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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메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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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25:34

 

나는 메기로소이다

 

[스포일러 있음]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일하는 방사선사 (박경혜) 가 남자친구와 엑스레이실에서 방사에 열중하고 있다. 두 사람이 벌이는 피스톤 운동의 반복작용에 기계가 반응했는지, 아니면 누가 몰래 들어와 찍었는지 갑자기 찍힌 엑스레이. 남녀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 한 장이 찍히고 엑스레이는 섹스레이가 된다. 병원이 성추문에 휩싸이면서 간호사 윤영 (이주영) 은 잠시 긴장한다. 사진 속 두 물건들이 남친 성원 (구교환) 과 자기 것인가 싶어서다. 그녀를 의심하던 부원장 경진 (문소리) 은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퇴사를 권하지만 윤영은 일단 꿋꿋하게 출근한다. 그런데 어느날 윤영과 경진을 제외하고 병원 직원들 모두가 결근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두 사람은 병원 직원들이 스스로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이라 여긴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찾아나선다. 이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화자는 병원이 어항에 넣어 키우는 메기 (천우희) 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 는 줄거리를 읽고 나면 본편이 무척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제안과 지원을 받고 찍었다는 사실까지 알면 더더욱. 원래 국가 공공기관들이 관료적인 인상을 쇄신하기 위해 당대 문화들 중 지나치게 과격한 것들만 골라다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이 작품은 특히 상상을 못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줄거리가 국가인권위원회와 어떻게 어우러 질까. 물론 뚜껑을 열고 나니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게 됐다. 작품은 세 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져 있고 간호사 윤영이 주인공이지만 다른 인물들에게도 비슷한 무게감을 부여한다. 그래서 엑스레이 관련 사건은 부원장인 경진 위주로 진행되며 초반에 마무리된다. 이후 직장에서 윤영이 준 백금 가락지를 잃어버리고 동료 직원들을 의심하는 애인 성원, 윤영이 성원을 데이트 폭력 가해자로 의심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세 이야기는 동일한 등장인물들, '믿음과 의심' 이라는 소재 아래 연관되어 있다. <메기> 예고편과 줄거리는 거의 첫번째 이야기만을 언급한다. 영화 예고편은 최종 편집본에서 삭제된 장면이나, 예고편만을 위해 찍은 장면이 삽입될 때가 있다. 아니면 본편이 특정 시점에서 이야기 전개를 달리할 경우 그 정보를 숨기기도 한다. 호기심을 끌어내야 하는 예고편 특성상, 이런 사정과 속임수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뭐랄까.. 끝내 사기 당했다는 기분을 갖게 하는 활동사진이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첫번째 이야기에는 독특한 유머가 잘 녹아들어 있었다.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귀여운 유머와 의미심장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이 작품의 독특함을 배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첫번째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 무대인 마리아 사랑병원의 인테리어가 대표적이다. 안내 데스크에는 점심 시간 공지를 위한 두개골 하나가 떡 하니 놓여져 있고, 건물 내벽에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전신 해골들이 그려져 있다. 병원에 해골이 있는 풍경은 자연스럽지만 이를 전면적으로 이용하면 이상하게 보인다. 마리아 사랑병원이 그렇다. 해골은 곧 병원이 환자를 대하는 냉소적인 마음가짐처럼 보인다. 요컨대 '어차피 겉껍데기 다 벗겨버리면 속은 똑같은 해골' 같은. 이는 병원 직원들이 스스로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이라 여겨서 모두 결근했다고 생각하는 부원장 경진의 믿음이기도 하다. 윤영은 모든 사람이 다 믿을 수 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경진을 데리고 여기저기 오고 간다. 첫번째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무려 문소리가 젊은 배우에게 리드당하는 생경함을 보는 재미가 존재한다. 동시에 그 괴이한 여정을 수행하던 중 어린 시절 오해받아 따돌림을 당했던 경진의 과거이야기를 거론하며 인권위원회 지원작 다운 주제의식을 은근하게 녹여낸다. 생뚱맞게 보이는 이야기나 구성으로부터 예상 밖의 감성을 끄집어 내는 독특한 연출은 이옥섭 감독이 과거 연출했던 단편들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메기> 초반부는 그 단편시절 연출력이 한껏 살아 있었다.

 


작품은 성원과 윤영 위주로 진행되는 두세번째 이야기에 이르며 각 서사가 가지고 있는 주제에 직접 부합해서 진행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특이점이 있다면 두번째 이야기부터 메기의 특성이 활용된다. 평소 윤영은 병원 어항 속에 사는 메기에게 하소연 삼아 그날 겪은 일들을 말하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보통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 혹은 주요섭의 옥희같은 아이의 시선처럼 다른 존재를 통해 당대 사회를 바라보는 식의 화법을 취해왔다. 그런데 <메기>는 메기를 단순히 바라보는 화자에만 머무르게 두지 않는다. 실제로 메기는 지진감지 능력이 뛰어난 생선이고, 해당 특징에서 영감을 받은 듯 서울 도심에 싱크홀이 생겼다는 설정을 등장시켜 이야기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 그리고 작품에서 메기가 싱크홀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한 번씩 어항에서 튀어오를 때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나름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그런데 <메기> 에서 싱크홀은 상징 이상으로 흥미를 자아내지 못한다. 믿음의 깊이 등으로 은유되지만, 중요한 이야기 소재보다는 도시공간을 더 기이하게 만드는 이미지로서만 기억된다. 성원과 윤영의 서사 역시 첫번째 이야기처럼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없어서인지 평범해 보인다. 이 재기발랄함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 싱크홀이 생각보다 별 존재감도 없고 엑스레이 사진만큼 매력적이지도 않아서일까. 물론 두번째 이야기는 최소한 작품 방향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싱크홀 덕에 성원이 공사장 인부 일자리를 얻는다는 설정이고, 직장동료들을 가락지를 훔쳐간 범인으로 의심하는 계기나 전개도 자연스럽게 납득됐다. 반면 '내 애인이 데이트 폭력 가해자인가?' 를 다루는 윤영의 이야기는 그런게 없다. 믿음과 의심이라는 측면에서 다뤄질 수는 있는 소재다. 그런데 윤영이 의심하는 성원의 모습들은 연인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상적인 행동들에 가깝다. 게다가 윤영에게 의심할 단초를 제공하는 사람은 무려 성원의 전 애인 지연 (이주영) 이며, 그녀는 작품에 잠시 등장해서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하고 사라진다. 윤영은 애인에 대한 의심 이전에 자신이 직접 듣거나 보지 못한 풍경에 관한 의심부터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윤영은 성원을 의심하기 보다 얘가 나를 진짜 죽이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에 먼저 휩싸인다.

