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못웃기면맞는다
ID/PW 찾기 회원가입
블루레이 리뷰 | 장군의 아들 3부작 박스세트
 
1
19
  11689
Updated at 2019-01-16 13:37:54

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한국식 다찌마리의 세련된 변주, 장군의 아들

이 글은 한국영화 천만 관객 돌파나 손익분기점 몇 백 만명을 운운하는 그런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영화를 ‘방화’라고 부르던 시대의 이야기이며, 손익분기점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대, CGV나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단성사나 피카디리, 대한극장, 스카라 같은 단관 개봉관들이 익숙했던 시대의 기록에 개인적인 기억을 버무려 낸 이야기다. - 글쓴이

때는 1980년대 후반, 당시 한국 극장가는 특이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이 재개봉관을 거치며 홍콩느와르의 붐을 일으킨 것이다. 아직 영화를 관람할 수 없었던 나이의 중학생들이나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생들도 학예회나 운동회 날이 되면 옷장에서 꺼낸 아버지의 바바리 코트와 썬글라스를 걸치고 입에는 성냥개비를 문 채 한 손에는 비비탄으로 무장된(!) 쌍권총을 들고 한 껏 폼을 잡으며 영등위의 등급판정 쯤은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패기를 보여주곤 했다.


이것은 좀 기묘한 경험이기도 했는데, 당시 총기가 사용되는 영화라 하면, 주로 헐리우드를 위시한 서양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와 똑같은 동양인이 멋지구리 하게 방아쇠를 당기며 강호의 의리를 부르짖는 일련의 홍콩느와르 작품들은 이질적이긴 했으나 총기액션을 동양적인 정서로 흡수한 방식에 있어서 성공을 거둔 셈이다. 


△ 당시 홍콩느와르의 인기를 짐작케 하는 기사 - 경향신문 1991. 2.21

 

이처럼 총질하는 홍콩영화가 극장가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한 분위기에서 한국 영화계는 ‘한국적인 액션영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TV를 통해 방영된 [무풍지대]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하는 듯 보였다. 전후의 한국 근대사에서 양지와 음지를 넘나들었던 주먹들의 이야기는 이미 과거 한국영화계의 유행이기도 했던 소위 ‘다찌마리’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편 임권택 감독은 6,70년대의 소모적인 작품활동을 끝내고 ‘인본’을 테마로 내세운 한국적인 예술영화에 대한 실험을 계속 시도하면서 작가주의 감독으로서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었다. 다만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흥행성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연출가로서 알려진 그에게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연을 맺은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가 어떤 기획 작품에 대한 제안을 했다.


‘인생극장’이라는 제목으로 5년여 간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발간된 백파 홍성유 작가의 소설 ‘장군의 아들’을 영화화 하는 계획이었다. 원작은 종로 바닥의 주먹으로 시작해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김두한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를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한 [장군의 아들]은 명백히 상업성을 추구하는 프로젝트였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임권택 감독은 강한 불쾌감을 느꼈다. 이미 1960년대부터 1년에 몇 편씩 영화를 출품하는 다작 활동을 했던 그로선 (주: [장군의 아들]을 촬영할 당시 이미 그의 필모에 등재된 영화는 90편에 육박했다) ‘싸구려 오락영화’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태원 대표의 설득은 집요했다. 다음 작품을 위한 휴식으로 생각하자는 (응?) 이대표의 말에 마지못해 연출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결과론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임권택 감독은 [장군의 아들]에 이상적인 연출가였다. 80년대 들어 작가주의로 전향하기 이전 출품된 그의 엄청난 필모그래피 가운데는 앞서 언급한 다찌마리 영화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임권택 감독이 인정하듯 그에게 영화를 가르쳐 준 인물은 다름아닌 액션영화의 거목, 정창화 감독이었다. 따라서 ‘후지다’고 여겨졌던 한국식 액션영화의 기틀을 누군가가 새로 정립해야만 했던 그 시점에서의 적임자는 다름아닌 임권택 감독이었던 셈이다.


