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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영화 리뷰 | 깊은 밤 갑자기 (1981, Suddenly In Dark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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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11-03 10:35:14
<깊은 밤 갑자기>는 여름 시즌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2만 8,178명이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사의 시간 속에서 어떤 영화가 견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빙점 81>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시네필은 아무도 없다. 야속하게도 고영남의 영화 중에서 오직 <깊은 밤 갑자기>만이 다시 이야기되고 있는 중이다.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21세기 한국영화 앞에, 갑자기 돌아온 깊은 밤


주의_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영화를 보신 다음에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읽으신 분들이 아뿔싸, 하는 것은 제 책임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경고했습니다. - 정성일

아무래도 이야기를 우회해야 할 것 같다. <깊은 밤 갑자기>는 잊혀진 한국영화의 고전, 이나 저주받은 걸작, 같은 표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화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깊은 밤 갑자기>는 한국영화사에서 (김기영의 괴작인)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에 이어 두 번째 컬트영화의 발명일 것이다.

 

 

컬트영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다시 컬트영화란 무엇인가, 를 정의내리는 것은 따분한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차라리 컬트영화의 화법을 빌려 컬트영화의 진정한 정의는 정의되지 않는다, 는 것이 유일한 정의일 것이다. 그럼에도 약간 용기를 내어 미국 ‘미드나이트 무비(Midnight Movies)’의 전도사인 조나단 로젠봄과 짐 호버만의 표현을 빌리면 컬트영화는 ‘낮에 상영되는’ 공식적인 영화가 끝난 다음 어둠이 내리고 심야가 오면 시작되는 또 다른 방, 또 다른 목소리의 영화들을 반기는 또 다른 관객들의 공동체의 문화이며 대안적 역사라고 부연 설명했다. 나는 여기서 컬트영화가 시작된 해가 미국이 베트남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으로?) 전쟁에서 패배하고 철수한 1975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다. 


물론 <록키 호러 픽쳐 쇼>가 최초의 컬트영화는 아니다. 이미 1972년 미국 심야극장에서는 <살아난 시체들의 밤>과 (갑자기 부활한)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가 매일 밤 상영되고 있었다. B급 영화들과 ‘공식적’ 비평으로부터 ‘후진’ SF영화들이 차례로 다시 상영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걸 지켜보면서 ‘악취미의’, ‘퇴폐적인’, 혹은 ‘퇴행적인’, ‘반항적인’ ‘유치한’, ‘역겨운’, ‘짓궂은’, ‘으스대는’, 무정부주의적인‘ 시네필 문화의 도래라고 말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는 당신의 취향의 문제이다. 핵심은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영화들을 자발적으로 밤마다 누군가 와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차례로 명단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다음에 등장하는 장황한 명단을 늘어놓는 대신 <깊은 밤 갑자기>에로 돌아오고 싶다. 

 

(유감스럽다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한국에서는 심야 영화 문화가 통행금지가 사라진 1981년을 전후로 하여 잠시 동안 유행한 다음 사라졌다. 게다가 거의 동시에 비디오 숍들이 나타나면서 구태여 심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갈 필요가 없었다. 물론 반복해서 대여해서 보는 영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컬트영화의 공동체는 잠재적인 ‘소문’으로만 남아있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깊은 밤 갑자기>는 1981년 7월 17일에 개봉하였고 그때 이 영화를 지지한 비평가도 없었고 박스 오피스에서도 실패하였다. 심지어 고영남 자신도 <깊은 밤 갑자기>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영화사에서 (해방 이후) 가장 많은 영화를 찍은 고영남은 (이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대표작이 없는 ‘마스터’이다. 그는 105편의 영화를 연출했지만, 한국영화사가 기억하는 영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2013년 한국영상자료원은 개원 40주년 행사 중의 하나로 62명의 전문선정위원들에게 한국영화사상 100편을 선정 앙케트를 진행했다. 고영남의 영화를 추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이 결과를 가지고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나는 한국영화사의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인 검열과 끊임없이 예측할 수 없게 부침이 심한 산업의 속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과정 안에서 1964년에 <잃어버린 태양>으로 29살에 데뷔하여 2000년 <그림일기>까지 끈질기게 영화를 찍은 생명력에 감탄한다. 


