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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걸캅스(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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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5-10 16: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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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캅스]는 최근 [오션스8]이나 2016년 [고스트버스터즈]같은 작품처럼 관습적으로 굳어진 남성 중심의 장르 오락물을 여성 중심의 서사로 단순 전환시킨 객기의 결과이다. 타협과 상술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눈치껏 굴리는 상업 영화 기획 내에서 거창하게 의욕을 드러내봤자 결국에 그 이면은 너희 남성들이 하는 거, 우리 여성들도 한번 해봐야겠다의 시샘에 지나지 않는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 비슷한 식이다. 익숙한 남성 중심의 서사를 여성 중심의 서사로 바꾸는 방식이 하나같이 너무나도 기계적이고 끼워 맞추기로 둗어져서 뒷북 장단의 소음만 일으킨다.

 

남성이 하는 거 우리도 못할게 없다라는 식의 미성숙한 불만으로 성역할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니 성역할 전복성도 얄팍해지고 진정성도 떨어지는 무의미한 결과를 양산해낼 뿐이다. 남성이 하던 역할을 여성이 하는 역할로 전환시키는 것에만 치중한다면 이야기는 발전할 수가 없다. 성역할 전환 시도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작품들이 일부에서 비웃음을 사는건 구성을 발전시키려는 노력 없이 성역할 전환 하나에만 매달리는 단세포적 발상 때문이다. 성역할 전환을 시도하는건 좋다. 그러나 성역할 전환만으로 주제를 강조하고 영화적 의의를 새기려 하는건 지독히도 유아적인 접근법이다.

 

성역할 전환 자체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의 호흡, 배역의 개성이 비옥하게 조성돼 있는 상태에서 성역할 전환을 시도했을 때 극은 풍부해질 수 있다. 왜 여자 007은 없냐, 왜 흑인007, 게이007은 나오지 않느냐 같은 생트집이 피곤한 것은 특정 대상에서 엉뚱한 발상으로 중립과 공평함을 찾으려 들기 때문이다. 이미 완전한 형태로 갖춰진 개성을 파괴하려는 고약한 심보는 지지 받기 어렵다.

 

신작 [걸컵스]가 구성한 성역할 전환의 방식도 앞선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션스8]나 [고스트버스터즈]같은 헐리우드산 오락물처럼 남자들이 하니까 우리 여자들도 한다, 혹은 해야 한다의 미련한 선언으로 어리석게 폭주하는 꼴이다. 띨띨한 여형사 두명이 종횡무진하며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병신같은 활약상이 시답잖은 남성 중심의 버디 액션 코믹 형사물들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수법이라 공평한 성역할 이식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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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캅스]가 지향한 작품은 [청년경찰]같다. [걸캅스]의 크랭크 인은 2018년 7월 5일이다. 2017년 8월 개봉한 [청년경찰]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제목 [걸캅스]는 한국 버디 액션 코믹 형사물의 고전인 [투캅스]를 인용한 것인데 크랭크 인 당시만 해도 가제로 사용했다. 마땅히 어울리는 제목을 찾지 못했는지 가제가 개봉명이 되었다. 무성의한 패러디 제목이지만 가벼운 코미디이고 입에는 잘 붙어서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걸캅스]는 액션과 코미디에 서늘한 세태 반영과 사회 풍자로 호응을 얻은 [청년경찰]과 [베테랑]같은 최근 한국영화 흥행작의 공식을 따르는 작품이다. 남성 중심의 서사로 극을 끌어갔던 [청년경찰]과 [베테랑]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여 일대일 맞춤형으로 성역할을 전환시킨 것 같다. 과거 [델마와 루이스]가 페미니즘 논란을 일으켰던건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방식이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이 이어질수록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델마와 루이스는 남성을 분노의 배설 도구로 이용하고 가차없이 내치는 것으로 현실의 억압과 모순을 깨부수려 한다. 방법이 너무 극단적이고 받은대로 되갚는 앙갚음의 방식이라 평화로운 성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 정신과 위배된다는게 중론이었다. [델마와 루이스]는 페미니즘 정신을 잘못 이해한 여성 영화다.

