자들>을 보신 분이라면, 영화의 제작비가 1백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고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영상의 ‘땟깔’로 보나(이 영화는 - 그야말로 - 한 장면 한 장면이 ‘걸작 풍경화, 인물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막힌 영상미를 자랑한다),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스케일로 보나 이 영화는 1백만 달러짜리 ‘싸구려 영화’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순전히 스콧의 영상감각이 빚어낸 기적의 결과물이다. 스콧은 수없이 많은 광고를 찍으며 익힌 영상감각만으로, 영화의 ‘체감 스케일’을 실제보다 세 배 이상 확장하고 영상에 ‘고품격 시대극에 어울리는 퀄리티’를 부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예컨대, 그는 몇 안 되는 영화의 엑스트라(이들 대부분은 ‘점심 식사’만을 출연료로 제공받았다)들을 교묘하게 화면에 배치해 이들이 ‘대규모 군대’인 것처럼 보이게 했으며 자금 부족으로 조명 시설을 쓸 수 없게 되자 흐린 날씨와 자연광만을 이용해 ‘필터를 낀 듯한 몽환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리들리 스콧은 스탠리 큐브릭의 열렬한 추종자다. 그는 큐브릭의 <배리 린든>의 스타일을 상당부분 참조하여 <결투자들>의 영상을 만들어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저예산 영화 <결투자들>은 파라마운트의 간부들을 크게 놀라게 했고(당시 파라마운트의 사장이었던 마이클 아이즈너 역시 이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1977년 칸 영화제에도 출품되어 전년도의 <벅시 말론>을 능가하는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며 만장일치로 최우수 감독 데뷔작 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칸 영화제 현장에서 - 전년도에 데이비드 픽커가 <벅시 말론>을 보고 그랬듯 - <결투자들>을 보고 완전히 ‘맛이 간’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제작자인 고든 캐롤과 데이비드 가일러였다. 당시 ‘우주 괴물’을 소재로 한 영화의 제작을 추진하던 그들은 도무지 메가폰을 맡길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결투자들>의 눈부신 ‘땟깔’은 한 줄기 희망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그들은 스콧에게 ‘그 우주 괴물 영화’의 감독직을 정식으로 의뢰했고, 영화의 각본을 본 스콧은 즉각 이를 수락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영화다.

 


리들리 스콧의 할리우드 진출작 <에이리언>

 

<에이리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굳이 글쓴이가 이 자리에서 자세히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에이리언>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버금가는 두툼한 서사시 한 권이 나온다 -_-;) <블레이드 러너>에 관한 글을 쓰면서 - ‘곁가지’에 해당하는 - <에이리언>에 관한 모든 것을 토해낸다는 것은 지면, 아니 용량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부디 이 부분을 생략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다만, 글쓴이는 <에이리언>에 관련된 내용 중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 <블레이드 러너>를 이해하기 위해 -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몇 개 골라서 여기에 나열하고자 한다.

 

1) <에이리언>을 제작하기 전, 스콧은 친구인 아이버 파웰(그는 협력 프로듀서로 <결투자들>의 제작에 참여했고, 후에 <에이리언>과 <블레이드 러너>의 제작에도 참여하게 된다)로부터 진귀한 프랑스 만화잡지를 하나 소개받게 된다. 바로 [메탈 위르랑] - 우리에게는 영어 제목인 [헤비 메탈]로 더 잘 알려진 - 이었다.


