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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사바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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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29:41




살인마 유의 집



[스포일러 있음]

장재현 감독 신작인 <사바하>를 봤다. 작품을 보게 된 것은 박정민 배우가 굉장히 퇴폐적인 섹시함을 자랑한다는 추천 때문이었다. (사실 문숙 배우가 나온다는 소식에 언젠가 한 번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은 소녀와 함께 태어난 악마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999년 강원도에서 한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다. 동생 다리를 물어뜯고 살며 피범벅이 된 채 태어난 기괴한 외모의 언니 (이재인). 다리를 물려 절름발이가 된 동생 금화 (이재인). 가족은 정착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떠돌고, 금화는 언니와 세상에게 증오를 품고 있다. 2015년에는 한 여중생이 영월 터널 외벽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살인사건 용의자는 경찰 추격을 직감하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오히려 의문의 정비공 정나한 (박정민) 에게 명령을 받아 자살을 택한다. 박웅재 목사 (이정재) 는 종교 비리를 파헤치는 종교문제연구소 소장. 사이비 종교단체의 원수인 그는 조수인 고요셉 전도사(이다윗) 와 '사슴동산' 이라는 신흥 종교집단을 조사하다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사바하>가 신흥 / 사이비 종교 연구가인 탁명환 교수를 모티브 삼아 박웅재 목사 캐릭터를 구축했으며, 작품에서 거론되는 사슴동산은 김기순이 교주로 있던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 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알고 있었다. 감독이 언론인 스포탈코리아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탁명환 교수와 아들인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대한 언급과 그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씨네 21에서 진행한 감독 인터뷰를 보니 말이 좀 다르더라. 사슴동산은 '사르나트'라 불리는 인도 녹야원(鹿野苑) 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박웅재 목사는 '실제로 종교 비리 문제를 파는 사람이 있다' 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익명의 연구가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제작진들이 일부러 이러는지는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사바하>는 티저 예고편 공개 당시 사이비 종교에 대한 예시로 신천지를 거론했다가 거기서 항의를 받아 대사를 일부 수정한 사례가 있지 않은가. 뭐가 됐든 구체적으로 대상을 언급하는 일이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모티브를 받으라는 법은 없으니, 그냥 감독이 인터뷰 할 때마다 영감을 준 여러 대상을 랜덤으로 언급했을 수 있다. 



그래도 어디서 모티브를 얻었는지가 계속 궁금했다. 그 여부에 따라 <사바하>에 관한 호감이 갈릴 것 같아서였다. 작품이 기본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좀 있다. 자기가 무슨 장르인지 때때로 잊을 정도로 유머에 집착하는 한국영화 특유의 강박은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박 목사와 학교 후배인 해안 스님 (진선규) 간 대화에서 나오는 은근한 유머들은 적절하지만, 철저히 웃기려는 목적으로 삽입한 심 권사 (황정민) 캐릭터는 보고 있으면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든다.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출연료를 챙길 수 있으니 대환영이지만, 박 목사 진영에 여성 캐릭터가 너무 없다고 한 소리 들을까봐 면피용으로 만든 캐릭터라는 생각만 강하게 드는 것이다. 관객이 이야기나 소재를 낯설게 느낄까봐 대중성을 고려한 장치일 수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얄팍하기는 매한가지다. 박 목사 사이드킥인 고요셉 전도사 (이다윗) 가 보여주는 존재감도 다소 약해서 아쉽다. 고 전도사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박 목사 옆에 찰싹 붙어있지만, 막상 사이드킥으로서 더 쿵짝이 맞아 보이는 사람은 사건에 깊게 개입하지 않는 해안 스님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바하> 에 대한 사소한 단점일 뿐이다. 작품은 비평과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이 보여준 스타일을 적당히 차용하면서, 한국영화계에서 찾기 힘든 오컬트적 색채를 가미한다. 그리고 마치 연출자 본인이 개발한 양 능청을 떤다. 그 능청떠는 솜씨가 좋다. <사바하>에는 나홍진 감독작인 <곡성> 에서 홍경표 촬영감독이 담아낸 축축한 기운, 김지운 감독작인 <악마를 보았다> 에서 이모개 촬영감독이 찍은 스산한 겨울풍경의 룩을 비롯해 몇몇 시각적인 설정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두 작품은 호불호는 갈리지만 분명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었다. 동시에 한국영화를 서방세계에다 '익스트림 무비' 라는 표현으로 영광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오해를 심어준 작품들이기도 하다. <사바하>는 그런 선례를 신뢰하며 두 작품이 남긴 유산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잘 활용한다. 푸르거나 붉은 빛이 감도는 자연풍경, 비 오는 장면에서 등장인물 모두가 몇 주간 물을 끼얹고 산 듯한 습함 등은 영락없이 <곡성> 스러우며, (비록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 이야기를 했지만.) 후반부 분위기를 지배하는 크리스마스 장면들은 <악마를 보았다> 속 겨울풍경 같다. 겨울이 지닌 음습함과 스산함. 그리고 누군가는 죽어가지만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도시의 불빛 등이 그렇다. 