△ 임권택 감독은 자신이 데뷔한 1962년부터 1972년까지를 ‘오락영화 남발기’라고 지칭했다. 이 당시 그는 흥행이 될 만한 작품이라면 마구잡이로 찍어냈는데, 이 때 제작된 작품수만 50여편에 이른다. 훗날 회상하길 ‘(이 때의) 필름을 찾아 불살라 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자평하는 한 편, ‘이 때 영화적인 기법을 익힌 시기’로 평가하기도 했다. 사진은 1970년대 초에 유행했던 ‘명동액션물’ 중 하나인 [명동삼국지]의 신문광고.


메가폰을 잡은 임권택 감독은 당시로선 굉장히 획기적인 시도를 단행한다. 그것은 주연을 포함한 출연진 전부를 신인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시도만으로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더 파격적인 점은 김두환을 연기할 배우로 20대의 청년을 물색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김두한의 이미지는 주로 [실록 김두한]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에서 단골 배우로 등장했던 이대근으로 대표되는 30대의 건장한 호걸형이었는데, [장군의 아들]의 캐스팅 기조를 통해 확실한 세대교체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 임감독이 원했던 김두한의 이미지는 곱상하고 우수에 젖은 느낌의 청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서울예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상민은 1575: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어려 보이는 용모에 수줍어하는 그를 임 감독이 눈 여겨 본 이유는 남다른 눈빛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무명의 신인으로 타이틀 롤을 거머쥔 그는 29회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하는 등 단숨에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다. (사진은 동아일보 1989.08.22)


이 작품에 참여한 스텝들은 지금 보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음을 알 수 있는데, 각색 작업에 참여했던 도올 김용옥을 비롯, 정일성 촬영감독, 신병하 음악감독, 연출부에 김영빈, 임상수 감독 등 이름만 들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이름들이다. 


사실 [장군의 아들] 제작소식은 연예계의 화제가 되긴 했지만 충무로에는 이보다 더 주목 받는 영화들이 있었다. 1990년은 이례적으로 제작비를 대거 투입한 한국 영화들이 많은 해였는데, 비행기 폭파씬에 역대급 특수효과를 사용했다며 홍보에 나선 신상옥 감독의 복귀작 [마유미]와 안성기, 최진실, 최민수, 이혜영 등 당대 스타군단이 집결한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은 의심할 나위 없이 그 해 여름시장의 최강자가 될 전망이었다. 

마침내 1990년 6월 9일, 종로의 단성사에서 [장군의 아들]이 개봉되었다. 일주일 먼저 개봉된 [남부군]이 순탄한 출발을 보였지만 [장군의 아들]은 개봉 첫 날부터 흥행에 가속도를 더했다. 한 번 터지면 아주 뽕을 뽑기로 악명 높은 단성사의 명성에 걸맞게 [장군의 아들]은 추석시즌을 넘어 12월이 되어서야 68만명의 관객수를 채우고 간판을 내리게 되는데, 이로서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가 세웠던 방화 최고 흥행기록은 (공식 집계 58만명) [장군의 아들]에 의해 바뀌게 된다. 

 

 

 

△ [장군의 아들]을 보다 보면, 낯익은 얼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박상민과 신현준, 김승우, 이일재 등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은 물론이고 황정민의 단역 시절 모습도 마주하게 된다. 원래 이태원 태표는 김두한 역에 박중훈과 최재성 중 한 명을, 하야시 역에는 정보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임권택 감독은 전원 신인으로 캐스팅 하기로 결심했다. 임권택 감독의 회상에 따르면 그 배우들의 경험이 보잘 것 없어서 너무 연기를 못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배우들을 대거 발굴하는 계기가 되었고 관객들에게는 참신함을 선사하면서 이 선택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액션영화를 표방한 만큼 [장군의 아들]의 서사는 김두한과 상대방의 대결을 통해 단계화된 전개를 밟는다. 일제강점기 시절, 8세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후 우미관의 선전원으로 일하게 된 (독립군 투사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망치와 쌍칼, 구마적 등 종로 일대를 대표했던 주먹들을 제압하고 결국엔 일본인 하야시의 패거리들과 싸우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드는,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정서에 기대고 있다. 