1974년에 창간된 잡지 [메탈 위르랑]([해비 메탈])

 

스콧은 바로 이 잡지를 통해 SF 장르와 ‘본격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이 잡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맙소사!”라는 외마디의 비명을 내질렀다. 거기에 실려 있는 그림은 이전에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진귀하고 강렬한 동시에 ‘섹시한’ 것이었다. 스콧은 이 잡지를 통해 장 지로(‘뫼비우스’)의 열렬한 팬이 됐고, <에이리언> 제작 시에는 아예 그를 컨셉 아티스트로 영입하여 노스트로모 승무원들의 우주복을 디자인하도록 하기도 했다. 장 지로의 그림은 <블레이드 러너>의 비주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 한편, 스콧은 <에이리언>의 메가폰을 잡기 직전에 또 한 차례 ‘SF 장르’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1977년 여름에 스콧은 업무차 할리우드를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데이비드 퍼트냄은 “‘꽤 괜찮은’ 영화 한 편이 나왔다는데, 같이 보러갑시다!”라고 제안했다. 그들이 그 날 만스 차이니즈 시어터에서 본 영화는 바로 이것이었다.

 

 

스콧은 <스타워즈>를 본 뒤 큰 쇼크를 먹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혁신적이며, 섬세하고, 대담한 영화였다. 나는 3일 동안 연달아서 그 영화를 반복관람 했는데,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나는 그 영화가 영화사에 있어서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스콧은 특히 조지 루카스가 ‘허무맹랑한 동화를 가공하여 리얼하게 만든’ 노하우에 주목했다(<스타워즈>는 흔히 SF 장르로 언급되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판타지 장르’에 더 가깝다. 보다 정확히는, 이 영화는 하이 판타지물을 극단적으로 왜곡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스콧은 이런 영화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그는 <스타워즈>와 (자신이 존경하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결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SF 장르의 미래를 엿보았다. 게다가 <스타워즈>는 스콧이 (당시 제작을 추진하고 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제작을 과감히 접고 ‘다른 영화’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스콧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스타워즈>를 본 뒤 나는 ‘조지 루카스라는 젊은이는 이런 기막힌 영화를 만들었는데, 나는 지금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니... 정신이 나간 게야! 아마도 나는 지금처럼 해서는 - <스타워즈>처럼 - 구름 같은 관객은 절대 모을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그는 ‘팔자에 없던’ SF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게 된다.

 

