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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수퍼 디스코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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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23:55

 

아오 음악하기 싫어



[스포일러 있음]

<수퍼 디스코>는 장기하와 얼굴들과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등을 배출한 인디음악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의 현 간판 스타인 술탄 오브 더 디스코를 다루고 있다. 붕가붕가 레코드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을 모토로 내세우며 음악적 역량을 지닌 소속 아티스트들이 무대에서 선보인 여러 기행들로 깊은 인상을 남겨 왔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붕가붕가 레코드가 자사와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현실에 대입시키는 태도에 있었다. 쌈마이적인 감성으로 충만했지만 그저 세상과 불화하겠다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절박한 생존 의지까지 함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내 수공업 음반' 시리즈가 대표적이었다. 붕가붕가 레코드는 수공업 음반을 발매할 때 PC에 디스크 드라이브 서너개를 설치하고 음원이 담긴 CD를 구운 후, 사장부터 소속가수들까지 모두 나서서 케이스를 만들고 음반 커버를 부착했다. 이를 궁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온라인에 공개했다. 보는 입장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나 싶을 정도였지만, 곧 아티스트가 지닌 자아도취적인 면모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을 상쇄시키는 매력이 됐다. 궁상스러움을 통해 아티스트들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존재임을 증명한 셈이다.


 

 

* 붕가붕가 레코드의 수공업 음반 제작 과정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디스코 훵크 장르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밴드다. 멤버 구성 방식이 독특했는데, 레이블의 중추들과 소속 아티스트들이 멤버로 속해있거나, 있었다. 결성과 함께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멤버인 리더 나잠 수는 평소 마스터링 및 믹싱 엔지니어 일을 하고 있으며, 객원 댄서였던 김덕호 아버지는 일명 '곰사장' 이라 불리는 레코드사 대표다. 한 때 장기에프라는 이름으로 멤버 활동을 했던 장기하와 더불어 김기조 타이포그래퍼까지 멤버로 속해 있었다. 정규 1집 발매 즈음 해서 카드 게임을 하다 고환에 총을 맞고 사망한 또다른 결성 멤버 무스타파 더거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윤덕원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가끔 술탄을 위해 저승에서 돌아온다고도 한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활동 초기만 해도 악기 연주를 하지 않는 립싱크 댄스 밴드라는 이유로 업계에서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그러나 곧 숨겨진 역량을 드러내며 스타에 등극했다. <수퍼 디스코> 는 그 스타성에 기대어 추진됐다. 1집 발매 후 글래스톤베리 음악축제에 초청 받은 일을 시작으로, 2년 후를 예정으로 잡고 흥겹게 2집 앨범을 만들어 나가는 멤버들을 담아내려는 장미빛 비전으로 채워지려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된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2집 발매는 2018년까지 미뤄지고, 붕가붕가 레코드의 실적도 예전같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작품은 레이블과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멤버들이 방황하던 시기를 카메라에 담게 된다. 글래스톤베리 음악축제, 해외 진출 인터뷰, 세계적인 믹싱 엔지니어인 토니 마세라티와 협업하는 순간들도 나오지만 영광의 순간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다른 인디 밴드들마냥 사라지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분투로 부각된다. 아쉬움을 주는 부분은 업계에서 생존하려는 열망과는 별개로 음악에 대한 멤버들의 고민이 그리 부각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1집 <The Golden Age>를 발표했을 때 불러일으킨 궁금증이 있었다. 과연 이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밴드가 애정했던 디스코 훵크 장르는 사실 오래 전 수많은 고수들의 손에서 해볼 수 있는 실험은 다 시도된 바 있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좋은 앨범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랍 스타일 컨셉을 지켜가며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창작력에 제약을 거는 원인이 되어갔다.



