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스포)어벤저스 엔드게임, 코믹스 팬이 느낀 거리감
안녕하세요? 룰루아빠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현재 국내 정발 중인 마블/DC 코믹스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느끼기에 마블이 가장 대단한 건, 그동안 원작 코믹스를 전혀 보지 않은 사람들도 영화만 쭉 보면 컨텐츠의 대부분을 별 부담이나 거부감, 혹은 길 잃은 느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그동안 차근차근 마치 레고 블록 맞추듯이 MCU를 잘 빚어 왔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말이죠.
그럼에도 코믹스에 친숙하지 않으면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제가 이 글의 제목을 잘 지은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코믹스 팬으로서 느끼는 거리감은 제가 스스로 느꼈다기 보다는 '아, 코믹스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저 장면에서 감동이 덜하겠구나.'라는 차원에서의, 조금은 아쉬운 거리감입니다.
*제목에 스포 표시를 하였습니다만 한 번 더 적습니다. 지금부터는 엔드게임 스포가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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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엔드게임에서 가장 벅찼던 부분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바로 "어벤저스, 어셈블."입니다. MCU의 신호탄이 된 아이언 맨이 2008년 개봉했는데, 제가 마블 코믹스 번역을 정식으로 시작한 게 2010년이니 제가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추 비슷하게 옆에서 나란히 걸어왔다는 느낌이 저 개인적으로는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 길었던 여정이 일단락되는 느낌에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그 여정의 막바지에...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힘에 압도되어 비브라늄 방패까지 반토막 난 상황에서,
"어벤저스, 어셈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벤저스,"하는 순간 알았습니다. 아, 나오는구나. 지금이구나. 바로 이 순간이구나... 아마도 지난 10년간 응축된 무언가가, 캡틴의 그것도 작은 목소리로 분출되었기 때문에 그 감동이 더 컸던 게 아닌가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 직후 토니와 피터의 재회 신에서는 저도 모르게 옆에 고개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안 그러면 펑펑 울 거 같아서 말이죠. "어벤저스, 어셈블."이라는 대사 하나 때문에 저 이후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별 기억도 없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옆에서 함께 본 아내에게 슬쩍 물었습니다. 혹시 아까 캡틴이 "어벤저스, 어셈블."이라고 했는데 그게 뭔지 아냐고요. 역시 모르더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간극은 생각보다 너무 큽니다.
이 문구의 번역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국 관객을 위해 어벤저스, 집결... 집합, 공격 등으로 옮겼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의견을 보았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영화는 영화이지 코믹스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확실한 건, 저 문구를 "어벤저스, 집결."이라고 옮겼다고 해서 제 아내가 그 감동을 느끼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건 번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벤저스, 어셈블."은 영화로서 MCU가 넘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넣을 수밖에 없는 캡틴 아메리카의 혼이자 어벤저스의 혼과도 같은 문구입니다. 그렇다고 설명해서 해결할 일도 아닙니다. 이건 마치 해설하면 재미 없는 우스개와 같아, 그 순간 와닿지 않았으면 그대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웠습니다. 해설하면 재미 없는 저 우스개가 제게는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 방아쇠와 같았기 때문이죠.
PS. 이 글은 원작팬 vs 영화팬 이런 구도를 유도하려고 쓴 게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런 뉘앙스가 있었다면 절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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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등에 소름이 쪼아악 돋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