리들리 스콧은 “<스타워즈>야 말로 영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표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에게 영화란 ‘관객이 두 시간 반 동안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술과 같은 도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3) 그러나 당시 스콧에게 SF는 결코 친숙한 장르가 아니었다. 그는 ‘리얼리즘 경향’의 영화들을 주로 보고 자란 인물이며, <에이리언>의 제작에 착수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에 영향을 준 SF 영화라면 <지구가 정지한 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워즈> 정도가 고작이었다(거꾸로 생각하면, 이것은 그가 만들 SF 영화가 ‘리얼리즘 색채’가 짙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에이리언>을 연출함에 있어 스콧의 고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다: <에이리언>은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SF-공포영화’다. 그런데 스콧은 이전에 공포영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콧은 70년대 후반 이후 한창 화제가 되고 있던 ‘어떤 싸구려 공포영화’를 보며 관객을 ‘오한에 떨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스콧이 참조한 영화는 바로 이 작품이다.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이 영화에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다. 리들리 스콧이 이 작품을 접한 것은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공포영화를 찾고 있을 때) <에이리언>의 각본가인 댄 오배논의 권유 덕분이었다. 스콧은 20세기 폭스 사의 시사실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그는 자신이 시사실에서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일부러 스튜디오의 간부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혹시라도 간부들이 ‘그가 초저예산 쌈마이 공포영화를 참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몹시 불안해 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은 <에이리언>의 백 분의 1도 안 되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본 뒤 스콧은 크게 경악했는데, 그가 특히 인상 깊게 본 것은 ‘고어 신’을 거의 넣지 않고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공포감을 창출하는 후퍼의 기교였다. 영화팬들은 흔히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을 ‘극도로 잔인한 영화’로 기억하고 있는데, 사실 이 영화에는 고어 신이 매우 드물다(놀랍게도 후퍼는 최초에 PG 등급을 목표로 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몸서리 칠 정도로 끔찍한 영화’로 기억하는 것은 (관객이) 스스로 ‘핏빛’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유도한 후퍼의 지능적 연출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언뜻 보기에 비논리적이고 투박하기 짝이 없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연출 방식은 사실은 놀랍도록 지능적인 것이었던 셈이다. 이런 기괴한 특질로 인해 이 영화를 수입한 나라의 등급 심사위원들은 생각지도 않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이 영화를 적절히 편집한 후 개봉하려 했으나, 자를만한 명목이 있는 잔혹신이 드문 데다 핏빛 상상을 부추기는 장면을 모두 잘랐다가는 영화의 내용을 알 수 없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어 결국 영화의 상영 자체를 금지시켜야 했다. 또, 프랑스에서는 이 영화가 두 차례나 상영 금지 처분을 당했는데,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라 "대중의 폭력 본능을 자극한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스콧은 바로 이런 연출 방식을 <에이리언>에 그대로 응용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닮지 않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과 <에이리언>의 공포를 자아내는 방식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많은 관객들은 지금까지도 <에이리언>을 ‘(자신이 본) 가장 끔찍한 SF 영화’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에이리언>에는 - 케인의 배를 뚫고 새끼 에이리언(체스트버스터)이 나오는 신을 제외한다면 - 고어 신이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이 영화를 ‘잔인한 SF 영화’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콧의 연출이 얼마나 지능적이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이 개봉한 후 쏟아진 평론가들의 평 중 ‘피와 창자로 관객을 자극하는 영화’라는 평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평은 그의 연출이 성공적이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리언>은 그때까지 나온 가장 리얼한 SF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곤 했다. 하지만 정작 스콧은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 <에이리언>은 지나치게 ‘동화 같은’ 영화였다는 것이다. 그가 (역시 SF 장르인) 다음 작품에서 ‘관객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현실적인 미래 비전을 구현해낸 것 - 그래서 관객의 외면을 받은 것 - 은 바로 이런 그의 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에이리언>의 흥행/비평 양면에서의 대성공으로 인해 스콧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표적 1호로 급부상하게 된다. 바야흐로, <결투자들> 때의 할리우드의 반응에 다소 실망했던 스콧에게 ‘드디어’ (자신의) 야망을 제대로 펼칠 때가 온 것이다(<결투자들>은 비록 작품성 면에서 대단한 극찬을 받은 바 있지만, 파라마운트는 이 영화를 ‘예술 영화’로 취급하여 정작 미국 내에서는 극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되도록 배급한 바 있다. 스콧은 이에 크게 실망하여 “<결투자들>은 결코 ‘예술 영화’가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웨스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혜성과 같이 나타난 ‘SF 장르의 실력자’ - 비록 스콧은 그때까지도 자신이 SF 장르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어쨌든 ‘외부의’ 평가가 그랬다는 말이다 - 에게 ‘열렬한 러브 콜’을 보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한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였다. 당시 로렌티스가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던 작품은 이것이었다.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 [사구 Dune]

 

사실 [사구]의 영화판의 메가폰을 ‘잡을 뻔한’ 인물은 리들리 스콧이 처음은 아니었다. 1970년대 초에는 ‘혹성 탈출’ 시리즈로 유명한 제작자 아서 P. 제이콥스가 [사구]의 판권을 구입하여 영화화를 시도했는데, 이 때 감독으로 내정된 인물은 바로 거장 데이비드 린이었다. 린은 최초에 각본가 로버트 볼트(<아라비아 로렌스>, <닥터 지바고>)와 함께 호흡을 맞출 계획이었는데, 이 때 책정된 제작비는 무려 1천 5백만 달러였다(1970년대 초만 해도 1천 5백만 달러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었다. 말하자면, [사구]는 이미 태생부터 ‘대형 프로젝트’로 출발한 셈이다). 그러나 1973년에 판권 보유자 제이콥스가 갑자기 심장 마비로 사망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백지화됐다.

