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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글래스 (Glass)(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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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30:11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부러뜨리지만

많은 사람은 그 부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




[스포일러가 좀 있습니다]


"난 그 놈 싫어! 다음 질문 해. (I HATE that guy! Next question.)”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 말이다. 플레이버와이어 닷컴이 2011년경 올린 주옥같은 기사, 'Directors Hating On Other Directors' 에는 영화감독들이 같은 직업 종사자를 가차없이 까는 짤막한 코멘트가 집결돼 있다. 예술한답시고 으스대는 양반들이 얼마나 멘탈이 배배 꼬였는지 보여주는 이 기사를 처음 봤을 때, 같은 영화인에게 싫다는 소리 듣고 있는 샤말란이 어찌나 딱하게 느껴졌는지... 물론 명장 크로넨버그가 샤말란을 좋아해야만 한다는 이유는 없다. 기사가 2011년에 올라왔을 뿐 그가 언제부터 샤말란을 싫어라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며, 마지막으로 저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또한 모른다. 하지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본격적으로 악평의 늪에 빠져 있던 시기에 기사가 나온 탓일까. 감독 마음까지 생각하는 선무당 짓은 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행보를 대부분 좋아해왔던 입장에서 어째 마음에 대못 박히는 느낌이 있었다. 크로넨버그라면 샤말란을 '작가주의' 로 생각하고 높게 봐주리라 (나 혼자) 생각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샤말란은 몇 년 전부터 집을 담보로 삼는 승부사적 자세를 보이며 다시 우뚝 섰다.



<글래스>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열세번째 장편, 혹은 '집 저당잡힌 샤말란' 이 정열과 끈기로 만든 세번째 장편이다. 그가 구상한 'M. 나이트 샤말란 유니버스 3부작' 완결편이기도 하다. 1편 <언브레이커블>과 2편 <23 아이덴티티> 사이에 16년 텀이 있어서일까. 처음엔 <글래스>가 <23 아이덴티티>의 흥행성공으로 급하게 진행된 기획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과 주연배우인 사무엘 L. 잭슨은 오래 전부터 속편을 마음에 뒀다고 한다. 좀 더 밀어붙인 사람은 사무엘 L. 잭슨이었다. 어느 날 스튜디오를 지나던 감독의 차 옆으로 자가용을 댄 그가 창문을 내리고는 "이 마더 뻐커야. 우리 속편 언제 만들거야!?" 라고 일갈했으니 말이다. 1년 후에 똑같이 감독이 차를 타고 LA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도 옆에 자가용을 세우고는 창문 내리고 "야 이 마더 뻐커야. 속편 언제 만들거냐고!?" 라며 살벌하게 물었다고 한다. 사무엘 L. 잭슨이 매번 질문하기 전까지 감독은 그저 손 놓고 있었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협박 덕분에 진행된 프로젝트인 셈이다. 마지막 편이 이렇게 빨리 제작된 것을 보면, 감독이 기획한 3부작은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중간다리를 짓는 일이 난관이었나 보다.


 