왜냐하면, 이 과정 속에서 위대한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 그리고 이만희가 모두 그들의 절정기에 거의 연출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견딘 다른 이름은 김수용과 임권택이 거의 유일하다. 고영남 자신은 스스로의 대표작은 항상 1978년에 연출한 <소나기>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깊은 밤 갑자기>를 연출한 1981년에 고영남 감독이 공을 들인 영화는 <빙점 81>이었을 것이다. <빙점 81>은 (서울 관객) 28만 7,927명이 들어 그해 흥행 3위에 올랐다. 그러나 <깊은 밤 갑자기>는 여름 시즌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2만 8,178명이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사의 시간 속에서 어떤 영화가 견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빙점 81>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시네필은 아무도 없다. 야속하게도 고영남의 영화 중에서 오직 <깊은 밤 갑자기>만이 다시 이야기되고 있는 중이다. 


봉준호가 발견한 컬트영화, 하지만 왜?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갑자기 생긴 것일까? 한국영화에서 컬트영화의 이상한 특징 중의 하나는 목록의 선정이 익명의 시네필 대신 (약간 유머를 섞어 말하자면 아마도 시네필 ‘大將(대장)’들이라고 할) 시네필 감독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장 중의 대장’이라고 할 박찬욱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박찬욱이 첫 번째로 꺼내든 카드는 김기영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이다. 나는 이 영화가 조금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개봉했던 1979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스카라극장에서 보고 나왔을 때도 그러했고 다시 본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산업 구조 안에서 거의 불가능한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건 말 그대로 불가능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한국’ 시네필이라면 통과제의 같은 영화가 되었다. 그런 다음 봉준호가 꺼내든 영화가 <깊은 밤 갑자기>이다. 


여기에는 약간 복잡한 맥락의 설명이 필요하다. 1981년에 한국영화사에서 공포영화라는 장르는 거의 사망하였다. 이 장르가 다시 부활하기까지는 1998년 <여고괴담>을 기다려야 했다.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긴 시간 동안 독재정치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동원한 폭력과 강요당한 침묵의 한국 근대사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대중들의 피곤함에 있을 것이다. 현실은 충분히 공포스러웠고 그걸 다시 극장에 가서 경험하는 것은 끔찍한 반복이었을 것이다. <깊은 밤 갑자기>는 아무도 공포영화를 원하지 않는 시기에 만들어진 공포영화이다. 


한 해 전 광주로부터 흉흉한 소문이 전해졌고 그걸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체들, 원귀들. 애도가 금지된 죽음. 목숨을 건 정치의 계절이 시작하고 있었다. <깊은 밤 갑자기>는 1981년 한국영화 안에서 마치 안에 있는 바깥처럼 보였다. 한 가지 더 개인적인 추론.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봉준호를 매혹시켰을까? <깊은 밤 갑자기>를 보고 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김기영의 1961년의 걸작 <하녀>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 단란한 가정에 낯선 젊은 여자가 가정부로 들어오고 그녀는 이 집의 가장과 관계를 맺은 다음 ‘사모님’의 자리를 탐내기 시작한다. 봉준호는 언제나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 열 편을 고를 때 <하녀>의 제목을 잊는 법이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이 이야기는 거듭해서 변주되었고 심지어 21세기 한국영화조차 이 이야기를 거듭 리메이크하였다. 임상수는 말 그대로 리메이크를 해서 <하녀>를 찍었고, 박찬욱은 자기 방식으로 변주하여 <아가씨>를 찍었다. 낯선 젊은 여자라는 타자.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하는 팜므파탈. 이때 그녀들은 무엇을 위협하는가? 부르주아들의 견고하고 안전한 스위트 홈. 그들은 절대로 무너질 리 없다고 굳게 믿는 토대 위에 세워진 집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가 붕괴되지 않는 한 절대로 부서질 수 없는 법칙 위에 세워진 집. 그러나 그 믿음의 약점은 어디에 있는가. 잉여가치가 미처 셈하지 못하는 것은 리비도가 날뛰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고영남, 당신은 누구십니까? 