 

데이비드 린에 이어 1970년대 중반에 [사구] 영화판의 감독을 맡을 뻔한 인물은 유명한 컬트영화 감독 알레한드로 호도롭스키(<엘 토포>, <홀리 마운틴>)였다. 호도롭스키는 장 지로(그는 영화 제작을 위해 3천 여 장의 그림과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HR 기거, 댄 오배논(오배논은 각본가가 아닌 ‘특수효과맨’으로 초빙됐다), 살바도르 달리(그는 패디샤 황제 샤담 4세 역으로 특별출연할 예정이었다), 핑크 플로이드(영화의 배경음악 작곡) 등 많은 인재들을 끌어 모아 열정적으로 영화화를 추진했으나, 이 프로젝트 역시 중간에 무산되고 말았다. [사구]의 영화화 판권은 1976년에 디노 드 로렌티스에게 넘어갔고, 로렌티스는 1979년 중반에 스콧에게 <사구>의 감독직을 정식으로 맡겼다(스콧은 <에이리언>에 이어 또 한 편의 SF 영화의 감독을 맡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사구>가 비주얼 상 <에이리언>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 ‘공포영화’에 가까웠던 <에이리언>과는 달리 <사구>는 <스타워즈>에 가까운 판타지형 SF물이었다 - 기꺼이 감독직을 수락했다).

 

스콧은 루돌프 월리처(<관계의 종말>)를 각본가로 고용하고 (<에이리언>에서 활약한 바 있는) HR 기거를 컨셉 아티스트로 고용해 영화의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때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스콧의 형 프랭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스콧은 (당시의 정신 상태로는) ‘완성에 수년이 걸릴 것이 뻔한’ 대형 프로젝트인 <사구>의 감독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한동안 RSA의 운영에 매달리기로 했다.



리들리 스콧이 중도하차한 후, <사구>의 메가폰은 데이비드 린치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화광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다. 알레한드로 호도롭스키는 린치의 <사구>가 실패작(?)이 된 이유를 이 한 마디로 설명했다. “디노 드 로렌티스와 함께 작업한 모든 훌륭한 감독들은 자신의 최고 졸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팬들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린치의 <사구>가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 된 것은 ‘로렌티스의 횡포’ 때문은 아니었다. 린치는 그 이유가 “(자신이) 로렌티스와 지나칠 정도로 친해졌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풍문과는 달리, 린치는 로렌티스와 우호적 관계를 끝까지 유지했다). 

 

오지랖 넓은 제작자답게, 로렌티스는 영화의 제작과정 전반에 깊이 관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린치는 무의식적으로 ‘못 말리는’ 자신의 엽기 비전과 로렌티스의 진부한 그것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즉, 제작이 진행될수록 린치는 자신의 비전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구>의 실패는 그에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교훈을 안겨줬다. 린치가 2년 후 걸작 <블루 벨벳>을 통해 자신의 세계로 복귀하고, 이후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구>의 실패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사구>의 감독직을 그만둔 후, 스콧은 다시 정서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는 혈육을 잃은 아픔을 잊기 위해 무언가에 몰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스콧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문뜩 떠오른 것은 바로 햄튼 팬처의 <블레이드 러너> 각본(당시의 제목은 <위험한 나날들>)이었다. 스콧은 이미 1979년에 마이클 딜리로부터 팬처의 각본을 전달받아 읽어본 바 있으나, 당시에는 영화의 감독직을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딜리에게 연락해 각본의 최신 수정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그것을 읽어보고는 영화의 감독직을 맡기로 했다. 

 

스콧은 이렇게 해서 극적으로 딜리 사단에 합류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였다. 스콧은 - 엄청난 양의 (지루한) 사전 준비 과정이 필요했던 <사구>와는 달리 - <블레이드 러너>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촬영에 돌입할 수 있는 영화라고 판단한 것이다(그는 ‘즉각 촬영을 시작할 수 있는’ 영화야 말로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할 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감독을 맡기로 결정한 뒤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그는 ‘여전히’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블레이드 러너>가 최초의 기대 -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약’ - 와는 달리 그에게 또 다른 상처/악몽을 안겨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결정적 징후였다.