이 작품을 냉소적인 입장에서 보면, 한-일 폭력배들의 이권다툼을 마치 구국의 항일운동처럼 민족적 헤게모니 투쟁으로 미화한 점이라든가 역사왜곡과 같은 영화의 이야기에 불편한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대사와 예산이 한정된 영화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기술적 한계도 뚜렷하다. 

 

 

그러나 본 작품이 추구했던 상업영화의 측면에서 보면, 그 완성도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종로 거리를 세트로 재현하여 사실감 넘치는 공간의 미장센을 보여주었고, 특히 ‘한국적인 액션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실하고 정확히 계산된 답변을 제시했다. 그간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액션씬을 숏컷으로 대충 눈속임하는 것이 아니라 롱테이크와 하이 앵글로 대결구도를 잡아내어 긴장감을 살려낸 방식은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김영모 무술감독이 빚어낸 미학적 성취다. 

 

 

△ 영화 [짝패] 공개 당시 정두홍 무술감독은 "아직도 '한국식 액션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이 그 답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며 극찬을 한 바 있다. 이어 그는 자신에게 있어 [장군의 아들]은 교과서적인 작품임을 고백했다. 정두홍은 [장군의 아들]을 통해 스턴트맨으로 데뷔했고, 그 이후 아류작 이었던 [시라소니]를 통해 무술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정두홍 무술감독의 앳된 모습은 1,2편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는 1편, 아래는 2편) 


코흘리개 아이들이 극장 담을 넘어 영화를 훔쳐 보던 시절, 변사가 등장해 애절한 음조로 무성영화의 대사를 대신하는 초기 한국 영화사에 대한 애정 어린 회고로 시작해 30년대 종로 바닥을 누비던 주먹들의 무용담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장군의 아들]은 그 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면서 방화는 외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동시개봉관을 드나들며 영등위의 관람등급판정을 무시했던 중학생들은 이번에도 그렇게 치기 어린 모험의 전리품처럼 얻은 ‘그 어떤 장면’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군의 아들 2

메가톤급 흥행 기록을 세운 [장군의 아들]의 성공으로 인해 속편의 제작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 되었다. 사실 속편의 기획은 1편을 제작할 당시부터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원래 임권택 감독의 예상으론 자신은 1편으로 물러나고, 속편에서는 연출부에 있던 김영빈 조감독을 입봉 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 밖의 흥행 폭발로 인해 제작사 측은 ‘흥행이 보장된’ 속편의 연출을 조감독에게 맡기는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임권택 감독의 연출력이 영화의 흥행과 완성도를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이번엔 ‘속편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지 마시라’는(응??) 이태원 대표의 설득으로 결국 그는 다시금 속편의 메가폰을 잡게 된다. 


△ 가끔은 김영빈 감독의 [장군의 아들 2]가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실제로 김영빈은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며 이미 ‘몸풀기’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사실과 관련에서는 감독과 제작자 모두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비록 대외적인 여건으로 감독 데뷔가 미뤄지긴 했지만 그가 만든 1995년작 [테러리스트]는 한국형 느와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뛰어난 미장센이 결합된 액션물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영화는 (김두한이 체포되는 것을 암시하면서 끝난) 전편에 이어 김두한이 출소한 이후의 상황을 다룬다. 이번엔 라이벌 김동회의 비중이 더 높아졌는데, 전편의 대립관계였던 김두한과 김동회 사이에 송채환이라는 여인이 등장해 은근한 삼각 멜로가 형성되면서 두 사람은 연적으로서 만난다. 