<사바하>는 <악마를 보았다> 처럼 대부분이 못 견딜 고어를 지향하지도 않고, <곡성> 처럼 상징과 관객이 펼치는 갑론을박 속에 숨지도 않는다. 좀 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형태로서 유머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으며, 방심해서 보는 사람도 실실 쪼개려 들 때 공포스러운 장면들로 단숨에 분위기를 잡는 솜씨도 근사하다. (정나한이 천장에서 교살됐거나 불타 죽은 사람들의 환영을 보는 장면이 특히 좋다.) 무엇보다 작품이 지향하는 본래 이야기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다. 그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이 좋다. 캐릭터 활용도 그렇다. 정나한과 금화 캐릭터로 어두운 무게감을 살리고, 발로 뛰며 이곳저곳 수사하는 박 목사와 고 전도사를 통해 현실탐사적 감성도 함께 가져간다. 그 결과 작품에서 등장하는 공간들도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있음직 하면서 현실에선 볼 수 없을 이세계적인 느낌을 잘 지니고 있다. 관람 후 종교적 상징들을 다 찾아봐야 할 정도로 디테일이 뛰어나고 방대하지만, 이를 모른다고 해서 이야기 파악이 불가능한 작품도 아니다. <사바하>는 성역이 많은 한국사회의 어둠을 팝콘 엔터테인먼트의 소재로 삼아 거부감없이 다룬다. 신적 존재가 탄생한 축복스러운 날로서 크리스마스를 인식할 뿐, 그로 인해 당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한 교양이 없는 사회. 그 사회에서 종교가 지닌 어두운 면모를 이야기 한다는 것. 이런 화법이 가능한 창작자와 작품이 존재한다는 점은 영화계에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해외영화계를 매혹시킬 수 있는 창작자만큼, 완성도 높은 팝콘 엔터테인먼트로 내수시장 질을 높일 수 있는 창작자도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의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이 작품을 좋아할 수 있을지 망설이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어느 모티브인가' 의 문제다. 만약 '사이비 종교 연구가인 탁명환 소장' 이 모티브이고, 그 대상에 존중을 표한다면 신적 존재를 드러내는 흐름을 없애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남아서다. 실제 탁명환 소장은 평생 사이비종교에서 모시는 신과 그 존재에 대한 믿음이 거짓임을 확인시키는 일을 해 오지 않았나. 하지만 <사바하>는 중반 이후 등장해서, 정동환 배우가 맡은 배역 뒤에 숨어 목숨을 부지해온 풍사 김제석 (유지태) 이 고승에게 예언을 듣고 이에 대비하게 만들면서 마침내 인간 한계를 넘어선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잘못된 신념을 갖고 살아온 나한에게 김제석과 금화의 언니, 두 신적 존재를 목격할 수 있게끔 허용한다. 



이야기 흐름에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재밌는 이야기다. 하지만 풍사 김제석과 금화 언니가 보여주는 초월적 능력은 정나한, 금화와 더불어 작품을 이끄는 또다른 한 축인 박웅재 목사를 무의미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인이지만 박 목사 일행은 철저히 현실 속 공간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있었다. 옳은 믿음을 가지고 있던 박 목사 일행이 아니라, 나한처럼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 혹은 믿음을 이용해 연쇄살인을 교사한 김제석 같은 자에게 신의 권능과 초월성을 허락하거나 그것을 목격할 수 있는 권한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 비록 죽음을 맞긴 하지만 말이다. 믿음은 선과 악이 없는 그저 믿음 그 자체일 뿐이며, 그런 자들에게도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신이라서 보여줄 수 있는 아량인 것일까. 덕분에 신이 어딨는지를 물으며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던 박 목사마저도 불사신 김제석의 모습을 목격한다. 하지만 실제 탁명환 교수가 사이비 종교집단 일원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다 보니, <사바하>의 전개방식에 마냥 공감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그 초월성이 사이비 종교에게 일종의 포상 같아 보여서다.