<깊은 밤 갑자기>는 <하녀>의 1981년 버전이다. 물론 고영남과 시나리오 작가 윤삼육은 김기영의 <하녀>를 보았을 것이다. 그 세대들은 모두 그 영화를 보았다. 이때 고영남과 윤삼육의 ‘하녀’가 다른 버전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낯선 젊은 여자가 이 스위트 홈을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 여자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시달리기 시작하는 아내의 망상증, 불안, 편집증, 히스테리, 그리고 신경증을 거쳐 도착증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는 결말이다. 

 

 

그냥 단 한 마디로 욕망과 환상이 진흙탕처럼 뒤범벅된 상태. 만일 당신이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즉시 내게 반문할 것이다. 그 증세들이 일시에 나타나는 것이 가능한가요? 물론 그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순되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깊은 밤 갑자기>가 정신분석에 의지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 증세의 개념들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고영남과 윤삼육은 이야기가 필요할 때마다 증세를 ‘되는대로’ 가져다 쓴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를 모순되게 만든다기보다는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거의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의 기괴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 영화의 좀 더 이상한 점을 설명하고 싶다. <깊은 밤 갑자기>를 (컬트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괴작’으로 만든 것은, 혹은 아무리 다가가도 잘 설명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이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 것은, 이 영화가 분명히 한 치도 의심할 수 없는 공포영화인데도 동시에 코믹하다는 것이다. 고영남은 우리를 웃길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연출에서 실패한 것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고영남이 공포영화의 대가는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용민이나 박윤교의 영화와 비교해보라) 서로 다른 장르를 척척 만든 마스터답게 여기서도 한국 공포영화의 장치들을 능숙하게 엮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웃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말을 냉소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깊은 밤 갑자기>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목각인형이다. 그 목각인형은 어떻게 보아도, 누가 보아도, 언제 보아도, 이 인형의 형상에서 어떤 두려움, 어떤 불길함, 어떤 역겨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건 나만 그렇게 여기는 게 아니라 영화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영화 속의 어린 딸은 낯선 젊은 여자 미옥이 가져온 보따리 속에서 찾아낸 목각인형을 자기 인형으로 삼겠다고 떼를 쓰면서 싸우기까지 한다. 

 

 

어린 딸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 이걸 보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유일하게 영화 속의 아내뿐이다. 그때 그녀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그렇다면 그 환상은 무엇을 방어하기 위해 생산된 것인가? 그때 그 환상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하여 (거짓) 제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환상은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잠깐만. 즐긴다고요? 그렇다. 모든 환상은 자기를 방어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부터 설명하는 것은 이 전략에 대한 기술이다. 


실내극으로서의 공포영화, 경제학의 폐소 공포증 


<깊은 밤 갑자기>는 공포영화이지만 동시에 (형식적으로) 실내극이다. 거의 모든 장면들은 실내에서 벌어지고 잠시 동안 바깥에 나가긴 하지만 재빨리 다시 실내로 돌아온다. 물론 영화 경제학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깊은 밤 갑자기>는 분명히 매우 빠른 시간에 제한된 회차(回次)로 촬영되었을 것이며 (나는 이 영화의 현장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실용적 관점에서 세트 안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저택의 외곽을 찍을 때는 물론 야외에서 미리 섭외한 장소에서 촬영했지만 실내로 들어오면 재빨리 세트로 돌아왔다. 

 

 

고영남의 연출은 노련해서 집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들을 모두 생략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 공간 이동에 대해서 거의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물론 세트에서 촬영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완전히 환상에 사로잡힌 아내가 집 안을 거의 모두 때려 부수는데 그걸 저택에서 촬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 한 채를 모두 새로 지어야 한다.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도 <샤이닝>에서의 호텔 촬영을 미니어처와 섞어서 촬영했다) 하지만 이걸 고영남은 하나의 무드로 만든다. 거의 집요하리만큼 실내로 자석처럼 이끌려 돌아오는 진행은 마치 이 저택 전체를 폐소 공포증에 사로잡힌 공간처럼 만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부르주아 저택의 단조로운 미장센이 아내의 권태로운 심정의 풍경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비채집을 하는 남편이 가져온 이상한 목각인형