* 신기하게도, 사라 폴슨이 정적인 캐릭터고 외모가 강렬한 것도 아닌데, 보고 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글래스>는 <언브레이커블> 악역이었던 엘리야 프라이스 (사무엘 L. 잭슨), 일명 '미스터 글래스' 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언브레이커블> 선역 데이빗 던 (브루스 윌리스), <23 아이덴티티>의 케빈 / 비스트 (제임스 맥어보이) 를 비롯해 두 작품 속 기존 주조연진들이 모두 출연한다. 작품은 이들이 모두 복귀한 덕에 안정적인 첫인상을 준다. 감독이 나름 대규모 작품을 맡은 시기가 있었고, 본인이 구상한 슈퍼히어로 유니버스 완결편이니 안정감을 동력삼아 큰 맘 먹고 한 판 벌일 수도 있었으리라. 물론 주제파악을 잘 한 덕에 다행히 정신병원에 세 히어로 / 빌런들을 가둔 채 진행하는 결과물로 나왔지만 말이다. 작품은 이번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엘리 스테이플 박사 (사라 폴슨) 가 입을 열자, 세 사람이 초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증명하려는 심리 드라마이자 스릴러로 돌입한다. 미스터 글래스가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큰 극적 사건 없이 잔잔하다. 하지만 그 잔잔함을 긴장감으로 전환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M. 나이트 샤말란의 강점. <글래스>를 보면, 사실 세 사람은 히어로가 아니라고 하는 엘리 박사의 주장이 그렇게 설득력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데이빗과 비스트의 능력을 그저 관찰력이 뛰어나서, 총알이 제대로 발사되지 않아서라고 뭉뚱그리는 건 너무 허약한 논리 아닌가.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 있는 사라 폴슨의 얼굴에서 나오는 기묘한 아우라를 담아낼 때, 그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글래스>는 드라마 자체의 탄탄함보다 잔잔바리로 깔아둔 긴장감 덕을 보며 작품으로서 체면을 유지한다. 흥미가 지속되고 지루함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3부작을 보며 마지막 편에 자주 이끌리곤 한다. 첫번째와 두번째 편의 영화적 스타일이 상극일 경우, 마지막인 세번째 편이 잘 봉합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 어떻게 해낼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글래스>는 봉합을 잘 하는 축에 속한다. 특히 영 안 좋게 봤던 <23 아이덴티티> 를 재감상 / 재평가하고 싶다는 욕구를 줬다는 점이 최대장점이라 볼 수 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작품들을 보면 그런 순간, 그렇게 무섭고 충격적이었던 <식스 센스> 로 치자면 '결말 직전에 할리 조엘 오스먼트와 토니 콜레트가 차에서 대화하다 오열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작품 속 갈등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연출이면서도 상당히 여린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이었다. 보고 있으면 초현실적 정서에 항상 매혹되어 있었을 뿐, 감독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공포 / 스릴러 장인' 으로만 봐 주기를 원치 않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게 느껴지는 것이다. 샤말란 작품임을 인증하는 특징이 되면서 동시에 호불호의 원인이지만, 풍성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분명 돋보인다.



물론 <23 아이덴티티>는 그런 점에서 좀 심하게 공포물이었다. 살인마인 비스트와 주인공 케이시 (안야 테일러 조이) 가 교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둘 사이에 깊은 이해가 작용하긴 한다. 그러나 살인마와 주인공이 지닌 트라우마의 배경, 고통을 극복하는 서사에 어울리지 않게 희생자들이 많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살인마와 희생자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람을 뜯어먹는 등 높은 표현수위를 지닌 장면들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젊은 애들한테 좀 먹어주는 영화가 됐겠지만 말이다. <언브레이커블> 도 반전에서 드러나는 글래스의 악행으로 비슷한 문제를 겪을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측은지심 느끼게 했던 존재가 사실 극악무도한 악당임을 드러내는 장치였으므로 허용될 수 있었다. (<언브레이커블>에서 느꼈던 우려는 <글래스> 에서 문제가 된다. 보다 보면 자꾸 '얘가 죽인 사람 수가 얼만데 주인공으로 나왔다고 이렇게 몰입해도 괜찮나' 생각이 들더라.) 다행히 <글래스>는 케이시를 통해 내가 <23 아이덴티티>의 단점이라고 느꼈던 것을 보완했다. 이번 작품 속 케이시는 자신을 납치한 남자의 인격을 개별 자아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더 명확히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인격과 그럴 생각이 없었던 인격들을 개별로 구분하고, 이 중 후자에 해당하며 남자의 원래 인격이라 할 수 있는 케빈의 자아를 구해내려 한다. 이 노력이 확연해진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하는 24개 인격을 명확히 규정하는 일은 사실 <23 아이덴티티> 에서 더 잘 다뤄야 했다. 케빈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장면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작품은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했다. <글래스>는 내 기준에서 보기에 못 만들었던 전작을 두고 2편이라 중간다리가 될 수 밖에 없어서 그랬다며 변호해주고, 이제 다시 보라고 설득한다. 그래서인지 '<언브레이커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23 아이덴티티> 의 속편' 으로 보는 쪽이 <글래스>에겐 더 어울리기도 한다. 


