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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82년생 김지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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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25:11



메이크업하고 립스틱 바른 돼지




[스포일러 있음]

대현 (공유) 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아내 지영 (정유미) 이 이상행동을 보여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다. 광고기획사에 다니던 중 대현을 만나 결혼한 지영은 딸 아영을 임신하고 산후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주부다. 지영은 출산 후에도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다 어느 날, 대현의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어머니 (김미경) 에게 친어머니 미숙 (김미경) 이 빙의된 듯 말한다. 이후 대현의 전 애인과 돌아가신 할머니 (강애심) 흉내도 내는 등 이상증세가 심해진다. 대현이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전전긍긍 하는동안 <82년생 김지영>은 미숙부터 시작해서 지영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여성차별을 훑기 시작한다.



서양 격언으로 알려진 '립스틱을 바른들 돼지는 돼지다', 즉 '돼지 얼굴에 립스틱' 이란 비유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개념으로만 따지면 16세기 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작가 스텔라 기븐스가 1946년에 쓴 소설인 <웨스트우드> 에서 '돼지에게 립스틱을 바른다' 로 해당 문장이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가 사라 페일린에게 해당 비유를 썼다가 성차별 발언이라는 역풍을 맞는 바람에 언제부턴가 대표적인 여성혐오 발언처럼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의미로 치장한들 본질을 바꿀 수는 없음을 뜻한다. 이 절묘한 격언이 다시 떠오른 계기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였다. 원작은 2017년 한국에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후 중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 호응을 얻으며 나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페미니즘의 코란' 으로 비유됐으며 완성도에 관한 갑론을박으로 문학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기도 했다. 논란의 근원은 주로 김지영이 당한 차별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그 시대에 이런 일이 있을 리 없다, 있다 등으로 일반화가 가능한지였다. 무릇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 단순화를 거친 결과물이 창작물인 만큼 어쩌면 이해 가능한 성질의 논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는 순간 작품 수준도 함께 결정된다. 그 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은 논쟁으로 쳐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건이나 주인공을 얄팍하게 단순화시킨 소설이다.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라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극적인 TV 드라마처럼 차별의 차별로 이어지는 전개방식을 취했다. 이 원작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야기 진행방식 뒤에 보이는 강렬한 욕망이 모습을 드러낼 때였다.



원작은 주인공 김지영의 이야기를 현실 기반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서 연구, 정책자료, 통계 등을 인용하며 르포 형식을 가미했다. 지영이란 인물과 <82년생 김지영> 서사가 곧 한국사회에 대한 상징이자 고발의 최전선이라는 식으로 공신력을 얻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본문에다 수많은 각주를 달아 관련 자료를 접목시키고자 하는 작가주의적 욕망, 한국여성인권의 실태를 알리겠다는 공명심도 컸을지 모른다. 그 결과, 원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자 여성인 김지영에게 끊임없이 고난을 안기며 착취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유교사회에 대한 비판을 다루려 했다면서 정작 노출 착취에 방점이 찍혀 있던 '홍살문' 류 사극을 봤을 때 느꼈던 난감함과 비슷하다. 지금도 원작소설이 지닌 욕망의 의중이 뭔지 궁금하다. 공신력을 얻으면 작품이 지닌 빈약한 알맹이가 가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원작 속 김지영은 통계와 자료를 '보편적으로' 대변하는 도구에 가깝다. 인물이 아니다.

