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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기생충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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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26:04

 

김기영이 좋아했을까


 

[스포일러 있음]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작품 중 오프닝 장면이 가장 짧다. 인물들의 과거나 배경설명 없이 본론부터 제시한다. 예외적으로 긴 부분이 있다면 스크린에 제목이 표기되는 속도다. 덕분에 '기생충' 이라는 글자가 적히는 동안 전면 배경을 통해 두 가지를 볼 수 있게 된다. 기택 (송강호) 가족이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 것과 프레임 왼쪽에 배치된 양말 빨래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는 것. 중반부에서 박 사장 (이선균) 이 계층과 지위를 구분하는 의미로 '선을 넘는 행위' 를 거론할 때 예시로 든 냄새 문제가 시작부터 암시되고 있다.

 

 

보는 동안 관객들에게 '오도라마 카드' 를 배포하거나 4DX로 상영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반지하집 곰팡이, 덜 마른 양말, 오줌 지린내, 채끝살 넣은 짜파구리, 비릿한 피, 변기 구정물, 산수경석에서 풍기는 돌 냄새, 부잣집 사모님 연교 (조여정) 의 발 냄새 등 넣을 향기가 많지 않았을까. 4DX가 향기 효과가 가미할 수 있는 상영방식이라 딱 적합할텐데. 물론 그렇게 상영을 추진했다가는 망할 가능성이 컸을테니까 냄새와 관련된 요소들은 모두 시각적으로 암시된다. <기생충> 에서 제시되는 냄새가 대부분 생활환경에서 비롯되니 그럴만도 하다. 덕분에 눈으로 봐야할 작품 속 프로덕션 디자인을 코로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생생함이 극대화 되어있다. 참고로 실제 사회를 잘 반영했다는 의미에서 생생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질감이나 느낌이 오는 사실성이 보는 사람을 대단히 폭력적으로 자극한다. 작품도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인해 관객이 진저리 치겠다고 예상했는지 한 번씩 '영화에 불과하다' 고 증명하는 장면들을 삽입한다. 대표적으로 박 사장 집에 기택 가족만 남아있을 때 아내인 충숙 (장혜진) 이 저택 밖으로 투포환을 던져 무언가를 깨뜨리는 순간이 있다. 정상적이라면 애초에 밀집된 동네에서 투포환 날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고, 집 밖에 있는 무언가가 크게 박살나면 동네에서 한 바탕 소란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용하다.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지만 결국은 영화 속 세상임을 인지시키고 있다.

 


'이것은 영화일 뿐' 연출은 <기생충>이 다른 감독들에 관한 오마주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번 더 부각된다. 평소 봉준호 감독 인터뷰와 달리 본편을 보면 다른 영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느끼긴 힘들었는데 이 작품은 예외다. 거의 명감독들이 창조한 레퍼런스의 규모를 한껏 확장시켜다 작품을 만들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영화인생 통틀어 가장 신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많은 분들이 느끼셨겠지만 박 사장 저택에서부터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까지 보여지는 계단 이미지는 김기영 감독이 <하녀> 등에서 계급을 상징하려고 만든 저택 계단의 끝없는 확장같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음습함도 재현해보려 한다. 아예 세트 전체를 수영장에 집어넣어 만들었다는 홍수 장면, 작품 속 히든카드라 할 수 있는 근세 (박명훈) 의 은신처인 지하실의 음습한 디자인으로 기요시와 비슷한 기운을 지니려 한다. 근세가 첫 등장하는 장면은 김기영 감독의 <육식동물> 오마주지만 외형과 움직임은 배우 드니 라방이 연기한 불세출의 캐릭터인 광인 메르드가 떠오른다. 평상시 좋아했던 감독들이 지닌 기괴한 요소들을 돈 들여다가 직접 재현하고픈 영화광의 아이같은 욕망이 최대한 반영된 것만 같다. 작품이 외적으로는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차이와 대립을 냄새를 통해 접근했지만, 거기서 담론을 더 진행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기생충>은 직관적인 작품이다. 만약 이야기가 풍성해 보인다면 그건 사회적 함의보다 다른 극영화의 레퍼런스를 찾는 데서 유발되는 면이 커 보인다.