‘불타는 블레이드 러너의 연대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2008. 3. 13 | 김정대(adoniel21@gmail.com)

 

※ 주의 : 본 리뷰 컨텐츠의 저작권은 필자와 DVDPRIME에 있습니다. 리뷰 중 모든 자료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각 영화사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94
Comments
2008-03-13 11:17:55

앗 일등? 잘 읽겠습니다!

2008-03-13 11:22:54

아싸,2등?

2008-03-13 11:23:59

오호,3등! 기다린 보람이 있군요!!

2008-03-13 11:25:11

대문의 링크가 잘못 되었던데... 오옷. 백준오님 빼면 4등이네...

2008-03-13 11:33:53

선추천! 후감상!

2008-03-13 11:34:19

언제 정발되는 겁니까?!?! 갑자기 입에서 욕이랑 환호가 동시에 터지는...ㅠㅠ

2008-03-13 11:41:42

볼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김정대님 글을 화보집으로 만들어서 블루레이나 dvd에 부록으로 끼워 팔면 판매량이 배가 될 것 같습니다만..^^

2008-03-13 11:52:25

다 읽지 않고 리플다는 일은 지양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유혹을 참지 못하겠군요. 띄엄띄엄 보면서도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

2008-03-13 11:57:25

드디어 T^T

2008-03-13 12:03:21

허억!!! 이 얼마나 기다리던 글입니까? 선추천 후 감상입니다! ^^

2008-03-13 12:03:57

히힛!!! 추천???

2008-03-13 12:30:08

멋진 잘 읽었습니다.

2008-03-13 13:01:34

기존 DVD(플라스틱 가방 포함) 소장 중인데 블루레이에는 영상 및 음향은 물론이고 스페셜피쳐도 확실히 구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나저나 총알을 엄청 많이 준비해야겠네요. 김정대님의 좋은 글 매번 읽으면 읽을수록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3-13 13:05:17

대단한 글입니다.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2008-03-13 13:20:39

BDP는 없지만 나오면 바로 지를겁니다..^^;

2008-03-13 13:24:58

와...엄청난 양이네요.. 물론... 다 읽었습니다ㅋㅋㅋ

2008-03-13 13:44:51

문뜩이 아니라 문득입니다.^^ (ㅠ.ㅠ 진짜 감동적입니다. 이 엄청난, 엄청난 필력, 가혹한 블랙유머~)

2008-03-13 13:48:07

오! 멋집니다. 계속 기대할께요..^^

2008-03-13 13:48:55

ㅠㅠ 후덜덜한 글입니다 .정말 대단 합니다 . 엄청난 글 잘 읽었습니다 .

2008-03-13 13:54:51

정발이 언제나 되나요?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2008-03-13 14:13:47

와~ 그저 감탄밖에...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전기를 준비하는 작가, 기자 같아요^^

2008-03-13 14:22:36

드디어 고대하던 장대한 글이 올라왔군요.^^ 선추천 후감상 들어갑니다.

2008-03-13 14:30:34

블레이드 런너 사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2008-03-13 14:37:23

근데... 미국에서 출시된 블루레이에더 한국어 자막이 있나요? 아마존 정보로는 없던데... 혹시 미국꺼 구입하신분 정보 부탁합니다...

2008-03-13 14:47:52

DP에서만 읽을 수 있는 고품격 콘텐츠입니다. 감동입니다 T_T 안그래도 궁금한 것이 많은 영화였는데 이런 멋진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2008-03-13 15:13:36

휴.....일단 중간까지만 ...참...방대한 양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2008-03-13 15:52:58

아 ~ 놔! 한창 바쁠때 이런 글을 올리시다니요. 눈치 꾸러기 먹으면서 슬금 슬금 읽어내려 갔습니다. 다 읽고 나니. 왜 세 편으로 나누시는 거야.... 라는 비명을 외치게 되는 군요. 쵝오~!