△ 2312:1의 경쟁률을 뚫고 새로운 히로인이 된 송채환(본명:권소연)은 청초한 매력을 뿜어내며 남성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필자 개인으로는 시리즈 중 가장 맘에 들었던 히로인이다.


임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편에 모두 담아낸 만큼 서사의 밀도가 옅어진 반면 액션과 멜로의 비중은 다소 높아졌다. 액션에 있어서도 변화를 주었는데, 1:1의 대결을 주로 다룬 전편과는 달리 속편에서는 집단 격투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애당초 속편의 준비를 김영빈 조감독이 홀로 전담했기에 의도치 않게 연출을 맡게 된 임권택 감독은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제작사 측에서는 이미 개봉일을 못박아 놓고 있던 터라 임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60년대에 찍었던 방식으로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사실 후시녹음에 들어가서도 대사를 계속 뜯어 고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이 정도의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임권택 감독이 '미완의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데 이력이 나 있는 연출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남성적인 선 굵은 서사에서 멜로로 어중간하게 옮겨간 탓에 1편보다는 대체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긴 하지만 의외로 2편을 더 좋아하는 팬들도 있다는 점으로 보아 오락영화 본연의 목적은 달성한 작품이다. 흥행 성적은 1편에 못 미쳤지만 여전히 그 해 한국영화부문 흥행 1위를 기록한 흥행작으로 남게 되었다.


장군의 아들 3

[장군의 아들] 이후 2년 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사이 영화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어느덧 홍콩느와르의 붐은 사라지고, [황비홍]을 기점으로 한 정통 무협물의 부흥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2년은 한국영화의 가능성에 눈을 뜬 대기업의 자본이 충무로에 유입되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 


 

한 편 임권택 감독은 [장군의 아들 2]를 끝내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개벽]을 내놓지만 뜻밖에도 실패를 경험한다. 그런 차에 [장군의 아들 3]의 연출은 그에게 딜레마에 안기기에 충분했다. 제작사는 임감독이 다시 맡아주길 원했으나 그는 애당초 2편을 감독할 의향도 없었던 터였다. 


아마 임권택 감독은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3부작을 완성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의무 같은 것이라 여겼을 지도 모른다. 그는 딱 하나의 조건을 달고 3편의 감독직을 수락한다. “내가 [장군의 아들]을 맡는 건 이 것으로 (진짜) 마지막. 이후 [태백산맥]을 통해 다시 작가주의 영화로 돌아간다”.



사실 성공한 3부작은 헐리우드 에서도 보기 드물다. 임권택 감독도 이러한 부담감을 의식했는지, “제작사가 추가로 후속편을 더 만드는 것은 자유지만 나로서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며 언론을 비롯한 공개적인 석상에서 분명한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3편은 홍성유의 원작에서 끌어다 쓸 이야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원래 홍성유의 원작은 김두한의 중년 이후 까지도 다루고 있지만 임권택 감독은 김두한의 청년기에서 영화를 끝맺으려 했다. 사실상 시나리오를 완전히 창작하는 수준으로 영화를 이끌어야 했고, 이렇게 매일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이 동시에 진행되는 충무로의 즉흥적인 제작 방식을 따른 거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초반 만주에서의 행적이 원작에서는 신마적의 이야기였던 것을 김두한으로 치환시킨 건 그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영화를 봐도 [장군의 아들 3]는 내친 김에 3편까지 한 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제작된 느낌이다. 만주에서의 방황을 거쳐 다시금 종로 바닥으로 돌아와 하야시와 마지막 일전을 치루는 영화의 내용처럼 이 작품은 1, 2편에서 쌓아 올린 서사를 넘어서지 못한 채 동어반복을 계속하다가 김두한과 하야시의 초라한 결전으로 끝을 맺는다. 