영화의 첫 장면은 어두컴컴하고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동굴 속에서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은) 남편은 나비 채집을 하러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여기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동굴 안의 무언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를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재빨리 이야기는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자신의 학술적인 직업에 충실하고 오랜 출장을 맞이하는 아내는 더없이 다정하다. 그리고 어린 딸은 문제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어리다. 다만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연구에 (과도하게) 충실한 남편이 오늘 저녁에 학술 동료들과 함께 채집한 나비 슬라이드를 보면서 발표를 하겠다고 하자 아내는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이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각적으로 안다. 

 

 

하지만 여기서 균열을 감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부 사이에서 이보다 더 다정한 반응이 달리 무엇이겠는가. 내가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나비 슬라이드를 보는 장면에 있다. 학회 동료들과 모여앉아 슬라이드를 보는 거실 구석 기둥에 기대서 아내는 ‘훔쳐보듯이’ 지켜본다. 이때 나비 슬라이드 사이에 (현상소에서의 실수로) 목각인형 슬라이드가 끼어있다. 이때 이 쇼트의 진행이 몹시 수상쩍다. 당신은 이 나비 슬라이드를 본 아내가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나비 슬라이드를 보다가 어떤 현기증을 느끼자 마치 그 기분에 반응하듯이 목각인형 슬라이드가 ‘출현’한다. 그러니까 아내가 목각인형을 불러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등장한다. 


어떤 데자뷔,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날 밤이다. 잠들기 전 모두가 떠난 다음 집안 단속을 위해 일층 거실로 내려온 아내는 누가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한밤중에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다음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미옥이 머물게 될 방이 저 혼자 스르르 열린다. 그 방문을 닫고 돌아선 다음 아내는 창문 바깥에 서 있는 목각인형을 보게 된다. 침입하는 대신 마치 초대받지 않으면 집안으로 들어설 수 없다는 듯이 바깥에 서 있는 목각인형. 이 목각인형이 외부로부터 온 손님이라면 이 집 안에서 부부를 지켜보는 것만 같은 미장센이 있다. 

 

 

서로 마주 보는 것만 같은 두 마리의 뱀(으로 이루어진 조형물). 두 마리의 뱀은 그 자세를 취하면서 하나의 둥근 원을 만드는 데 종종 카메라는 그 ‘구멍을 통해서’ 훔쳐보듯이 장면을 바라본다. 이 형상이 기괴해서라도 우리의 눈을 이끌지만, 더 이상한 것은 틀림없이 이 조형물은 이 집 안에 단 하나일 텐데 거실에 있던 그 두 마리의 뱀이 부부의 침실에서 그날 밤 사랑을 나누려고 할 때 어느 틈엔가 이 방에 올라와 ‘구멍’을 만들고 그곳을 통하여 카메라는 은밀한 부부의 사생활을 바라본다. 구체적인 상징. 구멍 난 부부. 구멍 난 부르주아의 사생활, 여기에 구태여 뱀이 정신분석에서 차지하는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왜 아내는 욕실에 들어가서 미옥의 몸을 ‘터치’하는 것일까


나비 채집을 하고 돌아오는 남편은 낯선 젊은 여자 미옥을 데리고 돌아온다. 이제부터 균열이 일어날 시간이다. 이때 미옥을 맞이하는 아내의 환대는 우리를 당황시킨다. 오늘 처음 본 손님. 미옥은 어린 애가 아니다. 그런데 아내는 거의 홀린 듯이 욕실에 들어서서 샤워하는 미옥에게 피부가 아름답다, 는 찬사를 몇 차례이고 늘어놓으면서 그녀의 속살을 만지며 비누칠을 한다. 필요 이상으로 긴 씬. 