2008-03-13 15:54:43

오매불망에다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바로 그 리뷰군요~ 감동의 역작!! 최고의 글 입니다 ^^*

2008-03-13 16:07:37

역시 김정대님의 리뷰는 ㅎㄷㄷ...*^^* 정말 좋은 글 잘 봤습니다~*^^*

2008-03-13 16:12:45

일단 중간까지 읽고 쉬었다가 나중에... 이런 엄청난 글을 읽고 감사 댓글을 안단다면 키보드는 어디에 쓰겠습니까 ㅎㅎ 감사드립니다.

2008-03-13 16:17:47

너무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뜸들이지 마시고 다음편 얼릉 올려주세욧!

2008-03-13 16:21:54

나오면 바로 지름니다

2008-03-13 16:35:34

진짜 오래 기다렸습니다 리뷰... 리플 먼저 달고 천천히 감상하겠습니다

2008-03-13 16:46:45

정말 잘읽었습니다. 마치 영화제작의 역사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오타신고 - 신경쇄약->신경쇠약

2008-03-13 17:13:21

저런 방대한 스토리를 모두 알고 계신 리뷰어 김정대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것이였네요. 매우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리들리스콧 감독의 예전 영화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부도 기대하겠습니다. ^_^

2008-03-13 18:05:21

오!! 블레이드 러너

2008-03-13 18:26:29

정말 보물과도 같은 컨텐츠입니다! + +

2008-03-13 18:27:04

오옷... 그분의 글이 오셨군요. 잘 읽겠습니다.

2008-03-13 18:28:09

리뷰를 볼 때마다 전문작가가 아니신가 합니다. ^^

2008-03-13 18:53:56

읽으면서 '재밌는데, 되게 기네...' 그리곤 '앗, 여기서 끊으면 어떻게 해!'

2008-03-13 20:34:16

드디어! +_+

2008-03-13 21:21:53

L 올 것이 왔네요.^^

2008-03-13 22:11:21

정말 감동적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2008-03-14 05:49:05

어렸을때 우연히 블레이드러너를 비디오로 보게되었습니다.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고 배우가 누군지도 몰랐었죠 근데 정말 영화에 푹 빠져들어 봤었습니다. 그당시 정말 신기한 장면들과 스토리등.. 나중에야 이영화가 엄청난 명작으로 평가받는것을 알고 역시..했었었죠^^ 김정대님 글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편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2008-03-14 08:55:34

불타는... 을 보고 김정대님 리뷰일꺼라 예상했습니다만 이렇게 길 줄이야.. 게다가 '3부작'이라니, 앞으로 2회 분량이 더 남았단 말입니까! OTL

2008-03-14 10:00:34

중간에 과 이야기가 나올 때는 '크악! 그냥 얘기가 더 나오면 좋은데 왜!!'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군요. 아.. 글 너무 멋져요.

2008-03-14 11:09:07

조금 어색한 표현: 곧 건강에서 회복됐다고도 한다- 곧 '나쁜 건강에서 회복됐다고도 한다'가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아니면 '곧 건강을 회복했다고도 한다'. 이런 표현은 어떨까요..

2008-03-14 11:20:15

필립 케이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1. 블레이드 러너 (1982)-리들리 스캇 2. 토탈 리콜 (1990)- 폴 버호벤 3. 스크리머스 (1995)-크리스챤 두과이 4.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스티븐 스필버그 5. 임포스터 (2002)-게리 플레더 6. 페이첵 (2003)-오우삼 7. 스캐너 다클리 (2006)-리처드 링크레이터 8. 넥스트 (2007)-리 타마호리

2008-03-14 14:39:32

그저 추천 입니다^^

2008-03-14 15:34:26

후덜덜

2008-03-14 15:40:08

일단 선추천 후감상!!! 드디어 오셨군요~~

2008-03-14 15:54:25

일단 추천 하고 정독은 차근 차근...^^

2008-03-14 15:57:36

캬하하~~~ DVD를 안사고 참은 보람이 있군요. 혹시나 블루레이는 국내 정발이 안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물론 스페셜피쳐는 모두 한글 자막이 들어가겠지요? 아니라면 DVD와 BD 둘 다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ㅡㅡ; 그리고 불타는 연대기, 불타는 내 마음... 정말로 충실하고 멋진 리뷰입니다. (정말로 잘 된 리뷰 모아서 책 내면 좋겠습니다.)