 

 

어째서인지 영화판 <82년생 김지영>은 원작에서 이야기 자체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른들의 사정으로 바꿀 여지가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건 안되겠다 싶었나보다. 원작의 르포 형식으로부터 김지영을 해방시킨다. 덕분에 인간으로서의 김지영이 부각되며 원작에서는 악역이었던 남편 대현의 비중과 포지션이 달라지면서 부부 이야기가 나름대로 재미를 찾는다. 원작은 김지영이 어릴 때부터 당한 성차별 사례를 제시하다가 끝에 이르러 이 모두가 그녀와 대현의 정신과 상담기록 내용이었음을 알리며 마무리 된다. 영화판은 중간중간 대현이 지영 몰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장면을 통해 그녀가 환자임을 더 명확히 해두고 있다. 그래서 김지영의 정서상태와 공허해진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판은 관객들에게 '너와 나의 이야기' 로 다가가기 용이해졌다. 학생시절 김지영이 남학생에게 스토킹 위협을 받거나, 회사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발견하고 불안해 하는 식의 원작 이야기들은 여전히 나온다. 그러나 전반부만 보면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사례를 제시하고 뒤이어 불안감에 떨었을 여성의 심리를 공감하게 만드는 방식이 더 세련됐다. 김지영의 말이 통계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 일원이 된 여성' 이 내는 목소리로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웃기다. 등장인물 서사를 유려하게 다룰 수 있는 매체는 소설이다. 문장으로 세세하게 묘사가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데 제한된 시간 안에 표현해야 하는 영화판이 오히려 인물에 더 신경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다니. 영화판에서 김지영이 집이나 밖에서 주부가 된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인상깊은 이유다. 누군가는 승진이 좌절됐거나 엄마가 되면서 꿈을 포기해야 했다. '만약에' 를 가정하며 이들이 웃고 떠드는 장면들은 막막한 현실을 가벼운 담소로 잊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 소소하고도 즐거운 시간이 갑작스럽게 단절되고 김지영 혼자 식탁에 앉아있는 샷이 등장하며 현실을 자각시키는 연출이 나올 때, 작품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정유미 배우의 호연, 김태성 음악감독의 풍성하지만 예민한 듯한 현악 스코어까지 더해지니 거의 칼날 위를 걷는 위태로운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영화판은 '원작 만듦새를 보완하기' 를 최대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곧 한계를 마주한다. 영화판은 원작이 과격한 형식으로 표현한 여성 고난 서사를 공감시키려는 방편으로 신파를 택했다. 지영은 새로운 광고회사로부터 영입제안을 받는다. 그녀는 불안정한 내면을 진정시킬 기회를 얻었지만 시어머니가 반대하면서 좌절된다. 그리고 친어머니 미숙이 지영의 상태를 알게되는 중반에 이르면서 신파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영화판은 딸을 본 미숙이 흘리는 눈물을 기점으로 원작에서 가져온 김지영을 비롯한 여성들의 고난사를 덜 과격한 수위로 전시하는 정도에 만족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남성관객들 보라고 만든 예방광고 같은 중후반부는 좋은 연출과 나름대로 개성을 보여줬던 전반부에 비해 평범해진다. 그리고 원작에 존재했던 지영의 취업좌절 이야기로 인해 영화판에서 직장생활과 고뇌를 묘사하는 식으로 대현의 비중이 늘어난 이유 또한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김지영은 과거 광고회사 재직 중에 유능한 팀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경험이 있다. 그녀가 재취직을 추진하는 이유는 마음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함이지만 자아 실현적 측면이 크다. 그래서인지 지영의 취업 좌절 이야기가 등장하자 영화판이 대현과 그 회사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도 일순간 묘해진다. 대현이 다니는 회사풍경이 잠깐 등장할 때마다 그 곳 직원들이 설렁설렁 담배나 피워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남성이 여성보다 손쉽게 사회생활에 진출해서 자기 자아를 실현하고 있다는 시선이 느껴진다. 남녀 불문하고 과연 자신이 꿈꿨던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그 사람이 결혼까지 했다면? 회사생활하는 대현이 구직하던 지영과 대비되는 순간, 비중을 키워서 이해 받을만하게 만들고자 했던 캐릭터가 무너진다. 늘어난 그의 비중으로 인해 한국에서 가족을 만든 부부의 고충에 관한 텍스트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판은 끝내 배려를 가장한 고까움을 드러내며 원작의 저차원적인 전개방식에 잠식당한다. (이는 원작에서 스토킹 당한 김지영을 구해준 아주머니가 '그래도 좋은 남자들이 더 많다' 는 식으로 위로한 대목을 연상케 한다. 혹 다른 성별에 대한 편파적인 묘사로 비판 받을까봐 면피 차원에서 집어넣은 듯한 문장 말이다.) 영화판만 보면 대현은 별 노력도 안 하고 돈 버는 것 같다. 영화판이 보여주는 남성인식은 이 정도다. 그나마 원작에 비하면 낫다는 점이 함정이다.