 

 

<메기>에서 경진과 성원의 이야기는 그런 확신에 관해 재성찰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경진은 결근한 병원직원 집에 문 따고 찾아갔는데 그가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이라서가 아니라 다쳐서 못 나왔음을 알게된다. 성원은 동료의 발에 끼워진 비슷한 모양의 가락지를 보고 그를 추궁한 끝에 받아내지만, 실은 비슷한 모양의 발가락지임을 알고 자기 오해를 깨닫는다. 마지막 데이트 폭력 이야기는 사건에 대해 의심하는 방향과 그 결과를 너무나 확고하게 만들어뒀다. 작품 속 데이트 폭력 소재는 앞의 두 이야기가 다뤘던 따돌림과 청년실업 등 다른 사회문제보다 더 직접적으로 부각됐지만 이를 끌고 나가는 논리가 허술하다. 최소 성원이 동료를 의심하는 두번째 이야기 수준의 전개는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잠깐 등장하는 성원의 전 애인이 말하는 증언 하나, 성원이 자신을 죽이려 든다고 생각하는 윤영의 착각만으로 끌고 간다. 이를 제외하면 성원이 자신을 자주 때리는 윤영에게 "나는 너 안 때렸는데 너는 왜 나 때리냐" 라고 말하는 복선 기능을 하는 대사 뿐이다. 그러니 결말에 이르러 황당해질 수 밖에.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듯, 성원이 정말 데이트 폭력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를 모두 오해로 끝낼 수 없어서 한 개 쯤은 진짜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성원의 정체에 이르는 과정과 반전이 억지스러워서 헛웃음만 나온다. 동시에 작품 전체에서 성원이 윤영에게 보여줬던 일상적인 행동들을 데이트 폭력에 대한 암시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규정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메기와 싱크홀에 관한 의미도 그만큼 얕아진다. 결말에 이르면 메기가 세상에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믿음이 거의 확실시 되는데, 한 번 튀어오르자마자 싱크홀이 만들어져 성원이 빠진다. 이 장면을 보고 통쾌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서 메기와 싱크홀은 믿음과 의심에 관해 사유를 제공하는 소재가 아니라 그저 폭력을 저지른 남자를 징벌하는 수단으로서만 기능한다. 그래서인지 <메기>는 결말에 이르면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작' 이라는 타이틀에서 섬찟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이야기는 어떤 합리적 단계의 의심도 없이 '피해자의 목소리가 곧 증거입니다' 식이다. 일반적인 영화면 어 그래 연출자 네 생각이겠지 하겠는데, 명색이 국가인권위원회 이름을 달고 만든 작품 아닌가. 이런 논리가 현실에서 오용 됐던 사례도 많았다는 사실을 얘기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이야기로 극영화를 만들면 그 위험성을 고려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작품은 의심과 믿음을 부르짖던데, 정작 국가인권위원회는 각본 검토할 때 그 태도를 빠뜨렸나 보다.


<메기>는 메기를 통해 한국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우화인척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성향 흐름에 발맞춘 무리한 후반부로 귀결시키기 위해 한국사회 속 문제들을 다루는 척 이용한 결과물에 가깝다. 처음엔 재기발랄한 매력을 발휘했던 이미지들이 말미에서 되려 작품 자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편협한 시선을 증명하는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국가기관이자 동시에 영화제작사, 그것도 전작으로 정지우 감독의 <4등>을 제작했던 그 국가인권위원회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당황스럽다.

 


p.s.


1) 이옥섭 감독 작품은 <메기>보다 올 해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단편인 <로미오: 눈을 가진 죄>라던지, 아니면 차라리 <메기> 3만 관객 돌파 영상이 더 재밌었다.


2) 이옥섭 감독이 구교환 배우와 함께 연출했던 단편 <걸스 온 탑> 속 큰 선인장이 <메기> 에도 나온다. 윤영의 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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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9-10-23 16:44:23

 저는.. 오늘 봤는데;; 제가 본 이n구 콤비 작품 중에선 별루;;;;;; ㅜㅜ

WR
1
2019-10-23 23:45:18

아직까지는 이옥섭 감독님이나 이&구 콤비는 단편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2019-10-24 13:32:03

동의합니다ㅋ

WR
1
2019-10-24 17:51:35

개인적으로는 임필성 감독님의 경우처럼 자꾸 단편에서만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행보를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뭐, 이제 장편 데뷔작이니까 다음 작품에서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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