2008-03-14 16:17:38

무슨 논문 읽는 기분이에요. 너무 감동했습니다...^^; 더불어 제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에일리언 편도....ㅋ

2008-03-14 16:51:47

국내판 블루레이는 서플에 한글 자막이 없습니다. 다만 북미판 블루레이판에 들어있는 서플 디스크 자체가 BD가 아닌 DVD를 매체로 쓰고 있기 때문에(즉 SD급 화질), 국내판의 경우 서플 디스크가 한글자막있는 정발판 DVD 디스크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불어 2DISC 버전이 발매될 듯 합니다.

2008-03-14 17:07:37

돈은 없고 살것은 많은 그런 시기에 태어난것이 후회 스럽군요..^^ 훌륭한 리뷰입니다...

2008-03-14 19:29:16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다 찾으셨대요? 그냥 읽기에 너무나도 미안스럽네요..^^

2008-03-15 13:12:40

다음편을 주세요~~^^)/ 우와 엄청난 양입니다.. 너무 너무 잼있게 읽었습니다. 글재주없는 저로써는 굉장히 부러운 필력이십니다...^^)b

2008-03-15 19:56:26

정말 멋진글입니다..+_+ 혹시 나중에 DP특집으로 올라온 글들을 책으로 내실생각없으신지요..꼭 소장하고 싶습니다..ㅜㅡ

2008-03-15 21:56:07

도대체 이 많은 내용들을 어떻게 조사를 하셨는지...... 영어로 번역해서 올리면 대박날것 같습니다.

2008-03-16 14:01:08

김정대님의 공력은 일반인의 내공으로는 도저히 헤아릴길이 없군요. 나머지 시리즈도 정말 기대됩니다.

2008-03-17 00:55:38

후아~~ 정신 없이 읽어 내려 갔습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2008-03-17 01:29:12

허걱... 이 영화에 대해선 왠만큼은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뭐.. 비교불가네요^^

2008-03-17 11:09:27

‘3류 장르’로 냉대를 받고 있던 SF 장르의 전문작가에서 벗어나 메인스트림 작가의 대열에 벗어나기를 오랫동안 갈구했으나-이게 뭔 뜻인가요? 저만 이해가 안되는 건가요?

2008-03-17 11:43:12

빨리 정발판 블루레이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무조건 필구아이템~!!!!!

2008-03-17 15:51:11

우왕~ 역시.. 너무 잘보았습니다..^^ 감사!

2008-03-18 00:01:24

말도 안 됩니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멋진 글을.. 눈물 주룩주룩 흘리며 읽었습니다. 당분간 또 김정대님 칼럼 기다리며 매일 디피를 방문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을 써주세요!! ^-^;

2008-03-18 02:55:19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내용의 글 감사합니다.

2008-03-18 14:49:29

결정적인 순간에 절단 신공이...^^ 정말 잘 읽었습니다. 영화보다 더 재밌네요. ^^

2008-03-19 03:45:15

전부다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군요^^

2008-03-20 21:23:44

김정대님 잘봤습니다.

2008-03-21 13:17:24

잘봤습니다.