 


* 이화시 급 패왕색 눈빛연기를 보여주는 박명훈 배우 


 

<기생충>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영화인은 누구일까. 클로드 샤브롤도 언급되지만 아무래도 김기영이다. 실제로도 봉준호를 비롯해 현재 영화인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은 몇 안 되는 선배 영화감독이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하필 김기영의 후기 경력에 매혹된 것 같다. 아시다시피 김기영은 후배영화인들에 의해 90년대에 기적적으로 재발견됐다. 당시 그를 재발견한 후대 영화인들도 대부분 후기 김기영을 자주 거론했다. 재밌는 부분은 재발견될 당시 생존해 있었던 김기영의 반응. 그는 후기 작품들을 부끄러워 했다. 군부정권 규제에 강제 타협하거나 제작자 지인이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연출한 작품들이 많았던 탓이다. 그러나 당시 VHS 등을 통해 그나마 구해보기 쉬웠고, 그때그때 드립으로 막 채운 듯한 대사들과 설정, 변태적이고 자극적인 시각적 이미지가 극대화 됐던 경향을 보여준 것이 후기작들이었다. ‘그 시대에' 그런 표현을 했다는 점이 열광을 불러 일으켜 재평가 받은 근원적 이유였으리라. 이런 특징은 당대 비평과 흥행성을 다 잡았던 김기영이란 영화인을 기괴함을 통해 시대에 저항했다거나, 음침한 변태로만 해독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김기영 작품들 속 비현실적이고 기괴해 보이는 이미지는, 그 바탕이 되는 실제 한국사회와 긴밀한 연관성을 유지해 왔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성기 시절 김기영에게는 리얼함이 있었다. 그러나 <기생충>이 김기영 연출작으로부터 받은 영향엔 리얼함이 없고 '기괴하고 변태스러움' 만 있다.

 

 


<기생충>은 현재 한국사회와의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다. 외국에서 알 정도로 화제가 됐던 사건들 정도로 추려다가 적당히 병풍처럼 전시한 수준이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서 받은 인상과 비슷하다. 다만 전작들에서는 그렇게 병풍처럼 전시해도 풍자가 될 여지가 있었는데 <기생충>은 그렇지 않다. 작품 자체적으로도 사회적 함의가 드러날만 하면 장르적인 정체성을 먼저 내세우려고 한다. 기택 가족이 범죄를 계획하고 승승장구 하는 전개, 박 사장 집 가정부 문광 (이정은) 에게 누명을 씌우는데 성공하는 장면까지 이르는 유려한 리듬감, 문광의 남편 근세 (박명훈) 가 등장하자 장르적인 차원에서 분위기가 전환되는 점만 봐도 그렇다. 기택 가족은 기본적으로 능력이나 생활력이 뛰어나고 언제든 완전범죄를 기획할 수 있도록 묘사된다. 작품이 그들에게 부여하는 가난은 꾀죄죄한 외형과 집 내부, 와이파이를 못 한다는 정도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모습을 느끼기 힘들고, 이들 가족을 통해서 작품에서 전시하듯 보여주는 한국의 사회문제도 수박 겉핥기처럼 다뤄진다는 인상을 준다.

 


요컨대 홍수 장면과 이재민들이 모인 체육관 장면은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 진도 실내체육관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기택 가족이나 <기생충>이란 작품은 세월호 참사와 전혀 연관 지점이 없다. 기정 (박소담) 이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듯한 정 기사 (박근록) 에게 콕 찝어서 "혜화역에 세워달라" 고 요구하는 장면은 동일 장소에서 여성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일어났던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하철역 부근이 만남의 장소일 수도 있지만, 그런 로컬리티는 지하철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나 알 일이다. 사기 치는 기정에게 혜화역 시위 당시 페미니스트를 자칭했던 사람들의 행태를 대입시켜 비꼬려는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기생충>에서 이런 사회적 함의를 연상하는 자체가 과잉해석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에게 '대만 카스테라 사업 실패' 라는 설정을 부여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뚜렷하게 특정 문화권을 반영한다고 보기 힘들다. 박 사장 부부가 외국어 사전에 등재된 한국 단어인 'chaebol' 스러움을 보여준다고 볼 수 없고, 기택 가족이 위기에 처하는 이유를 한국 사회 문제에서 찾으려 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기택 가족이 작품 속에서 위기에 처한 이유는 사회에 의해 벼랑에 내몰려서가 아니다.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이를 숨기려 했다가 들통났기 때문이다. 이건 꼭 특정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기생충>은 그렇게 보이려 애쓴다. '한국사회 속' 계급과 가난을 다루고 있다며 논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큰 의미로 작용될 것 같진 않다. 한국사회가 배경인데 한국 관객들 보라고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었겠지만...