 

 

<깊은 밤 갑자기>는 레즈비언 퀴어 영화가 아니다. 여기서 아내의 대사를 우리는 음미하듯이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아내가 매혹된 것은 미옥의 외모가 아니라 그녀의 속살이다. 젊은 피부. 그걸 만지고 싶어 한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그녀는 미옥의 피부를 탐낸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욕망이다. 그걸 왜 탐내는가. 그건 젊은 피부로 갈아입고 남편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싶은 안타까운 질투이다. 새로 나타난 이 젊은 여자는 그걸 갖고 있다. 뱀은 계절이 끝나면 자신의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탈피한다. 아마도 두 마리의 뱀이 거기 미장센으로 아내를 감싸듯 끈질기게 함정처럼 보이는 구멍으로 쳐다보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날부터 아내는 나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남편이 한밤중에 자기 몰래 미옥의 방에 들어가는 꿈. 이때 꿈은 소원성취라는 프로이트의 조언을 놓치면 안 된다. 만일 아내가 미옥의 껍질을 입을 수만 있다면 남편은 밤마다 자발적으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자기를 찾아올 것이다. 이 환상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아내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제 이미지뿐만 아니라 미옥의 방문 곁에 다가가면 남편과 미옥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환청이 들려오기 시작할 때 아내의 환상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그렇게 되면서 아내는 이제부터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여자가 된다. 현실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환상을 경유해서 보는 여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아내에게 언제나 친절한 상담을 해주던 친구도, 그리고 남편도 정신감정을 받아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아내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사방 주변에서 자신의 의심을 증명할 증거를 필사적으로 찾는다. 증거란 무엇인가. 숨겨진 진실의 파편. 그때 이 일부분은 반대로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아내는 점점 더 환상의 서사에 의지해서 적극적이 되어가고 마침내 미옥을 (위장) 살해하기에 이른다. 


마지막 장면의 세 가지 메시지, 혹은 주인의 자리를 둘러싼 내기 


그래서 마침내 아내는 소원을 이룬 것일까. 사태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여기서 까다로운 셈을 치러야 한다. 아내의 진정한 목표는 미옥이 되는 것이지 미옥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미옥의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미옥의 자리를 빈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환상의 서사 안에서 빈자리를 만드는 것은 현실에서 공백을 만드는 것과 다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죽었을 때 단지 그 자리가 비어있기는커녕 정반대로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니, 때로 그 자리는 넘쳐나서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이 죽어서 따라 죽거나 사랑하는 자식이 죽어서 따라 죽은 부모의 이야기. 미옥을 죽였을 때 반대로 그 자리는 이제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미옥으로 충만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번 죽은 미옥을 다시 죽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셈에 능숙하지 않은 남편은 아내를 집에 혼자 남겨두고 딸은 할머니의 집에 맡기고 자신은 나비 채집을 위해 떠난다. 게다가 혼자 남은 아내가 맞이하는 그날 밤은 몹시 거센 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제 미옥이 찾아올 모든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여기서부터가 <깊은 밤 갑자기>의 클라이맥스이다. 

 

 

영화적으로만 말하면 이 저택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오직 아내를 연기하는 김영애의 연기와 그녀를 쫓아가는 카메라의 동선, 이리저리 이동하는 시선의 편집, 요동치는 조명, 어지러운 웃음소리와 비명소리의 이중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 그리고 아무 데나 나타나는 목각인형(과 미옥)만으로 15분을 영화는 견딘다. 이때 자기 자신과 추적을 벌이는 이 카오스는 맨 마지막 순간 미옥(의 맨살)과 처음 마주쳤던 욕실에서 끝난다. 아내는 미옥을 올라탄 다음 사정없이 칼로 내리 찌르기 시작한다. 그때 음악은 이제까지와 달리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이 장면은 어떻게 다가가도 아내와 미옥이 벌이는 섹스 장면처럼 보인다. 이때 아내가 들고 있는 날카로운 칼은 그녀가 미처 가질 수 없는 남근에 다름 아니다. 아내는 미옥이 될 수 없을 때 환상의 마지막 순간 남편이 되어 미옥을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 나비 채집에서 돌아온 남편은 온 집안이 쑥밭이 된 걸 보고 깜짝 놀라 아내를 찾는다. 아내는 침실의 침대 앞에서 목각인형 분장을 하고 마치 그 침대에는 아무도 다가올 수 없다는 듯이 넋을 잃은 채 앉아있다. 그 자세는 세 가지 메시지이다. 첫 번째는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이다. 그것은 이 침대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첫 번째 메시지에 기대고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환상이 남편을 독점하는 아내의 불만족으로 진행되어 온 것처럼 보였지만 그 내면에 진정으로 작동되고 있었던 욕망은 마지막 순간 환상의 서사를 전복적으로 뒤집어 그녀 자신이 남편의 자리에 차지하여 완성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세 번째 메시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왜 이런 환상이 생산된 것일까. 이 욕망이 진정 목표로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자신을 이제까지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둬 둔 이 집을 미옥을 알리바이로 내세워 폭파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이 부르주아의 안락한 삶을 버린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탈주한 환상에서 그러므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이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인의 오로지 광기 속에서만 허락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깊은 밤 갑자기>가 마지막 순간 도약한 지점은 <하녀>보다 더 멀리 나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어쩌면 아마, 봉준호는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DP 2017.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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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11-03 11:45:28