2008-03-22 10:10:01

이거 2편 3편 언제 업데이트 되는 건가요. 일주일에 한편씩 한 달 연재로 계획 한게 아니신지요. ㅠ.ㅠ 4월 1일 입대인대, 그 전에 3편 까지는 가능하리라 싶었는데, 2편이라도 보고가면 감지덕지같습니다. ㅠ.ㅠ

2008-03-22 17:05:37

to fly님: 본문 그대로, 필립 K. 딕은 과거에 '3류 장르'로 냉대받던 SF 장르의 전문작가에서 벗어나 메인스트림(주류) 장르 작가가 되어 보다 폭넓은 '인정'을 받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성공하지는 못하고 후대의 기록에 SF 작가로 남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후에 그의 SF 작품들은 높은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요.

2008-03-22 17:07:49

to 검정빨강하얀님: 다음에 이어질 글은 '불타는 블레이드 러너 연대기' 2편이 아니고 블루레이 판 리뷰입니다. 연대기 2편은 블루레이 리뷰글이 등록된 뒤에 이어질 예정입니다.

2008-03-22 17:15:01

제가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이 연재글에만 매달릴 수 있다면 보다 빠른 업데이트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죄송스럽게도) 저도 해야 할 다른 일이 많기 때문에 빠른 기간 내에 기계처럼 이 연재글만을 찍어 낼 수가 없습니다 ㅠ.ㅠ

2008-03-22 17:16:59

분량이 상당한 연재글인만큼 이 점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현재 계획으로는, 연재글 2편의 분량도 엄청날 예정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글을 업데이트하도록 노력하겠지만(블루레이 판의 리뷰는 다음주에 등록될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연재글이 늦어지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댓글로 격려해주신 분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

2008-03-22 21:14:29

넵~! 저에 투정에도 이리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시는군요. *^^* 모쪼록 좋은 글 멋진 글 부탁드립니다.

2008-03-26 01:26:56

이번에도 역시... 김정대 님의 글을 읽기 전에는 머그컵에 커피 한 잔을 따라놓고 심호흡을 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야 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2008-04-02 23:40:15

정말 쵝오입니다. ^0^ 너무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정대님의 영화에 대한 박식함에 늘 놀라움을 금할 수 없네요. 어디에 이런 이야기 주머니를 가지고 계신거죠? 다음 이야기 또 기대하겠습니다.

2008-04-09 22:38:15

너무 너무 잘봤습니다.

2008-06-15 13:43:30

잘읽고 갑니다.

2009-02-23 14:20:31

다음글이 정말 기다려지네요~ 힘내세요~

2009-10-29 19:26:10

북미정발 구했다!

2009-11-10 16:34:32

이만한 글이 세편이라는 건가요.. T.T 읽다가 지쳐 쓰러지겠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내용이네요. 다음 편도 기대하겠습니다.

2010-05-11 23:44:05

잘 읽었습니다~

2010-09-13 17:02:25

좀 짱인듯

2010-11-06 20:57:17

2편은 언제 나올까요 ㅠㅜ

2010-11-17 18:56:29

정대님. 2편 부탁드립니다. 목이 늘어졌어요.^^

2010-12-20 12:57:26

2편 기다리면서.... 잘읽었습니다 ㅎㅎㅎ

2011-01-23 23:53:18

글 참 잘쓰시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데... 2편을 기다립니다...

2011-04-11 14:40:47

데커드가 Human인지 Replicant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리들리스콧 감독이 직접 Replicant라고 언급했다는군요. 그 이유로 마지막 장면에 종이로 접은 유니콘이 나오는데, 이는 데커드의 꿈속에 유니콘 이미지와 동일하며, 따라서 데커드의 기억속에 인위적으로 심은 이미지라는 것입니다. 아래 NY Times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www.nytimes.com/2007/09/30/movies/30kapl.html

2013-11-19 18:59:37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정말 디테일한 리뷰는 보는 저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2017-10-02 11:53:37

뭔가 더 이어질 것처럼 글이 끝나서 아쉽네요.
지금봐도 그다지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영화를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쓰기
디피 소식 - 최다 추천
디피 소식 - 최다 코멘트
디피 소식 - 최다 조회
4
게시물이 없습니다.
5
게시물이 없습니다.
6
게시물이 없습니다.
7
게시물이 없습니다.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