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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일상]  레코드의 혁명 — 콤팩트디스크 (음악동아 1984年 4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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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5-21 21:39:03

레코드의 혁명 — 콤팩트디스크

 

 이름 그대로 견고하고 예쁘장하게 꾸며진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콤팩트디스크는 그 자체에 보호막이 씌워 있어 심한 먼지는 물론 보호막을 꿰뚫는 상처만 아니라면 보관하는 면적이나 방법 또한 혁신적이다.


 ‘사람의 새빨간 욕심이란 채우면 채울수록 밑바닥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강렬한 본능 때문이다. 이 야수 같은 새빨간 본능은 사람의 마음 어느 한편 귀퉁이에 몇 천 년 몇 만 년을 두고 길고 강하게 뿌리박혀 나왔다.’ 이는 박종화의 〈금삼(錦衫)의 피〉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온 천지간을 떠다니는 형체 없는 소리를 담아 되작이려는 오랜 꿈이 에디슨에 의해서 실현 된지도 1백년이 넘었다. 하지만 앞서의 선고(宣告)를 입증이라도 하듯 보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소리 속에 영혼마저 살라버리려는 어쩔 수 없는 욕심의 근성은 마침내 환상의 콤팩트디스크(CD)를 탄생시켰다.

 종래 LP 디스크의 절반도 안 되는 직경 12㎝의 작은 몸체도 그러하지만, 연주시간은 오히려 3배에 가깝고, 상처나 먼지 등의 외부 압력에도 강하며, 수명 또한 반영구적인 이 디스크는 정상적인 사람의 측정 한계를 넘어서리만큼 완벽하게 본디 소리를 재생한다.

 이 같은 조화는 소리의 흐름을 1초간에 4만 번도 넘게 잘게 쪼개어 약속된 부호로 기록한 뒤에, 이를 감쪽같이 재생하는 디지털 레코딩 수법이 기초가 되었다.

 따라서 연속된 하나의 골짜기를 이루며 소리를 담고, 이를 되풀이했던 레코드의 모습이 레이저 광선만이 읽어낼 수 있는 피트(pit)라는 작은 구멍 부호의 연속으로 바뀌어졌다.

 콤팩트디스크는 네덜란드의 필립스사와 일본의 소니사가 공동 개발해냈다. 이 같은 디지털 오디오 디스크는 일본의 빅터사가 개발한 AHD(Audio High Density Disc) 방식과 독일의 텔레풍켄사가 개발한 MD(Mini Disc) 방식이 더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전체적은 추세는 콤팩트디스크 방식 하나로 통일될 전망이다. 오디오 팬들을 열광케 하는 콤팩트디스크는 단순히 음악의 저장이나 재생뿐만 아니라, 디스크 전체의 연주 시간, 담겨있는 곡의 수효, 각 곡의 연주시간 외에도, 같은 한 곡을 통해서도 연주되어 나온 시간과 연주해야 될 남은 시간은 물론, 듣고싶은 곡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찾아주며, 나아가 친절하게도 현재의 시각과 약속 시간 등을 모조리 또렷한 숫자로 기억하여 전해주는 능력을 한 치의 오차 없이 필요에 따라 발휘한다.


 이 같은 능력을 지닌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CD 플레이어)는 우리나라에서도, 금성과 삼성에 이어 인켈까지 생산 채비를 모두 끝내고 결정적인 판매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상기된 CD 플레이어의 술렁거림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첫째 원인은 콤팩트디스크의 희귀성 때문이다. 콤팩트디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은 전 세계를 통틀어 독일과 미국, 일본 단 3곳밖에 없다. 이 같은 현실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채우기에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CD 플레이어 생산업체들은 한때나마 외국 라이선스 권리를 선취하고 있는 레코드 회사와 공동으로 콤팩트디스크 생산 시설을 건설해보려는 꿈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립스사와 소니사가 뒷전에 감추어둔 기술의 해독이 요원했다. 설사 이러한 어려움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아직은 영세한 국내 시장을 위해 1백억 단위를 훌쩍 넘는 자본을 투자할 형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국내에 합법적으로 수입된 콤팩트디스크는 1백여 종 5천여 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수입이 가능했던 것은, ‘플레이어 제작기술은 가르쳐줘서 생산 채비를 모두 끝냈는데, 디스크를 공급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국내 업자들의 오랜 불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2만 원대를 나들며 시중에서 심심치 않게 거래되는 콤팩트디스크는 정식 통관 제품임을 증명하는 표식이 없는 한 모두 음성적인 통로를 통해 반입된 것들이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한 해 동안 제작된 콤팩트디스크는 몇 백만 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전 세계적으로 독점 생산 공급하고 있는 단 3곳의 시설은 올해 4천만 장의 생산 계획을 세워놓았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흡족한 물량은 아니다.