 잘읽었습니다.  구매하면 더 꼼꼼히 봐야겠습니다.

2017-11-03 12:05:55

이미 여러번 반복해서 본 영화지만 정성일 평론가의 리뷰를 읽으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디피 시리즈 [깊은밤 갑자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17-11-03 12:20:16

80년대 영화 맞나요? 화질이 정말 좋네요..

2017-11-26 21:25:37

블루레이로 해외에서 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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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12:48:06

 미옥이 트와이스 사나를 너무 닮아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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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13:23:52

저도 그렇지만 볼때마다 사나와 정말 닮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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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11-03 13:26:15

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섞여서 언급되는데 박찬욱 감독을 봉준호 감독이라고 잘못언급한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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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15:11:54

박찬욱이 컬트화 시킨 한국 고전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살인 나비를 쫒는 여자,

봉준호가 컬트화 시킨 게 깊은 밤 갑자기라는 내용입니다. 

2017-11-03 15:24:23

제가 오독했네요;; 감사합니다

2017-11-03 15:55:35

정성일 평론가가 워낙 글을 헷갈리게 써놔서;;

2017-11-03 13:23:34

화질이 정말 좋네요~

11/9 예약하고 얼른 받아보고 싶습니다.

2017-11-03 13:45:00

저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습니다.

여름방학때 봤는데 이렇게 수작인 줄 모르고 그냥 여름에 공포영화 한편 본다는 가벼운 맘으로 봤었죠.

2017-11-03 16:00:24

괴작이라는 평가에 저도 동의합니다.

상업화되고, 정형화된 현재의 영화판에서는 나오기 힘든 영화라 평가가 후한 면도 있습니다. 

2017-11-03 17:15:25

디피에서 정성일 평론가의 글을 실은 건 처음 아닌가요? 대단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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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11-03 23:35:08
 

 

깊은 밤 갑자가기 봉준호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다릅니다.

 

19887월의 밤 MBC. 깊은밤 갑자기란 영화를 처음으로 접했던 나 혹은 우리들은 설중매에 나왔던 이기선이 보여주는 야릇함에 으흐흐 하다 공포에 충격 받았고, 시간이 지난 후 PC통신으로 인터넷으로 예전에 본 무서운 영화에 대해 말을 나누다 이 영화를 되새기게 되고 오래된 비디오 대여점을 뒤졌으며 이 영화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0253632

이곳에도 이런 글이 올라온 적 있고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033802

2001년에도 이런 글이 올라온 적 있으며

 

지금은 사라진 하이텔 게시판들 이외에도 소년 소녀 시절 깊은밤 갑자기를 보고 충격 받은 경혐을 말하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19887월 어느 밤에 이 영화를 본 후 두고 두고 이 영화를 잊지 못한 사람들의 기억 공유가 깊은밤 갑자기가 다시 생명력을 얻어간 과정이고, 영화 제목을 잊은 이들도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 저거 정말 무서웠다라고 되새기게 만든 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퍼진 과정은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보다는 여곡성이 깊은밤 갑자기와 비슷하겠죠.

 

깊은밤 갑자기가 봉준호 감독이 꺼내든 시네필 감독들에 의해서 주도된 컬트영화란 말은 19887월 밤에 충격 받은 사람들의 저런 기억 공유 과정을 모르는 이의 무지에서 나온 말일 뿐입니다.