 

[걸캅스]의 문제도 현 시대의 여성 문제를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오판으로 접근하고 있다. 단순히 남자들도 했으니 여자들도 해야 한다는 외침으로 성평등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걸캅스]가 시도하는 분별없는 성역할 전환극은 결국에는 페미니즘 상술이 빚어는 촌극일 뿐이다. [청년경찰]아류작으로 보이지 않게끔 닳아빠진 성역할 전환극으로 열쇠 구멍을 맞춘것 뿐이다. 흔하지 않은 여성 중심의 서사로 엮었을 뿐 극은 매우 전형적으로 흐른다. 고민없이 페미니즘 상술로 성역할 전환을 시도했을 뿐이라 남성 중심의 서사로 전개될 때보다 더 멍청해졌고 더 답답해졌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직업 의식이 투철하고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자세는 본받을만하지만 이들이 실전에서 경찰로서 하는 일이란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미란다 원칙을 읊고 수갑을 채우는 정도라서 신뢰가 안 간다. [언니]처럼 전적이 화려한 배우를 섭외하여 원피스에 하이힐 신은 날씬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을 제압하는 것에서 설득력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목소리만 컸지 실전에선 비리비리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여형사는 비현실적으로 특출난 능력을 갖고 있는 동료가 cctv로 범인의 이동 경로를 전부 다 알려줘도 잡지를 못한다. 범인들의 집결지인 클럽에는 촌스러운 하와이 분위기의 대자 남방을 입어도 통과가 되는 미모라서 잠입에 성공하지만 손한번 못쓰고 범인들의 마수에 걸려드는 한심함까지 보인다. 라미란이야 프로레슬러 특채로 경찰이 됐다는 설정이라도 있지만 이성경은 자신만큼 무능한 동료 남자 형사들을 비난만 할 줄 알지 뭐 하나 똑부러지게 행동하는게 없다. 수영이 연기한 천재 해커의 지능을 이성경 역에 주어 라미란과 차별화된 개인기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걸캅스]의 이성경은 여경 정원을 만들면 결과가 이렇게 딱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인물이다.

 

알고보니 남자 형사만큼, 혹은 남자 형사보다 능력있는 여형사의 활약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배우에게 배역에 걸맞는 몸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어야 했다. 예전 [하울링]에서 이나영, 올 초 [뺑반]의 여형사인 공효진, 염정아를 봤을 때도 느낀거지만 한국영화의 능력있는 여형사들은 입으로만 수사를 한다. 존재만으로 묵직함을 줄 수 있는 유능한 여형사상을 만들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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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아무리 코미디라지만 너무 과장돼 있어서 비현실적이고 범인의 실체를 찾는 과정도 우연에 기대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위기에 빠질 때마다 아무 개연성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로 상황을 모면한다. 경찰서 민원실이 그렇게 한가한 곳인가? 두 멍청한 여경은 몸도 못 쓰고 컴퓨터도 못한다. 리벤지 포르노에 노출될 위기에 처한 20살 여대생을 살리기 위해 단서를 찾는 건 대부분 알고보니 국정원 출신의 천재 해커라는 민원실 여자 동료인 수영이다. 이들이 사전 조사를 하는 장소는 근무 시간중의 민원실이다. 피시방에서 노는 것처럼 민원실에서 소란을 떨며 사전 조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과장돼 있다. 불법 문신 시술소를 찾아다니며 매직 퍼퓸의 정체를 찾는 과정도 억지스러운 방식으로 무모하게 풀어나갈 뿐이다.

 

두 여경은 정의감에 불타 의기투합하긴 했지만 수시로 수십대의 cctv상황을 보고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리벤지 포르노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는 것도 민원실 여자 동료 덕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게 없다. 머리도 못쓰고 신체는 더 못쓴다. 범인이 포박해 놓은 끈을 풀어내는 방법은 끈이 묶인 기둥을 힘으로 비비는 것이다. 영화는 여경의 활약을 통해 성역할 전환극의 쾌감을 보여주려 했지만 의도와 달리 머리도 나쁜데 몸까지 둔한 무능한 여경의 한계를 자폭하듯 보여주는 식이다.

