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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웃기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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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극한직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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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30:22


 

하지만 우리 모두 치킨은 사랑하지 않느냐



<극한직업>을 봤다. 전작 <바람 바람 바람> 부터 이병헌 감독을 향해 '한국의 우디 앨런', '말맛이 살아있다' 는 표현이 수식어처럼 붙기 시작했다. 때문에 주인공들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위장용으로 음식을 만드는데 그게 장사가 잘 된다는 설정을 보며, '한국의 우디 앨런이라고 띄워주니 거리낌없이 <스몰 타임 크룩스>를 베끼는구만!' 생각했다. 이는 내 착각이었다. <극한직업>은 <스몰 타임 크룩스> 와는 달랐고, 오히려 TVN 예능 프로그램인 '코미디 빅리그' 코너 <잠입수사> 와 유사하게 보인다. (범인 검거를 위해 음식점에 잠입했는데 3년 넘게 거기서 일한다는 식의 설정을 지녔다.) 시나리오 자체는 한,중 스토리 공동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문충일 작가가 썼다. 감독이 각색에 참여했다. TVN 채널이 CJ 소유고, 그렇다 보니 CJ가 내 소유니까 코미디 프로그램 아이디어도 갖다 쓰면 되겠거니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작품은 생각할 거리를 줬다는 점에서 의미있었다. '영화감독이 굳이 시나리오까지 쓸 필요 있는가?' 였다. (전작 <바람 바람 바람>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지만, 그 작품은 체코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리메이크니까 기본 정체성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많은 한국감독들이 시나리오도 쓰려고 노력한다. 어떻게든 자기 색깔을 지키려는 노력이라 보기는 좋으나,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에 어려운 측면도 있다. 얼만큼 걸리든 직접 쓰겠다는 태도가 좋은 결과물을 낳을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보다가 위와 같은 생각이 든 이유는 여태 본 이병헌 감독작 중 처음으로 대사에만 의존하려 든다는 느낌이 덜했고,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비교적 잘 어우러진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굳은 표정으로 봤던 <스물>의 불상사가 반복될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몇 번 피식거렸다. 웃었다는게 어딘가.



이 말은 평소 감독의 전작들에서 봤던, 직접 첨가했을 법한 대사나 유머 패턴 등이 여전히 별로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태껏 만들어진 이병헌 감독의 전작들은 대사에 배우들을 맞추게만 하려는 경향이 강해보였다. 임팩트 있는 대사를 말했다고 가정했을 때 다음 대사가 이를 잘 받쳐주는지, 대사와 대사 간의 여유를 얼마나 잘 고려하는지 등, 말의 전체적인 전달력을 고려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극한직업>도 이 점에서는 비슷하다. 감독 입장에서는 특유의 유머를 비롯해 자기 인장이 있음을 증명할 페르소나를 심어두고 싶었을테고 그 임무를 주로 마 형사 (진선규) 와 악역 이무배 (신하균) 가 맡고 있다. 언론이 흔히 '말맛' 이라 표현하는 이병헌 감독식 대사쓰기는 마 형사에게서 가장 많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가 작품에서 가장 겉돌고 튀어 보인다. 진선규보다는 안정적이지만 장 형사를 연기한 이하늬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마약반 5인방 중에서는 두 인물이 자기 매력을 드러내기보다 거의 말로 웃기려고 작정했다는 느낌을 주지만 한국영화 특유의 반성 없는 음향 문제로 인해 큰 효과 못 본다. 진선규와 이하늬가 낮은 목소리로 뭔가 말하면 주변 인물들 간 말소리나 소음 등으로 인해 궁시렁거리는 정도로 들리거나, 씹힌다. 이무배라고 크게 더 웃기는 건 아니다. 또다른 악역 창식이 (오정세) 를 만나 비난으로 티키타카를 하는 장면 역시 꽤 재밌을 수 있었는데 속도감이 지나쳐서 웃기 힘들다. 극장별로 편차가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이 현란한 말솜씨를 뽐내며 뭔가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호응해 줬을지 모르겠다. 웃기려고 재밌다 싶은 대사를 쥐어 짜다가 마구 던지는 수준이라 인상적인 순간을 음미할 구석이 없거나, 알아듣지 못해 흘려보내는게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영화치고 드물게 어떻게든 보는 사람을 끝까지 웃기려는 의지는 칭찬할만 하다. 그러나 작품이 1시간 51분 내내 이런 상태였으면 내 머리가 굉장히 아팠을 거다.