그리고 지영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쏟은 후 생면부지의 남녀 회사원들로부터 맘충 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에피소드가 삽입되면서 영화판은 한계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해당 장면은 영화판이 지영이 정신적으로 회복하는 서사를 만드는 설정으로 추가된 에피소드다. 공원 벤치에서 아이를 돌보며 커피를 마시다 처음 맘충 소리를 듣는 장면에 이어 두번째. 사실 첫번째도 다소 부자연스러운 상황이지만, 두번째는 더 심하다. 지영이 커피를 받아들다 쏟는 바람에 사과하고 직접 수습한다. 맘충 소리 들을 이유가 전혀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영화판은 주변에 있는 회사원들을 통해 그녀를 기어이 험담 대상으로 올린다. 김지영에게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려 한 것 같지만, 이는 그저 온라인에 적히는 뇌내 망상을 또 하나의 현실 속 성차별 사례화 하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예시가 되기 위해 김지영 캐릭터는 원작에 이어 영화에서도 착취당하는 순간을 겪는다.

 

 

영화판 <82년생 김지영>은 포기했어야 할 원작을 어떻게든 말 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점에서 이미 그 자장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인증한다. 좀 안타까운 부분은 어느 시점까지는 분명 영화판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끝내 원작과 비슷한 수준으로 머물기를 자처한 이유가 뭘까. 보증된 화제성을 그대로 끌고 가자는 데뷔감독과 영화사 간의 타협이었겠지만 아마 내 상상이리라. 덕분에 <82년생 김지영>은 원작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신파가 첨가된 그저 그런 젠더 관련 교육영상... 작품 정도로 여길 수 있다. 전반부가 아니었다면 '영상' 까지만 언급하고 말았겠지. 원작을 읽었다면 영화판은 나름의 장점이 보인다. 돼지에게 립스틱도 발라주고 나름대로 메이크업도 해서 어느 정도 볼만한 돼지로 만들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 물론 돼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p.s.

1)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소망했던 것이 있었다. 기왕 영화화 할거면 아예 본격 오컬트 호러물을 시도해볼 생각은 없었을까. 나는 항상 이 작품을 호러로 영화화 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 <보기왕이 온다>, 그리고 그 소설을 영화화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온다> 를 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 

정유미는 캐스팅 됐을 당시 김지영을 연기하기에는 지나치게 외모가 뛰어나다는 (그러니 이국주에게 배역을 맡겼어야 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스타성보다 연기에 집중하려는 준수한 외모의 배우들이 숙명적으로 겪는 일이다. 정유미는 평범하게 보이는 연기를 누구보다 잘 하는 장점이 있는데, 그래서 김지영 역에 딱 알맞다. 작품과는 별개로 정유미 연기는 필모에서도 많이 거론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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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2
Updated at 2019-11-03 17:34:53

요즘 분위기에 이런 리뷰 쓰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필력 엄청나시네요 ㄷㄷ

영화판에서 확실히 바뀐 대현이라는 캐릭터조차 원작처럼 ‘한남’이라고 까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이동진 평론가님이 작정하고 촌철살인적인 평론을 남기셨던데, 멘탈 대단하시다 싶었습니다

WR
3
2019-11-03 19:09:54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일러장군님.

이동진 평론가님은 절묘하게 줄타기 하시는 글을 잘 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의외로 이 작품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남기셨나 보네요. 한 번 읽어봐야 겠군요. 