그 덕분에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신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도 없음을 잘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김제석은 신적 존재였으며 금화는 마침내 증오를 거두었지만 언니의 죽음을 마주한다. 현실에서 탁명환 소장은 괴한에게 살해당했지만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은 배후에서 신나라 레코드를 운영하며 현재까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현실에서 봐 온 풍경이 영화에서나마 반대가 됐으면 하는 믿음을 잃지 않고 싶은 것. 여태까지 <사바하> 가 의미도 있고 좋은 작품이었던 이유를 말해놓고 말미에서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으로 주저하게 되는 이유다.  영화 보다 이렇게 간절해지는 것도 오랜만이다.



p.s.


1) 신나라레코드는 아가동산을 유지하기 위한 산업체로 세워진 것 중 하나였다. 김기순은 96년경에 구속됐지만 98년에 석방된 후, 아직까지 신나라레코드를 운영하며 잘 먹고 잘 산다고.



2) 이 작품 속 유지태 배우는 흡사 한 마리의 곰탱이 같은데, 후반부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장총을 들고 다닌다. 말할 때는 <올드보이>의 이우진, 후드를 벗으면 헝클어진 헤어스타일 때문에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후드를 쓰면 <살인마 잭의 집>의 잭 같다. 재밌게도 유지태 배우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살인마 잭의 집>에 대사 몇 마디 있는 카메오 역할로 출연했다. 해외진출 물꼬를 트기 위한 이유로 출연했는지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면 어째 <사바하> 속 악역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 <살인마 잭의 집> 촬영장에 갔다온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난 이 작품보다 <살인마 잭의 집>에서 잠깐 나온 유지태 배우의 연기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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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9-03-27 00:04:16

스포일러 표시를 다시 하시는게

WR
2019-03-27 00:04:36

리뷰 부제 때문에 그러시나요?

2
2019-03-27 00:21:48

정성이 가득한 글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WR
2019-03-28 17:05:39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ikebonds 님. 개인적으로 <검은 사제들>은 원작 단편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닥이었지만, <사바하>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1
2019-03-27 12:24:58

몇몇의 캐릭터의 영화의 큰줄기에 그냥 희생되는 모양새는 있습니다만..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작 검은 사제들보다 더 큰 세계를 다루고 있고, 더 고급스럽습니다.

종교에 대한 의문 보다는..종교에 대한 실체에 대한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정재의 모습이 좋더군요

굳이 장르를 명확하게 ..나누지 않아도..이런...스릴러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우리나라처럼..무속과 대형종교가 짬뽕되고 잘 돌아가서...북한문제처럼...영화의 좋은 소스가 되죠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영화~

WR
2019-03-28 17:08:01

말씀대로 희생되는 배우 중에 정진영 배우가 안타까웠죠. 뭔가 여러가지 일을 할 것 같은 인상을 주더니만 아무것도 안 하는.. 한국 경찰에 대한 묘사로서는 좋다고 보는데 영화임을 생각하면 아쉬웠습니다.

한국은 기괴한 종교영화를 만들기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되는데, 기괴하기는 커녕 정상적인 종교물을 만든다고 해도 소송 건다고 난리친 역사가 있으니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가 얼마나 비정상이었으면 뭐만 만든다고 하면 다들 이렇게 찔려하나 싶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도 이두용 감독님의 <피막> 같은 무속 / 종교 스릴러물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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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0:11:06

정진영 배우는 희생되었다고 볼수도 있었지만...그냥..덤덤하게 경찰일만 해오던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였주었죠...20여년 가까이 긴시간 동안 희생되어온 지역 여자아이들의 죽음, 실종에 대해서..누군가 이래서 그랬어..알려줄 사람이 없었으니...

게시판에서의 한장 한장 떼는 모습하나로..충분히 영화에서 활약(?)했다고 봅니다.

감독의 장치중 하나였죠...이런 장치 하나하나가..감독의 성향이죠...이런역에 기꺼이 연기해준 배우들의 믿음도..리스펙해주고 싶습니다...베테랑 연기자들이 해주어야 할수 도  있으니..

WR
2019-04-23 16:45:08

음. 그렇게 생각하니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군요. 덤덤하게 경찰 일만 해오던 평범한 사람의 모습. 아무래도 배우의 경력이나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게 돼서 이 정도 배우면 뭔가 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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