 


<글래스>에 아쉬움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음악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23 아이덴티티> 속편이라고 느꼈던 이유도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음악에서 빠졌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가 샤말란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사정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많이 아쉽다. 이 점을 제외하면 후반에 이르러 슈퍼히어로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상황이나 연출들이 나오는데 이게 좀 낯설다는 것일게다. 샤말란과 슈퍼히어로 이야기는 어째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언브레이커블>은 주로 일라이자가 운영하는 코믹북 서점 공간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며 위화감을 돌파했고 <23 아이덴티티>는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글래스> 는 세 사람이 초인임을 믿지 않는 엘리 박사에 의해 슈퍼히어로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해당 단어가 가진 고유한 힘은 잃지만 이야기에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후반부에는 엘리야, 데이빗, 비스트가 자기 정체성을 마음껏 표출하는 슈퍼히어로적인 상황이 제시된다. 마치 '샤말란 버전 배트맨 대 슈퍼맨' 같아 코믹스나 그래픽 노블에 대한 감독의 깊은 애정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대비되는 어쩔 수 없는 예산과 역량의 문제가 있다보니 한계도 함께 보인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글래스> 스스로 영화가 아니라 코믹북이라고 자기최면을 건 채 연출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품은 초인들 간 전투 장면 중 조연들이 '초능력도 없는 우린 뭘 할 수 있죠? / 우린 쓸모가 없다. 팝콘이나 가져와라!'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 를 패러디한 짤방마냥 멀뚱히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나서기까지 그들에게 별도의 리액션 숏 주는 것도 인색하다. 결국 <글래스> 후반부는 허술한 전투장면으로만 구성된 만화책을 보는 느낌이다. 스스로를 영화라 생각하고 전투장면도 허술하다는 점을 안다면 조연들이 뭔가를 하는 숏들이 중간중간 들어갔어도 좋았을 것이다. 긴박감도 살테고. 그런 빈도가 적다. 접시물에 코 박는 듯한 데이빗의 최후 장면도 비슷하다. 나름 사이드킥 역할인 아들 (스펜서 트리트 클락) 의 반응을 담은 숏을 한 번도 삽입하지 않은 채 오직 데이빗에게만 집중한다. 이런 연출이 영화가 아니라 꼭 코믹북 123 페이지 정도를 몇 분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주연들에 비해 다소 현실적 감각을 지닌 쪽이 조연들이라서 의도적으로 배제시킨 듯 보인다. 그래서 만화 이야기를 하면서도 적당히 현실에 발 붙여가던 균형이 일순간 무너진다. 부자연스럽게 만화화된 것 같달까.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꽤나 어색하다. 불가능을 알면서도 만화가 되길 열망하는 영화를 보는 듯해서 좀 짠하기도 했고, 작가적 의도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를 더 잘 연출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런 아쉬움을 제외하면 <글래스>는 3부작 마무리를 잘 해냈다. <언브레이커블> 보다는 못하지만 그 작품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도 다시 보여주기 힘든 경지였다. 그런 경지 쉽게 오지 않는다. 아마 감독님께서 집 뿐만 아니라 불알 두 쪽까지 저당잡혀야 보여주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해한다. 감독은 항상 할 수 있는 선에서, 기대보다 시시해 욕을 먹을 수 있더라도 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들이기에 그들이 다가갈 수 있는 최대치였으며, 믿음을 놓지 않은 그들에게 알맞게 해줄 수 있는 나름의 보상이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이번 결말은 생각보다 거대해서 놀랍다. 여지껏 자기 작품을 좋아해준 사람에게 큰 맘 먹고 더 보여준 느낌이다. 감독은 감독답다. 거대한 서막만을 보여주고 돌아선다. 샤말란은 작가주의적 욕망과 내가 기대했던 감독으로서의 이미지 모두를 충족시키며 선을 지켰다. 마치 주식 떡상의 유혹을 앞에 두고 이만하면 됐다는 듯 과감히 팔아버리는 듯 미련 버리는 태도. 샤말란은 그렇게 작가주의적으로 자기 집을 지켜냈다.




p.s. 



1) 리뷰의 부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가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속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2) 역시나 샤말란 감독이 카메오 출연을 하는데, 재밌게도 <언브레이커블> 배역을 그대로 맡고 있다. 다만 그도 카메오 짬밥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연기가 늘지 않는다. 이런 양반이 <싸인> 이나 <레이디 인 더 워터> 때는 어떻게 그렇게 길게 나올 생각을 했을까.



3) 그러고 보면 <23 아이덴티티>는 애초부터 존재 목적이 반전이었던 작품 같다. 보면서 <언브레이커블>의 속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 하지만 그 반전이 최소한 내게는 실패였던 점이, 마지막에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긴 커녕 몸서리 쳐지게 싫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안 돼! 하느님 제발! 내 언브레이커블에 23 아이덴티티 따위 묻히지 마! 지금 생각해도 확실히 싫을만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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