 

경찰을 채용할 때 해당 보직에 맞는 인재가 아닌 남녀평등의 기준으로 정원을 채우면 현실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장면마다 보여준다. 온갖 사람이 총동원되어 눈과 귀가 되어주는데도 주접만 떨 줄 알지 범인 제압할 수 있는 완력은 새마을금고 여직원만도 못하게 굼떠서 상황을 더 엉망으로 만든다. 쿠키 영상에서 두 여경은 표창장을 받는데 영화에서 하는 짓을 보면 시말서를 써도 모자를 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페미니즘 상술이 먹혀서만은 아닐 것이다. 휘발성이 강하긴 하지만 [청년경찰]처럼 순간순간 호흡이 짧은 웃음을 수시로 안겨 줘서 상황극의 엉뚱한 재미는 있다. 여형사의 활약을 세뇌시키는 극의 흐름과 무관하게 오락성은 괜찮다. 적절한 시점마다 나오는 카메오도 재밌다. 하정우가 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하정우 친구들이 여러명 나와서 하정우가 떠올랐는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하정우가 카메오로도 나왔다. 하정우가 친구들 키우려고 애를 많이 쓰는구나 싶었다. 성동일과 안재홍도 결정적인 순간에 효과적인 카메오로 긴장감을 살려준다. 배역간에 주고 받는 대사의 호흡이 좋다. 농담을 표현하는 방식에선 [청년경찰]의 수법을 잘 흡수한 것 같다. 관람전에 가졌던 선입견 때문에 기대를 전혀 안 해서 그런가 예상보단 많이 웃겼다.

 

극 자체가 입체적인 여성 배역을 구축하기 위한 고민도 없고 변질된 페미니즘 운동과도 거리가 멀어서 불편할 것도, 거북할 것도 없었다. [청년경찰]같은 작품을 만들어 돈을 벌고 싶은데 [청년경찰]처럼 남자 두명을 주인공으로 만들면 표절이 되니까 편의상 성역할 전환을 시켜서 여성판 [청년경찰]로 면죄부를 받으려는 것이다. 종목과 성별만 바꾼 [국가대표2]의 전철을 밟은 것인데 성별 전환이 이루어졌으니 그에 따른 기본적인 입체감은 부여된다. 박미영 배역의 한계는 라미란이 연기력으로 극복했다. 라미란은 괜찮은데 이성경이 문제다. 너무 여리고 정서적으로 어리다. 툭하면 맞고 툭하면 질질 짜는 멜로드라마 연기를 보면서 정말 이성경 외의 대안이 없었는지 궁금했다.     

 

남자들은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범죄자로 묘사될 뿐이지만 주인공인 두 여경이 워낙에 무능하게 나와서 남성 혐오로 읽히진 않았다. 이런 면에선 오히려 비겼다. 여자가 남자한테 이 정도로 얻어 터지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한국영화도 오랜만에 봤다. 이 작품에서 여자나 남자나 얻어 맞을 때는 똑같이 굴욕적으로 당한다. 권고 사직의 위기를 특유의 직감과 유능함으로 해결하는 두 여경의 활약을 보여주려 한 작품이라서 범인한테 칼맞고 배맞고 쥐어 잡히는 여경의 모습은 의도와 달라진 것이겠지만 그 바람에 예상과 다른 질감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었다.

 

소재가 시기적으로 버닝썬 사건과 겹쳐서 운대도 좋았다. 기본 설정에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예전 [보스상륙작전]같은 영화처럼 시기적으로 운대가 풀린 것 같다. 위하준의 외모 설정에서 승리가 겹치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승리의 행실을 아는 관계자들은 많았을테니 승리를 모델 삼아 위하준의 역할을 만든것 같았다.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승리와 굉장히 비슷하다. 스타도 없고 어중간한 중형급 규모의 상업영화에 리벤지 포르노의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도 가볍다.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도 매우 엉성하고 어설프지만 크랭크 업 하고 비교적 제 때 개봉할 수 있었던건 운좋게 맞아 떨어진 소재 덕분인 것 같다. 여전히 뜨거운 버닝썬 사태만 없었다면 한 1년은 묵을 창고영화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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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5-10 07:35:54

결국 재미없다로 봐야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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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08:38:41

 델마와 루이스 좋아요

2019-05-10 09:37:51

어우 신랄하네요 저는 꽤 재밌게 봤는데 오락영화로는 나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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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09:41:47

안그래도... 치안조무사로 놀림당하는 무능한 여경상을 영화로 더 보여준꼴이네요... ;;

차라리 원더우먼이나 캡틴마블처럼 강한 여상이미지라도 만들어주려나 했는데, 이번리뷰를 보니까... 너무나 뻔한 영화네요... ㅎㅎ

2019-05-10 12:47:39

델마와 루이스 좋아요 2

글 잘 읽었습니다.

2019-05-10 13:58:24

으아아 뼈 때리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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