17
2019-11-03 17:28:26 (223.*.*.134)

사실 이국주에게 맡겨야한다는 논리는 김지영 소설의 논란을 떠나서 또 하나의 차별적이고 저질적인 논리죠. 쿰척쿰척 메퇘지로 여성을 희화화하기 위한...

10
2019-11-03 17:37:51

그러게요.
막말로 우리나라 비만율은 남자가 훨씬 높던데 ㅎㅎ

WR
1
2019-11-03 19:20:45

사실 그렇지요. 개봉 전부터 저런 댓글이 달린 것이 작품과 관련 없는 코미디언 이국주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고, 정유미 배우의 연기가 어떤지도 나오지 않았을 시점인데 캐스팅 자체가 에러라는 식으로 매도되기도 했으니까요.

14
2019-11-03 17:36:59

전 영화 좋게 봤습니다만 이 비판글은 꽤 공감하면서 읽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의 막바지에서 돼지 언급하시는 부분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더니 이국주 언급하는 대목에서 어느 확신이 들었네요..

WR
5
Updated at 2019-11-03 19:42:04

아. 죄송합니다. 이국주를 캐스팅해야 한다는 비난이 있었다는 정보를 적은 거였는데 처음에 적은 문장을 보니 그게 제 의견처럼 얘기될 수 있겠다 싶어 수정했습니다. 리뷰의 부제는 적어놓고 보니 뭔가 문제가 되려나 생각했는데 제가 보기엔 적절한 비유같아서 쓰기로 한 것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1
2019-11-03 22:12:31

약간 글의 뉘앙스가 애매해서 헷갈렸는데, 그런 의도로 말씀하셨던 거군요. 오독해서 죄송합니다(__)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WR
1
2019-11-04 00:36:47

아닙니다. 제가 잘 썼어야 하는 일이라.
그래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아스 님.

10
2019-11-03 17:37:32

반대로 생각하면 그 정도 수준의 원작으로 이 정도 영화를 만들었다는게 신기하긴 하죠

WR
2
2019-11-03 19:36:03

뭐 사실 이 영화버전도 저한테는 불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만, 원작을 생각하면... 나름 생각은 하면서 만들었구나 했습니다. 작품은 싫었지만 그 원작으로 볼만하게 만들었다는 점과 눈물 흘리게 만드는 연출을 효과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 감독 자체는 몇 편 더 지켜볼 수 있겠다 싶었답니다.

11
Updated at 2019-11-03 18:33:18

 <메이크업하고 립스틱 바른 돼지, 버락 오바마가 사라 페일린에게 해당 비유를 썼다가 성차별 발언이라는 역풍을 맞는 바람에 언제부턴가 대표적인 여성혐오 발언처럼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의미로 치장한들 본질을 바꿀 수는 없음을 뜻한다.> 이 표현을 굳이 넣으시면서 이 비유를 사용하며 글을 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문이 드네요. 버락 오마바 조차도 이 표현을 쓰며 성차별 역풍을 맞았는데 님은 어떤 의도로 돼지는 돼지일 뿐이다. 하필이면 이런 비유를 쓰며 글을 쓰신건지 의문이 듭니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부분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성차별 발언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말이라면 안쓰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서양 옛 격언이라 해도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게 여겨지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류의 말이 있지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이런 말부터 시작해서, 장애인 비하하는 속담 표현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시집살이는 벙어리3년 귀머거리3년. 뭐 이런 말들 말입니다. 오늘날에 이런 속담과 격언들을 누군가를 비하할 수 있는 말임에도 굳이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의문이 드네요.  

5
2019-11-03 19:44:01 (223.*.*.171)

조상님말 하나도 틀린거 없다 라고들 하죠.
돌이켜보면 맞는말 같습니다.