 

 


이런 지점을 두고 음악적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이 본편에는 별로 담겨져 있지 않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다른 인디밴드들처럼 시위현장이나 사회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내는 스타일도 아니니까 이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쪽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 상영본에는 모티프가 없다고 하거나 합주하기 힘들다며 징징대는 듯한 나잠 수, 회사원처럼 꾸준히 연습할 수 없다면서 툴툴대는 드러머 김간지의 모습 정도만 보일 뿐이다. 멤버들이 <수퍼 디스코> 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예상보다 더 철딱서니 없다. 음악 다큐멘터리에서는 가수들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함이 감상에 재미를 더하는 법이지만, 이 작품은 되려 쟤들 저러면 안 되지 않나 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장미빛 미래로 가득했던 작품 기획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여파도 있겠지만, 곰사장까지 작품을 이끌어가는 한 축을 차지한 데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에 대한 다큐멘터리지만 보다 보면 오히려 곰사장에게 납득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아티스트와 레이블 대표는 함께 가야하지만 필연적으로 대립하는 관계다. 붕가붕가 레코드는 입사 면접 볼 때 지원자들에게 당당히 말한다. 불편함이 우리의 모토이며 이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그러나 레이블을 꾸려가는 일은 엄연한 현실이고 모토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수퍼 디스코>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당시 재정상황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기본적으로 곰사장과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대화 장면들은 꽤나 날 선 분위기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확히는 곰사장이 주로 멤버들을 다그치고 지적하는 형국이다. 작품에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음악인의 자의식을 갖고 오만하게 스타덤을 즐기거나, 플렉스 라이프를 선보이는 여유가 없다. 디스코의 정수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고 자부하는 그들의 음악은 뭘 어떻게 하던 본고장 사운드를 흉내낸 가짜에 불과하며 각박한 현실은 목을 조여온다. 그래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일본이나 디스코 훵크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생각보다 덜 신난다. 뉴욕의 한 클럽에서 신나게 공연하는 순간에 삽입되는 배경음악이 쓸쓸한 블루스인 이유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 붕가붕가 레코드는 공연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인정 받았다는 쾌감이 아니라 스스로 가짜같다는 주제파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 레이블과 밴드는 음악축제와 대중의 열광을 신기루처럼 여기고 점점 겸손해진다.



 

 


<수퍼 디스코>는 기본적으로 술탄 팬들 보라고 만들었지만 그들이 좋아라 하는 스타에 대한 다큐로서 효과적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붕가붕가 레코드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생각한다면 즐길만한 구석이 많다. 한국에 존재하는 다른 인디 음악 레이블이 보면 많이 와닿지 않을까. 그들 대부분이 특정 지역 공연장과 인맥을 바운더리 삼고, 즐기면서 예술한다는 명목 아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들에게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는 불안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예술활동은 철저한 현실인식을 바탕 삼아서 지속된다. 음악 기획사가 음원 사재기를 저지르고 음악 방송사가 부정 사기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더더욱.

 

 

어쩌다 약 빨고 걸작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작품이란 창작을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연습하는 데서 탄생하는 법이다. 정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잠시 솔로를 하건, 다른 밴드 활동을 하건 어떤 형태로든 계속 악기를 다루고 노래하는 멤버들처럼. 그리고 레이블 사장이 직접 나서서 결성 13년차 인디 밴드를 갈궈대며 (....) 빨리 성실하게 합주 연습하고 음악을 만들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플렉스 라이프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퍼 디스코>는 한 번쯤 볼만한 다큐멘터리로 자리잡는다.


 


p.s.


1)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보여준 행보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웨ㅔㅔㅔㅔ' 발표 당시 래퍼 블랙넛과 작업한 일이었다. 할 사람이 그렇게 없나. 뭐 이런 인간하고 작업하나 싶었는데 <수퍼 디스코>에는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없어서 좋았다. '웨ㅔㅔㅔㅔ' 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에게 있어 아랍 컨셉을 탈피하는 분기점이 된 작품이었지만, 피처링 한 사람이 블랙넛이라 곡이 지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듣기 껄끄럽기도 했고. 참고로 라이브 무대에서는 블랙넛이 피처링한 부분을 JJ 핫산이 대신 소화했다. 지금도 드는 생각이지만, 그냥 처음 녹음할 때부터 핫산한테 시키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적당히 어설프고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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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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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19:26:02

보고싶었는데

볼려고 해도 볼수가 엄는 현실..

이런 상황이 언제쯤 개선될런지...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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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21:09:40

그러게요. 저도 이 작품 극장 개봉할 때는 해주는 곳이 없어서 못 봤답니다. EIDF 영화제 할 때 방영한 버전을 녹화해서 계속 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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