물론 한국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기생충>이 개봉하면서 김기영 감독에 대한 존경을 주장하는 비평이나 언급들이 여러번 나왔다. 마침 한국영화가 탄생 100주년 되는 해에 칸느도 제패했으니 이럴 때 선배 감독 덕 봤다고 해 주면 님도 보고 뽕도 딸 수 있으리라. 충무 김밥의 그 충무하고 상관없는 충무로도 입이 조커마냥 찢어졌을거다. 그렇게 국내외에서 환대받은 <기생충>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김기영이 봤다면 좋아했을까? 봉준호 감독 덕분에 김기영이란 영화인이 기괴한 상상력을 지닌 영화인으로 간만에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 기괴함이 작가적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견지한 결과라는 점은 여전히 부각되지 못했다.


김기영이 <기생충>을 봤다면 갸우뚱하며 되묻지 않았을까. 아무리 내가 생전에 인터뷰나 사석에서 "난 변태니까" 라고 자처했다지만, 그걸 정말 액면 그대로 믿었니? 당연히 명석하고 여우같은 봉준호 감독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을리 없다.



* 별 상관없긴 하지만 웃었던 장면. 이선균이 조여정의 가슴과 음부를 어루만지는 모습은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의 75년작인 <금환식> 포스터 속 괴수들을 연상케 한다. *

 

 

봉준호 감독은 김기영을 스승처럼 부각시키면서 자신의 변태스러움도 인정 받았다. 감독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존 허트와 루크 파스콸리노가 연인 사이였다거나 김혜자는 아마 원빈이나 진구와 섹스하는 사이 였을거라는 등 설정과 암시놀이를 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섹슈얼하다기 보다는 그저 뇌내망상에 머무른다는 생각만 갖게 했다. <기생충>은 제법 음란하다. 연교와 딸 다혜 (정지소) 가 기우의 친구 민혁 (박서준) 을 과외선생이 아닌 다른 용도로 활용했을지 모른다는 암시도 그렇고, 박 사장 부부가 소파 위에서 섹스하는 장면은 옷을 모두 입었는데도 너무나 기괴하고 선정적으로 보인다. 봉준호 감독 작품에서 처음으로 느낀 음란함이었다. 매 번 공공연하게 작품과 인터뷰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해 집념을 밝혀왔는데, 꾸준히 노력하니까 마침내 통하는구나. 당신 정말 섹스 매니악이네요. 님 진짜 변태임. <기생충>은 마침내 인정받은 '변태 봉준호' 의 위엄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호감 갖기 힘들게 만든다. 봉준호 감독은 스스로 갖고 싶었던 이미지를 마침내 확립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존경하는 김기영에게 오랫동안 덧씌워진 대표적인 오독을 재활용했다. 그걸 존경으로 쳐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싫다.


p.s.



1) 오-도라마 카드는 복권 긁듯 손톱으로 긁으면 냄새가 난다. 1981년에 존 워터스 감독이 <폴리에스터> 상영을 위해 고안한 것이다. <폴리에스터> 본편 상영 당시 특정 지점마다 몇 번 냄새를 맡으라고 스크린에 숫자가 나타나는데 이에 맞춰 카드 속 냄새를 맡는 것이다. 냄새 종류는 장미꽃도 있고, 스컹크 냄새, 운동화 발 냄새, 방귀냄새 등등이 있다. <폴리에스터> 레이저디스크부터 블루레이까지 출시될 때마다 매번 부록으로 함께 포함되어 있다. 2차 매체에 부록으로 포함된 카드들이 실제로 긁히는지는 모르겠다.




2)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기택이 박 사장을 칼로 찌르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도망칠 때 장면에서 좀 궁금한 것이 있다. 어째서 도망치는 장면을 부감 숏으로 찍었을까. 충숙의 말처럼 기택이 도망치는 모습을 바퀴벌레처럼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 GV가 열려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물어보고 싶다.


 

3) 김기영 감독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더 좋아했을 것 같다. 근데 또 임상수 감독은 김기영과 비슷하다는 말을 싫어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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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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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09:36:23

 멋진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WR
2019-09-28 21:25:29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oondance 님.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별개로 기왕 이렇게 된 거 기생충이 오스카상까지 함 받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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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12:33:15

극장에서 봤을 때 저 구호품 나눠갖는 장면에서

가운데 웃도리 갈아입는 사람이 꼭 봉준호 감독 까메오인 거 같았어요... ㅋㅋ

안경 벗고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근데... 헤어나 몸매나 느낌이나... 진짜 까메오는 아닐까 싶은... ㅋㅋㅋㅋㅋ

WR
2019-09-29 02:04:06

작품 볼 때 그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었는데 Deckard 님 말씀 듣고 나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 보고 다시 제 캡쳐사진을 보니 진짜 봉준호 같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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