5
2019-11-03 19:53:48

82년생 김지영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구냐구요' 말에는 힘이란 것이 있는데, 예전 격언이라고 해도 오늘날에 맞지 않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비하의 의미라며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는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조상들의 말이 다 맞다니요. 복날에 개 패듯 맞았다. 이런 말 요즘에 쓰면 개를 키우시는 분들은 불편하다고 느낍니다. 옛 조상들이 복날에 개 패서 잡아먹는 문화가 오늘날에는 좋게 허용이 되던가요? 시대가 변하면 언어쓰는 것도 바뀌어야 해요. 격언이나 속담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으로 쓰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보입니다.

WR
6
Updated at 2019-11-03 20:27:43

글쎄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기본적으로 별다른 노력 없이 간단한 조치만으로 더 나은 작품처럼 보이길 바랐다는 의미에서 어울리는 것 같아 인용했습니다. 통상적으로도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고요.

오바마 - 페일린 대화는 이 격언이 이런 화제도 일으켰다더라 하는 예시로 넣었을 뿐, 이걸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사라 페일린 지지자들 뿐일 겁니다. 말씀하신 벙어리, 귀머거리 등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일 수 있겠지만 돼지가 여자를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도 립스틱 바르기 시작한지 오래됐죠. 해당 격언이 넓은 의미에서 활용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쪽이 더 나을 것 같네요.

9
2019-11-03 19:20:20

픽션을 논픽션인 것처럼 포장해서 내놓고 공감을 유도하는 것은 저질 상술이죠.

소설은 얍삽하게 픽션의 탈을 써서 비현실적 설정이라는 원죄를 피해가고 통계를 집어넣는 편법을 써서 현실인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현실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과 작가에게 많은 돈)을 안겨줬습니다.

영화(베트남에서도 개봉한다고 하지만 절대 보러 갈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표를 사면 작가에게 돈 1원이라도 수익이 갈테니)는 현명하게도 그런 부분을 피해간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현실인 척을 할 뿐인 픽션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WR
2
2019-11-04 13:09:04

이게 베트남에서까지 개봉하는군요. 어.. 음... 더 좋은 한국영화가 있을텐데 왜..

 

외노자 님 말씀대로 그런 부분들을 피해갔습니다. 원작이 논픽션처럼 언급했던 일화들을 영화판은 픽션처럼 언급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한국에서 여성들이 이런 위협을 당한다고!' 하면서 부르짖는게 아니라 여성으로 살면서 겪는 곤란한 일들 정도에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원작에 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성이 좀 탈각되어 있는 편이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굳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비슷한 소재로는 아미르 칸이 주연한 인도영화 <시크릿 슈퍼스타>가 더 좋다고 보기 때문에 그 작품을 추천해 드립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2019-11-03 20:46:16

글을 쭉 읽어 보았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조금 제 의견을 보태어 말 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대현은 별 노력도 안 하고 돈 버는 것 같다. 영화판이 보여주는 남성인식은 이 정도다.> 이 부분에는 저는 영화를 볼 때 님과 좀 다르게 느꼈습니다. 대현은 장모님의 생일날에도 워크샵을 가야했고 직접 짐을 챙겨서 갔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회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남자들의 현실도 반영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육아때문에 일을 그만둔 아내에 대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죠. 지영이 빵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니까 알바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 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리는 모습이라던가, 장모님 집에 꼭 택시타고 가라고 당부하던 모습, 정신과에 먼저 가서 상담을 받아본뒤 지영씨에게 조심스럽게 권하다가 아내가 병원 검사비가 38만원이라는 소리에 그냥 나왔다는 소리에 한숨쉬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내가 아플때, 힘들때 그리고 같이 걱정하고 고뇌하는 남편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현은 육아휴직을 남직원들과 같이 이야기 하며 고뇌하는 부분도 나옵니다. 육아휴직을 하면 책상 뺄 각오를 하라며 육아휴직을 낸 남선배들의 고충을 이야기 하고 있죠. 회사에서 당장은 잘리지 않지만 승진에서 배제되어 후회한다는 식의 말들이요. 그리고 다른 남직원이 아내가 직장 복귀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육아휴직을 내라 한다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남편들이 가지는 고뇌 또한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들의 직장 생활에서의 고뇌도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었네요. 가령 출산 전에는 일을 똑부러지게 잘 하던 여직원이 출산후에는 자리를 자주 비운다며 남자 상사가 대현 앞에서 투덜대죠. 그런 뒤에 여직원이 자신의 아이를 안고 애가 수족구 병이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없다며 책상에 같이 앉아 업무를 부랴부랴 보는 장면이 나오죠. 그때 남자 상사나 대현도 그 여직원 앞에서 쓴소리를 대놓고 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도 남자 직원들의 어떤 고충을 알겠더군요. 업무에 지장이 가지만 이해하고 넘겨야 하는 그런 부분들 말입니다. 아마 가정을 가진 분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들이라고 생각되고, 그것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계속 반복이 된다면 직장내에서는 결국 밀릴 수밖에 없죠. 남자든 여자든 그런 부분은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어요 다만, 육아 부분에서는 여자들이 아무래도 감당하는 부분이 많은 구조속에 있기 때문에 그런것이라고, 저는 그런식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남편들이 돈 쉽게 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그렇게 그려낸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이 영화가 가족에 더 중심을 맞추었기 때문에 직장생활에서의 고충을 덜 보여준 것 뿐이지, 남자들이 갖는 직장내에서의 고충도 적절하게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6
Updated at 2019-11-03 21:20:54

