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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자칭 객관주의자인 제가 고가 오디오를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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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5-14 10:03:53

오디오 분야에 있어 주관주의자(golden ears)들과 객관주의자(meter readers) 사이의 논쟁은 하루이틀 계속된 게 아닙니다. 음의 변화에 대한 청감상 차이 해석에 대해 엄격한 객관주의자들과는 달리, 주관주의자들은 다양한 범주로 나뉩니다. (당연하게도 각자의 주관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죠.) 이는 어떻게 보면 채식주의자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람은 우유나 계란을 먹기도 하고, 생선이나 닭고기까지 허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주관주의자들은 앰프들 간의 음색 차이는 인정하지만 케이블 차이는 인정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인터커넥트나 스피커 케이블은 인정하지만 파워케이블이나 디지털 케이블은 인정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케이블은 인정하지만 전원장치는 인정하지 않는 등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케이블 간의 음질 차이를 느낀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객관주의자라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전 스스로는 객관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오디오를 즐기는 제 지인 중에는 주관주의자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되 각자의 신념기반에 대한 공격은 자제합니다. (재미삼아 서로를 종종 갈구곤 합니다. "이런 막귀를 봤나", "네 귀는 박쥐냐?" 등등") 이미 남들이 다 얘기했던 내용을 반복할 필요도 없고 꼭 상대방을 계몽시키거나 개종시킬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 과학과 종교가 공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그렇다고 객관주의자 쪽의 의견도 모두 일치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쪽은 실용파라고 해서, 일반적 가정환경 내에서 (음질 차이가 뚜렷한 스피커를 제외하고) 굳이 고가의 기기를 살 필요가 있느냐라는 주장이죠. 그런데 저는 이러한 생각은 동의하지 않고, 어느 정도 고가(高價)의 오디오 기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실은 고가가 아니라 고품질(quality) 제품이죠,


모든 전자제품들은 각 개별 부품과 최종 완성품에 있어 소위 허용오차(tolerance)라는 게 존재합니다. 오디오 신호경로 상에 관여하는 저항, 커패시터, 인덕터들은 부품 그레이드에 따라 허용오차들이 다릅니다. 특히 저항이나 커패시터류들은 사용온도나 인가되는 전압에 따라 특성치가 변동한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애호가들이 비싼 부품들이 좋다는 이유로 주관주의자들은 당연히 부품의 음질 차이를 들겠지만, 객관주의자 입장에서도 허용오차와 내구성 때문에서라도 고급부품은 존재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개별 부품 자체의 음질적 차이는 몰라도 이들이 모여서 회로가 되었을 때는 (예를 들어 포노회로나 스피커 크로스오버 등) 충분히 가청범위 내의 오차를 발생하게 됩니다. 최종 완성품에 있어 이런 오차를 걸러내기 위해 검수과정을 거치지만, 염가제품들과 고가제품들 사이엔 여기에서 품질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게 다 시간과 비용이라 염가제품에선 상대적으로 허용오차에 대해선 관대해질 수밖에 없죠. 


실제로 우리가 각종 리뷰 측정치 분석에서 보면 스피커의 경우 좌우 주파수응답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한편, 리뷰어에게 제공되는 제품들은 대개는 한번 더 검수해서 타겟 측정치와 비교했을 때 최상의 특성을 내는 놈들을 보내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나마 리뷰어용 샘플의 측정치가 그나마 최상인 셈이고, 우리가 리뷰보고 구매한 제품의 특성은 그보다 훨씬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제가 서브로 사용하는 스피커는 아주 오래된 B&W의 매트릭스 805입니다. (참고로, 누가 신품 805 D4로 바꾸자고 해도 절대 안 바꿀 물건입니다.) B&W에서는 제품 검수를 할 때 허용치 내에 들어간 유닛과 크로스오버들 사이에서도 측정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인클로저 색깔로 구분했다고 합니다. 가장 플랫한 특성을 가진 제품은 (주로 스튜디오용으로 쓰일 걸로 예상해서) 블랙애쉬 인클로저, 부드러운 음색은 월넛 인클로저, 미드베이스가 살짝 강조된 제품들은 로즈우드 인클로저로 판매한 거죠.  


초고가의 하이엔드 제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살 능력도 없지만, 내가 지불한 금액이 내가 산 제품의 제작비보다는 그 회사 오너가 새로 구입한 요트비용에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개인적으론 다소 고가라도 퀄리티 있는 부품들로 잘 만들어진 물건들을 선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제품이나 주관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제품들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듯 같이 서로 즐겁게 같이 얘기할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굳이 서로 대립된 의견을 가지고 싸울 일이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결론은 없거든요. 이번 논쟁에서 내가 밀린다고 해도 내 지식이 모자라서, 내가 가진 자료가 빈약해서라고 생각하지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시판이 최근 너무 과열되는 것 같아 끄적여 봤습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도 가급적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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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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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23:00:39

저도 B&W의 매트릭스 805 한 20년 정도 사용했었지요.

요즘의 다이아몬드 트위터 제품보다 더 나은 스피커라고 생각합니다.

 

WR
1
2022-05-12 23:35:04

100% 동감합니다. B&W는 다이아몬드 트위터로 바뀌는 시점부터  플랫한 튜닝에서 스마일형(약한 U자형) 대역밸런스로 선회하며 소위 음만들기에 조미료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0kHz 근방을 부스트시킴으로써 자기네 비싼 트위터의 선명함을 강조하기 시작한 거죠. 해외 유저들도 B&W 제품의 고역이 세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
2022-05-12 23:44:53

동감합니다. 듣기 좋은 거 하고 별개로 청음해보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구입을 포기했었습니다. 하는 일 특성상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음… 잘 모르겠더라고요

1
2022-05-12 23:29:51

저는 매트릭스 801-3 블랙 쓰고 있습니다 다른 건 바꿔도 이건 어지간하면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센터도 매트릭스 센터로 구하려고 했는데 찾기 쉽지 않네요. 노틸러스 htm1 쓰는데 여전히 한 번 써보고 싶긴 합니다. 801-3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WR
2022-05-12 23:36:39

매트릭스 801이라... 부럽습니다. ㅠㅠ

1
2022-05-12 23:43:39

에구 작은 공간에 넣어놔서 사실 무리긴 했습니다. 그래도 룸튜닝을 최대한 해서 못 들을 정도의 소리는 아니라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 805소리도 궁금하긴 합니다. 좋은 스피커가 많지만 다른 스피커 생각 안나게 하는 스피커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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