목각인형은 어떻게 보아도, 누가 보아도, 언제 보아도, 이 인형의 형상에서 어떤 두려움, 어떤 불길함, 어떤 역겨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란 말은 2000년대 와서 저 영화를 본 사람의 감상이겠죠. 887월 밤에 본 브라운관 속의 목각인형은 충분히 두려움과 불김함의 대상이었으니까요.

 


 


2017-11-04 02:03:19

동의합니다. 리뷰가 잘 나가다가 컬트가 된
결정적인 배경을 봉준호랑 연결시켜서 황당했어요. 왜 봉준호를 끌어들이는건지. 봉준호 이전부터 영화팬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지지였고 봉준호도 그 중 한명이었을 뿐이겠죠. 봉준호와 무관하게 이 작품을 오래전부터 지지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그걸 봉준호로 퉁치다니 불쾌하네요. 이 작품이 컬트가 된 배경에 봉준호가 존재한다는 얘기는 이번 정성일 리뷰에서 처음 봅니다.

2017-11-04 16:46:17

저도 이 얘기를 하려고 했네요.

제가 이 영화를 제 나름의 명작 반열에 올린 이유는 당시에 직접 티비에서 보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를 입에 올린 것 조차 지금 이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2017-11-04 17:56:16

저 인형은 지금봐도 무서워 보이는데요 엠비씨에서 처음 방영해줬을 당시 다음날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던 기억이있습니다 저도 이 글로 처음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영화라는걸 알았네요 이미 피씨통신 시절에도 유명한 영화 였을텐데요

2017-11-05 20:23:36

저 목각인형은 지금 보기에도 으스스하던데요...영화 속에서 XX졌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XX오게 되는 인형이 너무 무섭더군요..

근데 봉준호는 뜬금없이 나오는지요....저는 봉준호가 이영화를 언급했다는 사실도 처음듣는군요...

2017-11-10 22:01:47

2003년도에 dp에 썼던 제 글을 환기 시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봉준호와 "깊은밤 갑자기"는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오히려 이번 정성일님 글에서 처음 들었어요 

 

말씀하신대로 88년도 여름에 mbc에서  납량특집으로 한국영화특선 납량시리즈중 한편으로 방영되어서 화제가 되엇구요,그리고 그 당시 방영한 여곡성도 마찬가지 엿죠

 

다만,여곡성은 개봉당시인 85년부터 무서운 영화라고 소문이 났었던 기억이 나고 저역시 대지극장을 지나다가   무서운 스틸사진들을 보고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Updated at 2017-11-10 23:20:35

맞아요. 별의별 다양한 종류의 동서양 공포영화를 봤지만 이 영화만큼 뇌리에 박힌 영화는 없었어요. 어린 기억에 기괴하고 알 수 없는 불쾌함 갑갑함과 성적 욕망이 넘실대는 분위기에 압도당했었죠. 절대 잊혀지지 않는 미스테리한 분위기.

2017-11-04 10:24:45

어쨌든 한번이라도 봤으면  절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것 같은 몇몇장면이 이 영화의 생명력인거 같습니다. 마치 영화 링에서 티비에서 튀어나오는 귀신의 모습이 꾸준히 회자되는 것처럼 그 장면 장면이 계속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주는것이죠

2017-11-06 02:26:17

이거지난번 수요조사하던데 아직 안 나왔나요

2017-11-09 16:43:36

해설을 너무 쉽게 친절하게 잘 해주셨네요. 운영자님. 블루레이 나오면 시네마테크에 하나 기증해 주세요.

2017-11-13 18:36:50

흠, 정말 이 영화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을까, 그냥 공포영화 같은디.

 

2017-11-23 13:00:05

소장 가치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2017-12-20 12:43:55

지금에서는 평범한 영화로 볼 수 있겠지만  7~80년 시대에 나왔다는 자체가 센세이션한거죠

2019-03-06 04:53:48

손에꼽는 공포영화 입니다. 타이틀을 손에 쥔건 크나큰 행운입니다.
강추합니다

2019-12-28 18:41:04

인생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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