아까 보고 나왔는데 정말 그 커피 쏟고 맘충 드립하는 장면은 확 깨더군요.
현실성도 너무 떨어지고(요즘 세상에 어느 정신나간 인간이 대놓고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그럴까요) 그 이전까지는 그런대로 공감이 가기도 했었는데 그 장면에서
넘 작위적인 시도가 느껴져서 씁쓸했습니다.

1
2019-11-03 21:50:16

그부분은 영화에 호평하시는 분, 혹평하시는 분 전부 지적하시는 부분이라...

원작에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원작은 이게 각색이 되면서 영화에서는 엄청 튀는 부분이 되어버렸어요. 빼거나, 좀 더 부연 설명을 붙였어야 해요

WR
1
2019-11-04 13:10:36

원작은 벤치에서 김지영이 커피를 마시다가 맘충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하면서 울부짖는 전개였었죠, 아마? 영화는 초반부에 원작 상황이 나오고 후반부에 카페에서 싸우는 장면. 맘충과 관련된 상황이 총 두 번 나왔는데 카페 장면이 원작에도 있었는지 갑자기 헷갈리네요.

7
Updated at 2019-11-04 10:12:17

 저는 원작을 읽지 못했고 영화만 봤는데 일부 공감이 됩니다. '현실 반영'이 아닌 '현실 착취'의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기존의 한국영화에서 재난을 다루는 태도,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도가 어떻든 영화적으로는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WR
1
2019-11-04 15:12:15

원작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공포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재난영화 쪽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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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08:58:03

출근 해서 습관적으로 디비디방 로그인 하는데 습관적으로 읽지 않고 정독 했습니다.

대현이 다니는 회사풍경이 잠깐 등장할 때마다 그 곳 직원들이 설렁설렁 담배나 피워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남성이 여성보다 손쉽게 사회생활에 진출해서 자기 자아를 실현하고 있다는 시선이 느껴진다. 남녀 불문하고 과연 자신이 꿈꿨던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도 영화 보면서 이 부분이 영~~ 좀, 뭐라고 할까 , 찝찝 했는데 통쾌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영화 리뷰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WR
1
2019-11-04 15:22:20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르가디스 님. 

원작소설을 생각하면 사실 이야기에서 대현이 뭔가 고생하고 있다는 이미지는 나오면 안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판에서도 대현이 지영이 힘들어할 때 멀리 앉아서 맥주 마시고 안주 먹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식의 연출을 삽입하더군요. 그런거야 원작을 따라가려는 의도였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영화판의 오리지날 스토리인 대현의 회사생활 같은 것도 놀멍쉬멍하는 일상처럼 묘사하니까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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