 

 

본 작품에서 눈에 띄는 건 새롭게 합류하게 된 오연수다. 신인 배우만을 캐스팅하던 기존 시리즈의 관행과는 달리 오연수는 이미 [춤추는 가얏고]와 [여명의 눈동자]를 통해 제법 알려진 배우였고 [아랫층 여자와 윗층 남자]로 스크린 데뷔까지 예약한 신성이었다. 그녀가 연기한 장은실 만큼은 청순과 요염함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로 어느덧 식상해져 버린 남자들의 세계에서도 유독 반짝거렸다. (오연수는 이 작품으로 제13회 청룡 영화상에서 신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서울 17만 관객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은 [장군의 아들 3]는 마치 예정된 수순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리즈의 퇴장을 알렸으나 이 이야기는 임권택 감독에게 있어 베드 엔딩으로 끝나지만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장군의 아들] 시리즈에 대한 미련이 제작사나 감독 모두에게서 사라진 결과, 뜻밖의 현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계획대로 차기작 [태백산맥]에 매진하려 했던 임권택 감독은 당시 정권의 특성상 부담일 수 밖에 없는 소재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었다. 결국 [태백산맥]을 좀 더 딜레이 시키는 대신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 받은 그는 이청준 작가의 연작 소설 ‘남도사람’ 1부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탄생한 저예산 영화 [서편제]는 한국영화 최초로 백만 관객 돌파의 쾌거와 동시에 청룡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을 모두 석권하는 역작이 되었다.


블루레이 메뉴 디자인

Disk 1

 

 


Disk 2

 

 


Disk 3

 

 


 

블루레이 퀄리티

이번에 출시되는 [장군의 아들] 3부작 블루레이는 네가티브 필름에서 4K 리마스터링을 거친 소스를 사용했다. 따라서 기존의 DVD를 소장한 사람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제작된 영화들도 제대로 된 마스터 필름이 없어 리마스터링이 요원한 현실에서 [장군의 아들] 블루레이의 화질은 최신작들의 기준점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순 없지만 현 시점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판본임엔 분명하다.


전반적으로 잡티와 필름 스크레치는 최대한 제거되었으며, 필름 그레인의 자글거림도 수용 가능한 범위다. 색감 역시 안정되어 있고 세트 디테일이 잘 살아나는 선명도를 지녔다. 제작 시기를 감안하면 상당히 훌륭한 화질이다. 


▼ 원본사이즈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Disk 1)

 

 

 

물론 단점도 존재하는데, 장면에 따라 화질 편차가 다소 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며, 특히 1편에서는 클로즈업 장면에서의 화질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구간이 몇 군데 눈에 띈다. 또한 화면 중앙에 긴 세로 줄 형태의 긴 스크레치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등 손상의 흔적들도 일부 담고 있다. 암부와 블랙 레벨의 계조는 아쉬운 편.

 

▼ 원본사이즈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Disk 2)

 

 


1년 간격으로 개봉된 작품들이지만 그 짧은 인터벌에도 불구하고 화질은 비교적 나중에 개봉된 2,3편이 더 우수하다. 특히 2편의 일부 구간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근사한 화질을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아무래도 흥행으로 인해 가장 혹사당한(?) 1편의 네가필름 상태가 가장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차이는 블루레이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 원본사이즈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Disk 3)

 

 


사운드는 DTS-HD Master Audio 2.0 스펙을 채용했다. 멀티채널이 아닌 점은 아쉽지만 원본을 최대한 살려낸 덕분에 후시녹음 성우들의 느끼한 음성부터 (후시녹음은 대게 동시녹음보다 대사 전달이 좀 더 좋은 편이다) 촌티 나는 타격음에 이르기까지 90년대 극장가에서 들을 수 있었던 느낌 그대로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은은하게 깔려있는 신병하 감독의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또 다른 별미다.


스페셜 피쳐

현재 국내 블루레이 시장 상황에서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지만 스페셜 피쳐는 이번 리마스터링 블루레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겠다. 기존 DVD 박스셋에 수록되어 있던 서플먼트를 고스란히 가져다 쓴 것 외에 추가적인 콘텐츠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DVD를 소장한 분들이 느끼셨듯이 [장군의 아들] 3부작에 수록된 음성 코멘터리는 지금 들어도 상당히 알차다.