<극한직업>은 다행히도 자기 매력을 긍정적으로 뽐내는 순간을 갖고 있었다. '형사들이 위장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입소문 났다' 는 시놉시스, 연기 되는 배우들이 자기 매력을 살려 치킨 장사를 하는 형사의 자괴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다. 형사들이 스스로 괴리감을 느낄 때 입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재미를 유발하는 경우가 제법 있어서 덕분에 머리가 덜 아팠다. 이를테면 영호 (이동휘) 가 범인 수사 말고 치킨 장사에만 몰두하는 마약반 동료들에게 "왜..왜 열심히 하는건데?" 라고 되묻는 순간 말이다. 이런 매력은 작품의 총체적인 요소들이 고려될 때 나온다. 재미없는 대사를 밀어붙이는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기본설정이나 청년부터 장년 나이대까지 각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이 자체적을 지닌 매력을 이끌어내 재미를 찾는 비중들이 많이 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형사들이 잡아야 하는 악역' 으로서 존재감을 든든하게 드러내준 신하균과 막내형사 재훈 역을 맡은 공명의 귀엽고 젊은 매력은 단연 압권이다. 정말 공명이 극장화면에 등장하기만 하면 94년생이 내뿜울 수 있는 피톤치드 같은 청춘의 내음이 막 느껴질 정도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젊음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할 정도랄까. 공명의 모든 것이 탐이 나서 길 가는 그를 잡아다 기절시켜 머리뚜껑을 연 후 내 뇌를 바꿔 넣고 싶고, 여튼 막 다 뺏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 정도다. 배우가 잘 한 거지 여기서 감독 능력을 따지느냐고 물으신다면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배우들에게 기본적인 연기 디렉션을 주는 사람이 감독. 많은 부분들이 부족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극한직업> 에 와서야 이병헌 감독이 '연출자' 였음을 내게 어필한 느낌이다.



앞으로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보다 이렇게 다른 사람 것을 받아다가 연출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해도 감독이 감독 아닌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썼을지언정 연출력이 좋다면 자기 작품같은 아우라도 가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이 썼더라도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시놉시스나 기본 인물설정만 남겨둔 채 감독이 다 뜯어고치다 시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영화계에서 그런 일은 많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병헌 감독의 데뷔작인 <힘내세요, 병헌씨>를 제외하면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이야기보다 <극한직업>이 더 나아보인다는 점이다. 꼭 감독이 다 쓰려고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을 보며 든 생각이다.



p.s.


1) <극한직업> 보면서 치킨집 점주들이 지금 치킨 가격을 서민적이라고 생각해서 내리기는 커녕 더 올릴까 걱정된다는 생각을 했다. 치킨에다 서민의 메타포를 담긴 하지만, 작품에서 묘사한 가격부터 별 공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 6천원인가 그렇던데 BBQ 같은 곳보다 싸다는 정도지, 현실에서는 여전히 가격이 비싸 '재래시장 치킨 사먹는게 낫다' 고 생각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2) 상영관 독점은 너무했다. 보려 했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극한직업> 개봉하니까 극장에서 한 방에 싹 사라져 버리더라. CJ가 작년에 <협상>, <PMC: 더 벙커>로 돈 잃은 것 좀 다시 채워보겠다고 이러는 건 이해하겠고, 이 작품보다 더 심하게 상영관을 독점했던 한국, 외국영화들도 많았다. 하지만 벌써 900만 돌파했던데 독점해놓고 '몇백만 돌파!' 자축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물어보고 싶은 건 있다.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해 영화 / 배급사를 향해서 "너네도 찝찝하지?" 라며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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