 우리나라 레코드 메이커들의 경우는 이를 외국으로부터 위탁 생산해오지 않는다면, 단순한 레코드 수입상으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르는 형편에 있다. 추세의 흐름이 점차 콤팩트디스크 쪽으로 치닫는 전망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망을 더더욱 굳히려는 시도는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를 자동차 내에 장치하거나 야외 휴대용으로 개발해 나가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 크기를 감안하더라도, 자동차 내에 빠짐없이 장착되어 있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휴대용 포터블 카세트 녹음기와 커다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 세계 오디오 시장을 독차지하려는 계획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0년대 초의 일이다. 네덜란드 필립스 연구소가 레이저 기술과 고도로 집약된 전자 공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암호와 진행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비디오디스크를 개발하려던 첫 시도는 당시로서는 가능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 뒤로부터 수년 동안 지속된 기술진들의 노력은 영상과 음향이 결합된 레이저비전 디스크의 기술개발에 뚜렷한 공적을 세웠다. 이를 가능케 했던 디지털 기술의 이론은 오랫동안 전기 통신과 위성 중계를 위해 응용해오던 것이다. 점차 영상보다는 음향에 치중했던 기술진들의 노력은 마침내 최초의 콤팩트디스크 생산 공장을 독일 하노버에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콤팩트디스크는 웬만한 주머니나 핸드백에도 들어갈 만한 12㎝ 크기의 지름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당초 필립스 기술진에 의해 계획된 지름은 11.5㎝였다. 그러던 것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소망을 받아들여 12㎝로 늘어나게 되었다는데,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제9번 합창 교향곡을 단 1장의 콤팩트디스크에 수록했으면 하는 뜻을 전해왔고, 그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던 필립스 기술진은 이를 받아들여 지름을 늘렸다는 것이다.

 나아가 지속적인 기술 개발은 현재로선 한쪽 면에만 수록할 수 있는 것을 일반적인 LP 디스크처럼 양쪽 면에 수록할 것을 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장장 1시간이 넘어가는 교향곡 2편이 단 한 장의 디스크로 해결되는 것이다.

 콤팩트디스크는 종전의 LP 디스크와는 달리 소리를 기록하는 커팅 작업이 다이아몬드바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레이저빔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 뒤 얇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디스크 위에는 반사되는 알루미늄이 입혀지고, 또 다시 깨끗한 플라스틱 보호막이 씌워져 1.2㎜의 두께를 지니게 된다.

 이렇게 오나성된 콤팩트디스크는 플레이어 안에 들어가 중심 부분은 1분간에 약 500회전을 하게 되고, 바깥 부분은 약 215회전을 하게 되므로 직선으로 다지자면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에 해당하는 트랙을 1초 동안 약 125㎝나 주행하는 셈이다.

 콤팩트디스크는, 이름 그대로 견고하고 예쁘장하게 꾸며진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콤팩트디스크는 그 자체에 보호막이 씌워 있어 심한 먼지는 물론 보호막을 꿰뚫는 상처만 아니라면 보관하는 면적이나 방법 또한 혁신적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재질이 플라스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운 열기만은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콤팩트디스크를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기존 앰플리파이어에 자유롭게 연결하여 쓸 수 있는 편리함을 지녔다. 결국 기존 시스템에 플레이어만 더 장만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해서 많은 사람들은 이제까지 어렵게 장만한 턴테이블이나 LP 디스크가 모두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그렇다고 이처럼 불안한 시절이 눈앞에 곧 들이닥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란 것이 기계적인 원리원칙만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어리숙하고, 그래서 구수한 인간의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탓에 상당한 유예기간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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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2-05-21 23:49:47

CD로 음반 발매되기 시작하던 학창 시절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CD가 나오고 음반들이 발매될때도 CD가 훨씬 편하고 좋았지만 LP가 훨씬 더 싸다는 이유로 LP가 사라질때 까지 계속 LP만 구매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잘한 일이었습니다.^^ 끝물에도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보통 씨디는 만원, LP는 오천원 정도로 거의 두배 차이가 나던 기억이 있네요.

3
2022-05-22 00:18:42

인터넷이 생기기도 전 종이잡지에 실린
지난 세기의 유물 같은 기사를
오늘의 인터넷으로 옮기기 위해
손수 일일이 자판을 두드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겁니까?

여하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님의 수고 덕분에
몇 초도 안 걸린 엄지손가락의 조작만으로
이토록 귀한 자료가
저의 스마트폰에 저장될 수 있었으니
어떤 치하를 드려도 아깝지 않을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콤팩트 디스크는
비단 엘피와 테이프를 대체하는 매체에 한정되지 않고
'콤팩트'라는 말 자체가
효율과 최신을 지칭하는
지난 시대의 일반명사였음을 기억한다면,
그 콤팩트가 오늘의 '스마트'와 세기를 격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종의 시대언어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마땅합니다.
그렇게 콤팩트의 시대가 가고 나니
스마트의 시대가 왔고
그 스마트의 시대도
다른 어떤 시대로 옮겨가려 하는
바야흐로 시대의 환절기를 통과하며
지구는 지금 온통 감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했으니(BTTB)
그 기본의 기본스러움을 일깨우는 데 있어서
흰 종이에 인쇄된 검은 활자처럼
명백한(in black and white) 자극제도 없을 듯합니다.

그렇듯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음악이란
'돌아가면서 돌아가는'(turning and returning)
소리의 길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1
2022-05-23 11:28:40

격세지감이네요~

84년도 당시의 국내 음악 감상 환경이란게... 

80년대 후반 까지만 해도 별 다를게 없었던 것 같고 

90년대 들어와서 엄청 변하지 않았나요? 

 

그와중에 CD와 LP 용량 비교에서  각각  1면에 담을 수 있는 용량으로 비교한 것은 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CD1면(??) 과 LP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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