먼저 본 블루레이의 첫 번째 디스크에는 임권택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의 음성 코멘터리 및 60만 돌파 기념 행사 영상, 그리고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다. 음성 코멘터리 에서는 ‘임권택 영화학’의 권위자(?)로 알려진 정성일 평론가가 한국 영화사에서 임권택 감독이 차지하고 있는 지분에 대해 짚어가면서 임권택 감독이 [장군의 아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한국 영화의 제작 방식에 대한 여러 가지 현장감 짙은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60만 돌파 기념 행사 영상’은 기념비적인 흥행기록 갱신에 대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자축행사 현장을 캠코더에 담은 자료다. 그야말로 ‘풍악을 울려라~’의 분위기.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와 종로3가역 앞의 전경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 온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임권택 감독과 김홍준 감독의 음성 코멘터리, 무술팀 시연 동영상, 그리고 예고편을 수록했다. 정성일 평론가의 코멘터리와는 약간 다르게 김홍준 감독의 코멘터리는 좀 더 영화 본편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실제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에서 직접 영화에 참여한 만큼 영화 속 장면에 담긴 의미와 촬영 비화를 잘 이끌어 내는데, 듣다 보면 꽤나 흥미진진하다.


‘무술팀 시연 동영상’은 말 그대로 영화의 무술팀 멤버들을 찍은 시연 영상이다. 캠코더 소스를 디지털로 변환한 것도 아니고 브라운관에서 재생 중인 영상을 카메라로 또 한 번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화질이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풋풋한 시절의 정두홍 감독을 비롯해 영화의 액션을 책임진 얼굴들을 볼 수 있는 희귀 영상.


 


세 번째 디스크 역시 임권택 감독과 김홍준 감독의 음성 코멘터리 및 예고편이 담겨 있다. 각 디스크에 담긴 예고편은 당시 영화 광고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본 편과는 또 다른 의미의 재미를 선사하는데, 오글거리는 자막은 단연 압권이다. 


 

 



총 평

[장군의 아들] 시리즈를 수 없이 돌려 본 입장으로서 새삼 본 작품이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거나 시대를 뛰어넘는 수작이라는 찬사를 보낼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흥행역사를 고쳐 쓴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임권택 감독의 필모그래피나 영화사에 있어서도 대단히 특이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성우들의 후시녹음과 세트 영화라는 고전적 트렌드를 따라간 구 시대의 작품임과 동시에 부족한 부분들을 노련한 경험과 영민한 판단력으로 극복한 세련된 영화이기도 하다. 


본 작품이 이뤄낸 상업적 성과 때문인지, 시간이 흘러서는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흥행작 정도로 취급 받고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 영화 속에 내제된 탐미적인 미장센에 대한 재평가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단순히 추억 보정이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은 아니란 얘기다. 


 

이번에 출시된 [장군의 아들] 3부작 블루레이는 기대 이상의 화질 개선을 통해 당대 최고의 히트작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열악한 보존 환경에서라도 성의를 다한다면 (비록 완벽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고전영화의 복원이라는 작업이 그리 요원한 일만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냥 잊혀지기에 아까운 한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영화를 복원해 출시했다는 점은 힘겨운 국내 부가판권 시장의 미래에 한 줄기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 [참고] 제작, 제공 : 태흥영화사, 이언픽처스

 

22
Comments
1
2019-01-16 02:12:02

 화질이 굉장히 좋군요.

1
2019-01-16 03:36:30

비디오시절 테잎 늘어지게 봤었던 장군의아들 시리즈...당시 국민학생이 보기엔 적합치 않다며 대여가 불가능 했었더랬죠 하지만 친구들이 구해다준 카피본으로 주말마다 어른들 없을때 보곤했는데..이젠 그런 가슴졸이며 눈치보던 풋풋함이 사라졌죠.
야동을 틀어놔도 별반응이 없슴돠~
하지만,고화질로 발매되는 이번 시리즈는
뭔가 가슴 두근거림이 있네요..기대됩니다

1
9
2019-01-16 05:28:13

출시사가 대체 어디인가요?

명색이 공식 리뷰인데, 어디 출시작인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장 기초적인 정보 정도는 기재해 주셨으면 합니다. 

1
2019-01-16 11:49:42

출시사 정보를 찾아보니까 아무데도 안나오더군요.

1
Updated at 2019-01-16 06:50:58

리뷰 잘 보았습니다.
언제, 누가 출시하는지 궁금하네요.
일반인은 아직 언제 출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리뷰에서는
마지막 단락에서 "이번에 출시된"이라는 과거형 표현을 쓰셨네요.

1
2019-01-16 08:33:07

장군의 아들 정말 너무 기다렸던 작품입니다. 저로서는 DVD도 겨우 구해서 가지고 있는데

DVD도 화질이 상당히 좋거던요...블루레이로 나오다니 너무 기쁩니다.

빨리 프리오더라도 진행했음 좋겠습니다.

1
1
Updated at 2019-01-16 11:39:01

리뷰 잘봤습니다.
추억으로 보는 한국영화네요. . . 이것도 구매는 하겠지만. . .
당시 방화가 격투 액션영화로 나오면 기대도 안했는데
거기다가 동네 양아치가 일제시대를 등에 업고 일본에 대항하는
듯하게 폼나게 만들어서 오글거리기는 했지만 감독이 나름 재미있게 만들었지요.
이제 깡패 미화 영화는 없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1
Updated at 2019-01-16 09:25:39

송채환과 오연수에 밀려 아무도 언급 안하는 방은희.. ^^

고딩때 어쩌다 보니 아버지랑 1편 보러 갔다가 중간에 당황하시던(...) 모습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1
2019-07-25 09:44:19

오연수는 목소리로만 난리였는데 방은희는 진짜 고등학생 관람가에서 훌렁훌렁..

VHS에서는 잘렸길래 당시 판매용 비디오CD를 구했었드랬죠.ㅎㅎ

1
2019-01-16 11:48:31

무풍지대 리마스터링해서 DVD로 나오면 좋을텐데 ㅠㅠ

장군의 아들이 성공한데는 1년전 방송되었던 무풍지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유지광-이정재가 주인공이지만 김두한도 조연으로 나오죠.

1
2019-01-16 13:41:04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밑에서 세번째 사진은 일대종사의 기루장면과 묘하게 겹치네요.

1
2019-01-16 16:06:45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는 확실히 대작입니다 ㅠ

1
2019-01-16 18:08:54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빨리 만나보고 싶네[요~

1
2019-01-16 20:44:19

화질이엄청 좋네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
2019-01-17 16:26:48

 와... 기대가 됩니다. 

1
2019-01-17 20:05:34

화질이 정말 놀라울 정도네요!

많은 분들이 기다리실 거 같은데 빨리 출시 일정이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1
2019-01-18 11:06:10

출시 된줄 알고 읽는 내내 이건 사야겠다 하면서

흥분상태로 스크롤 내렸는데 아직 출시 전이군요 ㅠ_ㅠ

1
2019-01-21 16:17:47

추억이 묻어나는 영화~

재밌게 봅니다~

1
2019-01-28 19:31:34

UHD TV로 볼 생각하니 설레네요. .

1
2019-03-03 12:44:43

화질 좋네요..개인적으로 테러리스트도 좀 나왔음..

그리고 장사익 뮤직 블루레이 제작했으면 이분 더 늙어지기전에...

1
1
2019-03-16 01:59:32

힘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이나 행사하고 이득을 취했던 깡패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훌륭했다고....

1
2019-04-02 15:54:34

잘 봤습니다^^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